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 ⓒ인간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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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프롤로그]
“로마는 기어코 이 늙은이의 시체를 보고 싶은 모양이군.”
분주하게 움직이는 로마군을 바라보며 한니발은 한숨을 쉬었다. 피 냄새를 맡은 사냥개처럼 집요하게 그를 추적해온 로마군에게 쫓겨 더 이상 도망칠 곳 없는 절벽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한니발이 할 수 있는 일은 먼발치에서 그들이 일으킨 흙먼지가 밀물처럼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한니발 바르카. 기원전 3세기에 강대국 로마를 상대로 전쟁을 치뤄 신화에나 나올법한 전공을 세웠지만 결국 패배한 카르타고의 장군.
훗날 2차 포에니 전쟁으로 불리는 치열한 전쟁이 끝난 후 한니발은 로마의 칼끝을 피해 국외로 도망쳐 여러 나라를 전전했다. 망명생활은 올해로 벌써 17년차. 하지만 전설적인 명장을 향한 로마의 두려움과 증오는 여전히 집요했다.
한니발은 로마군에게서 시선을 돌려 절벽 아래의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망명길에 오른 후 바다를 바라볼 때면 노장의 가슴은 언제나 조국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찼다.
지중해 최강의 해상대국이었던 북아프리카의 진주 카르타고. 이제 아무런 힘도 없는 자신을 굳이 죽이려드는 로마가 아직도 무시할 수 없는 경제력을 가진 카르타고를 가만히 내버려 둘 이유는 없을 것이다.
노장의 외눈에서 흘러나온 피처럼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앙상한 볼을 타고 내려와 허연 턱수염에 스며들었다.
한니발은 오른손 약지에 낀 반지를 입에 가져가 어금니로 세게 깨물었다. 반지의 보석이 깨지면서 그 안에 숨겨두었던 독액이 식도를 타고 흘러내려갔다. 뱃속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은 격통을 느끼면서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고 한발 한발 절벽 끝으로 다가갔다.
더 나아갈 곳이 없을 때 한니발은 양손을 높이 들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카르타고의 주신(主神) 바알 함몬에게 기도했다.
“불멸이신 폭풍우와 번개의 지배자. 위대한 바알 함몬 이시여! 하밀카르 바르카의 아들인 저 한니발 바르카는 평생을 당신의 검으로 살아왔으나 끝내 로마의 심장을 꿰뚫지 못했습니다! 바라옵건대 저의 무능만을 벌하시고 카르타고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소서! 카르타고 시민들을 보호하시어 그들이 당신의 명예를 회복하고 그들 자신을 지키도록 하소서!”
그 때 등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로마군 기병 10기가 잠시 후면 그를 붙잡을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한니발은 기병들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마지막 힘을 짜내 천둥 같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너희들은 결코 내 목을 갖지 못할 것이다!”
그 외침을 마지막으로 한니발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마지막까지 그가 몸에 걸치고 있던 카르타고를 세운 페니키아 민족의 상징인 자주색 튜닉이 허공에서 나풀거렸다. 노장은 곧 수면에 물보라를 일으키며 검푸른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
그 순간 남서쪽에서 먹구름이 몰려왔다. 맑은 물 한잔에 잉크를 떨어뜨렸을 때처럼 구름 한점 없던 하늘이 순식간에 흐려지며 푹풍우가 몰아쳤다. 갑작스러운 비바람과 천둥번개에 놀란 로마군 기병들은 카르타고의 신이 노했다고 소리치면서 흩어졌다.
- 콰앙!!!
몰락해가는 민족의 힘을 잃어가는 신은 고막을 찢을 듯한 우레로 한니발의 기도에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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