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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55화 (55/201)

[ 55 ] [54화] 전쟁보다 치열한 선거전 (1)

석 달 앞으로 다가온 수페트 선거를 앞두고 대 한노는 근심에 빠져있었다.

한니발의 활약으로 바르카 가문과 셀레우코스 제국이 동맹을 체결하면서 무역이 활성화되어 카르타고의 경기가 더 좋아졌고 그 덕분에 카르타고 시민들이 해외파를 더 지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 한노는 즉시 국내파 100인회 의원 전원을 자신의 저택으로 불러 모아 회의를 열었다.

보안을 위해 창문 하나 없는 밀실에 국내파 100인회 의원 52명 전원이 자리에 앉자 대 한노가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동료 100인회 의원 여러분. 본인의 부름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여러분을 이 자리에 모신 이유는 다가올 수페트 선거에서 우리 국내파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대 한노의 말에 국내파 의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대 한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어... 대 한노 의원님.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수페트 자리는 자연히 국내파와 해외파가 각각 한 명씩 가져가게 되는 것 아닌지요? 해외파에서 수페트 후보가 여러 명 출마한다고 해서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카르타고가 공화국이 된 이후 백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매년 국내파는 단 한 명의 후보만을 수페트 선거에 출마 시켜왔다.

그래서 국내파는 선거철마다 유권자들에게 많은 빵과 은화를 뿌려서 해외파를 열성적으로 지지하지는 않는 시민들의 표를 한데 집중시켜 늘 수페트 자리를 하나 차지해왔던 것이다.

해외파는 늘 국내파보다 시민들의 지지를 더 많이 받아왔지만 해외파 후보가 여러 명 출마한다 해도 그 중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얻은 자가 국내파의 단독후보를 선거에서 이기고 수페트로 당선되는 경우는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벌써 수십 년째 카르타고에서 가장 큰 계파의 수장 노릇을 해온 대 한노의 직감이 이번만큼은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왔다.

대 한노가 자신에게 의문을 제기한 국내파 의원에게 말했다.

“아비라미 의원님, 물론 지금까지는 빈민들에게 빵을 주고 표를 사 우리 국내파 동지 중 한 명을 수페트에 당선시키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몇 년 전부터 바르카 가문이 빈민들에게 싼 이자를 받고 대출을 해주면서 장사를 해 재산을 모은 자들이 꽤 많아졌습니다. 우리로서는 정말 곤란한 일이지요.”

대 한노의 말에 다른 국내파 의원 중 한 명이 맞장구를 쳤다.

“대 한노 의원님 말씀대로 입니다! 그 망할 바르카 가문 놈들 때문에 요즘 돈놀이가 통 재미가 없어요!”

그러자 대 한노가 고개를 돌려 방금 말한 국내파 의원과 눈을 마주치며 대답했다.

“물론 그런 점도 있습니다만 이번에는 그것보다 사태가 심각합니다. 전에는 빵 몇 덩이만 던져줘도 빈민들의 표를 얻을 수 있었지요. 하지만 요즘 구시가지에 나가보면 끼니 걱정하는 자들이 드물다고 하더군요. 이제는 예전 같은 방법만으로는 해외파에게 수페트를 두 자리 다 빼앗겨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제야 대 한노의 말을 알아들은 다른 국내파 의원들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수페트 두 자리를 해외파에게 모두 빼앗겨 버린다면 아무리 100인회 의원이 귀족들끼리 모여 뽑는 자리라고 해도 시민들의 눈치가 보여 예전처럼 국내파 정치인들이 많은 의원직을 차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자기 밥그릇이 날아갈 것이 걱정된 한 국내파 의원이 주먹을 쥐고 탁자를 내리치며 말했다.

“바르카 가문의 위선자 놈들! 빈민들은 적당히 배를 곯아야 다루기 쉬운 법인데! 안 그래도 요즘 셀레우코스 제국이 카르타고 무역상을 우대하면서 무역이 활발해지는 바람에 국내파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는데 수페트 자리도 다 빼앗기면 정말 큰 일입니다!”

그러자 대 한노가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국내파 의원들에게 말했다.

“이제는 선거 전략을 바꿀 때가 됐습니다. 먼저 빈민 중에서 지역유지 노릇을 하는 자들을 골라내 두둑한 은화 주머니와 약간의 특권을 쥐어줘야 합니다.”

대 한노의 말에 한 국내파 의원이 감탄하며 말했다.

“현명하신 생각입니다! 분명 평민 중에서도 직군별로 우두머리 격인 자들이 하나씩은 있고 큰 사업을 하는 자들도 없지는 않지요! 그런 자들에게 우리 국내파 후보를 지지하게 하는 대신 대가를 주면 수페트 선거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기원전 3세기에는 중세의 길드처럼 체계적인 직능별 조직은 없었지만 거의 모든 시민이 상공업에 종사하는 카르타고의 특성상 같은 상품 취급하는 상인이나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기술자나 임금노동자들의 모임이 많이 있었다.

대 한노는 바로 이런 모임에서 리더 격인 평민들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대다수 카르타고 시민의 지지를 얻으려면 많은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대 한노는 바로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 수십 표에서 수백 표를 모을 수 있는 지역유지들로 이루어진 조직을 만들어 그들이 자기 모임의 구성원들을 국내파를 지지하도록 설득하거나 강요하도록 지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방법을 사용하면 굳이 카르타고 시민 대다수의 지지를 얻지 않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한노가 주변의 국내파 의원들을 한 명씩 둘러보면서 말했다.

“카르타고의 인구 약 40만 명 중 시민권과 투표권을 가진 페니키아인 성인 남성의 수는 약 10만 명 정도입니다. 수페트 선거는 2등을 한 후보까지 당선되니 우리 측 후보자가 약 3만 3천 표 정도만 얻으면 수페트에 당선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단순 계산으로는 혼자 100표를 모을 수 있는 영향력 있는 빈민을 한 300명 정도만 끌어들이면 되겠군요.”

대 한노가 자기 나름대로 결연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선거인만큼 이번에는 제가 수페트 후보로 나서겠습니다. 모든 국내파 동지 여러분께서는 저에게 선거자금을 지원해 주십시오. 모두 힘을 모아 발이 넓은 빈민들에게 줄 은화 주머니와 시민광장에 뿌릴 빵을 가득 실은 수레를 준비하십시오. 이건 우리 모두의 밝은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 * *

대 한노가 국내파 의원들과 선거 전략을 논의를 마치고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 하스드루발은 수행원 대여섯 명과 함께 말을 타고 카르타고의 성문을 통과했다.

하스드루발은 구시가지를 지나 시민광장에 들어서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마치 처음 카르타고에 와보는 사람처럼 감탄했다.

“세상에! 뭔 사람이 이렇게 많아? 여기 정말 카르타고 맞아?”

시민광장은 셀레우코스 제국과 페르시아 지역에서 온 상인과 그들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는 카르타고 상인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고 있었다.

아직 바르카 가문이 로마에 적대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카르타고와 로마의 사이가 나쁘지 않아 카르타고가 시칠리아와 그리스 지역 해안을 경유한 무역로를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스드루발은 눈에 띄게 예전의 광택을 눈에 띄게 되찾아가고 있는 북아프리카의 진주 카르타고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다시 한번 타도 로마를 다짐했다.

‘계속 이렇게 평화롭게 지낼 수 있으면 굳이 전쟁을 벌이지 않아도 될 텐데. 그렇지만 로마가 지중해를 자기네 앞마당 호수로 만들 때까지 정복 전쟁을 멈추지 않을 거라는 건 이미 전생에 공부하면서 충분히 배웠지. 로마와 친하게 지내겠다는 건 결국 배가 불러서 잠깐 얌전해진 사자 앞에서 낮잠을 자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는 잠시 두 주먹을 꽉 쥐고 로마가 있는 북쪽을 노려보다 말머리를 돌려 비르사 언덕에 있는 큰매형 보밀카르의 저택으로 향했다.

그가 현관에 들어서자 그의 큰누나인 멜리타가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했다.

“어서 와 하스드루발! 저번에 만났을 때는 아직 어린애였는데 벌써 청년이 다됐구나! 키가 정말 많이 자랐네!”

하스드루발은 몇 년 전에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 해도 자기보다 키가 컸었던 큰누나를 내려다보면서 대답했다.

“정말 오랜만이에요, 큰누나! 누나는 5년 전하고 하나도 안 변했네요!”

그 말에 멜레타는 까르르 웃으며 동생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얘는! 그동안 몸만 자란 게 아니라 말솜씨도 많이 늘었구나. 그런 아부는 나 말고 나중에 네 약혼자 소포니스바를 만나면 해줘. 마침 네 미래의 장인어른께서 우리 집에 계시니까 어서 인사드리고.”

“하스드루발 기스코 의원님이 여기 와계세요?”

“이번에 네 큰매형하고 같이 해외파를 대표해서 수페트 선거에 나가시잖아. 두 분이 서재에서 함께 선거 전략을 짜고 계셔.”

“그럼 지금 당장 가서 인사드려야겠네요.”

누나의 말에 하스드루발은 즉시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몇 안 되는 카르타고인의 인상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는 서재의 문을 열고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몇 개가 놓여있는 탁자를 가운데에 놓고 하스드루발 기스코와 마주 앉아있는 매형에게 인사했다.

“큰매형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보밀카르는 하스드루발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어서 와 처남! 이게 대체 얼마 만이야!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어. 인사드려. 내년에 처남의 장인이 되실 하스드루발 기스코 의원님이셔.”

하스드루발은 공손하게 미래의 장인에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하밀카르 바르카의 아들 하스드루발입니다.”

하스드루발 기스코는 자리에서 일어나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렇게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하스드루발 기스코입니다. 그동안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군재와 장사수완이 뛰어나시다던데 외모도 그에 못지않지 않으시군요. 이런 늠름한 청년을 사위로 삼게 되어 기쁩니다.”

하스드루발은 찬찬히 자신과 이름이 같은 예비 장인어른의 인상을 살펴보았다.

‘귀족보다는 사람 좋은 동네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이네.’

원래의 역사에서 하스드루발 기스코는 2차 포에니전쟁 말기 스키피오가 카르타고를 직접 공격하기 위해 북아프리카 땅을 밟았을 때 조국을 지키기 위해 카르타고군을 지휘하여 그를 저지하려한 정치인이자 장수이다.

그러나 카르타고에서도 평범한 수준에 속하는 군사 지휘관인 하스드루발 기스코가 로마 역사상 최고의 명장 스키피오를 당해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결국 그는 두 번의 큰 전투에서 스키피오에게 대패한 후 조국을 지켜내지 못한 것을 분통하게 여겨 자살하고 만다.

하스드루발이 자신을 칭찬하는 미래의 장인에게 대답했다.

“과분한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저야말로 카르타고의 유명인사이신 의원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부족한 지혜를 짜내 두 분의 당선에 최대한 도움을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보밀카르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사실 처남의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어. 선거경험은 없지만, 그동안 기발한 발상으로 대단한 성과를 내온 처남이라면 뭔가 해결책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국내파가 아주 공격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면서 우리 두 사람이 예상외로 고전하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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