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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33화 (33/201)

[ 33 ] [32화] 순조로운 전쟁준비 (2)

대장간을 나온 하스드루발은 한니발과 함께 공성병기 제작소에 들어서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 달 만에 또 굉장한 것들이 많이 늘었구나! 이게 남자의 로망이지!’

그는 적 해군의 5단 갤리선도 단번에 들어 올려 뒤집어 버릴 수 있는 거대한 수성(守成)용 기중기의 집게와 코끼리 등에 얹을 수 있게 설계 된 소형노포(弩砲) 따위를 보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주변의 모든 물건을 한 번씩 만져보는 동생과 달리 한니발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뿐이었다.

한니발은 자신이 찾는 물건이 보이지 않자 근처에 있던 목수에게 물었다.

“아르키메데스가 설계한 신형 투석기가 곧 완성된다고 하던데 찾을 수가 없군.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

“신형 투석기 말씀입니까? 아! 트레뷰셋 말씀이시군요. 수석 목수가 시험발사를 한다고 며칠 전부터 트레뷰셋 부품을 성 밖 공터에 옮겨서 조립하고 있습니다. 저희와 함께 가셔서 참관하시겠습니까?”

두 사람의 대화에 하스드루발이 끼어들었다.

“트레뷰셋? 당연히 가봐야지! 앞으로 만들 병기 중 가장 중요한 게 그건데!”

트레뷰셋은 기원전 3세기의 지중해 전역에서 널리 사용되던 투석기인 오나거에 비해 훨씬 무거운 돌덩이를 날릴 수 있고 정밀성과 재현성이 뛰어났다.

오나거는 바퀴가 달려있고 토션스프링의 인장력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돌을 발사할 때마다 심한 반동이 발생하여 정확한 조준을 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나 트레뷰셋은 가건물처럼 땅에 고정하여 사용했고 지렛대의 원리와 무게추를 이용해 큰 돌을 날리기 때문에 반동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아서 정확한 조준이 가능하고 때린 곳을 또 때릴 수 있었다..

한마디로 트레뷰셋은 오나거보다 성벽이나 망루를 훨씬 효율적으로 파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게추를 사용한 트레뷰셋은 본래 12세기부터 유럽에 등장하는 시대를 앞선 무기이지만 하스드루발의 발상과 지렛대로 지구도 들어 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천재 아르키메데스 설계 덕에 기원전 3세기에 첫 시험발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은 목수들을 따라 성 밖의 공터로 향했다.

성문을 나서자마자 며칠 전부터 기술자들이 조립하고있는 거대한 트레뷰셋이 두 형제의 눈에 들어왔다.

하스드루발은 완성되면 높이가 80m는 될 법한 거대한 공성병기를 보고 감탄했다.

‘와... 이거 진짜 크네. 중세에 잉글랜드 왕이 만들었다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트레뷰셋 워울프랑 비슷한 크기인 것 같은데. 아르키메데스 그 영감한테 최대한 크게 설계해 달라고 하긴 했지만 기원전 3세기에 이정도 까지 해낼 줄이야. 역시 시라쿠사에서 빼내오길 잘했어.’

하스드루발이 트레뷰셋을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자 그를 조립현장까지 안내한 목수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덩치 큰 녀석을 만드는데 50명 넘는 인원이 달라붙었는데도 무려 석 달이나 걸렸습니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시면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돌덩이가 날아가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잠시 후 작업을 마친 인부들이 트레뷰셋에 무게가 약 140kg 정도 되는 거대한 돌덩이를 장전했다.

기존에 카르타고군이 사용하던 투석기인 오나거가 기껏해야 25kg 정도의 돌을 날리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장전을 마친 후 인부 몇 명이 트레뷰셋에 장착된 끈을 잡아당겼다.

- 덜커덩!

높은 곳에 매달려있던 거대한 무게추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트레뷰셋에서 발사된 거대한 돌덩이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거의 200m를 날아간 돌덩이는 목표물인 목책을 정확히 맞춰 완전히 산산조각 내버렸다.

“와! 성공이다!”

지난 석 달 간 트레뷰셋을 조립하느라 고생한 목수들과 지난 3년간 아르키메데스가 저질러온 온갖 기행을 안간힘을 써서 무마해온 하스드루발이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한니발도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아르키메데스가 대단한 물건을 만들어냈군. 짜증나는 인간이지만 좀 더 참아볼 수밖에 없겠어.”

하스드루발은 한니발의 마음이 누그러진 틈을 타 아르키메데스를 옹호했다.

“그래. 분수 같은 건 그냥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하자. 이제 곧 여름인데 보고 있으면 시원하고 좋은 건 사실이잖아?”

* * *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은 트레뷰셋 발사실험 참관을 마치고바르카 가문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하스드루발은 루시타니아 원정길에서 쌓인 피로도 풀지 못하고 무기개발 진행상황을 확인하느라 지쳐있었기 때문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목욕을 한 후 침대에 몸을 던졌다.

“아 피곤하다. 이제야 좀 쉬겠네.”

그러나 그의 꿀 같은 휴식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제 막 낮잠을 자려고 하는 찰나 그의 시중을 드는 하인이 방문을 두드린 것이다.

“작은 하스드루발 도련님. 카르타고에서 회계담당자 아훈이 찾아왔습니다.”

“아훈이 벌써 왔다고? 카르타고 노바까지 오는데 앞으로 이틀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바다를 다스리시는 멜카르트 신의 도움으로 배를 타고 오는 내내 순풍이 불었다고 합니다.”

“나한테도 꿀잠의 은총을 좀 내려주시지 정말 너무들 하시네.”

“그럼 잠시 기다리라고 할까요?”

“아니야. 어서 들어오라고 해. 일부러 먼 길 온 사람 기다리게 할 수 없지.”

하스드루발은 3년 전 처음 카르타고에서 연 히스파니아의 불 경매행사에서 큰 활약을 한 아훈을 회계담당자로 고용해 바르카 가문이 본국 카르타고에서 진행하고 사업의 실무를 맡겼다.

그 후 아훈은 하스드루발에게 사업진행 현황보고를 하기위해 반년에 한번 카르타고 노바에 방문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의 지시를 받은 하인은 곧 아훈을 하스드루발의 방으로 안내했다.

“하스드루발 대장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키르타고 노바의 풍경을 보니 요즘 히스파니아 원정이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서 기쁩니다.”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 진행되고 있다네. 요즘 카르타고 상황도 괜찮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사실인가?”

“경기가 많이 살아나서 빈민은 줄고 중산층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석 달 동안 평민 서른한 명이 재산을 모아 귀족이 됐을 정도이지요.”

하스드루발의 건의에 따라 바르카 가문은 카르타고 시민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기위해 재작년부터 경매행사와 설탕을 팔아 번 돈을 투자해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1. 카르타고 해군 증강

카르타고는 전통적으로 가난한 자국민을 해군으로 고용하는 것을 빈민 구제책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1차 포에니전쟁을 치르면서 많은 전함을 잃는 바람에 해군의 규모가 축소되었고 많은 카르타고 시민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그동안 카르타고의 해외파는 전함을 더 만들어 빈민을 구제하고 무역선을 해적으로부터 지키고자 하였지만 국내파가 예산부족을 이유로 반대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르카 가문이 전함건조비용을 기부하자 더 이상 국내파도 해군증강에 반대할 수 없었고 많은 실업자들이 다시 일자리와 자존감을 되찾게 되었다.

2. 평민들을 대상으로 한 저금리 담보대출 시행

상업국가 카르타고의 평민들 중에는 이재에 밝고 장사수완이 좋은 소상공인이 많이 있었지만 밑천이 없어 사업을 확장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하스드루발은 카르타고 해외파의 거물 정치인인 큰매형 보밀카르와 아훈의 도움을 받아 소상공인들에게 적당한 담보를 잡는 대신 연 3% 정도의 이자만 받고 장기대출을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애초에 카르타고 시민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무역선의 해상사고에 대한 보험제도를 시행할 정도로 앞선 금융 감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스드루발이 준 기회를 영리하게 이용했다.

그 덕분에 카르타고의 평민들 중 재산을 많이 모아 귀족이 된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었다.

하스드루발 덕분에 신분상승의 꿈을 이룬 신흥귀족들은 당연히 바르카 가문을 지지했기 때문에 하밀카르가 계파 수장을 맡고 있는 해외파의 영향력도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하스드루발은 본국에서도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그래? 그거 좋은 소식이구만! 다 자네가 잘해주고 있는 덕분이네! 어서 가져온 자료를 보여주게.”

그는 탁상 앞에 앉아 아훈이 가져온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꼼꼼히 살펴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올해부터는 경매를 분기마다 한 번씩 하기로 했나보군.”

“맞습니다. 바르카 가문에 수수료를 떼어주더라도 더 좋은 값을 받고 물건을 팔 수 있다는 소문이 전 지중해로 퍼진 덕분에 판매위탁계약 건수가 많이 늘었습니다. 예전처럼 일 년에 한번 경매를 해서는 모든 물량을 소화할 수가 없어 그렇게 조치했습니다.”

“역시 일처리가 매끄럽군.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다시 말하지만 바르카 가문과 해외파가 국내파를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세력을 기르면 가장 먼저 자네 같은 리비-페니키아인들에게 카르타고 시민권을 주도록 하겠네.”

“그날만 기다리며 바르카 가문에 헌신하겠습니다!”

그 때 누군가 요란스럽게 고함을 지르며 갑자기 방문을 세차게 열었다.

“유레카! 유레카!”

하스드루발이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보자 땀에 흠뻑 젖은 아르키메데스가 눈에 들어왔다.

아르키메데스는 아훈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탁상을 사이에두고 마주보고 앉아있는 두 사람 사이에 고개를 들이밀며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성공했다! 성공했어! 드디어 성공했다고!”

당황한 하스드루발이 아르키메데스에게 대답했다.

“아 깜짝이야! 선생님 대체 뭘 성공하셨다는 건가요?”

“네가 재작년에 나한테 얘기했던 거 말이야! 그거 드디어 만들어냈어!”

“그런 게 어디 한두 개도 아니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어떻게 알아듣겠어요?”

“그거 있잖아! 물속에서도 타는 불! 잔말 말고 빨리 우리 집으로 와! 지금 보여줄 테니까!”

아르키메데스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후 하스드루발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방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하스드루발은 아훈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르키메데스를 따라가기로 했다.

“미안하네 아훈. 아직 할 얘기가 좀 남았는데 잠시 아르키메데스 선생님 댁에 다녀와야겠네. 바르카 가문에 큰 도움을 주시는 분이지만 보다시피 성미가 괴팍하셔서 곤란할 때가 많네.”

“듣던 그대로이신 분이군요. 저는 괜찮습니다. 마음 편히 다녀 오십시오.”

아훈과의 대화를 마치고 하스드루발은 자리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아르키메데스를 따라갔다.

아훈에게는 곤란한 듯이 말했지만 그는 사실 아르키메데스의 발명품을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양반 설마 그리스의 불을 겨우 2년 만에 만들어낼 줄이야!’

그리스의 불은 중세의 동로마제국이 사용했던 일종의 화염방사기로 인화성과 점성이 강한 액체에 불을 붙여 펌프를 사용해 적군을 향해 내뿜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역사에 따르면 그리스의 불로 인한 화재는 물로는 꺼지지 않고 오직 모래나 소변으로만 끌 수 있고 물속에 넣어도 계속 불타올랐기 때문에 야전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 위험해 해전이나 적으로부터 성을 지킬 때만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스드루발은 해전에 사용할 그리스의 불을 개발하고 싶어 3년 전부터 아르키메데스가 그의 강렬한 지적호기심을 화학분야에도 할애하도록 유도해 왔는데 드디어 그 성과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스드루발이 아르키메데스와 함께 그의 집 현관에 들어서자 마당 한가운데에 거무튀튀한 액체가 작은 술병에 담을 수 있을 만큼 뿌려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아르키메데스가 노예를 시켜 그 검은 액체에 불을 붙이게 하자 검은 액체에서 불꽃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저렇게 양이 적은데 불꽃이 정말 드세네요!”

하스드루발이 감탄하며 소리치자 아르키메데스는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아직 감탄하기는 이르다!”

아르키메데스가 손짓을 하자 노예가 물병을 가져와 불꽃에 물을 뿌렸지만 불길은 여전히 거셌다.

하스드루발은 그 모습을 북극성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아르키메데스에게 물었다.

“아르키메데스 선생님. 저 액체를 해군이 실전에서 사용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몰라! 몰라! 저 액체를 만드는 것도 진짜 힘들었지만 저걸 뿌려댈 펌프를 만드는 건 훨씬 더 어려울 거야. 불에 안타게 만들어야 하니까 말이야.”

“선생님이라면 반드시 해내실거에요.”

“당연하지! 3년 전에 널 따라오길 잘했다! 어떻게 그런 걸 만들 생각을 해낼 수 있지? 화염을 물줄기처럼 내뿜는 무기라니? 너랑 있으면 심심할 틈이 없어!”

“그런데 선생님. 저 액체의 이름은 뭐라고 지으실 생각이세요? 선생님께서는 그리스인이시니 ‘그리스의 불’은 어떠세요?”

하스드루발의 말에 아르키메데스가 어린애처럼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웃기고 있네! 당연히 아르키메데스의 불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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