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4화 (4/201)

[ 4 ] [3화] 카르타고나 한국이나 문제는 정치인

“도련님 기도는 잘 드리셨습니까?”

바르카 가문의 그리스인 가정교사 실레노스가 신전을 나서는 하스드루발을 맞이했다.

“그럭저럭. 오래 기다렸지? 가자. 실레노스.”

하스드루발과 실레노스가 여러 신전이 들어서있는 구역을 지나자 바알 함몬의 신전만큼이나 웅장한 원로원 건물이 보였다.

딱 들어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한국으로 치면 국회와 비슷한 곳이다. 하스드루발은 발걸음을 멈추고 원로원 건물을 바라보면서 실레노스에게 물었다.

“실레노스. 아버지께서는 시칠리아에서 로마군과 7년 동안이나 싸우시면서 한 번도 전투에서 진 적이 없으시지?”

“그렇습니다. 도련님.”

“그런데 우리 카르타고는 왜 전쟁에서 졌을까?”

“해전에서 패했기 때문입니다. 하밀카르 장군님께서는 로마군보다 훨씬 적은 병력으로도 싸울 때마다 이기셨습니다. 하지만 카르타고 해군은 연전연패 했지요. 결국 섬인 시칠리아에 계신 장군님께 제대로 보급을 할 수 없게 되자 정부는 로마에게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잖아.”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도련님?”

하스드루발은 고개들 돌려 실레노스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치인이 썩어서 졌지. 10년 묵힌 생선눈알처럼 아주 푹 썩었잖아.”

하스드루발의 말에 놀란 실레노스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핀 후 허리를 숙여 당돌한 어린 제자의 귓가에 속삭였다.

“하스드루발님. 말씀을 조심하십시오. 카르타고의 모든 벽에는 국내파의 귀가 달려있습니다. 특히 원로원 주변에는 대(大)한노의 개들이 득실득실 하다고요!”

그 때 두 사람의 등 뒤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누구야? 바르카 가문의 꼬맹이 하스드루발 아니냐?”

하스드루발과 실레노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 시대에는 드물게 185cm는 될 법한 큰 키에 살이 뒤룩뒤룩 찐 대머리 거한이 거만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거한의 주변에는 졸개들로 보이는 남자 다섯 명이 뭐가 그리 웃긴지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거한은 금과 보석으로 만든 반지며 목걸이로 치장한 것으로 봐서 귀족이 분명했다.

실레노스는 속으로는 깜짝 놀랐지만 능숙하게 표정을 숨기고 거한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바르카 가문의 가정교사 실레노스가 대 한노 님께 인사드립니다. 하스드루발 도련님. 대 한노님을 뵙는 건 처음이시지요? 이 분은 원로회의의 다선 의원이시자 100인회의 일원이신 그 유명한 대 한노 님 이십니다. 인사드리시지요.”

하스드루발은 대 한노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아. 이 놈이 그 놈이구나. 초면인 네 살짜리 이름도 아는 거보니 귀가 많긴 많나보네.’

카르타고는 과거에는 왕국이었지만 이 시대에는 시민들이 선거도 치르는 공화국이다.

그런 카르타고의 정치인들은 현재 두 계파로 나뉘어 치열한 정쟁을 벌여오고 있다.

그 중 하나는 해외파.

카르타고의 전통인 해상무역을 주업으로 삼고 해외의 무역거점을 늘리고자하는 귀족들이 모인 계파. 지금 시대의 수장은 하스드루발의 아버지 하밀카르가 맡고 있다.

다른 하나는 국내파.

노예와 속주민들을 착취해 대농장을 경영하는 자들.

기원전에는 비옥했던 북아프리카 땅을 원주민들에게 빼앗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빼앗고 싶은 귀족들이 모인 계파. 이 시대의 수장은 하스드루발의 눈 앞에 있는 대 한노이다.

19세기에 로마사를 집필하여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저명한 역사학자 테오도르 몸젠은 대 한노와 카르타고의 국내파를 이렇게 평가했다.

- 나태하고 겁 많은 돈의 노예들.

- 노회(老獪)한 자들.

- 어리석은 자들.

- 오로지 평화 속에 살다가 죽기 위해 시간을 벌고자 최후의 결전은 될 수 있는 한 뒤로 미룰 생각뿐인 자들.

그리고 21세기 대한민국의 흙수저 역사학도 김성호였던 하스드루발은 대 한노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 카르타고의 선조(宣祖) 새끼.

- 나라의 운명이 오늘 내일 하는 와중에 소인배 기질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군에게 총질을 해대다 나라를 말아먹은 놈.

1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가 로마에게 빼앗긴 시칠리아는 국가 경제에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유럽 최고의 곡창지대에서 나오는 수입은 지중해 최고의 부국(富國)인 카르타고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던게 첫번 째 이유이다.

하지만 그 정도 손해는 지중해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자 무역거점으로서의 시칠리아를 상실한 것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었다.

카르타고는 3년 전 로마에게 시칠리아를 빼앗김으로서 수백 년 동안 일궈온 서지중해의 무역독점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무역관세 수입이 정부예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카르타고의 국가경제에 적색경보가 떨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카르타고 정부는 시칠리아를 되찾기 위해 떠나는 하밀카르에게 로마군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1만 여명 정도의 병사만을 맡겼다. 대 한노와 국내파 때문이었다.

하밀카르는 100인회 의원들 앞에서 간곡하게 증원을 요청했지만 대 한노와 국내파는 국가예산이 부족하다고 고함을 지르면서 반대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안 그래도 평민들에게 인기가 많은 하밀카르가 전장에서 공을 세워 국민적 영웅이 되는 게 싫어서임을 모르는 카르타고인은 없었다.

어쩔수없이 하밀카르가 적은 병력으로 시칠리아에서 게릴라전을 벌이며 분투하던 1차 포에니 전쟁 말기에 대 한노는 국내파의 수입원인 영토를 늘리려고 병사들을 이끌고 힘없는 리비아인의 촌락이나 습격하고 있었다.

이름 앞의 ‘대(大/Great)자'도 그런 식의 정복사업을 칭송하며 국내파들이 붙여준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전쟁이 끝난 후 전리품과 사재를 털어 마련한 돈으로 용병들의 임금을 지급해온 하밀카르가 마침내 스스로 자금을 충당할 수 없어 정부에 임금지급을 요청하자 국내파는 이번에도 예산 부족을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하밀카르와는 달리 자신들의 산더미 같은 재산에서 한 푼도 내놓지 않은 것은 물론이었다. 그 바람에 화가 난 용병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리비아와 누미디아의 속주민들도 이에 가세해 카르타고를 포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었다.

결국 카르타고 정부는 원래 용병들에게 지급해야할 비용보다 더 많은 예산을 지출해 새로 용병을 고용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대 한노가 군대를 이끌고 반란을 진압 해보았지만 능력이 부족해서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결국 하밀카르가 새로 뽑은 용병을 이끌고 반란을 진압해야 했고 그 끔찍한 내전이 완전히 끝난 것은 불과 몇 주일 전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당당하게 싸돌아다니고 있구나. 적어도 낯짝 두께는 역사에 길이 남을 만 하네.’

하스드루발은 마지못해 대 한노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하밀카르 바르카의 아들 하스드루발이 대 한노께 인사드립니다.”

그러자 대 한노가 거들먹거리며 대답했다.

“바르카 가문답지 않게 공손한 인사로군. 그렇지만 저 외국인을 보니 네 공손함도 바르카 가문의 천박함을 가리지는 못할 것 같구나. 그리스인 가정교사라니? 카르타고인은 국법에 따라 그리스어를 배우지 못하는 걸 네 아비 하밀카르는 정녕 모른단 말인가? 나약한 그리스 문화 따위에 관심을 가질 시간에 차라리 도서관에 가서 마고의 농업서나 읽을 것이지. 쯧쯧.”

거기서 그치지 않고 대 한노는 실레노스를 흘겨보며 계속 시비를 걸었다.

“그리스인. 올해로 몇 살인가?”

“올해 스물 일곱입니다.”

“육체적으로 한창 전성기인 나이로군. 그리고 보니 자네 외모도 제법 곱상하군 그래? 자네들 그리스인은 동성애를 미덕으로 여긴다지? 하밀카르는 사실 자기 침대에 자네를 끌어들이고 있는 거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카르타고인이 그리스 문화 따위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없을 테니까 말이야.”

대 한노가 점잖은 목소리로 저속한 농담을 하자 졸개들이 큰 소리로 웃어대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하하하하!”

“크헤헤헤헤헤헤헤!”

“낄낄낄낄낄낄! 커헉! 커헉!”

하스드루발은 그 광경을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너희 사회생활도 아주 고난의 행군이구나. 아주 웃다가 사레도 들리고 난리 났네. 부장님 아재개그에 웃어대는 신입사원이 저런 모습일까? 정말 애잔하다. 그나저나 저 배불뚝이 놈이 감히 내 앞에서 패드립을 쳐?’

하스드루발은 두 가지 이유로 단단히 화가 났다.

첫 번째는 아들로서 아버지를 모욕한 자에 대한 분노.

두 번째는 역사 덕후로서 역사적인 위인을 모욕한 소인배에 대한 분노.

‘이순신을 욕하는 원균 같은 놈! 안중근을 흉보는 이완용 같은 놈!’

하스드루발은 발뒤꿈치에 모든 체중을 실어 대 한노의 통통한 새끼발가락을 사뿐히 즈려밟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대 한노와 국내파가 바르카 가문의 평판을 손상시킬 빌미만 주게 될 게 뻔했다.

하스드루발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고 입가에 미소를 띠며 대 한노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대 한노 께서는 돼지에게 밤 시중을 들게 하고 계신 모양입니다.”

하스드루발의 당돌한 말에 대 한노가 눈을 부릅뜨며 노성을 질렀다.

“뭐야!!!”

하스드루발은 지지 않고 계속 또박또박 말했다.

“우리 페니키아인은 바다의 민족입니다. 수백 년 전 엘리사 여왕께서 가늘게 자른 소가죽으로 비르사 언덕을 감싸 카르타고를 건국하시기 전부터 우리는 해상 무역을 해왔습니다. 그러니 물고기가 헤엄을 치는 게 당연하듯이 우리 카르타고의 남자가 바알 함몬께 은총을 빌면서 항해하는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일인 동시에 가장 명예로운 일입니다.”

하스드루발은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대 한노 께서는 바다를 꺼리고 땅에서 나는 이익에만 관심을 가지십니다. 마치 하루 종일 코를 땅에 쳐박고 흙을 파헤치면서 먹이를 찾는 돼지처럼 말입니다.”

하스드루발은 불꽃이 튈 것만 같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대 한노를 노려보며 결정타를 날렸다.

“대 한노께서는 카르타고인인 바르카 가문이 그리스인에게 밤 시중을 들게 하기 때문에 그리스에 관심을 갖는 게 아니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바다의 민족이신 대 한노 께서 땅에만 관심을 가지시는 이유는 혹시 돼지에게 밤 시중을 들게 하기 때문은 아닌지요?”

대 한노는 하스드루발의 말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얼굴이 시뻘게지고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두피에 굵은 힘줄이 드러났다. 꼭 삶은 문어 같은 모습이었다.

대 한노의 졸개들도 네 살짜리의 논리적인 반박에 너무 놀라 아무런 대꾸도 못했다. 그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입을 쩍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실레노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양 손으로 끊어지기 직전까지 잡아당긴 고무줄 처럼 팽팽한 정적을 끊은 건 대 한노도, 하스드루발도 아닌 제3자들이었다.

“풉!”

두 사람의 말다툼을 엿듣고 있던 주변의 시민들이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풉!”

“풉!”

“풉! 푸우웁! 크크크크크크크큭.”

카르타고의 모든 신전이 모여 있는 신성한 비르사 언덕에 비웃음 꽃이 활짝 피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대 한노는 간신히 이성의 끈을 잡았다.

‘원로회의의 중진인 내가 네 살짜리와 길바닥에서 얼굴을 붉히며 말다툼을 했다고 소문이라도 나봐라. 농장에서 올리브 따는 노예들까지 나를 비웃을 테지. 이미 모양새는 충분히 빠졌다. 빨리 자리를 피하자.’

대 한노는 망가진 꼭두각시 같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혀 놀림이 아주 벼락같은 꼬맹이로구나. 누가 바르카(Barkas: 페니키아어로 ‘번개’)가문 아니랄까봐. 총명하다는 소문이 아주 헛것은 아니었구만 그래? 그래도 어른을 너무 놀리면 못쓴단다.”

그 말을 마치자 마자 대 한노와 졸개들은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듯 하스드루발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 들의 모습이 보이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실레노스가 감탄스러운 표정으로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하스드루발 도련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 대 한노를 말솜씨로 제압하시다니요! 저 말고 다른 가정교사도 두신건가요? 전 아직 웅변술을 가르쳐 드린 적도 없는데!”

그러나 가정교사의 칭찬에도 하스드루발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내가 실수 했어 실레노스.”

“실수라뇨? 도련님의 말씀은 제 귀에는 아주 논리적이었습니다!”

“그래도 한 계파의 수장인데 공개적인 장소에 너무 망신을 줬어. 이놈의 성질머리. 앞으로 아버지를 더 못살게 굴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말하고 하스드루발은 한숨을 푹 쉬었다. 실레노스는 어린 제자에게 또 한 번 감탄하고 말았다.

‘이게 어떻게 네 살짜리의 통찰력이란 말인가?’

“아닙니다. 예로부터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아들이 용서하면 안 되는 법입니다. 보고 있던 시민들도 도련님의 용기에 감탄했겠지요. 그것과는 별개로 하스드루발 도련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응? 갑자기 왜 그래 딱딱한 표정을 짓고. 말해 봐 실레노스.”

“전 해방노예 출신인 바르카 가문의 사용인입니다. 하지만 하스드루발님은 저의 제자이기도 하시지요.”

“물론이지. 아버님께서도 실레노스에게 제자로서 실례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하셨어.”

“그럼 스승으로써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뭔데?”

잠시 뜸을 들이던 실레노스가 도끼눈을 부릅 뜨며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밤시중]이란 단어를 도대체 어떻게 알고 계신겁니까?"

실네노스의 기습적인 질문에 하스드루발은 놀란 사슴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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