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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72화 (72/201)

[ 72 ] [71화] 알프스 횡단 (1)

기원전 218년의 7월 초 어느 여름날, 집정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는 갈리아 남부 해안지대를 공격하려는 한니발의 군대를 물리치라는 로마 원로원의 명령을 받았다.

그는 원로원의 명령을 받자마자 자신의 친형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칼부스에게 찾아갔다.

그는 반갑게 인사를 나눌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형을 만나자마자 용건을 말했다.

“형님. 원로원이 제게 남부 갈리아에서 하밀카르의 아들 한니발이 지휘하는 군대를 막으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당장 놈들을 막지 않으면 마실리아가 카르타고군에 점령될지도 모릅니다.”

“나도 알고 있어. 어제 원로원 회의에 참석했었거든. 안 그래도 네가 내게 도와달라고 할 것 같아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어.”

“정말 고맙습니다 형님. 저도 어서 집에 가서 우리 장남에게 갑옷과 검을 챙기게 하겠습니다.”

“우리 조카가 명예로운 경력을 까다로운 적과 싸우면서 시작하게 됐구나.”

푸블리우스는 형의 말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러니 더더욱 용맹한 큰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한 거지요.”

“허허 참. 마흔이 넘더니 사람 다루는 솜씨가 더 늘었네? 그런 말을 들었으니 더 서둘러야겠군.”

원래의 역사에서 푸블리우스는 새로 뽑은 시민군의 훈련을 마치느라 8월 말에야 한니발의 군대를 막기 위해 남부 갈리아로 떠난다.

그러나 이미 카르타고군이 론 강을 건넌 사실을 로마 원로원이 알아버린 상황에서 더는 신병을 훈련 때문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푸블리우스는 친형 그나이우스와 그와 이름이 같은 장남과 함께 새로 모집한 로마의 2개 군단을 이끌고 이탈리아 반도 동부 해안에서 커다란 5단 갤리선에 올랐다.

어느덧 18세 청년으로 자란 푸블리우스의 아들 스키피오는 태어나서 처음 전장에 나서는데도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지나치게 흥분해 있거나,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뻗뻗하게 굳어있는 또래의 신병들과는 달리, 전혀 긴장하는 기색 없이 넉살 좋게 함께 배에 탄 군단병들 사이에 녹아들어 수다를 떨어댔다.

“다들 세르비우스 성벽 안에서 제일 큰 빵집의 막내딸 알지? 내가 열다섯 살 때 걔를 꾀어서 부모님 안 계실 때 집에 데려왔는데...”

젊은 군단병들이 숨죽이며 스키피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을 때 그의 등 뒤에서 푸블리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그 얘기를 좀 자세히 듣고 싶구나.”

총사령관의 노기 어린 표정을 보고 젊은 군단병들이 고양이를 본 참새무리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어디 계속 얘기해보라니까!”

스키피오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아버지의 호통에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고 능청스럽게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고정하세요 아버지. 전 그저 병사들과 가까워지고 싶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을 뿐입니다. 몸놀림이나 발걸음을 보니 벨리테스와 하스타티가 충분히 훈련받지 못한 것 같아서 좀 걱정되네요.”

“눈썰미가 대단하구나. 사실 급하게 출동하느라 신병훈련을 마칠 시간이 없었다. 실전을 훈련으로 삼아야 하는데 적이 만만치 않아서 걱정이 크다.”

기원전 3세기의 로마군은 로마 시민권자 중에서 징집된 군단병과 로마의 동맹도시에서 징집된 보조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군단병은 다시 나이와 재산에 따라 벨리테스, 하스타티, 프린키페스, 트리알리로 나뉘었는데, 그 중 벨리테스와 하스타티는 스키피오처럼 이번이 첫 참전인 신병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모집할 때 몇 달간 군사훈련을 거치는 보통이었다.

원래의 역사에서 푸블리우스는 신병의 훈련을 마치고 8월 말에 이탈리아 반도를 떠나지만, 지금은 한니발을 막느라 일정을 거의 두 달이나 앞당기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푸블리우스는 그런 사실을 한눈에 알아챈 아들이 대견했지만, 그렇다고 가정교육을 게을리할 생각은 없었다.

“그건 그렇고 네가 방금 네가 병사들에게 한 말이 진실이라면 어린 나이에 방탕한 행동을 해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한 것이고 거짓이라고 해도 가벼운 언행으로 네 평판을 깎아 먹는 경솔한 행동을 한 셈이 된다. 이번 원정이 끝나면 일주일간 외출 금지다.”

“아버지! 너무 가혹하십니다! 그건 물고기한테 일주일 동안 물 밖에서 살라고 말씀하시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 모습을 보고 로마군의 고참병 트리알리들이 집에 두고 온 아들을 떠올리며 아빠 미소를 지었다.

근엄하고 과묵한 아버지와 달리 명랑하고 붙임성 있는 스키피오가 같은 배에 탄 모든 병사와 친해지는 사이 로마군을 실은 수송함대는 약 일주일 만에 마실리아의 항구에 도착했다.

푸블리우스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자신을 환대하는 마실리아의 원로원 의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한니발의 행방을 물었다.

“마실리아 원로원의 환대에 감사드립니다만, 어서 마실리아를 위협하는 카르타고군을 궤멸시켜야 하니 지체할 시간이 없군요. 적장 한니발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게... 계속 정찰병을 보내고 있습니다만, 한 2주 전부터 카르타고군의 위치를 찾을 수가 없어서 난감해하던 중이었습니다.”

푸블리우스는 마실리아 원로원 의원의 말을 듣고 도끼눈을 부릅뜨며 언성을 높였다.

“어이가 없군요! 로마에 지원군을 요청하고선 여태 적군의 위치도 파악해 놓지 않았단 말입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카르타고군은 론 강을 건넌 후 도강 지점에서 북쪽으로 15 스타디온(약 2.7km) 정도 떨어져 있는 로마와 동맹을 맺은 갈리아인의 마을을 약탈한 이후에는 행방이 묘연합니다.”

“북쪽으로 갔다고요? 마실리아가 있는 남쪽이 아니라?”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아마 보급품을 얻기 위해 가장 가까이 있는 갈리아인 마을을 약탈한 것 아닐까요?”

그 말에 그나이우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푸블리우스에게 말했다.

“남쪽에도 갈리아인의 마을이 많은데 적장 한니발이 그저 마을 하나 약탈하려고 북쪽으로 이동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무래도 우리가 직접 카르타고군의 도강 지점으로 가서 주변을 둘러봐야겠어.”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한시가 급하니 일단 기병만 데리고 빨리 움직여야겠습니다.”

스키피오 부자와 그나이우스는 부관에게 보병의 통솔을 맡긴 후 급히 기병 2,200기를 데리고 마실리아의 성문을 나섰다.

로마 기병대는 쉬지않고 말을 달려 해가 지기 전에 한니발의 군대가 약탈한 갈리아인의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의 절반 정도가 불타버렸지만, 아직 그곳에 남아있던 주민 몇 명이 로마군을 보고 다가왔다.

라틴어를 할 줄 아는 갈리아인 노인 한 명이 푸블리우스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우릴 도와주러 오신 거라면 너무 늦었군요. 마실리아에서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려고 했지만, 카르타고인들은 단 하루 만에 강 건너편을 지키고 있던 우리 전사들을 몰아내고 마을을 약탈했습니다.”

그 말에 그나이우스가 다급한 목소리로 노인에게 물었다.

“우리가 자네들의 복수를 해주겠네! 마을을 약탈한 다음 카르타고군이 어디로 갔는지 어서 알려주게!”

“그 괴물 같은 놈들은 론 강을 따라 계속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계속 북쪽으로 갔다고? 한니발의 목적은 갈리아 남부를 정복하는 게 아닌가? 여기서 북쪽으로 가서 뭘 어쩌겠다는 거지?”

그 때 스키피오가 큰아버지에게 말했다.

“알프스! 적장 한니발은 알프스 산맥을 넘어서 이탈리아 반도를 공격할 생각인 게 틀림없습니다!”

아들의 말에 푸블리우스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 없다. 아무리 아직 여름이라지만 저 험난한 알프스를 넘는 길은 알프스 산맥 근처에 사는 켈트족들만 알고 있어. 그리고 이 근방의 갈리아인은 전부 우리 로마나 마실리아와 동맹을 맺고 있지.”

“그렇지만 알프스 산맥 동쪽에 사는 보이족과 인수브레스족이 카르타고군을 돕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두 부족도 알프스를 자주 넘어다니지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아니. 그렇다고 보는 게 맞겠어! 지금 생각해보니 두 부족이 몇 달 전 반란을 일으키자마자 바르카 가문이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도 그저 우연은 아닐 것 같구나!”

카르타고군이 알프스로 향한 것을 알고 푸블리우스는 잠시 고민했지만, 곧 결단을 내렸다.

“이미 적장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고 있을 것이다. 어느 길로 갔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카르타고군의 뒤를 쫓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야. 형님.”

“나한테 대신 군대를 맡길 생각이구나.”

“맞습니다. 죄송하지만 제 대신 히스파니아를 공격해 바르카 가문의 보급선을 차단해 주세요. 저는 제 아들과 함께 로마로 돌아가 원로원에 이 사실을 알리겠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게 하는 게 좋겠지. 어서 마실리아로 돌아가자. 우리 둘 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으니까 말이야.”

* * *

스키피오 부자의 예상대로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은 기원전 218년 7월 7일 먼발치에 보이는 알프스 산맥을 보면서 론 강을 따라 북쪽으로 행군하고 있었다.

카르타고군 병사 중 적지 않은 수가 험난한 알프스 산맥을 보자 그만 겁에 질리고 말았다.

“피레네 산맥은 알프스에 비하면 우리 마을 뒷산이나 마찬가지구나!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험한 산맥을 넘을 수 있다는 거지?”

늘 침착한 한니발도 이번만큼은 병사들을 설득할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하고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병사들이 이렇게 심하게 동요할 줄은 몰랐군.”

하스드루발은 그런 형을 안심시키려고 애썼다.

“걱정하지 마. 곧 보이족의 안내인이 알프스를 넘어서 우리 앞에 나타날 거야.”

“너무 낙천적인 생각이구나. 갈리아나 이탈리아에 사는 켈트족은 히스파니아의 동족들하고는 달라. 도저히 신용할 수 없는 자들이지.”

“나도 그건 잘 알고 있어. 그래도 이번에는 갈리아인의 복수심을 믿어보자고. 특히 보이족은 우리 카르타고인 이상으로 로마를 증오한다고 하니까 말이야.”

“이 상황에도 그렇게 침착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한데. 형으로서나 장수로서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군,”

하스드루발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뜨끔했다.

‘강심장이라서가 아니고 보이족의 족장 마길루스가 우릴 안내한다는 자료를 읽은 적이 있어서 마음이 편할 뿐인데. 좀 쑥스럽네? 추운 10월에도 알프스를 넘어서 우릴 데리러 온 사람이 산맥을 넘기 쉬운 여름에 안 올 리가 없잖아?’

그의 예상대로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보이족의 족장 마길루스가 카르타고군의 숙영지에 도착했다.

마길루스는 한니발의 막사로 들어와 바르카 가문의 형제들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 유명한 한니발 장군님과 하스드루발 장군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보이족의 부족장 중 한 명인 마실루스라고 합니다.”

한니발은 자신의 아내가 장남을 낳았을 때만큼 환하게 웃으면서 마실루스를 반겼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위대하신 신들께서 카르타고와 보이족을 버리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오늘 우리의 만남을 성사시켜 주신 걸 보면 말입니다!”

“저도 기껏 알프스를 넘어오면서 카르타고군이 론 강을 넘지 못했을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다행히 이제 우리 보이족과 인수브레스족, 그리고 카르타고인이 힘을 합쳐 원수 로마의 심장에 검을 꽂을 수 있겠군요!”

하스드루발은 형 한니발과 달리 아직 갈리아나 이탈리아 북부의 갈리아인이 사용하는 켈트어를 잘 못 알아들었지만, 마실루스가 ‘로마’라고 말할 때 그의 눈에 살기가 도는 것은 놓치지 않았다.

‘이 사람은 믿을 수 있겠네. 아직 여름이고 충직한 안내인까지 있으니 알프스 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겠어.’

한니발은 마실루스에게 얼마 남지 않은 포도주와 좋은 음식을 대접한 후 그와 함께 막사 밖으로 나와 병사들을 모아놓고 외쳤다.

“봐라! 우리의 동맹인 보이족의 마실루스 족장님께서 직접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먼 길을 오셨다! 바로 우리 눈앞에 있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서 말이다! 바르카 가문의 병사들이여! 아무것도 겁낼 것 없다! 2주 후면 역사는 우리를 세계최초로 알프스를 넘은 문명국가의 군대로 기억할 것이다!”

총사령관의 자신감 넘치는 연설에 7만이 넘는 병사들이 내지른 우렁찬 함성이 론 강 변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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