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84화 (84/201)

[ 84 ] [83화] 한니발 라이징!(3)

푸블리우스는 오른쪽 허벅지를 창에 찔리고 말에서 떨어지면서 왼팔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지만,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크으윽....”

그는 오른쪽 허벅지에 여전히 창이 꽂혀있고 왼팔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버려 극심한 고통이 느껴지는 상황에서도 오른팔과 왼 다리를 필사적으로 움직여 땅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검을 향해 기어갔다.

마침내 푸블리우스가 오른손을 뻗어 장검의 자루를 잡으려는 순간, 점점 흐릿해져 가는 그의 눈에 검날을 짓밟는 카르타고군의 군용 가죽 샌들이 보였다.

그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자 머리에 그리스식 철제 투구를 눌러쓰고 야수와 같은 안광을 내뿜고 있는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청년은 원래는 자주색이었지만 로마군의 피를 온몸에 뒤집어쓰는 바람에 붉게 물든 두정갑을 입고 오른손에 외날검 팔카타를 들고 있었다.

그는 적장의 숨통을 확실히 끊기 위해 말에서 내린 한니발이었다.

푸블리우스는 자신을 호위하고 있던 릭토르들을 애타게 부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 어디에 있느냐! 어서 나를 지켜라!”

그러나 그가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한니발이 휘두른 검에 가슴과 찔리고 목을 베여 바닥에 쓰러져있는 부하들의 모습뿐이었다.

푸블리우스는 다시 고개를 들어 한니발을 노려보며 라틴어로 외쳤다.

“이 괴물! 나는 여기서 죽어도 조국 로마가 반드시 카르타고를 멸망시키고 말 것이다!”

지중해 세계의 거의 모든 언어를 섭렵한 한니발도 라틴어만큼은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적장의 외침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푸블리우스의 투지를 잃지 않은 매서운 눈빛을 보고 적장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한니발은 적장을 내려다보며 그리스어로 담담히 말했다.

“적장이지만 훌륭한 투지다. 네가 죽으면 정중히 장례를 치른 다음 너의 시신을 로마군에게 인도할 것을 약속하겠다.”

한니발은 말을 마치고 푸블리우스의 목을 베기 위해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나 그가 적장의 목을 치려는 순간 로마 기병 수십 기가 나타나 한니발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이베리아족 중기병들에게 덤벼들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한니발이 잠시 검을 거두고 소규모 전투가 일어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의 눈에 젊은 로마 기병 한기가 혼란을 틈타 이베리아족 중기병 사이를 헤치고 나와 그에게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용감한 젊은 로마 기병은 다름 아닌 푸블리우스의 아들 스키피오였다.

“아버지!!!”

스키피오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말을 달리며 한니발의 목을 향해 검을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그러자 한니발은 풋내기 기병이 휘두른 검을 어렵지 않게 몸을 숙여 피하면서 적 기병이 타고 있는 말의 옆구리를 팔카타로 베었다.

- 히히히힝!

스키피오가 탄 작은 말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쓰러지자 스키피오도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놓쳐버리면서 아버지 푸블리우스의 바로 옆에 나동그라졌다.

“으아아악!”

스키피오는 낙마의 충격 때문에 온몸이 쑤셨지만, 아직 아버지를 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그는 바닥에 드러누운 채 고개를 들어 무기가 될만한 것을 찾다 푸블리우스를 지키다 죽은 릭토르가 떨어트린 파스케스를 발견했다.

파스케스는 무겁고 휘두르기 불편한 데다 도끼날도 작아 전장에서 쓸 무기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스키피오에게 이것저것 따질 시간은 없었다.

그는 파스케스의 자루를 잡고는 온힘을 다해 한니발의 다리를 노리고 휘둘렀다.

“크읏!”

한니발이 뜻밖의 궤도에서 날아오는 도끼날에 놀라며 뒤로 펄쩍 뛰어 스키피오의 공격을 피했다.

스키피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로마 기병의 피가 묻어있는 파스케스를 높이 들고 퇴각하고 있는 로마 기병들을 향해 외쳤다.

“집정관님이 쓰러졌다! 모두 집정관님을 지켜라!”

한니발과 이베리아족 중기병의 위세에 눌려 지친 말을 채찍질하며 도망치던 로마 기병들은 스키피오의 절박한 외침을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행정관의 권위와 로마인의 단결을 의미하는 신성한 상징물 파스케스에 피가 묻어있는 것을 보고는 두려움을 떨쳐내고 스키피오 부자를 지키기 위해 말머리를 돌렸다.

“집정관님을 지켜라!”

“로마인의 자긍심을 지켜라! 파스케스를 든 병사 주변으로 모여라!”

로마 기병들은 적의 검을 들고 한 덩어리로 뭉쳐 스키피오 부자 주변의 적에게 돌진했다.

“로마 인빅타!(불패의 로마)”

그러자 이베리아족 중기병들은 마치 현대 스페인의 기마 투우사 피카도르처럼 말을 옆으로 달리게 하는 묘기를 부리면서 로마 기병의 돌격을 피하는 동시에 자신의 옆을 지나가는 로마 기병의 목과 팔을 향해 팔카타를 휘둘렀다.

“끄아아악!”

“크허억!”

수많은 로마 기병들이 검에 베인 상처에서 피를 쏟으며 말 위에서 떨어졌지만, 그들의 투지는 꺾이지 않았다.

“멈추지 마라! 로마의 자존심을 지켜라!”

마침내 이베리아족 중기병의 칼날을 피한 로마 기병 서른 기가 스키피오 부자에게 가는 길을 뚫어내자, 한니발은 적장을 사살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애마 부케팔로스의 등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정말 끈질긴 녀석들이군!”

스키피오는 아군 기병이 도착하자 재빨리 땅에 떨어진 검을 주워 푸블리우스의 허벅지에 박힌 창의 자루를 잘라냈다.

“크헉!”

그도 상처에 박힌 창이 조금 흔들리면서 푸블리우스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지만, 창을 뽑으면 피가 쏟아져 나올 것이고 느긋하게 붕대를 감고 있을 시간이 없기 때문에 상처 입은 아버지를 빨리 말에 태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그 모습을 본 로마군 장교 한 명이 말에서 내리더니 자신의 말을 스키피오 부자에게 내어주었다.

“집정관님. 어서 제 말에 타십시오. 곧 적이 다시 공격해올 겁니다.”

“자네는 말도 없이 어떻게 여길 빠져나갈 셈인가!”

“집정관님 정도는 아니지만, 저도 다리를 다쳐서 어차피 더는 말을 몰기가 어렵습니다. 꼭 이 지옥을 탈출하셔서 조국 로마에 위험이 닥쳤음을 원로원에 알려주십시오.”

“정말 고맙네. 자네의 충정을 절대 잊지 않겠네.”

스키피오는 자신이 먼저 말 등에 오른 다음 말을 내준 장교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를 자기 뒤에 태웠다.

그런 다음 그는 허벅지를 다친 푸블리우스가 낙마하지 않도록 다른 병사가 건네준 가죽끈으로 아버지와 자신의 허리를 단단히 묶었다.

집정관이 말에 오르자 스물아홉 기의 로마 기병이 스키피오 부자를 지키기 위해 둘러쌌다.

스키피오는 파스케스를 높이 들며 아버지를 대신해 외쳤다.

“로마는 지지 않는다! 이 지옥을 빠져나가서 반드시 카르타고놈들에게 복수하자!”

로마 기병 스물아홉 기는 적진을 뚫고 오느라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젊은 기병의 절박한 외침에 마지막 힘을 짜내 함성을 지르며 말을 달렸다.

“로마 인빅타!”

한편 자신의 기병대와 합류한 한니발은 로마 기병 서른 기가 한 덩어리로 뭉쳐 달아나는 것을 보고 이베리아족 중기병.

“도망치는 로마 집정관을 추격해라! 절대로 놓치면 안 된다!”

그러나 푸블리우스가 구출된 것을 알고 다른 로마 기병들이 죽을 각오로 이베리아족 기병을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스키피오 부자를 호위하는 로마 기병대는 간신히 전장을 빠져나갔다.

한니발은 점점 멀어져가는 로마의 집정관을 바라보며 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 잡은 사냥감을 놓치다니! 하스드루발이 이 상황을 눈치채주면 좋으련만!”

한니발의 기도가 신에게 닿았는지 그때 하스드루발은 누미다아 궁기병들과 함께 로마 기병대 진형의 우측을 공격하다가 먼발치에 스키피오 부자를 호위하며 도망치는 로마 기병대 서른 기를 보았다.

“뭐지? 한니발 형의 포위를 뚫고 빠져나온 적이 있네? 운 좋은 녀석들 같으니라고.”

하스드루발은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도망가는 적보다 눈앞에서 덤벼드는 적을 먼저 처리할 생각으로 도망치는 적에게서 시선을 돌리려고 했다.

그러는 찰나 그의 눈에 스키피오가 높이 들고 있는 피 묻은 파스케스가 들어왔다.

하스드루발은 역사학도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로마 행정관의 상징 파스케스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니발 형이 스키피오 부자를 놓쳤구나! 기스코! 잠시 지휘를 맡아라! 난 적 집정관을 추적하겠다!”

“알겠습니다 장군님!”

하스드루발은 자신의 바로 옆에 있던 누미디아 궁기병 스무 기만을 데리고 스키피오 부자를 향해 말을 달렸다.

“이랴!”

하스드루발과 누미디아 궁기병이 탄 말은 근접 전투를 치르지 않은 덕분에 요란한 말발굽 소리를 내며 쏜살같이 달려 거의 탈진 일보 직전인 말을 탄 로마 기병대를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 두두두두두두두두

스키피오는 후방에서 하스드루발의 기병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쫓아오자 카르타고군이 자기가 들고 있는 파스케스를 보고 따라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급히 자신의 옆에서 말을 달리고 있는 장교에게 파스케스를 넘겼다.

자세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로마군 장교는 스키피오의 의도를 알아채고 파스케스를 받은 다음 휘하의 기병들에게 소리쳤다.

“집정관님께서 도망가실 수 있도록 적을 유인한다! 내 뒤에서 달리고 있는 자들은 모두 내가 들고 있는 파스케스를 보고 따라와라!”

장교에 명령에 따라 로마 기병대는 두 무리로 갈라져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스드루발은 파스케스를 들고 도망가는 무리만 추적하는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우리도 반으로 갈라져서 적을 추격한다!”

하스드루발은 직감에 따라 누미디아 궁기병 아홉 기와 함께 파스케스가 없는 쪽의 로마 기병 무리를 뒤쫓았다.

적과의 거리가 20m 안으로 좁혀지자 누미디아 궁기병들이 적의 등에 활을 쏘기 시작했다.

- 쐐애애애액!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바람을 찢으며 로마 기병의 등을 노리고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누미디아 궁기병의 화살을 계속해서 빗나가고 짧은 풀이 나 있는 땅에 박혀버렸다.

‘말을 타면서 빠르게 움직이는 목표물을 활을 쏴서 맞추는 건 쉬운 게 아니구나! 화살을 다 써버리기 전에 뭔가 방법을 내야겠다!’

하스드루발은 화살의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사격 대상을 바꾸기로 했다.

“기수를 노리지 말고 말을 쏴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누미디아 궁기병들이 자신의 앞에서 달리고 있는 적이 탄 말의 몸통을 노리고 계속해서 활을 쏘았다.

- 쐐애애애액!

다시 각궁의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수십 번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후에야 로마 기병이 탄 말의 몸통에 화살이 박히기 시작했다.

- 히히히히히힝!

“으아아아악.”

말과 사람이 함께 비명을 지르며 로마 기병대가 하나둘 쓰러지자 마침내 선두에서 달리고 있던 스키피오 부자가 탄 말만이 남았다.

로마의 신들이 스키피오 부자를 축복한 것인지 그들이 탄 말은 엉덩이에 화살을 두 대나 맞고도 거친 콧김을 내뿜으며 계속 달리고 있었다.

그 때 누미디아 궁기병이 다급한 목소리로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하스드루발 장군님! 여기서 5 스타디온(약 900m)만 더 가면 로마군의 숙영지입니다! 게다가 저희 아홉 명의 화살집도 텅 비어버렸습니다! 로마군 숙영지에서 적이 몰려나오기 전에 그만 퇴각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하스드루발은 히스파니아를 공격해 아버지 하밀카르의 발목을 잡게 될 푸블리우스와 로마 최고의 명장으로 자라날 스키피오를 도저히 그냥 보내 줄 수가 없었다.

‘나도 이제 편전 한발밖에는 안 남았는데 골치 아파졌네! 이 한발에 이번 전쟁의 판도가 달라진다!’

하스드루발은 비장한 표정으로 편전을 넣은 통아를 집어 시위에 걸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