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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70화 (70/201)

[ 70 ] [69화] 갈리아 횡단

하밀카르가 엠포리온을 공략하면서 로마 원로원의 사절과 히스파니아 북동부 해안에 있는 여러 그리스계 식민도시의 주의를 끄는 사이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은 로마 원정대를 이끌고 켈트족의 영역을 지나 피레네산맥으로 향했다.

한니발은 행군을 시작하면서 두 동생과 바르카 가문의 부관들에게 지시했다.

“도중에 마주치는 친로마파 켈트족의 촌락은 모두 약탈한다.”

총사령관의 지시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대의 전쟁에서 적지에서의 약탈 없이는 로마에 도착하기도 전에 군량이 고갈될 것이고 적을 등 뒤에 남기고 행군하다가는 추격해온 적에게 대열의 후방을 공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스드루발의 걱정과는 달리 친로마 켈트족이 에브로 강 이남의 대부족을 굴복시킨 바르카 가문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바르카 가문의 로마 원정대는 가끔 정찰대가 적대 부족에게 공격당한 것을 제외하면 큰 어려움 없이 피레네산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니발의 군대가 피레네산맥 바로 남쪽 지역에 들어서자 바르카 가문에게 우호적인 산악 켈트족의 안내인 대여섯 명이 마중 나왔다.

“바르카 가문의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저희는 부족장님의 명령을 받고 우리 부족의 친구들이 피레네산맥을 넘을 때까지 안내를 맡을 길잡이입니다.”

“여기까지 마중을 나오다니 고맙네. 이건 내 아버지이신 하밀카르 총독님께서 바르카 가문의 친구들에게 주는 선물일세. 큰 주머니는 부족장님께 가져다드리고 작은 주머니는 자네들이 갖게.”

한니발은 곁에 있던 기병대장 마하르발에게 카르타고에서 주조한 은화가 가득 들어있는 가죽 주머니 두 개를 건네주도록 지시했다.

뜻밖에 큰 수입을 얻은 안내인들은 입에 귀에 걸리도록 활짝 웃으면서 한니발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인사했다.

“전사계급도 아닌 저희 같은 미천한 자들도 챙겨주시다니! 소문으로만 듣던 바르카 가문의 관대함이 전부 사실이었군요!”

하스드루발은 그리 많지 않은 은화를 받아들고 기뻐하는 산악 켈트족의 안내인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한니발에게 말했다.

“피레네산맥의 산악 켈트족은 히스파니아나에 사는 동족들보다 가난한 모양이야. 산맥을 통과하면서 켈트족 촌락을 들를 때마다 재물을 나눠주면 보급품을 많이 얻을 수 있겠어.”

“안 그래도 그럴 생각으로 금과 은을 많이 챙겨왔어. 이 방법은 갈리아 지역에서도 꽤 잘 먹힐 거야.”

“갈리아인들도 피레네산맥의 켈트족처럼 재물을 받고 유순해졌으면 좋겠다.”

히스파니아에 정착한 켈트족은 이베리아족의 비교적 발달 된 농업기술을 받아들인 덕분에 예전부터 다른 지역의 동족들보다 매년 농사로 꽤 많은 소출을 얻고 있었는데, 이제는 바르카 가문으로부터 당시 지중해 최고 수준인 카르타고의 관개농법까지 배워 전에 없이 풍족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피레네산맥과 알프스산맥의 산악 켈트족이나 갈리아의 켈트족 중에는 아직 그저 땅에 씨를 뿌리는 정도의 농업기술을 가지고 있는 부족이 많았기 때문에, 흉년이 들면 생존을 위해 약탈 전쟁을 벌여야 할 정도로 가난한 부족이 많았다.

한니발은 서양 전쟁사에서 최초로 정보의 중요성을 간파한 장군이라는 평가를 받은 명장답게, 미리 산악 켈트족과 갈리아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다음 그들에게 줄 재물을 충분히 준비했다.

로마 원정대는 바르카 가문의 병사 중 최정예인 데다, 산악 켈트족이 충분한 보급을 해준 덕분에 쉽게 피레네산맥을 넘었다.

그러나 그들은 피레네산맥을 넘고 산악 켈트족 안내인과 헤어진 다음 현대에는 프랑스가 있는 갈리아 지역에 들어서면서부터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건... 야만의 땅이라는 말 말고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 풍경이군요.”

바르카 가문의 가정교사 실레노스가 눈앞에 펼쳐진 끝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숲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아우니아도 숲을 보자마자 긴장한 표정으로 남편과 두 시숙에게 말했다.

“분명히 우리의 보급품을 노리는 켈트족 부족이 매복해있을 것 같네요. 한니발 아주버님. 저와 남편이 하수파니아 출신 병사들을 데리고 후방의 수송대를 호위하도록 허락해 주세요.”

아우니아의 말에 마고가 물었다.

“부인. 우리와 동맹을 맺은 보이족과 인수브레스족이 갈리아 남부의 켈트족 부족들에게 우리 바르카 가문을 그냥 보내주라고 사절을 보냈다고 하던데요. 이 지역은 대부분 그 두 부족과 우호적인 부족들만 있다고 들었는데, 별일 없지 않을까요?”

“켈트족은 동족들끼리도 자주 전쟁을 벌일 정도로 단합이 안 되는 민족이에요. 그나마 히스파니아의 켈트족은 공동의 목적을 위해 가끔 뭉치기라도 하는데 갈리아인들은 그조차도 잘 안 한다고 하더군요. 저 숲에 보이족이나 인수브레스족과 친하지 않은 부족이 있다면 우리 군의 수송대를 약탈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을 거에요.”

그 말을 듣고 하스드루발이 아우니아에게 물었다.

“7만이 넘는 대군이 호위하는 수송대가 공격받을 거라고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제수씨?”

“저도 많이 해봤거든요. 별로 친분이 없는 부족이 이렇게 많은 금덩이와 은화를 실은 수레를 끌고 자기네 영토를 지나가는데 가만히 내버려두면 켈트족이 아니에요.”

바르카 가문의 형제들은 아우니아의 경험담에 설득당할 수밖에 없었다.

한니발은 잠시 고민한 후 막내 마고에게 지시했다.

“마고., 제수씨 말대로 후방의 방비를 단단히 하는 게 낫겠다. 제수씨와 함께 히스파니아 출신 켈트족 중장보병 5천 명을 데리고 후방을 지키도록 해라.”

“알았어.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그 때 하스드루발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다.

“우리 여기까지 오는 동안 군량을 꽤 많이 소모한 바람에 빈 수레가 몇 대 있잖아. 귀중품과 군량을 실은 수레는 대열의 중앙으로 옮기고 후방에는 빈 수레에 병사를 숨겨서 적의 기습에 대비하면 어떨까?”

그 말에 아우니아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작전이 효과적이라는 건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그 당혹감은 당해본 사람만 알 수 있을 거에요.”

그 말에 하스드루발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자 갑자기 오한이 느껴져 몸을 조금 떨었다.

대화를 마친 후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은 수송대를 대열 중앙으로 옮긴 후 숲으로 들어섰다.

숲속은 서로 경쟁하듯 사방으로 나뭇가지를 뻗은 빼곡히 들어선 굵직한 나무들 때문에 아직 한낮인데도 보름달이 밝은 밤보다도 어두웠다.

하스드루발은 무성한 나뭇잎 사이를 간신히 비집고 들어오는 빈약한 햇빛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나무로 만든 감옥이네요.”

그 말에 한니발과 하스드루발 옆에서 말을 타고 가고 있던 실레노스가 대답했다.

“하스드루발 장군님! 정말 훌륭한 묘사입니다! 제가 집필하고 있는 ‘로마 원정기’에 적어야겠군요.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야만의 땅 갈리아. 한낮에도 겨우 햇빛 몇 줄기만 허락하는 그곳의 숲은 살아있는 감옥이었다.’”

실레노스가 한니발이 맡긴 역사서에 쓸 문장을 궁리하고 있을 때 갑자기 대열의 후방에서 적습을 알리는 뿔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니발은 즉시 방어태세를 갖추기 위해 부관들에게 명령했다.

“적이 대열의 후방을 기습했다! 다른 곳도 공격받을 수 있으니 모두 경계를 늦추지 마라!”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의 오른편의 숲 속에서 갈리아인 수천 명이 괴성을 지르며 쏟아져 나왔다.

- 와아아아!

갈리아인들은 대부분 평상복 차림에 투구와 방패로만 몸을 지키고 있었고 망토 말고는 아예 아무것도 몸에 걸치지 않고 방패만 들고 있는 자도 많았기 때문에 움직임이 빨랐다.

원정대 대열의 맨 앞부분은 카르타고군에서 가장 고참병인 북아프리카 중장보병이 지키고 있었지만, 그런 그들 중에서도 푸른 염료로 갖가지 문양을 그린 전라 차림에 긴 장검과 도끼를 들고 야수처럼 덤벼드는 적의 기세에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는 자들이 늘기 시작했다.

한니발은 아군의 사기가 떨어지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적 병사와 직접 검을 맞대기로 마음먹었다.

울창한 숲 속에서는 말을 타고 싸울 수 없었기 때문에 한니발은 애마 부케팔로스에서 내린 뒤 허리춤에서 외날검 팔카타를 뽑아들고 달려오는 적의 앞을 막아섰다.

그때 한니발보다 조금 키가 작은 켈트족 병사 하나가 타원형 방패로 상반신을 가린 채 그의 왼쪽 어깨를 도끼로 내리찍으려 했다.

한니발은 재빨리 오른쪽으로 움직여 적의 도끼를 피한 뒤 방패 위로 검을 내질러 적의 목을 찔렀다.

“커헉!”

그는 급히 말에서 내려 적을 상대하는 바람에 방패를 가지러 갈 틈이 없어 쓰러진 적이 떨어뜨린 방패를 주워들면서 병사들에게 외쳤다.

“겁먹을 것 없다! 우리 바르카 가문은 이미 10년도 전에 비슷한 적과 싸워 대승을 거뒀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총사령관이 전선의 맨 앞에서 분투하는 것을 보고 북아프리카 중장보병들은 더는 물러나지 않고 커다란 원형 방패로 상반신을 가리면서 검을 뽑아들었고 하스드루발도 급히 말에서 내려 형의 등 뒤를 지켰다.

양측 모두 전열을 갖출 새가 없었기 때문에 전투는 난전이 되었고 바람에 빛도 들지 않는 깊은 숲에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와 부상자의 비명만이 가득했다.

카르타고군이 기습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던 덕분에 애초에 수도 적고 무장도 부실했던 갈리아인 병사들은 많은 사상자만을 남기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전투가 끝난 후 한니발은 부관 기스코에게 아군의 피해를 조사하게 했다.

기스코는 대열 전체를 둘러보며 사상자의 수를 센 후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에게 돌아와 보고했다.

“보병 150명이 전투 중 사망했고 부상자는 300명 정도입니다. 다행히 기병과 코끼리는 한 기도 잃지 않았습니다.”

“부상자 중 치명상을 입어 살 가망이 없는 병사는 고통 없이 신들의 곁으로 보내주고 정중히 장례를 치러주어라. 경상자는 상처가 나을 때까지 빈 수레에 태운다.”

숲을 빠져나간 후에도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은 종종 영역의식이 강한 부족을 만날 때마다 전열의 선두에 서서 적을 물리치며 압도적인 무력으로 길을 뚫었다.

그렇지만 한니발이 마주치는 부족들에게 재물을 아낌없이 뿌렸기 때문에, 대부분의 갈리아인 부족이 금과 은을 받은 후 카르타고군을 환영하면서 식량을 나누어주고 길을 내어주어 바르카 가문의 형제들은 큰 어려움이 갈리아 남서부를 지날 수 있었다.

그러나 하스드루발은 돈을 주고 길을 사는 행군길이 곧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갈리아 남서부에는 아직 로마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고 로마와 적대하는 부족이 많아서 그런대로 편하게 지나왔지만, 갈리아 남동부는 사정이 다르다. 거기에는 로마에 굴복해버린 갈리아인 부족이 많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의 불길한 예상은 로마 원정대가 갈리아 남동부에 흐르는 론 강에 도착했을 때 현실이 되었다.

“망할 것들. 우리 앞길을 막으려고 벌떼처럼 몰려왔군.”

한니발은 카르타고군이 강을 건너는 것을 막기 위해 론 강의 건너편에 모여 괴성을 지르고 있는 갈리아인 수만 명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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