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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85화 (85/201)

[ 85 ] [84화] 한니발 라이징!(4)

하스드루발은 시위에 통아를 건 후 자신의 15m 정도 앞에서 달려가는 스키피오 부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고민했다.

‘어디를 맞춰야 두 사람을 한 번에 처치할 수 있을까.’

편전은 갑옷을 뚫어버릴 정도로 관통력이 뛰어나지만, 크기가 작고 가벼운 만큼 화살에 맞은 부위의 상처가 크게 벌어지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편전으로 적을 사살하려면 신체 내부의 장기를 노리고 활을 쏘아야 한다.

하스드루발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말 대신 기수를 노리기로 마음먹었다.

‘이 위치에서 말을 쏘려면 엉덩이를 노릴 수밖에 없는데, 몸통에 화살을 두 대나 맞고도 달리는 터프한 말이 엉덩이에 구멍 하나 더 생긴다고 멈출 것 같지가 않네. 위 위치에서는 스키피오가 안 보이니까 집정관의 등을 쏠 수밖에 없겠다.’

그는 스키피오 부자가 가죽끈으로 서로의 허리를 묶은 상태이니 푸블리우스가 편전에 맞아 몸의 균형을 잃고 말에서 떨어지면 스키피오도 함께 낙마할 거라고 판단했다.

하스드루발은 호흡을 멈추고 신중하게 활시위를 당겼다.

‘지금이다!’

마침내 그가 팽팽히 당긴 시위를 놓자 통아에서 발사된 편전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푸블리우스의 등을 향해 날아갔다.

- 피유우우우웅!

번개처럼 날아간 편전은 푸블리우스가 입고 있는 청동 흉갑과 등을 관통한 후 폐에 박혔다.

“커억!”

푸블리우스는 가슴속을 태워버릴 것만 같은 격통을 느꼈지만, 터져 나오는 비명을 삼키며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푸블리우스는 말을 달리면서 뒤돌아보는 아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생명의 불꽃이 사그라져가는 와중에 마지막 힘을 짜내 쉰 목소리로 아들에게 말했다.

“꼭 살아남아라.”

짧은 유언을 마친 푸블리우스는 마지막 힘을 짜내 스키피오의 허리춤에 꽂혀있는 단검을 뽑아 자신과 아들의 허리를 묶고 있는 가죽끈을 잘라버렸다.

마침내 숨을 거둔 푸블리우스는 힘없이 말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아버지!!! 으아아아아악!”

스키피오는 고개를 돌려 숨을 거둔 아버지의 시신을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그는 당장에라도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말머리를 돌리고 싶었지만, 그것은 자신을 희생해 아들을 살린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것임이 분명했기에 계속 앞을 향해 달릴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아아!”

스키피오는 다시 한번 괴성을 지르며 피눈물의 비린내가 묻어나는 눈빛으로 아버지의 원수를 노려보았다.

하스드루발은 결국 놓쳐버리고만 숙적의 서슬 퍼런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받아냈다.

‘상처 입은 야수의 눈빛 같구나. 이놈의 역사가 너무 쉽게 무너지는 로마를 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야.’

* * *

하스드루발은 로마군 숙영지에서 적의 보병들이 뛰쳐나오기 전에 푸블리우스의 시신을 수습한 후 한니발이 기다리고 있는 숙영지로 돌아갔다.

“하스드루발 장군님께서 적장을 처치하셨다!”

“하스드루발 장군님 만세! 바르카 가문 만세!”

바르카 가문의 병사들은 누미디아 궁기병의 말에 실려있는 푸블리우스의 시신을 보자마자 열광하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평소 감정표현이 희박한 한니발도 보기 드물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한 손으로 하스드루발의 어깨를 두드리며 기뻐했다.

“하스드루발! 정말 큰일을 해냈구나! 네 활약 덕분에 까다로운 적장을 쉽게 잡아냈다! 적장은 이 전장에서 살아 돌아갔으면 우리 가문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괴롭혔을 거다!”

원 역사의 푸블리우스는 티키누스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도 간신히 살아 돌아간 후 자신의 형과 함께 히스파니아와 이탈리아 반도를 잇는 바르카 가문의 보급선을 무려 6년 동안이나 차단했다.

한니발의 말대로 하스드루발이 오늘 세운 전공 덕에 바르카 가문이 로마 정복의 숙원에 한 발짝 더 다가간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한니발은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인근 갈리아 부족들에게 로마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 잔치를 벌였다.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은 병사들과 함께 타우리니족이 나누어준 술과 음식을 먹으며 승리를 자축했다.

분을 삭이기 위해 벌꿀술을 연거푸 들이킨 하스드루발은 사냥감을 놓친 사자가 으르렁거리는듯한 목소리로 형에게 말했다.

“젠장! 놓쳐버렸어!”

“뭐? 네 손으로 직접 적장을 처치했잖아. 뭘 놓쳤다는 거야?”

“집정관말고 그 아들 말이야! 꼭 잡았어야 했는데 놓쳐버렸다고!”

동생의 말을 듣고 한니발은 자기가 푸블리우스를 처치하려고 할 때 파스케스를 휘두르며 필사적으로 저항한 젊은 기병을 떠올렸다.

“집정관을 몰아붙였을 때 날 방해한 풋내기가 아들이었나 보군. 난 또 뭐라고. 그 녀석은 아무리 봐도 갓 성인식을 치른 애송이였어. 너무 걱정할 것 없다.”

그러자 하스드루발이 아직 말 등위 놓여있는 푸블리우스의 시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한니발에게 말했다.

“적장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을 거야. 아직 서른 살도 안된 애송이가 지휘관이니 우리 기병대를 쉽게 물리칠 수 있을 거라고 말이야.”

동생의 말을 듣고 한니발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 녀석에게서 뭔가 느낀 게 있구나.”

“그 애송이를 가만히 내버려 두면 형과 맞먹는 최강의 적으로 자라날 거야.”

한니발에게는 현재 지중해 세계에 아버지와 동생 하스드루발 외에는 자신과 견줄만한 장수는 한 명도 없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제 막 입대했을 것이 분명한 새파란 애송이가 자신과 맞먹을 정도의 명장으로 자라난다는 동생의 말이 의아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 번도 허튼소리를 한 적 없는 하스드루발의 말을 웃어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사람이 나한테 그렇게 말했다면 헛소리로 여겼겠지. 그렇지만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앞으로는 좀 더 신경을 써야 되겠군. 그 풋내기는 앞으로도 종종 전장에서 마주치게 되겠지. 그때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새끼 늑대를 사냥하자.”

하스드루발은 대답 대신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고개만 끄덕거렸다.

한니발은 그런 동생에게 말했다.

“개선식을 해도 될 정도로 큰 공을 세웠는데 아직도 그런 표정을 짓는구나. 따라와라. 너에게 보여줄 게 있다.”

말을 마친 한니발이 숙영지 밖으로 걸어나가자 하스두루발은 형의 뒤를 따라갔다.

두 형제가 사람 키 높이의 목책 밖으로 나오자 하루를 마친 석양이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으며 이탈리아의 드넓은 평원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스드루발은 아무것도 없는 평원에 자신을 데려온 형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어... 경치 좋네. 그런데 이거 보여주려고 밖으로 나온 거야?”“그럴 리가. 가까운 곳 말고 지평선을 봐라.”

하스드르발은 한니발의 말에 따라 지평선 쪽을 자세히 살펴보자마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세상에! 저게 다 사람이란 말이야?!”

그의 눈에 석양이 깔린 드넓은 지평선을 가득 메운 갈리아인 전사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한니발이 단 한 번의 싸움으로 로마의 집정관을 처치했다는 소문이 북이탈리아 전역에 퍼져 나가면서 로마를 증오하던 갈리아인들이 그의 군대에 합류하기 위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한니발이 동생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우리 가문 사람들만 로마의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게 아니야. 머지않아 전 지중해가 우리 편으로 돌아설 거다. 혼자서 모든 걸 다 짊어지려고 하지 마라. 로마 정벌을 숙원으로 여기는 동료가 저렇게나 많이 있으니까 말이야.”

형의 말을 듣고 한니발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로마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래. 로마에는 명장이라고 불릴만한 인물이 스키피오 하나뿐이지만, 카르타고에는 아버지도 있고 한니발 형도 있고 나도 있다. 스키피오가 있든 없든 이번 전쟁은 반드시 우리가 이긴다!’

* * *

기원전 218년 8월 말 어느 날.

언제나 열띤 토론을 벌이는 로마 원로원 의원들 때문에 늘 시끌벅적한 쿠리아 호스틸리아가 수의를 덮은 시신처럼 조용했다.

조금 전 플라켄티아에온 로마군의 전령이 원로원 의원 중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비보를 전해왔기 때문이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집정관님께서 전사하셨습니다.”

푸블리우스는 근엄하고 무뚝뚝한 성격 때문에 로마 시민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다.

그런 그가 집정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로마를 대표하는 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새파랗게 젊은 카르타고인이 지휘하는 군대와 단 한 번 전투를 치르자마자 전사했다는 말이 로마 원로원들의 귀에는 그저 질 나쁜 농담처럼 들렸다.

다른 원로원 의원들이 할 말을 잊은 채 침통한 표정으로 탄식만을 자아내고 있을 때, 중진 의원인 파비우스가 간신히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입술을 억지로 열었다.

“집정관님의 시신은 어떻게 됐나? 카르타고인들이 시신을 순순히 인도해 준다든가?”

“적장 한니발은 장례를 치른 후 집정관님의 시신을 나무 관에 담아 플라켄티아로 퇴각한 1군단과 2군단에 인도했습니다. 다만... 집정관님의 시신을 인도할 때 이것도 같이 1군단의 장교에게 건네주었다고 합니다.”

전령은 로마 원로원들의 눈앞에 부러진 나무 다발과 자루가 부러진 도끼를 내밀었다.

그것은 바로 로마의 절대권력과 단결을 상징하는 파스케스의 부서진 파편이었다.

하스드루발은 누미디아 궁기병이 로마 기병을 사살하고 전리품으로 가져온 파스케스를 곧바로 망치로 내려쳐 부숴버렸다.

문화 상대주의자인 그는 나치의 철십자처럼 무솔리니가 이탈리아 전체주의의 상징으로 사용했던 파스케스를 보자 적대감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사정을 알 리가 없는 로마 원로원 의원들은 그저 카르타고인이 로마의 권위를 욕보이기 위해 신성한 상징물을 파괴했다고 여기며 분노했다.

로마의 맹장 마르켈루스가 눈에 핏대를 세우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동료 의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존경하는 동료 의원 여러분! 건방진 야만인들이 신성한 파스케스를 장작을 패듯 부숴버렸습니다! 더는 이런 모욕을 참아서는 안 됩니다! 저를 전직집정관에 임명해 2개 군단의 지휘권을 주십시오! 당장 카르타고군을 쳐부수고 오만불손한 적장 한니발의 목을 베어 오겠습니다!”

마르켈루스는 호기롭게 외쳤지만, 로마 원로원 의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 당시 공화정 로마의 국법에 따르면 군단을 지휘할 권한은 원칙적으로 선거에서 선출된 집정관에게 주어지는 것이고 아직 전직집정관에게 군사지휘권이 주어진 경우는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국가 비상사태에만 로마 원로원이 집정관 두 명의 권한을 한꺼번에 가진 ‘독재관’을 임명할 수 있었지만, 독재관도 두 집정관 중 한 명을 임명하는 것이 관례였다.

마르켈루스의 말에 자신의 딸을 스키피오와 약혼시킨 루시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가 침착하게 말했다.

“존경하는 마르켈루스 의원님. 의원님의 애국심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도 저와 사돈을 맺기로 약속하신 집정관님께서 전사하셨다니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 로마군이 적과 제대로 된 전투도 벌여보지 않은 상황에서 조국의 법과 전통을 무시해가면서 초법적인 조처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인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전쟁의 주역은 중장보병이고 기병은 그저 정찰병이나 도망치는 적을 추격하는 보조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로마 원로원 의원 대부분이 아직도 로마군은 한니발의 군대와 ‘진정한’ 전투를 벌인 적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 원로원 의원들의 의견을 대변하듯 파비우스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는 마르켈루스에게 말했다.

“저도 존경하는 아이밀리우스 의원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더는 카르타고인의 침략을 가볍게 여기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롱구스 집정관님을 독재관에 임명하고 4개 군단의 지휘권을 일임할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파비우스가 제안한 방법은 로마 원로원이 수백 년 전부터 조국에 국가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시행해온 것이었다.

마르켈루스를 제외한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원로원 의원이 파비우스의 제안에 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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