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20화 (20/201)

[ 20 ] [19화] 비누는 이제 그만! 명품이 답이다! (1)

“가끔 이렇게 쉬는 것도 좋구나.”

하스드루발은 자기 방 발코니에 놓여있는 긴 의자에 누워 카르타헤나의 초여름 밤하늘과 밤바다를 감상하면서 만족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끝내준다. 미세먼지가 없으니 밤하늘이 아주 검은색 반 별 반이네. 플라네타리움은 여기다 대면 명함도 못 내밀겠어.”

하스드루발은 낙마사고로 다친 다리가 완치될 때까지 일과 공부를 금지 당한 후 처음 며칠 동안은 마치 금연 3일차를 맞은 애연가처럼 손톱을 깨물며 초조해했다.

전생과 현생을 합쳐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매일 같이 공부와 일에 매달려온 탓에 지독한 일중독자 기질이 몸에 배어버린 탓이었다.

그러나 오랜만의 휴식이 항상 과부하가 걸려있던 두뇌와 몸에 활력을 불어넣은 덕분에 컨디션이 좋아지자 그도 차차 휴식을 즐기기 시작했다.

“푹 쉬니까 머리도 더 잘 돌아가는 거 같아. 그동안은 아버지 구하는데 집중하느라 다른 일은 별로 신경도 못 썼지. 컨디션 좋고 한가할 때 큰 그림을 그려봐야겠다.”

하스드루발은 예전에 분석한 2차 포에니전쟁에서 카르타고가 로마에게 패배하게 되는 원인을 토대로 앞으로 자신과 바르카 가문이 해결해야할 과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1. 한니발이 이탈리아 반도에 진입할 때 데려갈 병력 증강

한니발은 기원전 218년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군의 허를 찌르지만 그 과정에서 약 5만 명의 병력 중 거의 절반을 잃고 만다.

그 후 많은 갈리아인들이 한니발의 군대에 합류하며 양적으로는 병력손실을 거의 만회하지만 한니발은 군대로서의 기강이 잡혀있지 않은 갈리아인들의 충성심과 실력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을 그저 모루 역할을 하는 방패막이 정도로만 활용하게 된다.

결국 전쟁에서 승리할 확률을 높이려면 카르타고군의 정예병인 북아프리카 출신 병사들을 더 많이 데리고 이탈리아 반도에 진입해야한다. 그러려면 애초에 더 많은 병사를 모집한 후 알프스 산맥을 넘을 때의 손실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2. 카르타고군의 무장수준 향상

카르타고군은 수적으로도 로마군에 열세였지만 무장의 질적 수준도 로마군에 비해 심하게 뒤떨어졌다.

벨리테스라고 불리는 경보병을 제외한 대부분의 로마 군단병은 스큐툼이라 불리는 큰 방패와 주무장인 짧은 검 글라디우스를 장비해 무장이 어느 정도 통일되어있었다.

로마의 병사들은 자신의 재산으로 무구를 마련해야했지만 그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중산층 자영농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튼튼한 철제 사슬갑옷인 로리카 하마타, 그리고 청동이나 철로 만든 투구로 무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 재산이 적은 젊은 신병인 하스타티들은 베테랑 병사들보다는 질이 떨어지는 장비를 갖추긴 했지만 그러나 그런 그들도 대부분 금속제 가슴받이 정도는 갖춰 입고 전장에 섰다.

그에 비해 한니발의 카르타고군은 정예병인 북아프리카 출신의 중무장 보병과 기병, 그리고 히스파니아의 동맹부족 귀족전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가난한 용병이나 속주민 징집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병사들이 금속제 갑옷을 입지 못해 천이나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걸쳤고 그마저도 없어 평상복에 작고 부실한 나무 원형방패만으로 몸을 가리고 전장에 서는 병사도 없지 않았다.

아무리 병사를 증원한다 해도 로마군을 수적으로 압도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한니발의 병사들에게 로마군보다 더 질 좋은 무장을 개발해 제공할 필요가 있다.

3. 본국 카르타고 평민들의 사회적 영향력 확대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가 패배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후에 이 전쟁이 ‘한니발 전쟁’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바르카 가문이 로마와의 전쟁에서 분투하는 동안 본국 카르타고의 정부와 많은 귀족들이 최선을 다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로마와 그 동맹도시들은 탄탄한 시민권 제도 덕에 하나로 뭉쳐서 한니발에게 대항하였고 로마의 귀족들은 한니발에게 칸나에 전투에서 대패한 이후 국채 형식이긴 했지만 부동산을 제외한 전 재산을 국방비로 내놓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여 불리했던 전황을 역전시켰다.

그나마 로마와의 전쟁을 극구 반대했던 카르타고의 국내파 정치인들이 전쟁을 아예 중지시키지 못하고 마지못해 한니발에게 지원군을 보냈던 것은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카르타고 시민들의 눈치를 보느라 그랬던 것이었다.

2차 포에니전쟁 발발 전까지 카르타고 평민들의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향상시키면 본국 정부와 귀족들도 로마와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 더 적극적으로 바르카 가문을 지원하게 될 것이다.

4. 위의 모든 대책들을 실현하기 위한 예산확보

네 번째 과제를 머릿속에 떠올리자 하스드루발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후우. 사실 지금 우리가문이 벌어들이는 수입도 기원전 3세기 기준으로는 정말 대단한 수준이란 말이지.”

바르카 가문은 히스파니아에 진출한지 불과 10년 만에 많은 은광과 금광, 철광을 개발해 이미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또 당시 지중해 최고의 관개농법 기술을 가진 페니키아인답게 히스파니아 동남부 연안을 중심으로 올리브와 오렌지, 포도 등의 상품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농장에서 얻는 수입도 제법 쏠쏠했다.

거기에 본래의 가업인 무역사업에서 얻는 수익과 원정과정에서 얻은 전리품까지 합치니 바르카 가문은 이미 부국(富國)으로 유명한 카르타고에서도 상위 1%의 재력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바르카 가문은 고대의 기준으로는 이미 최대한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스드루발은 미래의 지식을 동원하여 추가수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하스드루발은 전생에 가끔 읽었던 대체역사소설에서 수많은 주인공들이 우지(牛脂)나 식물의 기름으로 비누를 만들어 돈을 벌었던 사실이 생각났다.

그는 잠시 비누를 만들어볼까 하고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우유 짤 소도 부족한데 어떻게 비누 만들자고 소를 잡아? 올리브유로 만드는 것도 역시 힘들겠지. 둘 다 귀중한 식료품이니까. 아르헨티나나 캐나다처럼 사람보다 소가 많은 나라에 환생했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게다가 카르타고에는 집집마다 수도가 연결되어있고 평민들도 대중목욕탕에서 자주 목욕을 하지. 전반적으로 위생상태가 좋은 편이라 비누의 반응이 시큰둥할 수도 있어. 뭔가 조금만 만들어 팔아도 큰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그런 거 없나?’

그 순간 다시 전생의 기억이 번개처럼 하스드루발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전생의 대학생 시절 여름방학 때 세일기간을 노려 옷을 사러 번화가에 나갔다가 거리에서 한 부티 나는 젊은 여자와 마주쳤던 적이 있었다,

아직 태그도 안 뗀 신상 백을 어깨에 메고 막 명품 매장에서 나온 여자가 너무 기쁜 나머지 울먹거리면서 휴대전화에 대고 했던 말이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 선명했다.

“옵빠! 나 에르메스 한정판 백 완전 싸게 샀어! 지금 너무 좋아서 눈물 나올 거 같아! 얼마였냐고? 20%나 할인받았더니 겨우 4천만 원밖에 안하더라고!”

당시 한 벌에 3만 원짜리 청바지를 사고 싶어 지오다노 매장을 찾고 있던 그는 한입 빨아먹는 캔디바처럼 연한 하늘색을 띤 작은 백 하나가 중형세단 한 대 가격에 팔린다는 말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그래! 명품! 그런 걸 만들어 팔아야 돈을 좀 만지지! 아 맞다! 이 시대에도 명품이 있었지! 티리언 퍼플!”

티리언 퍼플(Tyrian Purple)은 페니키아인들의 상징인 보라색에 가까운 짙은 자주색 염료와 그 염료로 낸 색을 부를 때 쓰는 이름이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는 아직 염색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천이 아닌 실에 염색을 했기 때문에 염색작업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이런 이유로 유색 직물은 대체로 비쌌지만 그중에서도 티리언 퍼플로 염색한 직물 중 최상급품은 시대에 따라서는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싼 값에 거래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한낱 천이 그토록 비쌌던 이유는 티리언 퍼플 염료의 제작과정이 아주 어렵고 까다로워 생산량이 적은데다 고대인들이 자주색을 권위와 고귀함, 황제를 상징하는 귀한 색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티리언 퍼플은 고대 최고의 명품 브랜드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하스드루발은 바르카 가문도 티리언 퍼플을 만들어 팔면 어떨까 머릿속에서 여러모로 손익을 따지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초기 투자비용이 너무 엄청나. 무리해서 티리안 퍼플을 만들어봐야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염료보다 품질이 좋을 것 같지도 않고.”

티리언 퍼플의 주원료는 지중해 해안에서만 잡히는 뿔고둥의 분비선에서 추출한 분비물인데 자주색 염료 1g을 얻으려면 무려 9천 마리가 넘는 뿔고둥을 으깨서 즙을 짜내야 했다.

그렇게 힘겹게 얻은 뿔고둥 추출물에 양털을 태운 재와 오줌을 정확한 비율로 섞어 열흘 동안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발효시키면 엄청나게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염료가 완성되었다.

발효를 마치고 완성된 염료는 처음에는 무색이지만 공기와 접촉하면 자주색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 상태로 바로 햇볕을 쬐면 금방 변색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 후에도 특수한 조치를 취해 색을 고정시켜야 한다.

이처럼 티리언 퍼플은 가격이 비싼 만큼 원가도 비쌌고 제작과정이 복잡했다.

‘일단 뿔고둥을 잡고 으깰 일꾼부터 수백 명은 새로 뽑아야겠지. 거기에 염료장인도 필요하고. 인건비가 장난 아닐 거야. 게다가 제조과정에서 지독한 냄새가 나니까 거주지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염료를 발효할 건물도 새로 지어야 돼. 불확실한 수익을 노리고 그 정도 투자를 할 바에는 광산개발이나 계속 하는 게 나아.’

그렇게 하스드루발이 돈 벌 궁리에 여념이 없을 때 바르카 가문의 형제들 중 막내인 마고가 방문을 두드렸다.

“형. 나야. 형하고 야식 먹으면서 놀고 싶어서 왔어.”

“어 마고니? 잠깐만 기다려.”

하스드루발은 목발을 짚고 의자에서 일어나 방문을 향해 걸어갔다. 방문은 발코니에서 10m 정도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다리를 다친 그가 문을 열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문이 열리자 그의 눈에 양손으로 커다란 타조알을 들고 있는 동생마고와 한니발, 그리고 손에 등불과 식기세트를 들고 있는 여자 하인 한명이 보였다. 하스드루발이 깜짝 놀라며 형제들에게 말했다.

“한니발 형도 왔네? 마고도 그렇겠지만 형은 진짜 바쁠 텐데.”

놀라는 하스드루발에게 한니발이 대답했다.

“어떻게든 시간을 냈지. 큰형은 너무 바빠서 못 오셨어. 아마 평소 같으면 너도 시간을 내기 어려웠겠지. 누구 하나 다치지 않으면 형제끼리 잘 모이지도 못하니 아쉽구나.”

한니발이 말을 마치자 마고가 두 손으로 삶은 타조알을 머리위로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카르타고에서 데려온 타조가 알을 낳았어! 소금 뿌려 먹으면 엄청 맛있을 거야.”

“그래 진짜 맛있겠다. 우리 마고가 내가 지금 출출한 걸 어떻게 알았을까? 어서 들어와.”

마침 발코니에는 다리를 다친 후 밤하늘을 보며 야식을 먹는데 맛들인 하스드루발이 며칠 전에 들여놓은 둥근 테이블이 있었다. 세 형제가 테이블 의자에 앉자 하인이 테이블 가운데 등불과 큰 접시를 놓은 후 삶은 타조알의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마고가 싱글벙글 웃으며 형들에게 말했다.

“이렇게 셋이 야식 먹는 거 나 일곱 살 때 이후로 처음인거 같아.”

막내 마고의 말에 하스드루발은 코끝이 조금 찡해졌다.

‘어이없는 시대에 태어나는 바람에 열두 살 밖에 안 된 녀석이 마음껏 놀 시간도 없구나. 매일 사람 죽이는 법이나 배우느라고 말이야.’

하인이 아기의 머리만한 삶은 타조알의 두꺼운 껍질을 모두 벗겨내고 손으로 집어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다음 한손에 작은 소금이 담긴 항아리를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소금을 집어 조심스럽게 뿌리기 시작했다.

그때 하인이 실수로 손에서 소금 항아리를 놓쳐 테이블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등불 바로 옆에서 항아리가 깨지면서 안에 있던 소금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인은 당황하며 형제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미숙해서 그만 귀한 소금을 다 쏟아버렸습니다. 도련님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한니발이 그런 하인에게 대답했다.

“아무리 귀한 물건이라도 우리 카르타고인보다 귀하지는 않다. 실수를 책망하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마라.”

하스드루발과 마고는 똑같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마고는 방금 멋진 말을 한 한니발을 바라고 있었지만 하스드루발의 시선은 소금이 튄 등불에 꽂혀 있었던 것이다다.

하스드루발은 등불에 소금이 들어가는 바람에 소금에 함유된 나트륨이 불꽃반응을 일으켜 불꽃이 순간적으로 노란색으로 변하는 장면을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그는 노란 불꽃을 보고나서 뭔가 골똘히 궁리하다 갑자기 두 손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이거다!”

그 자리에 있던 세 사람이 깜짝 놀라며 하스드루발을 바라보았다. 마고가 갑자기 큰 소리를 내더니 기뻐 날뛰는 셋째 형에게 물었다.

“형. 대체 왜 그래?”

“큰 돈을 벌 방법이 떠올랐어! 전부 오늘 야식을 먹자고 한 너랑 소금을 쏟은 저 친구 덕분이야!”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