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35화 (35/201)

[ 35 ] [34화] 켈트족의 역습 (2)

“제 생각에는 타구스 강변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하스드루발의 말을 듣고 하밀카르가 물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무엇이냐? 켈트족 연합군은 우리보다 병사가 훨씬 많지만 기병 전력은 우리가 앞설 거다. 강 때문에 기병의 작전반경이 줄어들면 보병이 적은 우리에게 불리하지 않겠느냐?”

아버지의 말에 하스드루발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타구스강에서 자주 이용되는 도강지점은 사람이 걸어서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얕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물이 허리까지 찬 상태에서는 사람의 움직임이 굼떠질 수밖에 없죠. 우리가 강 건너에서 등을 보이며 도망치는 척 하면 적들은 강을 건너 우리를 공격하려 할겁니다. 그 때 적 보병들이 강을 건너는 틈을 노려 얕은 물에서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전투코끼리와 기병으로 공격하면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많은 적 보병을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한니발도 동생의 의견에 동의했다.

“저도 작은 하스드루발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적 보병이 물속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동안 화살을 퍼부으면 전면전에 들어가기 전에 적의 수를 꽤 많이 줄일 수 있을 겁니다.”

두 아들의 말에 하밀카르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좋다. 그럼 이번 전투는 너희 둘에게 맡기마.”

이번 작전의 큰 틀이 보이기 시작하자 하밀카르가 군사회의를 마치면서 아들들에게 세부적인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켈트족 연합군이 아직 모든 병력을 다 모으지는 못했더라도 이미 우리 카르타고군 보다는 머릿수가 많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최소한의 수비 병력만 남기고 최대한 많은 병력을 동원해서 놈들을 공격해야한다. 한니발.”

“네 아버지.”

“보병 4만에 기병 1만 5천명, 그리고 전투코끼리 200마리를 이끌고 카르페타니족의 도시와 요새를 습격해라. 그래서 놈들이 견디지 못하고 너희를 요격하러 나오면 타구스 강변으로 놈들을 유인하도록 해라. 네가 강을 끼고 켈트족 연합군과 대치하고 있으면 최대한 빨리 지원군을 보내마.”

“알겠습니다 아버지.”

하밀카르는 이번에는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작은 하스드루발. 이번에도 한니발의 부대에서 전투경험을 쌓도록 해라. 너는 기병대장이 된지 몇 달 만에 많은 전과를 올리고 있지만 이번 적은 강력하니 방심하지 말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

다음 차례는 공정한 하스드루발과 마고였다.

“큰 하스드루발은 당장 히스파니아의 동맹 부족들과 본국에 모병관들을 보내서 용병을 더 모집하고 병참을 담당해라. 마고는 아직 전장에 나서기는 이르니 큰형 옆에서 많이 배우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아버지.”

“열심히 할게요 아버지!”

모든 지시를 마친 하밀카르는 흐뭇한 눈빛으로 아들들의 얼굴을 한 번씩 바라본 후 말했다,

“이번 전투는 4년 전 아야몬테 전투 이후 히스파니아에서 치르는 가장 어려운 전투가 될지도 모르겠구나. 그렇지만 켈트족의 오합지졸들은 결코 너희를 당해내지 못할 거라고 믿는다. 너희는 내가 로마의 늑대들을 물어죽이라고 키워온 새끼 사자들이니 말이다. 카르타고의 수호신이신 바알 함몬과 바르카 가문의 수호신이신 멜카르트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길.”

회의가 끝나자 바르카 가문의 남자들은 가문의 이름처럼 번개같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은 이번 전투에 출전할 병사들과 군수품을 점검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한니발이 병영에서 병사들의 상태를 살피는 동안 하스드루발은 먼저 마구간에 가보기로 했다.

이번 전투에 처음으로 등자와 편자를 실전에 투입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누미디아 기병들은 등자를 쓰는 걸 거부했지. 애초에 그 인간들은 안장이나 고삐도 안 쓰려고 하는 마상전투의 고인물들이니 어쩔 수 없지 뭐. 그나마 이베리아족 기병들이라도 설득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군.’

편자는 말발굽을 보호하기 위하여 발굽바닥에 장착하는 U자형의 쇠붙이로 현대에는 주로 강철과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다.

비록 바르카 가문이 마우리아 제국과 무역을 시작하고부터 우츠 강철을 수입하고 있기는 했지만 병사들이 쓸 무구를 만드는데 쓰기에도 빠듯한 양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하스드루발은 당시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선철과 연철의 합금으로 편자를 만들기로 했다.

마구간에 도착하자마자 하스드루발이 마구간지기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편자를 장착한 말이 몇 마리지?”

“이제 3천 마리가 조금 넘습니다.”

그 말을 들은 하스드루발의 목소리에 노기가 묻어났다.

“내가 모든 군마의 발굽에 편자를 달라고 한지 올해로 3년차 인데 이제 겨우 3천 마리?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수석 대장장이는 그동안 적어도 말 2만 마리에 부착할 만큼은 만들었다고 했는데?”

하스드루발의 꾸짖음에 마굿간지기가 억울하다는 듯이 울상을 지으며 대답했다.

“대장님 말씀대로입니다. 그렇지만 말발굽에 못을 박아 편자를 다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못을 너무 세게 박으면 말 발바닥까지 뚫고 들어가 상처를 내고 조금이라도 헐렁하게 박으면 말이 조금만 달려도 무릎을 다칩니다. 아직은 이 어려운 작업을 해낼 수 있는 기술자가 너무 부족합니다.”

마구간지기의 말을 듣고 하스드루발은 골치가 아픈지 이마에 손을 짚었다.

“그동안 원정을 다니느라 그 부분은 미처 확인 못했군. 그래서 앞으로도 1년에 천 마리 정도 밖에 편자를 못 달 것 같나?”

“앞으로는 작업속도가 훨씬 빠를 겁니다. 작년부터 먼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경험을 쌓은 기술자들이 제자를 들여 자기 기술을 전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앞으로 2년 안에는 히스파니아 속주의 모든 군마에 편자를 달 수 있을 겁니다.”

“알겠네. 일단 편자를 단 말들은 모두 이베리아족 기병들에게 주도록 하게. 이번 전투에서 큰 활약을 해야 할 자들일세.”

“알겠습니다 하스드루발 대장님.”

하스드루발은 마구간을 나오면서 깊은 한숨을 쉬었다.

‘편자는 지금 시대에도 마음만 먹으면 당장 쓸 수 있는 물건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구나. 역시 지식은 쌓는 것보다 현실에 잘 녹여내는 게 훨씬 어렵구만. 갑자기 아르키메데스 영감탱이가 다시 보이는데.’

그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두 손바닥을 펴 볼을 한 번 친 후 형 한니발이 먼저 가있는 병영으로 향했다.

하스드루발이 병영에 도착했을 때 한니발은 이미 연병장에 전군을 집결시켜 놓고 훈련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한 부대의 전투력은 가장 강한 병사가 아닌 가장 약한 병사에 맞춰진다. 모두 신병들의 움직임에 맞춰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라.”

하스드루발은 한니발이 이베리아족 출신 하급장교에게 지시하는 것을 듣고 감탄하고 말았다.

그가 페니키아어가 아닌 유창한 이베리아어로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스드루발도 현재 페니키아어와 그리스어, 리비아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었지만 이베리아어와 누미디아인들이 사용하는 베르베르어는 어느 정도 알아듣는 정도만 가능할 뿐 대화를 할 수는 없었다.

그는 한니발에게 다가가 아직도 자기보다 키가 큰 형의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형! 이베리아어 엄청 잘하네? 나는 아직 상대방이 천천히 말해주면 간신히 알아듣는 정도인데. 언제부터 배운 거야?”

한니발은 동생의 질문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한 반년 전부터 배웠나? 우리 카르타고군은 여러 지역의 병사들이 섞여있으니 지휘관으로써 병사들이 쓰는 언어는 모두 익혀야 해. 넌 아직 3개 국어밖에 못하지? 한 나라의 언어라는 게 문법하고 발음의 특징만 파악하면 금방 배울 수 있어. 그러니까 너도 틈틈이 이베리아어와 베르베르어정도는 익혀 둬.”

한니발의 어이없는 말에 하스드루발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짜증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아니 무슨 밥 아저씨야 뭐야. 자기는 천재니까 그게 가능한 거지. 혼자 금방 외국어 배워놓고 [참 쉽죠?] 이러면 다냐? 나도 꽤 머리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되게 존심 상하네.’

그러나 하스드루발의 분한 마음은 곧 사막 한가운데 떨어진 물 한 방울처럼 순식간에 증발하고 말았다.

한니발이 부관들과 함께 병사들을 지휘하여 출전 전에 마지막으로 진형을 변경하는 훈련을 시작하자 그 장면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기 때문이다.

다양한 인종과 국적을 가진 용병과 속주민 병사들이 몇 년 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군으로 성장하는 한니발의 지휘아래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야수 한마리가 사냥을 하는 것처럼 유기적이고 역동적이었다.

하스드루발은 그 모습이 대단하다 못해 아름답다고 느꼈다.

‘역시 한니발 형은 대단하긴 하구나. 이거 별거 아닌 걸로 꽁해 있을 시간이 없네. 로마에게 이기려면 형이나 아버지 정도의 지휘력을 갖춘 장수가 더 필요해. 나도 빨리 그 정도로 성장해야지. 원래의 역사에서 카르타고에 한니발 밖에 없어서 로마에게 졌다면 이번에는 두니발 세니발로 쳐들어가면 될 거 아냐.’

꼼꼼하게 병사들과 군수품의 점검을 마친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은 곧바로 카르타고 노바를 출발해 북쪽으로 진군했다.

한니발의 지휘아래 5만 5천명의 대군과 200마리의 전투코끼리가 타구스 강을 넘어 그야말로 들불이 초원을 태워나가 듯이 켈트족의 영토를 공격해 나갔다.

켈트족 연합군이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는 것을 바르카 가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카르타고의 히스파니아 속주 국경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누만티아를 집결지로 삼은 덕분에 방어병력이 적어 두 형제의 원정은 대단히 순조로웠다.

“이동에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만 챙기고 나머지는 전부 태워버려라.”

한니발이 바카에이족 영역 깊숙한 곳에 있는 작은 도시를 함락시킨 후 전리품을 챙기느라 신이나 있는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은 도시나 작은 요새를 함락시킨 뒤 전리품을 챙기고 병영 등의 군사시설과 가져갈 수 없는 군량을 불태운 뒤 수비군을 남기지 않고 바로 다른 곳을 공격하기를 반복했다.

켈트족 연합군과의 일전을 준비하려면 어차피 점령지를 지키기 위해 병력을 할애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 * *

한편 카르타고군의 예상치 못한 총공격으로 켈트족 연합군의 지도부는 혼란에 빠져있었다.

자신의 영토가 쑥대밭이 된 카르페타니족의 왕 바가로크와 바카에이족의 왕 아이우스는 당장 카르타고군에게 반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레바키족의 왕 타르반투는 모든 병력이 누만티아에 집결할 때까지 참아야 한다며 두 왕의 의견에 반대했기 때문에 임시로 마련한 사령부 건물 안의 분위는 나날이 험악해졌다.

카르타고군의 공격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바가로크 왕이 언성을 높이며 타르반투 왕에게 따졌다.

“카르타고 놈들의 횡포를 그냥 두고만 보자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소! 당신의 근거지인 이곳 누만티아가 약탈당해도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소?”

타르반투 왕도 지지 않고 바가로크 왕에게 고함을 질러댔다.

“누가 그냥 지켜 보자고만 했소? 병력이 전부 모일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리자는 거 아니오!”

그러자 아이우스 왕도 바가로크 왕의 편을 들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늦소! 조금 전에도 우리 바카에이족의 도시 하나가 바르카 가문의 차남 한니발이 지휘하는 대군에게 약탈당했다는 소식이 들어왔소. 이러다 이 곳 누만티아로 오고 있는 병력들도 각개격파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오!”

그 때 중립을 지키고 있던 켈티베리족의 왕 투리바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떻겠소? 일단 아레바키족을 제외한 세 부족은 지금 당장 건방진 카르타고 놈들을 진로를 막고 타르반투 왕께서는 우리가 시간을 끄는 동안 이곳 누만티아에 남아서 앞으로 도착할 지원 병력을 모아서 놈들의 뒤를 치는 거요.”

투리바스 왕의 제안에 바가로크 왕과 아이우스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르반투 왕도 투리바스왕의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좋소. 내 최대한 빨리 병사들을 모아서 뒤 따라 가리다. 신들께서 세 분을 지켜주실 빌겠소.”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