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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36화 (36/201)

[ 36 ] [35화] 켈트족의 역습 (3)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은 카르페타니족의 영역 북쪽에 있는 바카에이족의 영역 깊숙한 곳까지 공격해 많은 전리품을 챙긴 후 남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바카에이족의 영역을 벗어나 타구스 강에 거의 도착했을 때 미리 정찰을 보냈던 척후병들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서 돌아와 한니발에게 보고했다.

“한니발 장군님께 보고 드립니다. 남쪽으로 약 55 스타디온(약 10km) 떨어진 곳에 켈트족의 대군이 타구스 강을 등지고 목책을 둘러 우리의 진로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한니발은 가쁜 숨을 몰아쉬는 척후병에게 물었다.

“적군의 숫자는?”

“약 10만 명 정도입니다.”

적군의 수가 아군의 거의 두 배라는 말에 주변에 있던 카르타고군 병사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스드루발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됐어! 적군의 수는 예상범위를 벗어나지 않았어. 우리가 기습공격을 한 덕분에 아직 누만티아에 모이지 못한 병사들이 많기 때문이겠지.’

본래의 역사에서 한니발은 기원전 220년 즈음에 타구스 강변에서 10만 명에 가까운 카르페타니족과 바카에이족, 그리고 올카데스족의 연합군을 훨씬 적은 수의 병력으로 물리친 적이 있다.

많은 수의 적을 보고 겁을 먹고 도망치는 척을 하면서 보병의 비중이 높은 적을 강물 속으로 유인한다는 전략도 그 당시 한니발이 사용했던 것이었다.

하스드루발은 그 전략에 자신의 전술을 추가하여 켈트족의 위협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한니발은 양 진영의 병사들이 먼발치에서 서로를 육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지점까지 진군했다가 군대를 조금 더 뒤로 물렸다.

한니발의 군대가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고 켈트족 연합군의 병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카르타고 군을 조롱했다.

“카르타고 놈들이 겁을 먹고 물러선다! 겁 많은 난쟁이 자식들! 하긴 이런 대군을 뚫고 지나가려고 할만큼 간 큰 놈들은 우리 켈트족 중에서도 드물겠지!”

한니발은 군대를 켈트족 연합군의 진영의 목책이 이쑤시개 정도로 작게 보이는 곳까지 물린 후 그곳에 숙영지를 짓고 병사들을 쉬게 했다.

해가 지고 비번인 병사들이 잠들었을 때 하스드루발은 한니발의 막사에 들어갔다.

“형. 나 왔어.”

한니발은 탁자 앞에 앉아 지도를 보다 말고 고개를 들어 동생과 눈을 마주쳤다.

“하스드루발. 안 그래도 지금 부르려던 참이었어.”

“켈트족 몰래 야밤에 강을 건널 준비를 시키려고 그러는 거지?”

동생의 말에 한니발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전히 눈치가 대단하네. 가끔은 네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야. 잠깐 여기 앉아봐.”

형의 말에 하스드루발도 씩 웃으면서 탁자 앞에 앉았다.

‘머릿속이 아니라 옛날에 역사책을 들여다봤지.’

동생이 자리에 앉자 한니발이 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가 켈트족 연합군이 진을 친 곳이야. 놈들이 넓은 타구스 강변에서 다른 곳을 놔두고 굳이 여기만 지키고 있는 이유는 사람이 걸어서 강을 건널 수 있는 곳은 이 부근에서는 여기뿐이라서 그런 거야.”

“전에 원정을 가다가 인근 주민에게 들어본 적 있어. 제일 깊은 곳도 성인남자 허리까지만 잠긴다더라.”

한니발은 이번에는 지도의 다른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여기보다 상류인 이곳은 그리 깊지는 않지만 물살이 세지. 여기서 걸어서 강을 건너려 들다가는 보병과 전리품들이 강에 떠내려 가 버릴 거야.”

“맞아. 여기서 강을 건너려면 뗏목이 있어야 해. 마침 그 부근에 숲이 있으니 나무를 구하기도 쉬워. 내가 손재주 좋은 병사들을 몰래 데리고 가서 형이 오기 전에 뗏목을 만들어 놓을게.”

“역시 척 하면 척이군. 그럼 당장 시작하자. 내가 지금 누미디아 기병들을 이끌고 켈트족의 진영을 야습하는 척 할게. 너는 함성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바로 병사 5천명을 이끌고 이 지점으로 가도록 해.”

하스드루발은 고개를 끄덕이며 형에게 대답했다.

“알았어. 아마 뗏목을 다 만들려면 사흘 정도는 걸릴 거야. 뗏목이 완성되면 연락병을 보낼게.”

두 형제는 대화를 마치자마자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한니발은 누미디아 기병 3천기를 이끌고 켈트족 연합군의 진영을 공격하는 척했다.

마침 달이 밝은 데다 켈트족 병사들이 피워놓은 횃불 때문에 밤에도 말을 타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우와아아아아아!"

누미디아 기병들은 한니발의 명령에 따라 일부러 큰 소리로 함성을 지르며 보초를 서고 있던 켈트족 병사들에게 돌진해 투창을 던졌다.

"어억!"

몇몇 켈트족 병사들이 날아온 투창을 맞고 쓰러지고 목책 너머에서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자 켈트족 진영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카르타고 놈들의 야습이다!”

한니발이 지휘하는 누미디아 기병들이 특유의 빠른 기동력을 살려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자 약이 오른 바카에이족의 왕 아이우스는 직접 휘하의 켈트족 기병들을 이끌고 출전하려고 했다.

“저 튜닉 한 장만 걸친 놈들이 잘도 촐랑 대는군! 내 직접 우리 부족의 기병을 이끌고 저 놈들의 목을 잘라오겠소!”

그러자 카르페타니족의 왕 바가로크가 그런 아이우스 왕을 말렸다.

“뭔가 수상하군. 어쩌면 우리를 함정으로 유인하려는 것일지도 모르겠소. 카르타고인들은 4년 전 구아디아나 강변에서도 문자 그대로 발밑에 함정을 파놓고 우리 부족의 군대를 기다리고 있었던 교활한 자들이오.”

바가로크 왕의 말에 켈티베리족의 왕 투리바스가 맞장구를 쳤다.

“바가로크 왕의 말씀이 맞소. 우리가 이미 놈들이 카르타고 노바로 돌아가는 길을 막았으니 아레바키 족이 놈들의 뒤통수를 칠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게 현명할 것이오.”

아이우스 왕이 다른 두 왕의 말에 수긍했기 때문에 켈트족 연합군은 어둠을 틈타 습격해온 누미디아 기병들에게 활을 쏘아댈 뿐 추적하려 들지 않았다.

한 편 켈트족의 관심이 한니발과 누미디아 기병에게 쏠려 있을 때 하스드루발은 손재주가 좋은 병사 5천명을 데리고 타구스 강 상류로 출발했다.

“모두 신속하게 움직여라. 날이 밝기 전에 목표지점에 도착해야 한다.”

하스드루발은 타구스강 상류에 도착한 후 잠시 쉬었다가 병사들에게 벌목과 뗏목제작을 지시했다.

“최대한 빨리 5만 5천명이 탈 수 있는 뗏목을 만들어야하니 서둘러야 한다. 다만 켈트족 연합군에게 우리의 작전이 발각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니 주야로 주변에 척후병을 보내서 적 정찰병을 사살하도록.”

하스드루발이 열심히 뗏목을 만드는 동안 한니발은 꾸준히 기동력이 좋으면서 원거리에서 투창공격을 할 수 있는 누미디아 기병과 이베리아족 경보병으로 치고 빠지는 전술을 구사해 켈트족 연합군의 주의를 끌었다.

그렇게 사흘 이 지난 후 한니발의 진영에 하스드루발이 보낸 연락병이 도착했다.

“한니발 장군님. 하스드루발 대장이 뗏목을 완성했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때가 왔군. 하스드루발에게 오늘 밤 전군을 이끌고 그 쪽으로 간다고 전해라.”

타구스 강변에 어둠이 깔리자 한니발은 기병대장 마하르발에게 누미디아 기병 천기를 맡겨 켈트족의 주의를 끌게 한 후 낮부터 미리 잠을 자게 해 둔 병사들을 깨워 행군을 지시했다.

“어둠을 틈타 은밀히 아군이 뗏목을 준비한 지점까지 이동한다. 이곳에 모든 망루에 횃불을 밝혀서 아직 여기 병사들이 남아있는 것처럼 위장해라. 몸이 가벼워야 하니 전리품은 전부 두고 간다.”

한니발이 지휘하는 군대는 쉬지 않고 행군한 끝에 날이 밝기 전에 하스드루발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한니발이 목적지에 도착할 때 즈음이 되자 기병대장 마하르발도 교란작전을 멈추고 제시간에 뗏목을 타기위해 말머리를 돌렸다.

마하르발이 누미디아 기병들을 데리고 목적지에 도착하자 한니발이 그를 반겼다.

“수고했다 마하르발. 꼬리를 붙이고 오지는 않았겠지?”

“계속 뒤를 살피면서 왔습니다. 적 척후병은 없었습니다.”

하스드루발은 모든 카르타고군이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 한니발과 마하르발에게 말했다.

“이제야 전부 모였네. 해가 뜨기 전에 어서 강을 건너자. 켈트족 놈들도 곧 우리 군의 숙영지가 비어버린 걸 눈치 챌 거야.”

카르타고군들은 뗏목을 타고 타구스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물살이 세긴 했지만 하스드루발은 그 점을 고려해 뗏목 여러 개를 밧줄로 묶어 마치 다리처럼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모든 카르타고군이 건너자 하스드루발이 한니발에게 말했다.

“형. 이제 별동대 만들 거지? 그거 내가 지휘할게.”

“또 내 생각을 미리 맞춰버리는구나. 지금 필요한 건 아군 본대가 적과 교전하는 동안 적의 측면을 덮쳐서 분쇄시켜버릴 강한 기병대야. 경험이 많은 마하르발이 적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잘 할 수 있겠어? 아직 기병대장 된지 반년도 안됐잖아.”

하스드루발은 오른손으로 가슴을 툭툭 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잊었어? 나 처음 전장에 나선 게 열세 살 때야. 이번 기회에 신무기를 꼭 시험해 보고 싶거든.”

동생의 말에 한니발은 근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 만들어둔 그 보조기구하고 괴상한 모양의 긴 창을 말하는 거구나. 제법 쓸모 있어 보이긴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전투에서 처음 써본다는 게 좀 마음에 걸리는군.”

“괜찮아. 1년 전부터 이베리아족 기병들에게 그걸 사용하는 방법은 충분히 훈련시켜 뒀어. 분명 도움이 많이 될 거야.”

“그래 알았어. 넌 장사에서든 전투에서든 항상 생각지도 못한 성과를 내왔잖아. 위험한 임무지만 다치지 않고 잘 해내리라 믿는다.”

한니발은 오른손으로 동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미소 지었다.

* * *

한편 켈트족 연합군은 날이 밝았는데도 3일 내내 진영 근처를 얼쩡거리며 성가시게 굴던 카르타고군이 보이지 않자 이상하게 여기고 있던 중이었다.

그 상황에 대한 작전회의를 하기위해 지휘관 막사에 모인 세 명의 왕 중 카르페타니족의 왕 바가로크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웬일로 매일 날파리처럼 몰려오던 카르타고군의 말 탄 검둥이들이 조용하군요. 혹시 아레바키족이 벌써 놈들의 뒤를 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 말에 바카에이족의 왕 아이우스가 대답했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조금 전 누만티아에서 파발이 왔는데 아레바키족은 다른 부족들의 지원군들을 마저 규합해서 앞으로 닷새 뒤에 출발한다고 하더군요.”

이번에는 켈티베리족의 왕 투리바스가 입을 열었다.

“짐도 그 점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던 참이오. 정찰을 나간 우리 부족의 척후병이 돌아올 때가 됐으니 좀 더 기다려 봅시다.”

그 때 켈티베리족의 척후병이 막사에 들어와 투리바스왕에게 경례를 한 후 보고했다.

“위대하신 투리바스 전하께 보고 드립니다. 카르타고군은 이미 숙영지를 비우고 사라졌습니다. 전리품을 모두 버리고 간 것으로 보아 놈들에게 뭔가 문제가 발생한 모양입니다.”

투리바스 왕은 척후병의 보고를 듣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뭐라고! 그럼 지금 놈들은 어디에 있다는 말이냐!”

왕의 호통에 척후병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아직 행방이 묘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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