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 [22화] 비누는 이제 그만! 명품이 답이다! (4)
“오 바알 함몬이시여! 하스드루발 이 녀석! 장난감을 만들겠다더니 별장이라도 한 채 지은 건가? 내가 없는 사이에 뭔 돈을 이렇게 많이 썼어!”
점령지 시찰을 마치고 두 달 만에 카르타헤나에 돌아온 하밀카르는 하스드루발이 연화를 개발하는데 지출한 비용이 적힌 파피루스를 보고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질렀다.
“내가 집에 없을 때는 자네가 이 짓을 못하게 막았어야 할 것 아냐! 어떻게 애들 놀이에 1달란트가 넘는 은화를 쓰게 내버려 둬?”
집사장은 굶주린 사자처럼 사납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주인에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총독님. 그렇지만 저는 총독님께서 시찰을 떠나시기 전 저에게 당부하신 말씀을 충실히 따랐을 뿐입니다...”
그 말에 하밀카르는 시찰을 떠나기 전날 하스드루발이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라고 집사장에게 신신당부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낮은 신음 소리를 냈다.
“으음... 그래. 자네한테 화낼 일이 아니다. 야단맞을 사람은 따로 있지. 당장 하스드루발을 내 방으로 불러오게!”
집사장은 하밀카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황급히 방문을 나서 하스드루발의 방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스드루발이 집사장과 함께 아버지의 방에 들어서자 두 사람의 눈에 회초리라기에는 너무나 크고 굵은 나무 몽둥이를 들고 있는 하밀카르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 모습에 놀란 집사장이 주인을 말리기 시작했다.
“아니 총독님! 들고 계신 흉악한 물건을 대체 어디다 쓰시려는 겁니까? 멜카르트께서 히드라를 때려잡으실 때 쓰시던 참나무 몽둥이도 그것보다는 가늘겠습니다! 설마 그 흉기로 아직 다리도 성치 않은 도련님을 때리시려는 건 아니시겠지요?”
“자네는 말리지 말게. 다 내 잘못이다. 내가 홀아비 밑에서 자라는 자식들을 그저 귀여워하는 바람에 자식농사를 망치고 있었어. 네 이놈 하스드루발! 네 죄를 네가 알렸다!”
하스드루발은 자신을 꾸짖는 아버지에게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버지 고정하시어요. 저는 아버지께서 왜 그리 화를 내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낯빛이 잘 익은 대추야자처럼 시뻘게진 하밀카르는 조금 전까지 자신이 읽던 파피루스를 아들의 눈앞에 들이대며 고함을 질렀다.
“읽어 보거라! 집사장이 네가 지난 두 달간 쓴 돈을 기록한 지출내역이다. 자그마치 1달란트 하고도 천 세겔이야! 우리 가문의 연 수입이 천 달란트를 훌쩍 넘기니 네 눈에는 이게 애들 장난에 써도 되는 액수로 보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1달란트면 카르타고 시민들 열 명 중 아홉 명은 평생 만져볼 수도 없는 큰돈이야! 진짜 상인이 되려면 가장 먼저 돈 귀한 줄을 알아야 돼!”
보통의 열세 살짜리 소년이라면 눈물을 보이며 불같이 화를 내는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었겠지만 하스드루발은 여전히 침착한 표정으로 아버지에게 대답했다.
“아버지. 저는 돈이 귀한 걸 잘 알기 때문에 그 돈을 썼습니다.”
“뭐야?!”
“아버지. 저를 꾸짖으시는 건 제가 만든 장난감을 보신 후로 미뤄주세요. 그런 다음에도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시면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어린 아들의 예상치 못한 당돌한 말에 하밀카르는 궁금한 생각이 들어 조금 화가 누그러졌다.
“그래 좋다. 어디 그 많은 돈을 써서 어떤 물건을 만들어냈는지 구경 좀 하자. 그 다음에는 네 다리몽둥이를 다시 부러뜨리는 한이 있어도 그 정신머리를 고쳐놓아야겠다!”
하스드루발은 아버지를 전에 연화발사 시험을 했던 카르타헤나 성문 밖의 공터로 안내했다.
아직 다리가 불편한 하스드루발이 목발을 짚고 걸어가기에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하인들이 드는 작은 가마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두 부자가 공터에 도착하자 하스드루발이 보낸 하인에게 언질을 받고 먼저 그 자리에 왔 있던 기술자들 중 한명이 미리 설치해둔 히스파니아의 불 세 개중 하나를 발사했다.
- 피유우우웅! 콰과광!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오른 히스파니아의 불이 공중에서 폭발하자 구름한 점 없는 파란 초여름 하늘이 청록색 불꽃으로 가득 찼다.
“세상에! 저게 대체 무엇이냐?”
하밀카르는 공중에서 흐드러지게 피었다 사그라지는 국화모양 불꽃에서 보름달처럼 동그랗게 뜬눈을 떼지 못하며 감탄했다 .
하스드루발은 놀라움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의기양양한 미소를 때며 말했다.
“불꽃놀이라는 거에요. 제가 저 사람들과 함께 만든 물건을 발사한 거죠. 이름은 ‘히스파니아의 불’이라고 붙였어요. 이게 끝이 아니에요!”
하스드발이 손짓을 하자 다시 발사대 두 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불을 뿜었다. 이번에는 노란색 불꽃과 자주색 불꽃이 하늘을 물들였다.
“아아....”
노란색 불꽃도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하밀카르는 자주색 불꽃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정말 아름답구나. 불꽃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도 놀랍지만 대체 무슨 수로 불꽃에 염료를 칠했느냐?”
“염료를 칠한 게 아니에요. 제가 발명한 화약이라는 폭발하는 가루에 특정한 물질을 섞어서 불을 붙이면 저런 색의 불꽃이 나와요. 노란색은 불순물을 최대한 제거한 순수한 소금을 섞었고요. 초록색은 구리분말을 섞었어요.”
“알겠다! 자주색 불꽃에는 뿔고둥을 갈아 넣었겠지? 저 정도로 거대한 불꽃이면 백만 마리 정도는 갈아 넣었겠군!”
“아니요. 유리장인들이 쓰는 특수한 잿가루를 조금 섞었을 뿐이에요.”
하밀카르는 놀란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겨우 그 정도로 불꽃을 티리언 퍼플로 물들였다고? 정말 놀랍구나. 그런데 왜 이름을 히스파니아의 불이라고 지었느냐? 차라리 카르타고의 불이라고 짓지.”
그러자 하스드루발은 오른손을 둥그렇게 말아 입에 대고 아버지에게 속삭였다.
“화약을 만들려면 초석이라는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데요. 초석은 만드는데 손이 많이 가긴하지만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고객들에게 화약을 히스파니아의 광산에서만 채취되는 희귀한 물질이라고 알릴 생각이에요.”
하밀카르는 어린 아이 답지 않게 주도면밀한 아들에게 다시 한 번 놀라며 말했다.
“거기까지 생각하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그나저나 히스파니아의 불 중에서도 자주색 불꽃을 내뿜는 물건은 정말 비싸게 팔리겠구먼. 어쩌면 하나에 반 달란트 정도는 받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어. 푹 쉬면서 장난감이나 만들겠다더니 애비에게 거짓말을 했구나! 요런 발칙한 녀석!”
아버지의 말에 하스드루발은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대꾸를 했다.
“거짓말이라니요 아버지? 히스파니아의 불은 분명히 장난감이라고요? 제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부자들이 가지고 놀게 되겠지만요.”
“요요 잔망스러운 것! 하여튼 한마디도 안 져요. 아무튼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다 하스드루발! 네가 정말 자랑스럽구나!”
아버지가 솔직하게 칭찬을 하자 의기양양하기만 했던 하스드루발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아들에게 하밀카르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히스파니아의 불을 어떻게 팔지는 생각해둔 게 있느냐?”
“매년 한 500개에서 600개 정도만 만들어서 경매에 붙여볼까 생각중이에요. 전 히스파니아의 불을 티리언 퍼플 염료 같은 명품으로 만들고 싶어요. 손님이 상인에게 제발 팔아달라고 부탁하는 그런 물건이요.”
그 말을 듣고 하밀카르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하스드루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경매장에 많은 손님들이 찾아오게 하려면 먼저 홍보를 해야겠지. 뭔지도 모르는 물건을 사러 먼 길을 오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건 어떻게 할 생각이니? 그리고 경매장은 어디에 마련할 계획이지?”
“그것 까지는 아직 미처 생각을 못했네요.”
다시 볼을 붉히며 멋쩍은 표정을 짓는 아들에게 하밀카르가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너도 알다시피 그리스인들은 철학이니 문학이니 하는 실익이 없는 짓을 하는 걸 좋아하지. 그 중에서 모든 그리스의 나라들이 대표를 보내 4년에 한 번씩 꼭 치르는 행사가 있단다. 그리스인들은 그걸 올림픽이라고 부르더구나. 마침 올해가 그 올림픽이 열리는 해지.”
하스드루발은 ‘올림픽’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렸다.
‘올림픽? 생각해보자. 최초의 고대 그리스 올림픽이 기원전 776년에 열렸고 올해가 기원전 228년. 776 빼기 228은 548. 548 나누기 4는 137, 올해 올림픽 열리는 거 맞네! 제 137회 고대 올림픽!’
고대의 올림픽은 그리스인들이 기원전 776년부터 제우스 신전이 있는 올림피아라는 도시에 모여 그들의 주신(主神)인 제우스에게 바치는 체육시합을 벌이는 제전경기(祭典競技)였다.
현대의 올림픽은 1·2차 세계대전으로 개최가 취소된 적이 몇 번 있지만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서로 전쟁을 하던 중이라도 올림픽 개최 전후 3개월 동안은 휴전협정을 맺고 올림픽에 참여했다.
그만큼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인과 그리스 문화에 관심이 많은 고대인들에게 중요한 행사였다.
TV로 현대의 올림픽 개막식 중계를 본 기억이 있는 하스드루발은 아버지의 의도를 금방 알아챘다.
“올림픽을 개최하는 도시국가 엘리스에 히스파니아의 불을 선물하시려는 거지요? 확실히 올림픽 개막식에 불꽃놀이를 하면 홍보에 도움이 많이 되겠네요!”
“역시 내 새끼! 한마디 하면 바로 알아듣는구나. 그런 큰 무대에서 홍보를 하면 히스파니아의 불을 찾는 고객의 격도 높아질 거다. 소귀족이나 돈만 많은 졸부들이 아니라 왕족이나 명문귀족들이 직접 경매장에 찾아올지도 모르겠구나.”
그 말에 하스드루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럼 여기 카르타고 노바에서는 경매를 할 수 없겠네요.”
“그렇겠지. 히스파니아의 다른 도시들 보다야 근사하게 짓기는 했지만 이제 막 지은 도시라 아직 다른 나라 귀족들의 눈에는 촌구석 정도로 보일게다. 경매장은 카르타고에 마련하는 게 좋겠구나. 장소는 내가 카르타고에 있는 첫째 사위 보밀카르에게 부탁해서 마련하도록 하마.”
하스드루발은 히스파니아의 불 판매 전략을 짜는 아버지를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우리 아버지는 진짜배기 상인이시구나. 상품을 한 번 보자마자 마케팅전략에 주요 고객층까지 일사천리로 분석해내시네. 이거 21세기에 태어나셨어도 어지간한 대기업 이사 정도는 문제없이 되셨을 거 같아.’
그 때 하스드루발의 머릿속에 그럴싸한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아버지. 카르타고에서 진행할 행사의 기획은 제가 해도 될까요?”
“눈이 반짝거리는 걸 보니 또 무슨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나보구나?”
“맞아요! 경매를 하기 전에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 축제를 열면 고객이 더 많이 모일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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