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 [70화] 슬기로운 론 강 도하
하스드루발은 론 강 건너편의 제방에 구름 떼 같이 모여 카르타고군을 향해 끊임없이 고함을 질러대는 갈리아인을 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올해 간신히 켈트어를 다 배웠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은 히스파니아의 켈트족이 쓰는 켈트어를 배웠지만, 피레네산맥을 사이에 둔 켈티베리아인과 갈리아인의 언어는 현대의 서울말과 제주도방언 이상으로 차이가 컸다.
그러자 아우니아가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해석해 드릴까요? 외할아버지께서 갈리아 출신이셔서 갈리아 지역의 켈트어도 할 줄 알거든요.”
“괜찮아요. 말뜻은 못 알아들어도 욕하고 있다는 건 충분히 알겠네요.”
원래의 역사에서도 한니발이 론 강을 건너려 할 때 친로마파 갈리아인들이 떼로 몰려와 카르타고군의 도강을 방해했다.
그 때 한니발은 절묘한 작전으로 보병과 기병을 거의 잃지 않고 강을 건너게 했지만, 켈트족에게 발각되지 않고 병사를 조금씩 도강시키느라 일주일이나 론 강에서 보내버린 데다 적지 않은 전투코끼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한니발은 이번에도 원래의 역사와 거의 비슷한 작전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은 후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적어도 5만 명은 되겠군. 이 지역에 사는 갈리아인이 저 정도 규모의 병사를 모으려면 자기네 마을에서 무기를 들 힘이 있는 자를 싹 다 모아왔다고 봐야겠지. 먼저 강 건너편에 있는 적의 마을에 불을 질러야 해.”
“야간에 기병을 물이 얕은 상류로 보내서 몰래 강을 건너게 할 생각이구나? 갈리아인의 마을을 기습하려고 말이야.”
“어떻게 알았지? 자기네 마을이 불타는 걸 보면 저 야만인들도 퇴각하지 않고는 못 배길 거야.”
“하지만 그러려면 론 강을 건너는데 최소한 일주일은 걸릴 거야. 기병이 갈리아인 몰래 강을 건너고 적의 마을을 찾아내는데 최소 사나흘은 걸릴 테니까 말이야. 여기선 최대한 도강을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해.”
그 말에 한니발은 미간을 찌푸리는 대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하스드루발을 바라보았다.
“5만이 넘는 적군이 강 건너편에서 우리를 빤히 보고 있는데, 무모하게 강을 건너자고 할 네가 아니지. 또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모양이구나. 어서 말해봐.”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아서 히스파니아의 불을 꽤 많이 챙겨왔거든. 갈리아인들은 아마 이런 물건이 있는 줄도 모를 거야. 그동안 셀레우코스 제국과 마우리아 제국에만 팔아왔으니까 말이야.”
한니발은 하스드루발의 생각을 알아채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과연! 우리 병사들이 뗏목을 타고 거의 강 반대편에 도착할 즈음에 불꽃을 터뜨릴 생각이구나! 저 야만인들은 늑대를 본 양 떼처럼 도망쳐 버리겠군! 비싼 장난감을 그렇게 쓸 생각을 하다니! 역시 대단하구나!”
하스드루발은 감탄하는 한니발을 바라보면서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서기 1,413년 조선 태종 때에 조선에 온 일본 사신이 불꽃놀이를 처음 보고 그 요란한 소리와 불꽃에 겁을 먹고 도망쳐버렸다는 기록이 있다.
하스드루발은 그 일본 사신처럼 갈리아인들도 분명 폭음과 하늘을 가득 메우는 불꽃을 보고 도망칠 거라고 확신했다.
‘일본인들은 조선에 와서 불꽃놀이를 보고 인간의 힘이 아니라 천신(天神)의 힘으로 일으킨 불꽃이라고 말했지. 미신을 잘 믿는 갈리아인도 분명 재앙이 일어난 줄 알고 도망쳐 버릴 거야.’
바르카 가문의 형제들은 즉시 7만이 넘는 병사들에게 인근의 숲에서 나무를 베어와 뗏목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한니발이 별동대를 갈리아인 몰래 도강시키려고 시도하는 대신 전군을 뗏목제작 작업에 투입해서 작업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카르타고군은 이틀 만에 전군이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로 쓸 뗏목을 만들었다.
뗏목제작 작업이 완료되자 한니발이 부관들에게 명령했다.
“뗏목으로 다리를 만들려면 갈리아인을 몰아내고 강 건너편의 제방을 확보해야 한다. 북아프리카 출신의 중기병 4천 기와 중장보병 중 선임병 2만 명, 그리고 크레타 궁수 2천 명을 데리고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 갈리아인을 공격한다.”
출동을 명령받은 바르카 가문의 병사들은 자신들보다 수가 두 배는 더 많아 보이는 적군이 빤히 지켜보는 가운데 넓고 깊은 강을 건너는 것이 두려웠지만, 한니발을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그들 중 항명하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한니발이 기병대장 마하르발과 함께 직접 병사 2만 4천 명을 이끌고 뗏목에 오를 때 하스드루발은 동생 마고와 함께 불꽃을 쏠 준비를 했다.
“마고야. 내가 히스파니아의 불을 쏠 준비를 하는 동안 너는 코끼리를 우리 병사에게서 멀찍이 떨어트려 놓도록 해. 폭음에 놀란 코끼리가 아군을 짓밟으면 안 되니까 말이야.”
“알았어. 이 방법이 꼭 통했으면 좋겠다.”
“분명 잘 먹힐 거야. 너도 처음에 불꽃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을 때 속옷에 오줌을 조금 지렸잖아.”
“그 얘기 절대 아우니아 앞에서는 하면 안 돼! 그때는 아직 수염도 안 난 어린애였다고!”
바르카 가문의 세 형제가 마침내 모든 준비를 마치자 한니발은 병사들과 함께 갈리아인들이 모여있는 제방을 향해 뗏목을 저어나가기 시작했다.
제방에 모여있는 수만 명의 갈리아 전사들이 강을 건너오는 카르타고인들을 보고 소리쳤다.
“키 작은 아프리카 놈들이 겁도 없이 강을 건너온다! 활쟁이들! 빨리 앞으로 나와서 화살을 퍼부어!”
한니발은 갈리아인 궁수들이 앞으로 나서는 것을 보고 크레타 궁수들에게 명령했다.
“적의 사정거리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적 궁수들을 저격해야 한다! 궁수 사격 준비!”
한니발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크레타 궁수들은 평소 사용하던 각궁 대신 철궁(鐵弓)을 들어 올려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철궁은 쇠로 만들었기 때문에 각궁보다 무겁고 위력도 떨어지는 편이지만, 각궁과는 달리 강가처럼 습기 찬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고 고대의 나무 활 보다는 성능이 좋았기 때문에 하스드루발이 각궁을 개발할 때 함께 만든 신무기였다.
적 궁수와의 거리가 100m 이내로 좁혀지자 한니발이 다시 한번 소리쳤다.
“발사!”
그의 외침과 동시에 2천 개의 화살이 갈리아인 궁수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으악!”
“화살이 벌써 날아오다니! 모두 방패를 들어!”
아직 활의 사정거리 밖이라고 생각하고 방심하고 있던 갈리아 궁수들은 가슴과 어깨에 화살을 맞고 제방에서 떨어져 강물에 빠졌다.
그러자 갈리아인 중 방패를 가진 보병들이 앞으로 나서 뒤에 있는 궁수들을 보호했다.
그 모습을 보고 한니발이 다시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사격중지! 곧 뗏목이 적의 사정거리에 안으로 들어간다! 모두 방패로 몸을 가려라!”
북아프리카 중장보병들이 즉시 방패로 벽을 쌓아 노잡이와 크레타 궁수를 보호했다.
뗏목과 갈리아인들이 서 있는 제방의 거리가 50m 이내로 좁혀지자 카르타고군의 머리 위로 갈리아인 궁수가 쏜 화살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며 방패에 박혔다.
그러나 압도적인 물량과는 달리 조잡하기 짝이 없는 갈리아인의 나무 활에서 발사된 화살은 북아프리카 중장보병의 튼튼한 방패를 뚫지 못하고 미처 마갑으로 덮지 못한 말 몇 마리의 다리에 상처를 냈을 뿐 카르타고군에 사상자를 내지는 못했다.
마침내 한니발이 탄 뗏목이 강 건너편에 거의 도착하자 하스드루발이 급히 히스파니아의 불 근처의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아군이 강을 건넜다! 불꽃 발사!”
그의 명령에 횃불을 들고 있는 병사 세 명이 도화선에 불을 붙이자 화약이 가득한 파피루스와 가죽으로 만든 커다란 구체안에 불꽃이 기어들어 갔다.
곧 고막을 찢을 듯한 엄청난 폭음이 론 강변을 가득 메웠다.
- 콰과과광!
폭음을 뒤로하고 공중으로 솟구친 불꽃 세 개가 한꺼번에 폭발하며 한데 어우러지더니 하늘에 거대한 자주색 새 모양을 한 거대한 불꽃을 만들어냈다.
무기를 꼬나쥐고 팽팽하게 긴장한 상태로 곧 벌어질 전투를 준비하고 있던 갈리아인들은 우레같은 폭음과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불꽃에 놀라 혼비백산하며 달아났다.
“으아악! 이게 무슨 소리야!”
“하늘에 괴조가 나타났다! 모두 도망쳐!”
한니발은 적이 등을 보이면서 도망가는 틈을 놓치지 않고 적을 추적하며 외쳤다.
“모두 적을 추적하라! 놈들이 정신을 차릴 틈을 주지 마라!”
한니발이 먼저 애마 부케팔로스의 등위에 올라 적의 뒤를 쫓자 북아프리카 중기병들도 말을 달려 그의 뒤를 따랐다.
한니발과 그의 기병들은 팔카타를 오른손에 쥐고 도망가는 적을 쫓아가 닥치는 대로 등을 베어 넘겼다. 중장보병들도 그 뒤를 따라 갈리아인 강변에서 몰아냈다.
강 건너편에 남아있던 카르타고군 병사들은 한니발이 갈리아인들을 완전히 몰아내는 것을 보고 환호성을 질러대며 기뻐 날뛰었다.
“만세! 아군이 적을 물리 쳤다!”
“갈리아 놈들! 고작 불꽃놀이에 도망가는 꼴이라니!”
하스드루발도 기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승리를 만끽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강을 건너고 나서 기뻐해도 늦지 않을 거다. 마실리아인 중에서도 분명 불꽃을 보고 우리가 이 근방에 와있다는 걸 눈치챈 자들이 있을 테니 서둘러 강을 건너야 한다. 모두 뗏목을 연결해서 다리를 놓아라!”
하스드루발은 다시 병사들에게 뗏목다리를 만들어 강을 건너게 했다.
그의 작전 덕분에 카르타고군은 말 예닐곱 마리가 다리를 다쳤을 뿐 인명피해 없이 사흘 만에 론 강 도하를 마쳤다.
* * *
하스드루발의 예상대로 마실리아인들은 먼발치에서 론 강 변의 하늘에 자주색 불꽃이 터지는 것을 보고 카르타고인이 도착한 것을 알아챘다.
그들이 론 강 쪽으로 정찰병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친로마파 갈리아인의 파발꾼이 마실리아에 도착해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군이 론 강을 건넜다는 사실을 알리자 마실리아 원로원은 즉시 그곳에서 가장 빠른 2단노선을 띄워 로마 원로원에 서신을 보냈다.
로마 원로원은 그제야 한니발이 론강을 건넜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하면서 즉시 회의를 소집했다.
마침 근무지인 사르디나에서 업무차 로마에 와있던 법무관 가이우스 테렌티우스 바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존경하는 동료 의원 여러분! 바르카 가문의 속셈은 히스파니아 정복만이 아니었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대군을 이끌고 론 강을 넘었을까요?”
그의 말에 마르켈루스가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저주받을 카르타고놈들! 마실리아에서 온 사절의 말에 따르면 카르타고군의 도강지점에서 마실리아까지는 말을 타면 하루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라고 합니다. 바르카 가문은 마실리아를 비롯한 남부 갈리아 지역을 점령할 생각인 게 틀림없습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있던 파비우스 막시무스 퀸투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동료 의원들에게 말했다.
“바르카 가문이 저렇게 공격적으로 나온다면, 카르타고의 해군도 지중해를 건너 시칠리아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겠습니다. 존경하는 동료 의원 여러분. 여러분께 당장 로마의 친구들을 야만인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마실리아와 시칠리아에 각각 3군단과 4군단을 파견할 것을 제안합니다.”
로마 원로원은 이번에도 만장일치로 파비우스의 의견에 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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