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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34화 (34/201)

[ 34 ] [33화] 켈트족의 역습 (1)

기원전 224년의 4월이 끝나갈 무렵 바르카 가문은 본래의 역사보다 훨씬 성공적으로 세력을 넓혀 히스파니아의 절반을 다스리게 되었다.

모두 하스드루발의 활약으로 불패의 명장 하밀카르가 여전히 건재했고 바르카 가문이 본래의 역사보다 더 풍부한 자금력으로 병사들에게 질 좋은 무기를 쥐어줄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이 같이 나날이 강성해지는 바르카 가문을 가장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로마의 원로원 의원들도 카르타고의 국내파 수장 대 한노도 아닌 4년 전 카르타고군에게 쓰라린 패배를 당한 카르페타니족의 왕 바가로크였다.

“제기랄! 카르타고 녀석들에게 또 요새를 하나 빼앗겼군!”

카르페타니족의 왕 바가로크는 파발이 가져온 서신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바르카 가문은 아야몬테 전투에서 승리한 후 선제공격을 한 적을 응징하기 위해 많은 병사를 잃고 세력이 약해진 카르페타니족의 영토를 꾸준히 빼앗아왔다.

바르카 가문의 보복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카르페타니족의 왕 바가로크는 다시 대군을 모아 카르타고의 히스파니아 속주를 침략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벌써 몇 년째 충분한 병사를 모을 수가 없어 바르카 가문에게 도시나 요새를 하나씩 빼앗길 때마다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부족장 녀석들! 병사를 보내라는 왕의 말이 그렇게 우스운가? 맘 같아서는 이것들을 그냥!”

바가로크 왕은 강력한 권력을 가진 문명국가의 왕처럼 자기 마음대로 전 부족의 병력을 동원할 수 없었다.

카르페타니족은 다른 켈티베리안이라고도 불리는 히스파니아에 정착한 다른 켈트족의 대부족과 마찬가지로 수십 개의 소부족이 모인 부족 연합체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왕이라는 직위는 허울 좋은 이름뿐 사실상 부족연합에서 가장 강한 소부족의 족장에 불과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다시 4년 전처럼 수만 명의 대군을 모으려면 카르페타니의 깃발아래 모인 여러 소부족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그러나 야야몬테 전투에서 카르타고군에게 패배한 이후 카르페타니족의 여러 부족장과 장로들은 다른 대부족들과 동맹을 맺지 않으면 바르카 가문과 더 이상 전쟁을 벌이지 않겠다며 바가로크 왕의 파병요청을 계속 거부해왔다.

그는 다른 대부족의 왕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결국 부족장들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봐라! 지금 당장 켈티베리족과 바카에이족, 그리고 아레바키족에게 사절을 보내 내 뜻을 전해라! 함께 저 증오스러운 카르타고의 수전노들을 처치하자고 말이다!”

* * *

바가로크 왕이 사절을 보낸 후 몇 번 더 협의를 거친 끝에 네 부족의 왕들은 지리적으로 중간지점인 아레바키족의 요새도시 누만티아에 모여 회의를 열었다.

켈트족의 대부족들은 평소 서로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참석자들은 무장을 한 채 회의장에 들어섰다.

네 명의 왕이 회의장 한 가운데 놓인 사각형 탁자에 마련된 자리에 앉자 가장 먼저 회의를 제안한 카르페타니족의 왕 바가로크가 입을 열었다.

“위대한 대부족의 여러 왕들을 만나 뵈어서 영광이오. 미리 사절을 통해 말씀드렸듯이 오늘 이 자리를 만든 이유는 나날이 우리 켈트족의 목을 죄어오는 저 가증스런 카르타고 놈들을 이 땅에서 쫒아낼 방도를 찾고자 함이오.”

그 때 아레바키족의 왕 타르반투가 한쪽 입꼬리를 치켜 올리며 이죽거렸다.

“우리라니요? 이 자리에서 카르타고인들을 두려워하는 건 4년 전에 구아디아나 강변에서 카르타고군을 포위하여 공격하고도 대패한 어느 부족뿐 입니다만?”

타르반투 왕에게 모욕을 당하자 바가로크 왕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검을 뽑아들었다.

“감히 우리 대 카르페타니족을 모욕하는 것인가!”

그러자 타르반투 왕도 검을 뽑아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장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바카에이족의 왕 아이우스가 눈싸움을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을 진정시켰다.

“두 분께서는 모두 무기 내려놓으시지요. 우리는 대화를 하러 이 자리에 모였소. 서로 검을 맞대시려거든 켈트인답게 전장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이만 헤어집시다.”

누군가 자신들을 말려주기를 바라고 있던 두 사람은 마지못해 검을 거둔다는 듯이 투덜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회의장의 분위기가 다시 진정되자 아이우스 왕이 다시 입을 열었다.

“확실히 네 부족들 중에서 카르타고인들에게 피해를 입은 부족은 카르페타니족 뿐이오. 그렇지만 우리도 얻을 것이 있으니 여기 모인 거 아니겠소?”

아이우스 왕의 말에 켈티베리족의 왕 투리바스가 맞장구를 쳤다.

“아이우스 왕의 말씀대로요. 바르카 가문이 동쪽에 있는 어떤 큰 나라와 무역을 시작하면서 요즘 카르타고 노바에 엄청난 재물이 들어오고 있다는 군요. 카르페타니족이 전리품을 다른 부족들에게 양보한다면 우리 켈티베리족은 이번 전쟁에 참여하겠소. 아마 아레바키족과 바카에이족도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실 것 같소만?”

아이우스 왕의 말에 타르반투 왕과 투리바스 왕은 말없이 미소를 지어서 대답을 대신했다.

카르페타니족의 왕 바가로크는 한숨을 쉬며 다른 왕들에게 말했다.

“좋소. 대신 카르타고 놈들에게서 빼앗은 영토는 모두 우리 카르페타니족의 차지요!”

* * *

협상을 마친 네 부족의 왕은 각자 자신의 영토로 돌아가 소부족의 족장과 장로들을 설득했다.

바르카 가문을 함께 공격하기로 약속한 네 부족은 최대한 은밀하게 병사를 모아 카르타고의 히스파니아 속주를 침략하려고 했다.

그러나 하스드루발은 이미 켈트족과 한 번 더 큰 전투를 벌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원래의 역사에서는 앞으로 한 4년 후에 카르페타니족이 주변 부족들과 연합해서 10만이 넘는 대군으로 한니발 형을 공격하지. 그렇지만 우리는 원래 역사보다 훨씬 빨리 히스파니아에 세력을 넓혔어. 예상보다 일찍 켈트족이 움직여도 별로 이상할 건 없어.’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밀카르가 히스파니아 중부에 흐르는 타구스강을 넘어 카르페타니족의 영역을 본격적으로 정벌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카르페타니족의 영역 근처에 사는 올카데스족과 동맹을 맺어 켈트족의 움직임을 파악하고자했다.

올카데스족은 난폭한 이웃인 카르페타니족에게 종종 침략을 당해오던 참에 하스드루발이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자 결국 작년에 카르타고인들과 동맹을 맺기로 마음먹었다.

하스드루발의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켈트족의 대부족들의 침공계획은 네 명의 왕들이 회의를 마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르카 가문에 전해졌다.

하밀카르는 올카데스족의 왕이 보낸 사절로부터 켈트족이 침략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하자마자 급히 아들들과 부관들을 총독 집무실에 불러 군사회의를 열었다.

넓은 집무실 한 가운데 놓인 커다란 원탁에 모든 참석자들이 자리에 앉자 하밀카르가 회의를 시작했다.

“모두 모였군. 오늘 급히 군사회의를 열게 된 건 우리와 동맹을 맺은 올카데스족으로부터 켈트족 대군이 히스파니아 속주를 침략하려고 누만티아에 집결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에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다.”

무역사업에 관련된 일을 처리하러 가데스에 출장을 갔다가 막 카르타고 노바에 돌아온 공정한 하스드루발이 가장 먼저 아버지의 말에 대답했다.

“누만티아면 아레바키족의 요새도시인데... 히스파니아 속주와 영역을 맞대고 있지도 않은 아베라키족이 우리를 치려고 한다면 분명히 카르페타니족과 연합군을 결성한 모양입니다. 이거 만만치 않겠네요.”

그러자 한니발이 공정한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형님. 히스파니아의 중북부에 사는 바카에이족과 에브로 강 이남에서 가장 큰 켈트족 부족인 켈티베리족도 카르페타니족과 손을 잡은 모양입니다.”

공정한 하스드루발은 동생의 말을 듣고 수염을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수염을 만지는 것은 긴장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그의 습관이었다.

“대부족 넷의 연합군이라니...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놈들이 갑자기 힘을 합칠 줄이야. 아버지. 그럼 대체 적군의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장남의 말에 하밀카르가 어두운 표정으로 잘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열었다.

“다 모이면 약 15만 명 정도가 될 거라더군.”

순간 회의장의 분위기가 물을 먹인 솜처럼 무거워졌다.

바르카 가문이 현재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본래의 역사와 별로 다르지 않은 최대 7만 명 정도로 켈트족 연합군의 규모에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정한 하스드루발이 침울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정도로 숫자에서 밀리면 힘 대 힘으로 야전에서 부딪히는 건 자살행위겠네요. 어쩌면 아버지와 시칠리아에서 로마군과 싸울 때처럼 산속에 들어가 농성하면서 게릴라전을 펼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오 바알 함몬이시여. 부디 카르타고와 바르카 가문을 지켜주소서.”

하밀카르는 그동안 히스파니아에서 생산한 식량만으로 군량을 충족할 수 있을 정도의 병력만 유지해왔다.

바르카 가문은 하스드루발의 활약으로 많은 군자금을 확보했기 때문에 언제든지 본국 카르타고나 다른 나라에서 돈을 주고 식량을 사올 수 있었다.

그러나 하밀카르는 로마와의 전쟁이 발발하면 무역을 통한 군량보급은 언제든지 끊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히스파니아 속주의 농업생산량을 넘어서는 대군을 양성하는 것을 꺼려왔던 것이다.

그 때 하스드루발이 기운찬 목소리로 무거운 적막을 깼다.

“아직 야전에서 적을 이길 방법이 있습니다.”

순간 회의실 안의 모든 시선이 하스드루발에게로 쏠렸다.

하밀카르가 조금 밝아진 표정으로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우리 작은 하스드루발이 또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나보구나. 어디 한번 말해 보거라.”

“모두 아시다시피 켈트족의 대부족들은 소부족 수십 개가 모인 연합체입니다. 올카데스족 사절의 말에 따르면 켈트족 연합군이 누만티아에 병력을 모으기 시작한 건 약 일주일 전부터죠.”

거기까지만 듣고도 한니발은 동생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챘다.

“선제공격.”

한니발의 말에 하스드루발은 활짝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역시 한니발 형이야! 척 하면 척이라니까. 중앙정부라고 부를 만한 조직이 없는 켈트족이 백 개가 넘는 소부족들이 보낸 병사들을 한 곳에 모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겁니다. 적들이 다 모이기 전에 우리가 먼저 카르페타니족과 바카에이족의 영토를 습격해야 합니다.”

하밀카르는 하스드루발의 말을 듣고 두 손으로 ‘짝’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무릎을 쳤다.

“그렇군! 그렇게 하면 성질머리 고약한 켈트족들은 소집한 병사가 다 모이기도 전에 우리를 요격하러 나오겠구먼!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최선이다. 그럼 전장을 어디쯤으로 잡아야 할까?”

아버지의 말에 하스드루발이 원탁 한가운데 놓인 히스파니아 지도의 한 가운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제 생각에는 여기 타구스 강변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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