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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83화 (83/201)

[ 83 ] [82화] 한니발 라이징!(2)

한니발이 자신이 지휘하는 기병대의 선두에서 로마군을 향해 돌진해 오는 모습을 보고 푸블리우스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적장의 머릿속을 한번 들여다보고 싶구나. 총사령관이 선두에 서서 적진에 돌격하다니? 자기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지? 저 많은 병사가 알프스를 넘을 수 있었던 건 무모한 젊은이에게 행운의 여신께서 미소 지은 덕분인 게 분명하다.”

스키피오도 무모한 적장의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아버지의 말에 맞장구쳤다.

“집정관님 말씀대로입니다. 이대로면 적장 한니발은 우리 벨리테스들이 쉽게 처치할 수 있을 겁니다.”

푸블리우스는 로마의 보병 전투 전술을 그대로 기병 전투에 적용하기로 했다.

전열의 맨 앞에 경보병인 벨리테스 1천 명이 적에게 투창을 던져 기세를 꺾은 후 갈리아 기병이 먼저 적에게 돌격해 전선을 형성하면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로마 기병이 재빨리 좌우로 돌아가 적을 포위하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어지간한 고대의 기병대는 손쉽게 격퇴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전술이었다.

하지만 한니발의 기병대는 결코 ‘어지간’하지 않았다.

“쐐기진형!”

선두에서 달리고 있는 한니발의 외침을 들은 이베리아족 중기병 4천 기가 달리는 속도를 조절하며 순식간에 네 개의 거대한 삼각형 모양 진형을 짰다.

로마군 병사들은 적진에서 불과 4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한 마리의 거대한 야수가 자세를 바꾸듯 일사불란하게 진형을 바꾸는 적을 보면서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저게 가능해? 기병이 달리면서 진형을 바꾼다고?”

한니발과 이베리아족 중기병들은 벨리테스들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시간도 주지 않고 지축을 울리며 적진을 향해 돌진했다.

- 두두두두두두두

로마군의 맨 앞에 산개해 있던 벨리테스들은 진로에 있는 모든 것을 짓밟겠다는 듯이 요란한 말발굽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중기병의 기세에 겁을 먹고 비명을 지르면서 마구잡이로 투창을 던져댔다.

“으아아아!”

수백 개의 재블린이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이베리아족 중기병과 그들이 타고 있는 말의 가슴팍에 명중하면서 둔탁한 쇠 부딪히는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 터엉!

그러나 로마 시민 중 빈곤층에 속하는 벨리테스들이 자비로 마련한 재블린은 이베리아족 중기병의 튼튼한 경번갑과 마갑을 뚫기에는 너무나도 조악했다.

자신들의 투창이 적의 갑옷에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튕겨 나오자 벨리테스들은 로마 기병대의 후방으로 도망가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투창이 튕겨 나온다! 죽기 싫으면 모두 흩어져라!”

값비싼 갑옷을 대신해 늑대나 곰의 가죽을 뒤집어쓴 경보병들이 무서운 기세로 돌진하는 한니발의 기병대를 피해 달아나는 모습은 그야말로 사냥꾼에게서 달아나는 짐승 떼 그 자체였다.

- 두두둑!

한니발의 진로에 넘어져 있던 벨리테스 한 명이 그의 애마 부케팔로스의 거대한 발굽에 밟혀 허리가 부러지면서 비명도 질러보지 못하고 즉사했다.

한니발은 자신의 애마가 적병을 짓밟을 때 말 안장으로부터 전해오는 꺼림칙한 감각을 느꼈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고 오른발 뒤꿈치로 부케팔로스의 옆구리를 걷어차며 속도를 올렸다.

“달려라! 부케팔로스!”

부케팔로스는 주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거친 콧김을 한 번 내뿜은 후 더욱 속도를 올렸다.

갈리아 기병들은 벨리테스의 투창 세례를 받고 기세가 꺾인 한니발의 기병대를 덮친다는 본래의 작전이 수포로 돌아가자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대장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 이제라도 맞돌격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기다려봐라! 곧 로마 집정관이 다음 작전을 알려주겠지!”

그러나 한니발은 갈리아 기병대를 지휘하는 장교에게 적 총사령관의 명령이 전달될 시간을 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한점에 파괴력을 집중시킨 바르카 가문의 기병대를 이끌고 적 본대의 중앙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 콰과가각!

수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얇고 긴 진형을 짠 갈리아 기병대는 덩치가 큰 히스파니아산 말을 탄 이베리아족 중기병이 창을 내지르며 압도적인 질량으로 부딪혀오자 순식간에 도끼로 내리친 장작처럼 쪼개지고 말았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한니발의 기병대를 따라가고 있던 하스드루발은 거침없이 적진을 휘젓는 형 한니발을 보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엄청나다. 저렇게 무모해 보이는 전술도 지휘관의 무력과 통솔력이 받쳐주면 성공할 수 있는 거였구나. 한니발 형은 삼국지연의로 치면 조운과 제갈량을 합쳐놓은 것 같은 느낌이야.’

한니발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던 갈리아 기병의 가슴을 찌르다 부러진 창 자루를 버리고 허리춤에서 외날검 팔카타를 뽑아들면서 소리쳤다.

“적은 이미 혼란에 빠졌다! 갈리아인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끝장을 보자!”

이베리아족 기병들은 야수의 포효를 닮은 총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갈리아 기병대의 진형에 뚫려버린 커다란 구멍을 지나 그대로 후방에 있는 로마 기병대를 향해 짓쳐들어갔다.

후방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푸블리우스가 허리춤에서 로마군 기병의 검 스파타를 뽑아들면서 소리쳤다.

“적장의 기세가 대단하긴 하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 우리 진영 깊숙이 들어온 적을 포위하라!”

집정관의 독려를 받은 로마 기병들이 창과 검을 높이 들고 함성을 지르며 한니발의 기병대를 향해 말을 달렸다.

“와아아아아아!”

혼란에 빠졌던 갈리아 기병들도 한니발의 기병대가 자신들을 지나쳐 로마군과 싸우러 가고 나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자신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로마 기병대를 향해 돌진하는 이베리아족 중기병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 갈리아 기병 장교가 소리쳤다.

“감히 우리를 무시하고 난쟁이 로마놈들과 싸우러 가다니! 카르타고놈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겨서 갈리아인의 무서움을 보여줘라!”

그때 바람을 가르는 화살 소리가 갈리아 기병들의 귓가를 날카롭게 스쳐 지나갔다.

- 쐐애애애액!

갈리아인 기병의 배후에서 날아온 화살이 고함을 지르던 갈리아 기병 장교의 목 뒷부분에 박히면서 날카로운 화살촉이 반대편으로 튀어나왔다.

“컥!”

자신들의 대장이 갑자기 화살을 맞고 짚단처럼 말 위에서 떨어지자 갈리아 기병들은 멍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의 눈에 하스드루발과 마하르발이 이끄는 누미디아 궁기병 2천 기가 말에 탄 채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스드루발은 활시위를 걸며 휘하의 누미디아 궁기병들에게 소리쳤다.

“발사!”

선두에서 발사 명령이 들려오자 누미디아 궁기병 1천 기가 동시에 팽팽히 당기고 있던 각궁의 활시위를 놓았다.

- 쐐애애애애액!

1천 개의 화살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면서 태양을 가릴 기세로 날아올랐다가 갈리아 기병대의 머리 위로 빗발쳤다.

“끄아아악!”

강력한 각궁에서 발사된 수많은 화살이 갈리아 기병의 철제 사슬갑옷 사이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들을 자신이 섬기는 신의 곁으로 보내주었다.

살아남은 갈리아 기병들도 순식간에 아군 수백 명이 타고 있던 말과 함께 화살을 맞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완전히 전의를 잃고 말았다.

“저건 또 무슨 일이냐! 투창을 맞고도 멀쩡한 기병 다음에는 활을 쏘는 기병이라니!”

“저런 괴물들을 무슨 수로 이겨! 모두 도망쳐!”

겁에 질린 갈리아 기병들은 꼬리에 불이 붙은 멧돼지처럼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하스드루발은 그들을 쫓지 않았다.

‘저 갈리아인들은 이 싸움에서 끝나면 어차피 우리 편으로 돌아설 자들이다. 게다가 지금 제일 급한 건 마하르발의 기병대와 호흡을 맞춰서 로마 기병대의 배후를 한꺼번에 공격하는 거야.’

하스드루발은 급히 자신의 옆에 있는 나발수에게 말했다.

“뿔나팔을 불어서 마하르발의 기병대에게 신호를 보내라!”

그러자 나발수가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입에 물고 힘차게 불었다.

- 뿌우우우우웅

평원을 가득 메우는 중후한 뿔나팔 소리를 들은 기병대장 마하르발도 똑같이 나발수에게 뿔나팔을 불게 해 로마군을 포위할 준비가 됐음을 하스드루발에게 알렸다.

한니발은 망가진 방패를 버리고 오른손에 든 팔카타로 적을 베어 넘기며 격렬한 전투를 벌이던 중 두 번의 뿔나팔 소리를 듣고 휘하의 기병들에게 외쳤다.

“아군이 갈리아 기병대를 격퇴했다!”

한니발의 외침에 승리가 머지않았음을 직감한 이베리아족 중기병들이 이미 로마인의 피로 물든 검을 더욱 맹렬히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등자 덕분에 말 위에서도 땅에서처럼 자유자재로 검을 휘두르는 한니발의 기병대에게 고전하고 있던 로마 기병들은 갈리아 기병이 패퇴하는 모습을 보고 더더욱 사기를 잃어갔다.

“갈리아 기병들이 도망친다!”

“올림포스의 신들께서 우릴 버리셨다!”

푸블리우스도 이미 승기가 한니발의 군대에 넘어갔음을 깨닫고 퇴각명령을 내렸다.

“이대로는 적에게 포위당하고 만다! 전군 숙영지로 퇴각하라!”

푸블리우스의 명령에 로마 기병들이 말머리를 돌려 티키누스 강에 놓인 가교 쪽으로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다잡은 사냥감이 겁을 먹고 도망친다고 곱게 보내줄 한니발이 아니었다.

한니발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그리스식 청동 흉갑과 붉은 깃털로 장식되어 있는 투구를 쓰고 백마를 탄 중년의 기수가 말을 타지 않은 경호원 네 명에게 호위를 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가 집정관 푸블리우스임을 알아챘다.

“가자 부케팔로스!”

한니발이 적장을 향해 성난 수사자와 같은 기세로 달려나갔다.

본래 로마의 집정관은 릭토르라고 불리는 경호관 열두 명에게 호위를 받지만, 치열한 전장에서 푸블리우스를 호위하다 살아남은 릭토르는 네 명 뿐이었다.

그중 한 명이 집정관을 해치기 위해 무서운 기세로 돌진 해오는 한니발을 보고 난전 중에 잃어버린 릭토르의 무기 파스케스 대신 손에 들고 있던 창을 내질렀다.

“집정관님에게서 떨어져라!”

그러자 한니발은 왼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찔러오는 창의 자루를 낚아채고는 자기 쪽으로 힘차게 끌어당기면서 오른손에 들고 있던 팔카타로 창을 잡고 있는 릭토르의 팔을 세차게 내리쳤다.

“끄아아아악!”

일격에 팔이 잘려나간 릭토르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다른 쪽을 보고 있던 푸블리우스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한니발을 바라보았다.

한니발은 릭토르에게서 빼앗은 창을 재빨리 고쳐잡고 갑옷으로 가려져 있지 않은 적장의 오른쪽 허벅지를 세차게 찔렀다.

로마의 집정관 푸블리우스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크아아아악!”

한니발은 적장 푸블리우스의 숨통을 완전히 끊기 위해 애마 부케팔로스에서 뛰어내렸다.

그러자 나머지 세 명의 릭토르가 집정관을 지키기 위해 굵은 나무다발에 끈으로 도끼를 묶은 무기 파스케스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 함성을 지르며 한니발에게 덤벼들었다.

“감히 집정관님을 해치려 들다니!”

“죽어라 야만인!”

한니발은 그저 집정관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전장에 실용성이 없는 무기를 들고나온 릭토르들에게 싸늘한 조소를 보이며 말없이 적에게 검을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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