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90화 (90/201)

[ 90 ] [89화] 격전의 트레비아 강 (1)

타우리니족의 이우도쿠스가 로마군의 숙영지에 다녀온 지 사흘 후인 기원전 218년 11월 18일.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은 드디어 로마의 독재관 티베리우스라는 대어를 낚기 위해 마지막 미끼를 던졌다.

한니발은 부관 기스코에게 누미디아 궁수를 포함한 보병 3만 5천 명과 북아프리카 중기병 2천 기를 맡겨 타우리니족의 영역으로 물러나게 했다.

그동안 하스드루발은 병사 3천 명을 데리고 한니발의 군영에서 북동쪽으로 5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루레타 강 변의 평원에 마름쇠(켈트롭)를 뿌리고 있었다.

마름쇠는 작고 날카로운 쇠못 네 개를 이어붙여 놓은 모양을 한 병기로 현대의 지뢰와 같은 용도로 사용됐다.

마름쇠는 하스드루발이 10년 전 아야몬테 공방전에서 사용했던 함정과 비교하면 살상력은 부족하지만, 빠르고 쉽게 설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스드루발은 병사들과 함께 포도알처럼 굵은 함박눈을 맞아가며 얼음처럼 차가워진 마름쇠를 눈밭에 뿌렸다.

“어우 손 시려! 다들 이미 뿌린 마름쇠를 밟지 않도록 조심해라! 이거 밟는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죽을 만큼 아프기는 할 테니까!”

하스드루발과 함께 작업하고 있던 히스파니아 출신 병사들은 알프스를 넘을 때 빼고는 입에서 입김이 나올 만큼 추운 날씨를 경험해 본 적 없었기 때문에 하나같이 투덜거리고 있었다.

점점 감각이 없어지는 손가락을 희뿌연 입김으로 녹이던 장교 한 명이 하스드루발에게 물었다.

“하스드루발 장군님! 그런데 왜 우리 군이 진형을 짤 곳 바로 뒤에 함정을 설치하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왜긴! 적이 이쪽으로 지나갈 거니까 그렇지. 잔말 말고 빨리 작업 끝내고 숙영지로 돌아가서 모닥불이나 쬐자!”

루레타 강은 한니발이 전장으로 결정한 평야 지대의 서쪽에 있는 얕고 폭이 좁은 강이다.

하스드루발은 갈리아인 병사들의 진형을 돌파한 로마 군단병이 도주할 때 반드시 루레타 강을 건널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전투 전에 함정을 설치하는 목적은 그저 적의 패잔병을 최대한 많이 처치하는 것 말고도 다른 것이 있었다.

‘스키피오가 이번 전투에 참여할지 안 할지 잘 모르겠네. 원 역사와는 달리 아버지가 전사했으니 로마로 장례식을 치르러 갔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문제는 그놈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거지. 스키피오를 잡아낼 확률을 높이려면 전투를 치를 때마다 패잔병을 하나라도 더 처치하는 수밖에 없어.’

사실 하스드루발은 진작 한니발에게 스키피오의 위험성에 대해서 경고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도 지금의 스키피오에 대해서 아는 것은 이름과 나이, 그리고 집정관의 아들이라는 사실밖에 없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저번에는 스키피오가 아버지와 함께 티키누스 전투에 참전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으니까 사정이 좀 나았었는데. 게다가 적장 푸블리우스를 추격할 때 말을 몰던 기병이 워낙 필사적이어서 먼발치에서 보고도 그놈이 스키피오라는 느낌이 딱 오기도 했었고 말이지.’

그러나 이제는 하스드루발이나 한니발이 전장에서 스키피오와 마주쳐도 일반 병사와 똑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을 그를 알아볼 방법은 없었다.

그는 자신이 환생자임을 알리지 않는 이상 논리적인 한니발과 다른 가족들에게 스키피오의 위험성을 완전히 이해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환밍아웃하면 믿어줄 사람이 누가 있겠어? 괜히 아버지가 미친 아들의 제정신을 돌려달라면서 애꿎은 황소나 제물로 바치시겠지. [월리를 찾아라]도 아니고 이거 정말 골치 아프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

* * *

한니발의 부관 기스코가 3만 7천 명의 병력을 후방으로 이동시키자 로마의 독재관 티베리우스도 정찰병을 통해 그날 저녁 그 소식을 알게 되었다.

티베리우스는 한니발의 부대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 날뛰었다.

“전쟁의 여신 미네르바께서 나의 앞길을 밝혀주시는구나! 내일 날이 밝으면 아침 식사가 끝나자마자 강을 건너 카르타고군을 공격한다! 모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도록 해라!”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대대장 스물네 명이 즉시 자신이 지휘하는 병사들에게 돌아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라는 독재관의 명령을 전했다.

다음날 해가 뜨자마자 로마군 병사들은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취사장에서 각자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때 망루 위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던 초병의 날카로운 외침이 로마군 숙영지에 울려 퍼졌다.

“적 기병 삼백 기! 북문으로 접근 중!”

초병이 경보를 울리자마자 화살 한 대가 차가운 겨울 공기를 날카롭게 가르며 망루 위로 날아들었다.

- 피유우우우웅!

갑작스럽게 날아온 화실이 어깨에 박혀 비틀거리던 초병은 그만 망루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으아아아아아악!”

갑작스러운 적의 공격에 놀란 로마군 병사들이 얼이 빠져있을 때, 로마군 숙영지의 목책 너머에서 누미디아 궁기병들이 어젯밤 라틴어를 할 줄 아는 갈리아인들에게 속성으로 배운 로마의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쿨루스(Culus)!”

“펠로!(Fello)! 페에~~~~엘로!”

티베리우스는 꼭두새벽부터 겁 없이 로마군 숙영지 앞까지 쳐들어온 적군 때문에 안 그래도 기분이 언짢은 상태였다.

거기에 누미디아인들 어설픈 발음으로 상스러운 욕설을 외쳐대자 불같이 화를 내며 대대장들에게 호통쳤다.

“무엇들 하고있느냐! 한 줌도 안 되는 적 기병이 아군 병사를 해치고 쌍욕을 해대는데 그냥 듣고만 있을 거냐?! 당장 우리도 기병을 내보내서 저 야만인들을 도륙 내버려라!”

대대장들은 티베리우스의 명령에 따라 로마 기병 1천 기를 내보내 누미디아 궁기병을 추격하게 했다.

그러나 로마군 기병들은 무거운 사슬갑옷을 입고 있었던 데다 대부분 품질이 좋지 않은 말을 타고 있었기 때문에 전 지중해에서 가장 기동성이 좋은 누미디아 궁기병들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누미디아 궁기병들을 자신들의 등 뒤에서 쫓아오는 로마 기병들에게서 도망가면서 허리를 뒤틀어 뒤를 돌아보며 화살을 쏘아댔다.

- 피유우우웅!

날아오는 화살을 미쳐 방패로 막거나 피하지 못한 로마 기병 십여 기가 비명을 지르며 말 위에서 떨어져 눈 덮인 초원 위를 뒹굴었다.

“크아아아악!”

“적 기병이 너무 빠르다! 모두 적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라!”

로마 기병들이 화살 세례를 견디다 못해 잠시 주춤하자 누미디아 궁기병들도 도망가기를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적군을 비웃고 조롱했다.

“깔깔깔깔깔깔깔!”

“쿵크라토르! 쿠우~~~웅크라토르!”

쿵크라토르는 굼벵이를 뜻하는 라틴어 단어로 행동이 굼뜬 자를 놀릴 때 쓰는 멸칭이었다.

누미디아 궁기병들의 목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숙영지 입구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티베리우스의 귀에도 또렷하게 들렸다.

그는 더는 참지 못하고 전군에 출동 명령을 내렸다.

“크아아악! 저 야만인 놈들! 신성한 라틴어에서 욕만 골라 배웠구나! 당장 전군을 출동시켜라! 저 날파리처럼 재빠른 놈들을 잡으려면 적의 군영을 점령하는 게 최선이다!”

독재관의 추상같은 엄명이 떨어지자 로마 군단병과 보조병이 아침 식사도 하지 못하고 예정에 없던 출동을 준비하면서 투덜댔다.

“젠장! 배고파 죽겠는데 밥도 못 먹고 꼭두새벽부터 전투라니!”

“쉿! 조용해! 지금 독재관 안 그래도 화나서 눈 돌아가 있는데 괜히 눈에 띄면 뼈도 못 추린다!”

티베리우스는 보병 3만 6천 명과 기병 4천 기를 이끌고 계속 화살을 쏘면서 도망가는 누미디아 궁기병의 뒤를 쫓아 북서쪽으로 나아갔다.

로마군은 행군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니발의 군영과 로마군 숙영지 사이를 흐르고 있는 트레비아 강에 도착했다.

트레비아 강은 어제 내린 눈이 녹아서 강에 유입되는 바람에 평소보다 물이 많이 불어난 상태였다.

티베리우스의 대대장 중 한 명이 그에게 말했다.

“독재관님. 어제 내린 눈 때문에 강의 수위가 많이 높아졌습니다. 여기서 강을 건너면 키가 작은 병사들은 턱밑까지 차가운 물에 잠기게 될 겁니다. 좀 더 상류로 올라가 물이 얕은 곳에서 강을 건너면 어떻겠습니까?”

“한심한 소리하지 마라! 이 정도 추위쯤은 정신력으로 이겨내면 그만이다! 정찰병의 보고에 따르면 지금은 적장 한니발이 거느리고 있는 병사가 우리보다 적다고 한다. 카르타고군이 타우리니족에게 발목이 잡혀있을 때 최단거리로 행군해 적을 공격해야 한단 말이다!”

티베리우스가 대대장의 말을 일축하자 다른 로마의 장교들도 독재관의 지시에 감히 반대하지 못했다.

그러나 로마군 기병 중 한 명이 말에서 내려 티베리우스에게 다가와 간곡하게 그에게 말했다.

“독재관님! 부디 이번 공격을 재고해 주십시오! 전체 병사 수는 우리가 더 많지만, 기병은 카르타고군이 두 배 이상 많습니다. 적장은 분명 압도적인 기병 전력으로 아군 보병이 측면과 후방을 공격할 생각일 겁니다. 게다가 찬물에 온몸이 젖어 근육이 얼어붙은 상태에서는 우리 로마군의 자랑인 중장보병도 본래의 실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티베리우스는 고리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병사를 노려보다 그를 알아보고 화를 조금 누그러트렸다.

그에게 말대답한 병사는 전사한 집정관 푸블리우스의 아들 스키피오였다.

티베리우스는 그와 나이가 비슷하고 함께 집정관에 선출됐던 푸블리우스를 정치적 경쟁자로 여기고 있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뛰어난 군사지휘관으로서 존경하고 있었다.

그런 푸블리우스의 아들이 지옥 같은 전장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아버지를 구출하려 했지만, 안타깝게 실패하고 말았다는 소문은 이미 로마 시민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티베리우스도 그 소문을 듣고 크게 감명받았기 때문에 스키피오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로마에서 가장 강한 권한을 가진 독재관의 결정에 토를 단 일개 신병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본래라면 군법으로 다스려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지만, 티베리우스는 다른 방식으로 병사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로 했다.

“신병. 이리 가까이 와라.”

스키피오는 티베리우스의 명령대로 그에게 다가갔다.

티베리우스는 스키피오가 자신의 앞에서자 자신도 말에서 내린 뒤 그의 배를 세차게 걷어찼다.

“커헉!!!”

스키피오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뒤로 나가떨어지자 티베리우스가 바닥에 침을 뱉은 후 우렁찬 목소리로 병사들에게 말했다.

“자랑스러운 로마 군단병들이여! 너희는 이 귀족 샌님의 말대로 그렇게 나약한가? 강력한 적이 아니라 찬물 정도에 패배할 정도로 약해 빠졌느냔 말이다! 전황이 불리해지면 빨리 도망치려고 말을 타고 전장에 나서는 귀족들은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 평민은 다르다! 로물루스께서 로마를 건국하신 후 오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외적으로부터 조국을 지켜온 건 우리 평민이다! 보병이란 말이다!”

티베리우스의 연설에 고무된 로마 군단병들이 곳곳에서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옳소!”

“로물루스의 나라는 우리가 지킨다!”

티베리우스는 병사들이 자신의 연설에 열광적으로 호응하자 다시 한번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저 강 건너에 단 한 번 기병끼리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우리를 깔보는 카르타고인들이 있다! 하지만 보병 없이 치른 전투는 진정한 전투가 아니다! 이 강을 건너 적장 한니발에게 로마 군단병은 무적임을 똑똑히 가르쳐 주자!”

3만 6천 명의 로마 군단병이 독재관의 패기 넘치는 연설에 우레같은 함성으로 대답했다.

“로마 인빅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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