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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66화 (66/201)

[ 66 ] [65화] 알프스를 넘을 코끼리는 몇마리?

클리투스가 로마 원로원을 속이고 있을 때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은 에브로강을 넘어 이탈리아 반도로 진군할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두 형제는 일단 카르타고 노바로 파발을 띄워 하밀카르에게 승전보를 전하면서 바로 에브로강을 건너 알프스로 진군하기 위해 지원군과 물자를 부탁하기로 했다.

한니발은 사군툼 원로원 의회 건물에서 모든 장교를 소집하여 아버지 하밀카르에게 요청할 병사와 물자를 정하기 위해 군사회의를 열었다.

모든 장교가 모이자 한니발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로마 원정군 구성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를 시작한다. 신성대는 중장보병 4천 명만 남기고 전부 카르타고 노바로 돌려보내고 기존의 히스파니아와 북아프리카 출신 병사로 대체한다. 이번 전투에서 드러났듯이 신성대는 아직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공격하기에는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

한니발의 말에 하스드루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사군툼의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할 때 신성대 중기병은 좋은 장비를 걸친 덕에 적을 압도하기는 했지만, 실전에서 당황하는 모습을 종종 보였기 때문이다.

한니발이 말을 마치자 이번에는 하스드루발이 입을 열었다.

“형 말대로 정예병만 데리고 가야 한 명이라도 더 알프스를 살아서 넘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전투코끼리는 인도코끼리 중에서 덩치가 큰 녀석 스무 마리만 데리고 가자.”

그 말에 한니발과 부관들이 의아하다는 듯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특히 한니발은 동생의 말에 전혀 공감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그렇게 조금만 데려가자고? 코끼리는 우리 군의 가장 강력한 전력인데 그래야 하는 이유가 뭐지?”

“코끼리는 너무 많이 먹어. 게다가 인도코끼리는 덩치가 커서 북아프리카 코끼리보다도 더 많이 먹지. 그 이상 데려갔다가는 알프스를 넘다가 대부분 굶어 죽고 말 거야.”

그러자 이번에는 한니발의 부관 마하르발이 그에게 반박했다.

“하스드루발 장군님, 한니발 장군님께서는 이미 인도코끼리 한 마리가 하루에 먹는 양을 파악하고 계십니다. 제 생각에도 인도코끼리가 북아프리카 코끼리보다 더 많이 먹는 걸 고려하더라도 서른두 마리는 데려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스드루발은 형과 부관들을 설득할 생각을 하자 골치가 아팠다.

‘평생 눈 내리는 걸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한테 추운 지역에서는 평소보다 더 많이 먹어야 한다는 걸 어떻게 설명하지? 사람이든 동물이든 추운 곳에서는 많이 먹어야 얼어 죽지 않는다고!’

원래의 역사에서 한니발은 3만 8천 명의 보병과 기병 8천 기, 그리고 북아프리카 숲 코끼리 37마리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는다.

그리고 그가 알프스를 넘었을 때 남은 병력은 보병 약 2만 명과 기병 6천 기, 그리고 코끼리 7마리가 전부였다.

가파른 계곡 길을 지나다 실족사하거나 다른 지역에 사는 동족들보다도 훨씬 호전적인 산악 켈트족의 습격을 받는 등의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하스드루발은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기록에 따르면 카르타고군 병사나 코끼리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쇠약해져서 죽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 그거 사실 식사가 부실해서 저체온증으로 죽었던 거겠지.’

인간을 포함한 포유동물은 주변 기온과 관계없이 체온을 일정한 온도로 유지하는데 날씨가 추울 때는 몸 안에 축적된 영양분을 태워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많은 열량을 소모하게 된다.

그렇지만 아직 의학과 영양학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기원전 3세기의 사람들이 이런 지식을 가지고 있을 턱이 없었다.

특히 기후가 온화한 북아프리카나 히스파니아 출신이 대부분이 카르타고군 중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추운 날씨를 경험해본 사람이 하스드루발을 빼고는 한 명도 없어 경험으로나마 그런 사실을 알 기회조차도 없었다.

‘전생에 전쟁사를 공부할 때 전시에 병사 한 명이 하루에 섭취해야 식사량이 약 3천 칼로리라고 했으니까 밀가루만 먹는다고 계산하면 900g 정도지. 카르타고군의 식량 배급량도 대략 그 정도야. 하지만 현대 북유럽 지역 국가 육군 병사의 동절기 식량 보급은 하루 5천 칼로리를 기준으로 하고 있었어. 코끼리도 대충 평소의 1.6배 이상은 먹여야 알프스의 겨울을 버틸 수 있을 거야.’

하스드루발은 한니발과 부관들을 설득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 우리 가문 주치의한테 히포크라테스가 쓴 의학서를 받아서 읽어본 적이 있거든. 거기 눈이 내릴 정도로 추운 지역에서는 평소보다 식사량을 늘려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나와 있었어.”

한니발은 히포크라테스의 의학서를 읽어본 적이 있기 때문에 동생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지금껏 군사, 정치, 경제 모든 부문에서 큰 활약을 해온 하스드루발이 그렇게까지 하는 데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더 추궁하지 않기로 동생의 뜻에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네 말대로 할게. 우리가 알프스를 넘는 건 도박을 하려는 게 아니라 예측 가능한 손실을 감수하고 로마의 허를 찌르려는 거니까 말이야. 불안요소는 적을수록 좋겠지.”

한니발이 하스드루발의 의견에 동의하자 마하르발을 비롯한 부관들도 더는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하스드루발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형이 이해해줘서 정말 다행이야. 그럼 코끼리는 그렇게 하고 보병과 기병을 얼마나 데려갈지도 정해야지.”

몇 시간 더 논의한 끝에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은 부관들의 의견을 반영해 히스파니아를 벗어나 이탈리아 반도로 진군할 원정군의 구성이 완전히 정해졌다.

원래의 역사에서 한니발은 보병 5만 명과 기병 9천 기를 이끌고 갈리아 출신 켈트족인 갈리아인의 영역을 지나 알프스에 도착할 때까지 호전적인 갈리아인의 습격과 풍토병으로 1만 2천 명의 보병과 1천 기의 기병을 잃는다.

두 형제는 그렇게 행군 중에 잃을 병사를 고려해 로마 원정군의 수를 넉넉하게 잡았다.

하스드루발은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아래와 같이 파피루스에 적어 내려갔다.

1. 보병- 총 6만 명

1) 신성대 중장보병- 4천 명

2) 북아프리카 중장보병- 2만 5천 명

3) 히스파니아 출신 켈트족 중장보병- 1만 1천 명

4) 히스파니아 출신 켈트족 경보병- 1만 명

5) 누미디아 궁수- 4천 명

6) 크레타 궁수- 2천 명

7) 발레아레스 투석병- 4천 명

2. 기병 1만 2천 기

1) 이베리아족 중기병- 4천 기

2) 북아프리카 중기병- 4천 기

3) 누미디아 궁기병- 4천 기

3. 중장갑 인도코끼리 20마리

하스드루발은 파피루스에 필요한 보급품 목록을 추가로 적은 다음 카르타고 노바로 파발을 띄웠다.

* * *

한편 바르카 가문의 가정교사 실레노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하밀카르는 하스드루발이 보낸 파발꾼이 가져온 서신을 받아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그 사군툼을 겨우 열흘 만에 함락시켰다고? 그게 가능한가?”

그는 처음에는 파발꾼이 사군툼이나 로마가 보낸 첩자가 아닐까 의심했지만, 서신에 찍힌 인장은 분명 아들 한니발의 것이었다.

그는 서신을 좀 더 읽어 내려간 후에야 파발꾼에 대한 의심을 풀었다.

“평화협정을 맺으러 온 사군툼 원로원 의원을 겁박해서 내통자로 만들다니! 내 자식이지만 정말 기특하면서도 무섭구나! 난 이런 걸 가르친 기억이 없는데? 실레노스 자네가 하스드루발에게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병법을 가르치면서 모략을 꾸미는 법도 가르쳤나?”

그러나 실레노스는 고개를 저으며 하밀카르에게 대답했다.

“하밀카르 총독님. 제가 스파르타 출신이라는 사실을 잊으셨습니까?”

“참, 그랬었지. 스파르타인은 전쟁에서 꾀를 부리는 걸 정말 싫어하지. 내가 잠시 잊고 있었네.”

사실 하스드루발은 원래의 역사에서 한니발이 이탈리아 반도 남부지역의 여러 도시를 점령할 때 쓴 계략에서 힌트를 얻어 이번 클리투스를 회유할 생각을 해냈지만 하밀카르와 실레노스가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하밀카르는 문득 하스드루발이 보낸 서신에서 읽은 내용을 기억해내고 다시 실레노스에게 말했다.

“자네도 어서 떠날 채비를 하게. 한니발이 자네가 이번 원정에 함께해주길 바라고 있네.”

“한니발 장군이 저를 찾는단 말씀입니까? 저는 검을 손에서 놓은 지 20년이 넘은 데다, 이제 곧 나이도 50줄에 들어서서 로마군과 싸우는 데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습니다만...”

“자네 지금 내 앞에서 나이가 많아서 기운이 없다고 말하는 건가?”

하밀카르는 올해로 57세가 되었지만, 여전히 다부진 근육을 자랑하고 있었다.

실레노스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하밀카르에게 대꾸했다.

“바르카 가문은 괴력으로 유명한 멜카르트 신의 후손이지 않습니까! 저 같은 일반인과 총독님을 비교하시면 안 되지요!”

“걱정하지 말게. 한니발은 자네를 전장에 세우려는 게 아니니까 말이야. 그 녀석은 자네가 바르카 가문이 로마를 정벌하는 과정을 기록해서 역사에 남겨주길 바라고 있다네.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내 생각에도 자네보다 그 일을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은 전 지중해를 뒤져도 찾을 수 없을 것 같네.”

페니키아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알파벳을 발명한 민족으로 천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수많은 농업서나 항해서를 남겼지만, 돈이 안 되는 역사서는 한 번도 남긴 적이 없었다.

실레노스는 자신의 제자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버금가는 위대한 장군으로 거듭날지도 모르는 순간을 자신의 손으로 남길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대신 역사서에는 저자의 성향이 어느 정도 반영되는 건 감안 하셔야 합니다. ‘로마를 정복한 한니발 바르카와 하스드루발 바르카! 그들의 업적은 현자 실레노스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도는 적을 수 있게 해주셔야 합니다.”

하밀카르는 실레노스의 말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푸하하하! 로마를 정복한 카르타고인보다는 농담을 할 줄 아는 스파르타인이 더 역사에 남을 자격이 있어 보이는데? 젊은 시절에 사업상 만났던 스파르타인 중에는 농담을 하기는 커녕 웃을 줄 아는 사람도 없었는데 말이야! 자네 얘기 적는 건 괜찮은데 내 아들들과 며느리의 활약 중에서 빠트리는 게 있으면 안 되네!”

“며느리라니요? 혹시 아우니아 공주님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며칠 전 그 아이가 자기 외할아버지가 세노네스족 출신이라면서 꼭 로마 원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네. 내가 그 부탁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었겠나? 로마에게 항복할 때 느꼈던 그 굴욕감을 누구보다 잘 아는데 말이야.”

세노네스족은 기원전 390년에 한때 로마를 점령하기도 했지만 기원전 283년에는 로마군의 침략을 이겨내지 못하고 굴욕적인 항복을 한 갈리아인 부족이다.

하밀카르는 한니발이 로마를 정벌할 지원군을 모집하기 위해 갈리아인을 회유할 때 어머니에게 갈리아인의 말과 문화를 배운 아우니아가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하밀카르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고 결연한 목소리로 실레노스에게 말했다.

“전 지중해에는 내 며느리처럼 로마를 원수로 여기는 나라와 부족이 하늘에 별처럼 많지. 내 아들들이 그들의 힘을 하나로 모아 지중해를 집어삼키려는 로마의 야욕을 꼭 막아낼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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