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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67화 (67/201)

[ 67 ] [66화] 에브로강 너머로 (1)

하밀카르는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이 사군툼을 함락시켰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두 아들을 지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먼저 장남 공정한 하스드루발과 막내 마고 부부, 그리고 카르타고 노바에 있는 모든 장교를 총독집무실로 소집해 군사회의를 열었다.

모든 사람이 자리에 앉자 하밀카르가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한니발과 작은 하스드루발이 닷새 전에 사군툼을 함락시켰다는 서신이 도착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뜻밖의 기쁜 소식에 천둥처럼 우렁찬 환호성을 질러댔다.

“와아! 역시 두 분은 멜카르트 신의 화신인 게 분명합니다!”

“히스파니아 동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를 이렇게 빨리 무너뜨리다니! 바알 함몬께서 우리를 축복하고 계시군요!”

모두가 기뻐하는 와중에 공정한 하스드루발만이 침착하게 아버지에게 물었다.

“두 동생이 너무 일을 서둘렀나 봅니다. 그렇게 빨리 사군툼을 점령했으면 아군 피해도 만만치 않았겠군요.”

“아군 사상자는 백 명도 채 되지 않는다는구나! 작은 하스드루발이 꾀를 내서 적의 사절을 내통자로 만든 다음 사군툼의 성문을 몰래 열게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마고가 말없이 주먹을 쥐었다.

하밀카르는 그런 막내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형들만 계속 공을 세우니 초조한 모양이구나.”

“아버지! 두 형을 따라서 로마로 진군하게 허락해 주세요! 저도 바르카 가문의 남자입니다!”

마고는 지금까지 자기보다 겨우 한 살 많은 형 하스드루발이 전장과 외교 무대, 국내정치 무대에서 큰 업적을 남긴 것을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자격지심을 느껴왔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하밀카르는 마고에게도 경험과 실적을 쌓을 기회를 주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게 초조해하지 않아도 곧 너와 아우니아를 한니발을 따라 알프스를 넘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에브로 강 너머에 있는 로마의 동맹도시인 타라코와 엠포리온을 함락시켜야 한다. 지금 로마 원로원은 아직 우리가 사군툼을 함락시킨 줄 모르고 있지. 두 도시가 로마에 그 사실을 알리기 전에 손을 쓰면 좀 더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다.”

공정한 하스드루발이 아버지의 말에 대답했다.

“그러려면 해군이 함께 움직여야겠군요. 두 도시는 모두 항구를 갖추고 있으니까요.”

로마는 자국의 인력과 예산을 소모하지 않고도 바르카 가문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해 히스파니아 동부 해안지대에 자리 잡은 여러 그리스인의 식민도시와 동맹을 맺어둔 상태였다.

히스파니아의 그리스 식민도시들은 크기가 작고 속도가 빠른 2단노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않는다면 한니발의 군대가 에브로강을 넘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카르타고가 로마를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는 소식이 지중해를 넘어 로마 원로원에 전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하밀카르는 장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큰 하스드루발 말이 맞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무리 서둘러도 피레네 산맥 바로 남쪽에 있는 엠포리온이 연락선을 띄우는 걸 막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거다. 타라코라도 허튼짓을 하지 못하게 해서 최대한 시간을 버는 걸 최우선 과제로 삼도록 하자. 마고.”

“네. 아버지.”

“넌 몇 년 전에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해전을 경험해 봤으니 카르타고 노바의 전 함대를 이끌고 타라코의 항구를 봉쇄해라. 난 그동안 한니발과 합류해서 육지 쪽에서 타라코를 포위하겠다.”

“알겠습니다!”

하밀카르는 마고에게 지시를 전달한 후 이번에는 공정한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큰 하스드루발은 카르타고 노바의 수비를 맡아라. 수비병력은 5천 명 정도면 되겠지?”

“5천 명도 너무 많네요. 4천 명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하밀카르는 장남의 호기로운 대답에 큰 소리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좋다! 역시 우리 가문의 장남답구나! 이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빨리 움직여라!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이 어렵게 만든 기회를 놓치면 안 되니까 말이다!”

* * *

하밀카르는 서둘러 하스드루발이 부탁한 물품과 병력을 준비한 후 카르타고 노바를 출발한 지 2주간 행군한 끝에 사군툼에 도착했다.

한니발은 하스드루발과 함께 사군툼 성벽 밖에 지은 군영에서 나와 아버지를 맞이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버지.”

“고생은 무슨. 아직 이 정도 행군으로 지칠 정도로 늙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아직도 사군툼을 포위하고 있는 거냐? 오다가 마주친 너희가 카르타고 노바로 보낸 수송대가 끌고 가는 포로의 숫자를 보니 사군툼에는 빈집이 많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아버지의 말에 하스드루발이 대답했다.

“에브로 강 이북의 로마의 동맹도시들을 속이기 위해서지요. 아버지도 아시다시피 히스파니아 동부의 로마의 동맹도시들은 같은 그리스계 도시인 경우가 많다 보니 서로 교류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우리 군이 도시를 포위하고 있으면 사군툼으로 오던 그리스인의 배가 아직 사군툼인들이 우리와 협상 중인 줄 알 테니까요.”

“안 그래도 내가 오는 동안 타라코인이 사군툼이 함락된 걸 눈치챌까 봐 걱정했었는데, 정말 잘 대처했구나! 역시 위대하신 바알 함몬께서 너희 둘에게 당신의 지혜를 내려주신 게 분명하다!”

이번에는 한니발이 아버지의 말에 대답했다.

“아버지께서도 타라코인이 로마에 사군툼 함락 사실을 알리기 전에 손을 쓸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저도 하스드루발과 어떻게 하면 타라코가 다른 로마의 동맹도시들에 우리가 에브로강을 넘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하게 막을지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현대에는 타라고나라고 불리는 타라고는 바르가 가문의 군대가 에브로 강을 건너면 말을 타고 하루 이틀 거리, 보병을 이끌고 행군하면 5일에서 6일 정도 되는 거리에 있었다.

로마를 공격하기 위한 병사와 하밀카르가 히스파니아 북동부의 로마의 동맹도시를 공격하기 위해 데리고 온 병사를 합하면 보병 약 12만 명에 기병이 2만 6천 기, 코끼리도 30마리나 됐다.

이런 대군이 에브로 강을 건너려면 어쩔 수 없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적의 정찰병에게 쉽게 발각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턱수염을 매만지는 하밀카르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음... 마고가 타라코의 항구를 잘 틀어막아도 말을 탄 타라코의 파발꾼이 북쪽의 엠포리온에 우리가 에브로강을 넘었다는 소식을 알리면 로마도 그 소식을 일주일 안에 알게 될 텐데...”

그 때 하스드루발이 아버지와 형에게 말했다.

“마고가 타라코의 항구를 봉쇄할 때 우리도 일단 기병만 이끌고 타라코를 급습하면 어떨까요? 기병만으로는 도시를 포위할 수 없겠지만, 기병이 2만기가 넘으면 적어도 타라코에서 나오는 적의 파발꾼을 붙잡을 수는 있을 거에요.”

그 말에 하밀카르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마고가 지휘하는 해군은 앞으로 엿새 정도 후에 타라코에 도착할 거다. 에브로 강을 건너는 시간을 더하면 기병이 사군툼에서 타라고나까지 가는 시간은 사나흘 정도 되겠지. 너희 둘은 이틀 동안 푹 쉬고 바로 기병2만 기를 이끌고 타라코로 출발해라. 나도 보병과 남은 기병, 코끼리를 전부 데리고 내일 에브로 강으로 출발하겠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그럴게요 아버지!”

* * *

아버지와 두 형이 육로로 에브로강을 넘을 준비를 하는 동안 마고는 부인 아우니아와 함께 하스드루발이 개발한 신형전함 멜카르트의 갑판에 올랐다.

태어나서 처음 배를 타본 아우니아는 함대가 카르타고 노바의 항구를 출발하고 엿새째 되는 날 높은 파도가 치는 바람에 뱃멀미 때문에 갑판 밑 선실에서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우욱...”

마고는 자신이 카르타고를 떠나 히스파니아에 올 때 처음 배를 타고 괴로워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부인의 등을 두들기며 말했다.

“많이 힘들지요? 그러게 그냥 큰형하고 같이 카르타고 노바를 지키고 있으라 그랬잖아요. 평생 나룻배도 안 타본 사람이...”

아우니아는 남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난 이제 아레바키족 사람이면서 카르타고인이기도 해요. 뱃멀미하는 카르타고인이라니, 절벽도 못 기어오르는 아레바키족 전사같은 거잖아요?”

“사람이 산양도 아니고 절벽을 기어올라요? 정말 대단하네요.”

“아니요. 카르타고인들이 더 대단해요. 산은 변하지도, 움직이지도 않거든요. 십 년이 지나든 백 년이 지나든 말이에요. 처음에야 산을 타는 게 힘들어도 몇 년만 지나면 어디를 지날 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걸 조심해야 하는지도 다 외우게 되죠. 그런데 바다는 산이 몇백 개는 들어갈 정도로 넓으면서도 거칠고 변덕스럽네요. 이렇게 무서운 곳에서 몇백 년 동안이나 싸워온 카르타고인들이 존경스러워요.”

마고는 말없이 미소 지으며 그런 아내의 등을 계속 두드렸다.

그러나 마고 부부는 선실에서의 애틋한 시간을 그리 오래 보낼 수 없었다.

“북쪽 방향! 10 스타디온! 타라코가 보입니다!”

마고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우니아에게 말했다.

“부인은 여기서 쉬고 있어요. 적의 전함과 충돌할지도 모르니까 조심하고요.”

“그럴게요. 태어나서 한 번도 전투에서 짐이 되어본 적이 없는 데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해요.”

“괜찮아요. 그럼 다녀올게요.”

마고는 부인과의 대화를 마치고 급히 갑판 위로 올라갔다.

그가 갑판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일등항해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그에게 보고했다.

“제독님! 타라코 해군이 우리 함대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고 연락선을 띄웠습니다! 전부 재빠른 2단노선입니다.”

“뭐라고? 오는 길에 만난 그리스인의 어선은 모두 나포했는데 어떻게 벌써 알아챘지?”

마고는 바로 선미로 달려가 북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타라코의 항구를 빠져나와 사각돛을 펄럭이며 황새치처럼 빠르게 북쪽으로 도망가는 2단노선 열 척이 보였다.

마고는 급히 선원들에게 지시했다.

“속도가 느린 5단노선 38척은 예정대로 타라코의 항구를 봉쇄하라! 멜카르트 열두 척은 적의 연락선을 쫓아간다!”

하스드루발이 동로마제국의 드로몬을 본떠 만든 신형전함 멜카르트는 빠른 기동성이 장점이었다.

그러나 그런 멜카르트도 애초에 정찰용이나 연락용으로 쓰기 위해 오직 속도만을 염두에 두고 다른 전함보다 일부러 작게 만든 2단노선 보다는 조금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고가 점점 멀어져가는 적의 연락선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때 변덕스러운 지중해의 바닷바람이 또 방향을 바꾸어 마고의 함대와 타라코의 연락선이 모두 역풍을 맞게 됐다.

마고는 기쁨을 숨기지 못하며 큰 소리로 소리쳤다.

“신들께서 작은 하스드루발 형이 만든 배를 제대로 써먹을 기회를 주시는구나!”

고대의 배 중 유일하게 삼각형 세로돛을 단 멜카르트 열두 척은 역풍을 맞더라도 돛에서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타라코의 2단노선은 사각돛이 역풍을 맞으면 오히려 항해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돛을 내리고 노를 저어가느라 속력이 반으로 줄어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하스드루발이 만든 열두 척의 멜카르트는 먹이를 노리고 헤엄치는 상어 떼처럼 순식간에 적함을 따라잡았다.

“적함의 옆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노를 부숴라!”

마고의 명령에 깃발을 든 선원이 다른 전함에 신호를 보내자 대열의 맨 앞에 있는 멜카르트 여섯 척이 적함의 바로 옆을 스치듯 지나가자 2단 노선의 노 부러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펴졌다.

- 타다다다다닥!

이어 뒤따라오던 멜카르트 여섯 척이 돛을 내리고 바다 위에 멈춰버린 적함의 옆면을 성난 코뿔소처럼 충각으로 차례로 들이받았다.

- 콰과광!

그날 마고는 적함 여섯 척을 침몰시키고 네 척을 나포하면서 자신이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지휘를 맡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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