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 [21화] 비누는 이제 그만! 명품이 답이다! (3)
“저게 대체 무슨 소리지? 역청을 묻혀 불을 붙인 돌을 투석기로 쏜다는 뜻인가?”
하늘에 불꽃을 쏘아 올리겠다는 말에 기술자들은 더욱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수군거렸다.
‘미심쩍어 하는 것도 당연하겠지. 의구심을 덮어버릴 만한 강한 동기부여가 필요하겠군.’
하스드루발은 자신의 말을 못미더워하는 기술자들에게 미끼를 던졌다.
“보수는 카르타고에서 주조한 은화로 하루에 반 세겔이다.”
일반적인 임금노동자 일당의 두 배를 준다는 말에 기술자들은 수군거림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웠다.
“이제부터 이번에 만들 물건을 ‘하스파니아의 불’이라고 부르도록 하지. 나는 히스파니아의 불을 늦어도 180일 안에 완성할 생각이다. 이번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에게는 일을 시작하자마자 90일치 일당인 45세겔을 일시불로 지급할 것이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비숙련 노동자에 비하면 많은 일당을 받는 경력직 기술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 중에서도 하루에 반 세겔 이상의 돈을 벌어본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일을 마치기도 전에 목돈으로 주는 계약금도 당시에는 흔히 볼 수 없는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이미 그 자리에 모인 기술자들 중 대부분이 입 꼬리를 귀에 걸 기세로 활짝 웃고 있었지만 하스드루발의 파격적인 제안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나머지 45세겔은 히스파니아의 불이 완성되는 날 지급하겠다. 만에 하나 개발에 실패해도 180일이 지나면 잔금을 지급하겠지만 앞으로 90일 만에 작업을 끝낸다고 가정하면 일당을 두 배로 받게 되는 셈이지. 또 작업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성실히 일한 사람에게는 매년 말일 제품 판매 순익 중 1,000분의 1을 추가로 지급할 것이다. 나는 앞으로 히스파니아의 불을 팔아서 매년 100달란트의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기술자들은 이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생일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하기 시작 했다. 당시 카르타고의 1달란트가 대략 3천 세겔이니 바르카 가문 도련님의 말이 사실이라면 매년 300세겔의 추가 수입을 얻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 중 한명이 들뜬 목소리로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바르카 가문이 평민들에게 관대하다는 소문을 자주 들었는데 사실이었군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저희들에게 이런 좋은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스드루발은 자신의 말을 그대로 믿고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마냥 뛸 듯이 기뻐하는 기술자들을 보고 조금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매년 100달란트는 많이 오버해서 말한 건데. 이 순진한 양반들이 그걸 필터링 없이 다 믿네. 아오 양심 쑤셔. 명품 이미지 쌓으려면 생산량을 조절해야 하니까 초반에는 그렇게 많이 벌지 못할 거야. 지중해 전역에 입소문 제대로 타려면 아마 몇 년은 족히 걸릴 테니 첫 해는 아마 남는 게 별로 없지 않을까?’
하스드루발은 ‘히스파니아의 불’이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연화를 매년 최대 500개 정도만 만들 생각이었다.
‘보라색 불꽃을 내는 히스파니아의 불은 딱 100개만 만들고 나머지는 다른 색으로 만들자. 그 100개는 자동차로 치면 마이바흐 같은 명품 이미지를 굳혀야 해. 그나저나 비싸게 팔 궁리는 나중에 하고 일단 개발에 집중하자. 먼저 흑색화약과 연화의 구조부터 이해시켜야겠네.’
그가 만들려는 연화는 발사관에서 로켓처럼 발사되어 공중에서 폭발해 국화 모양의 불꽃을 뿜어내는 타상연화(打上煙火)로 현대의 불꽃축제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연화였다.
하스드루발은 먼저 기술자들에게 흑색화약의 재료인 초석, 숯, 황을 보여주면서 화약의 용도와 제조방법을 아는 만큼 알려준 후 연화의 구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가 만들려는 연화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1. 옥피(玉皮)
속에 흑색화약 등으로 만든 내용물을 채워 넣기 위한 구슬모양의 껍질.
본래 옥피는 종이로 만들어야 하지만 고대 지중해 세계에는 종이가 없기 때문에 하스드루발은 얇게 가공한 나무나 파피루스 등 다른 소재를 시험해볼 생각이었다.
2. 별
옥피의 크기에 따라 그 안에 수십 개에서 수백 개씩 들어가는 구슬 모양의 새끼 폭약.
별 안에는 흑색화약과 불꽃반응을 일으켜 색을 낼 탄산칼륨 등의 다른 재료를 섞어서 넣는다. 공중에 쏘아올린 옥피가 폭발할 때 사방으로 흩어진 다음 폭발해 국화모양의 불꽃을 만든다.
3. 할약(割藥)
옥피의 중심에 넣는 종이로 싼 흑색화약. 공중에서 옥피를 폭발시켜 별을 사방에 흩뿌리는 동시에 별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한다.
기원전 3세기의 기술자들은 불꽃이 닿거나 충격을 받으면 폭발하는 가루를 만들 수 있다는 말에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화약과 연화의 개념을 이해했다.
하스드루발이 모든 설명을 마치자 의사 한 명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도련님 말씀대로라면 그 초석이라는 흰 가루가 가장 많이 쓰일 것 같군요. 오래된 담벼락 밑이나 분뇨가 쌓여있는 곳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적당한 흙을 찾아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습니다.”
“나도 그 부분이 걱정이네. 카르타헤나는 무역선이 활발히 드나드는 곳이라 황은 그런대로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초석은 아직 은화로 살수 없는 물건이지. 당분간은 내가 부리는 일꾼 50명이 가져오는 흙에 의지하는 수밖에.”
그 때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조각가 한명이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저 도련님. 초석을 만드는데 쓰는 흙은 분뇨가 오랫동안 쌓여있던 곳의 흙을 퍼온 것이 좋다고 하셨지요?”
“맞네.”
“그 분뇨가 꼭 사람이나 가축의 것이어야만 할까요?”
“꼭 그럴 필요는 없어. 야생동물의 분뇨라도 상관없지.”
“저는 주로 나무로 공예품이나 조각을 만들어 먹고살다 보니 가끔 스스로 질 좋은 목재를 구하러 다닙니다. 하루는 나무꾼이 가져온 목재가 영 마음에 안 들어 도끼를 들고 산에 올랐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더군요. 그때 마침 주변에 큰 동굴이 보여서 비를 피하려고 그곳에 들어갔습니다.”
“고생 많았겠네.”
“그랬지요. 그런데 그 동굴에 엄청나게 많은 박쥐가 살고 있었지 뭡니까? 저 때문에 놀란 박쥐들이 갑자기 날아다니는 바람에 저도 놀라서 그만 엉덩방아를 찧었지요. 하필 그 자리에 박쥐 똥이 잔뜩 쌓여 있더군요. 튜닉에 밴 똥냄새를 없애느라 나중에 진땀 좀 뺐었습니다.”
하스드루발은 조각가의 말을 듣자마자 눈동자를 반짝이며 기뻐했다.
‘박쥐 구아노!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구아노는 바닷새나 박쥐 등의 배설물이 오랜 세월 쌓여 굳어진 덩어리로 질소 함유량이 높아 천연 비료나 초석을 만드는 원료로 쓰이는 천연자원이다.
‘히스파니아에는 평지가 별로 없고 대부분 산지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지. 당연히 곳곳에 박쥐가 사는 큰 동굴이 제법 많을 거야. 내가 무슨 화약무기를 대량생산 하려는 것도 아니고 불꽃놀이용 연화 개발실험에 쓸 초석만 만들려는 거니까 박쥐 구아노를 쓰면 일이 쉬워지겠어.’
하스드루발은 바로 조각가에게 일꾼 50명을 붙여줘 박쥐가 많은 동굴에 가서 구아노를 채취하게 했다.
조각가가 갔었던 동굴은 카르타헤나에서 그리 멀지않은 산에 있었기 때문에 하스드루발은 이틀 만에 충분한 박쥐 구아노를 확보할 수 있었다.
모든 재료가 갖춰지자 연화 개발 작업은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하스드루발은 가장 먼저 염료장인들에게 초석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먼저 박쥐의 변에 밀짚을 태운 재와 오래된 아궁이에서 채취한 재가 섞인 흙을 물에 섞어 투명한 색이 날 때까지 천에 부으면서 투명한 색이 날 때까지 걸러낸다. 그 다음 걸러낸 물을 솥에 넣고 끓이는데 물이 졸아들 때 마다 걸러낸 물을 더 부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물을 다 졸이면 흰 가루가 바닥에 남는데 그것을 다시 물에 섞어 가마솥에 넣고 졸여야한다.”
초석을 만드는 작업은 박쥐 똥에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를 견뎌가며 하루 종일 꾸준히 펄펄 끓는 가마솥을 지켜봐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그렇지만 뿔소라의 내장과 소변을 섞어 만든 염료의 끔찍한 냄새를 견디는 일이 일상인 염료장인들은 별 어려움 없이 똥물이 끓는 솥 수십 개를 잘 관리해 소금처럼 하얀 초석을 만들었다.
그 다음 작업은 초석을 다른 재료와 섞어 흑색화약을 만드는 일이었다. 하스드루발은 그 작업을 의사들에게 맡겼다.
“초석, 황, 숯을 비율에 맞게 섞은 다음 물을 조금 붓고 반죽을 만들어 적당한 용기에 넣고 그늘에 말린다. 그 후에 화약이 다 마르면 나무절구에 넣고 곱게 갈아 나무틀에 넣고 잘 펴서 물을 조금만 뿌려서 말린다. 그런 후에 다시 나무 갈개로 화약을 잘 갈아서 자잘한 크기의 알갱이로 가공하면 완성이다.”
아직 의사와 약사의 구분이 없었던 기원전 3세기의 의사들은 약재를 다뤄본 경험이 풍부해서인지 초심자답지 않은 능숙한 솜씨로 흑색화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화약 배합에서 가장 주의해야할 점은 충격이나 마찰에 의한 폭발을 예방하는 것이다. 독이 든 재료를 다뤄본 경험이 풍부한 의사들은 갓난아기의 뺨을 쓰다듬는 어머니만큼이나 섬세한 손길로 화약을 다뤄 시행착오를 몇 번 겪은 다음 질 좋은 흑색화약을 만들어냈다.
의사들이 화약을 만들자 탄산칼륨을 자주 다뤄본 유리장인들이 화약에 탄산칼륨과 함께 다른 물질을 섞은 후 불을 붙여 색을 확인해가면서 최대한 티리언 퍼플과 비슷한 자주색 불꽃을 내뿜는 화약을 만들었다.
마지막은 종이 대신 파피루스를 여러 겹 덧대어 만든 옥피 속에 별을 배치하는 일이었다.
별을 배치하는 일은 불꽃의 모양을 결정짓는 중요한 작업이다. 입체적인 상상력이 풍부한 조각가들은 할약이 폭발해 새끼화약인 별이 퍼져나가는 경로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세심하게 옥피 속에 별을 집어넣었다.
그렇게 같은 크기의 반구(半球) 모양 옥피 두 개에 따로 별을 채운 다음 접착면에 아교를 바른 파피루스를 여러 겹 둘러서 붙이니 지름 30cm의 둥근 공 모양 연화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최초의 연화는 무슨 문제가 있는지 도화선에 불을 붙이자 공중으로 날아오르지 않고 지상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최초의 실험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하스드루발은 지상에서 폭발한 연화가 내뿜은 짙은 자줏빛 불꽃을 보고 희망을 얻고 기술자들을 독려해 문제점을 분석하며 계속 연화의 품질을 개선해 나갔다.
그렇게 먹고 자는 시간까지 아껴 작업과 실험을 거듭하던 어느 날 석양 무렵에 하스드루발이 기술자들과 함께 새로 만든 히스파니아의 불 한 개를 카르타헤나 성문 밖의 공터로 옮겼다.
반경 300m안에 불에 탈만한 물건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기술자들은 미리 가져온 추진화약이 들어있는 발사대를 설치한 후 그 안에 조심스럽게 화약이 가득한 둥근 연화를 넣었다.
설치작업이 끝나자 등불을 들고 있던 유리장인 한명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발사대의 긴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도화선의 불꽃이 조금씩 움직여 마침내 발사대 속으로 들어가자 히스파니아의 불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 피유우웅! 퍼엉!
혜성같이 하늘로 날아오른 히스파니아의 불이 옥피를 깨고 마침내 속을 드러내자 석양이 붉게 물들인 하늘에 거대한 자줏빛 국화가 피어났다.
“우와!! 성공이다!!”
하스드루발은 짚고 있던 목발도 던져버리고 그동안 함께 고생한 동료들과 얼싸안고 기뻐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여 발생한 시너지에 카르타고인 특유의 돈에 대한 집념이 더해진 덕분에 불과 한 달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1더하기 1이 10이 되어버렸네. 나 혼자 했으면 아마 몇 년이 걸려도 불가능했겠지. 아버지께서 전에 모든 일을 혼자서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이제야 피부로 느끼는구나.’
하스드루발은 하늘에 꽃을 피웠던 자줏빛 불꽃이 허공에서 사그라지는 모습을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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