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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94화 (94/201)

[ 94 ] [93화] 북이탈리아를 정복한 한니발

- 두두두두두두두

한니발의 군대와 로마군이 벌인 처절한 전투가 끝나고 30분도 도 더 지났지만, 치열했던 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루레타 강 변에는 여전히 말발굽 소리가 요란했다.

“지독한 놈들! 전투를 치르느라 말이 지쳤을 텐데 아직도 쫓아오다니!”

스키피오의 바로 뒤에서 말을 달리고 있는 십인대장 발부스가 독재관 티베리우스를 잡으려고 쫓아오는 누미디아 궁기병의 말발굽 소리에 기겁하며 소리쳤다.

스키피오의 십인대는 처음 그들을 쫓아오던 이베리아족 중기병은 여유롭게 따돌렸지만, 나중에 추격에 합류한 누미디아 궁기병 1백 기는 특유의 기동력을 과시하며 조금씩 그들과의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스키피오는 발부스의 말을 듣고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또 누미디아 놈들인가! 굶주린 늑대처럼 집요한 자들이구나!”

그때 스키피오의 등 뒤에서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 피유우우웅!

누미디아 궁기병의 시위를 떠난 화살이 대열의 맨 뒤에서 달려가고 있던 로마 기병의 어깨에 박혔다.

“크아악!”

결국 화살을 맞은 로마 기병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말 등에서 떨어져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십인대장 발부스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화살이 로리카 하마타(사슬갑옷)를 뚫어버리다니! 저 야만인들이 헤라클레스 신의 활이라도 들고 있단 말이야?”

사실 누미디아 궁기병들은 습기 찬 날씨 때문에 각궁보다 위력이 약하지만,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철궁을 들고 있었다.

그렇지만 누미디아 궁기병들은 관통력이 좋은 화살을 사용했기 때문에 중세의 사슬갑옷보다 방어력이 약한 로리카 하마타를 손쉽게 뚫어버렸다.

하스드루발이 활을 개발하면서 화살촉이 송곳처럼 생긴 중세의 군용화살인 보드킨 화살을 함께 개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중해 최고의 기동력을 자랑하는 누미디아 궁기병들이 로마의 독재관을 잡기 위해 끈질기게 화살을 날려댄 끝에 스키피오의 십인대는 고작 기병 세 기만이 남게 되었다.

- 피유우우웅!

후방에서 날아온 화살 한 대가 스키피오의 왼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크윽!”

팔에 난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스키피오는 고삐를 간신히 고삐를 놓치지 않았다.

이제 스키피오가 탄 말과 추격자들 사이의 거리는 30m 정도에 불과했다.

“끄아아악!”

대열의 맨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로마 기병 한기도 등에 화살을 맞고 낙마하면서 애처로운 비명을 질렀다.

이제 남은 로마 기병은 스키피오와 십인대장 발부스 단 두기 뿐이었다.

스키피오의 허리를 붙잡고 말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던 티베리우스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분하구나. 전쟁의 신 마르스께서 나에게 카르타고인들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시지는 않을 생각이신 모양이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플라켄티아에 도착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스키피오도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누미디아 궁기병들을 뿌리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저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바라며 계속 말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그때 갑자기 지옥 끝까지 쫓아올 것만 같던 누미디아 궁기병 1백 기가 갑자기 추격을 멈추고 방향을 틀어 도망치듯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죽음의 공포 때문에 안색이 창백해져 있던 십인대장 발부스가 적 기병대가 물러가는 것을 보고 기뻐 날뛰었다.

“살았다! 살았다고! 로마의 신들께서 우리를 구하신 게 분명해!”

스키피오와 티베리우스도 당연히 기쁠 수밖에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적이 물러간 이유를 알 수 없어 의아해했다.

티베리우스가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상한 일이군. 이제 조금만 더 따라붙었으면 내 목을 가져갈 수 있었을 텐데? 저 집요한 사냥개들이 여기까지 쫓아와 놓고 왜 그냥 돌아가는 거지?”

스키피오와 티베리우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두두두두두두두

티베리우스는 로마 기병대 4천 기가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이밀리우스 전직 집정관님께서 보내신 지원군이구나! 저 십인대장 말대로 신들께서 우릴 도우셨다!”

반유목민인 누미디아인들은 넓은 평원에서 자란 덕분에 시력이 뛰어나 스키피오 일행보다 먼저 로마 기병대를 보고 일찌감치 도망쳐 버린 것이었다.

티베리우스의 말을 듣고 긴장이 풀린 스키피오는 말을 멈추고 허공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해냈다... 이번엔 해냈다고...”

* * *

결국, 로마의 독재관을 놓쳐버리긴 했지만,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이 로마의 4개 군단과 전면전을 벌여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는 사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병사들이 트레비아 강 변에서 전리품을 수집하고 있을 때, 두 형제는 루레타 강 변에 임시로 지은 군영으로 돌아가 지휘관 막사에서 부관들과 함께 승리를 자축했다.

기병대장 마하르발은 적과 아군의 피해를 조사한 뒤 한니발에게 보고했다.

“한니발 장군님께 보고 드립니다. 이번 전투에서 로마군 4만 명 중 약 3만 명이 전사했고 우리가 붙잡은 포로는 약 9천5백 명입니다.”

“우리 측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사상자가 2천 명 정도 발생했습니다만, 대부분 갈리아인입니다..”

마하르발이 말을 마치자 지휘관 막사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한니발 장군님 만세! 하스드루발 장군님 만세!”

“엄청난 대승입니다! 로마 정벌의 시작을 정말 멋지게 시작하는군요!”

바르카 가문의 형제들에게 병법을 가르친 가정교사 실레노스는 울먹이기까지 하면서 감격에 겨워했다.

“두 분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뛰어난 명장이 되시다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한니발은 그런 실레노스를 보고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자네는 여한이 없을지 몰라도 난 곤란한데? 자네가 없으면 오늘의 승리를 누가 역사에 남겨준단 말인가?”

한니발의 농담에 그의 부관들이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으하하하하! 한니발 장군님께서 전투에만 출중하신 줄 알았더니 농담 실력도 대단하시군요!”

하스드루발은 아직도 고대의 개그코드에는 적응하지 못했지만, 이번 전투의 성과를 떠올리자 주변의 부관들처럼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원 역사에서는 로마군 패잔병이 적어도 육천 명은 플라켄티아로 도망갔으니 이만하면 대성공이다! 티베리우스를 놓친 건 아쉽지만, 군사전략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인물은 아니니까 다시 전장에서 만나도 크게 두려울 건 없어.’

지금 상황에서 하스드루발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역시 스키피오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지만, 그는 그조차도 아직은 큰 위협이 될만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만약 스키피오를 결국 못 잡게 되더라도 원 역사에서 그 자식이 활약하기 시작하는 건 기원전 210년부터다. 아직 7년 도 더 남았어. 혹시라도 예상보다 빨리 출세를 한다고 해도 적어도 4년에서 5년은 걸리겠지. 그전에 로마의 기반을 무너뜨려 버리면 스키피오는 집정관의 아들로서만 역사에 남을 거야.’

하스드루발은 한시라도 빨리 자신의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고 싶어 형 한니발에게 말했다.

“형. 기뻐하기 전에 처리해야 할 중요한 업무가 하나 남았잖아.”

“그래. 기억하고 있어. 이제 슬슬 작업이 끝났을 테니 그쪽으로 가보자.”

두 형제와 한니발의 부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임시 포로수용소 쪽으로 향했다.

그곳을 담당하고 있는 장교가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을 보고 경례하며 입을 열었다.

“한니발 장군님께 보고 드립니다. 방금 이번 전투에서 잡은 포로 중 로마 시민권자와 로마의 동맹도시 출신을 분류하는 작업을 마쳤습니다.”

“잘했다. 로마연합의 동맹도시 출신 포로들에게 할 말이 있으니 어서 안내해라.”

장교는 곧 한니발과 장교들을 초췌한 몰골의 로마의 동맹도시 출신 포로들에게 안내했다.

동맹도시 출신 포로들은 한니발이 자신을 외국에 노예로 팔아버리기 위해 건강상태를 점검하러 온 줄 알고 그를 보자마자 애걸했다.

“한니발 장군님!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고향에 있는 제 가족이 노예 상인보다 훨씬 좋은 가격으로 몸값을 치를 겁니다!”

“저희는 그저 연합의 맹주인 로마의 징집을 거절할 수가 없어 전장에 끌려 나왔을 뿐입니다! 제발 저희를 외국에 팔지 말아 주십시오!”

그는 자신을 보자마자 눈시울을 붉히며 소란을 피우는 포로들에게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 걱정할 필요 없다. 나는 로마의 압제로부터 이탈리아를 해방하기 위해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곳까지 왔다. 로마 시민권자가 아닌 포로는 몸값을 받지 않고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겠다.”

그 말에 로마 동맹도시의 포로 6천 명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 날뛰었다.

“집에 간다! 드디어 집에 간다!”

“올림포스의 신들께서 바르카 가문의 앞길을 밝혀주시길! 고향에 돌아가면 가족과 이웃들에게 한니발 장군님의 자비로움을 널리 알리겠습니다!”

기병대장 마하르발이 의아한 표정으로 한니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포로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페니키아어로 물었다.

“한니발 장군님. 저자들을 전부 노예시장에 팔아치우면 아무리 싸게 가격을 매겨도 은화 오백 달란트는 벌어들일 수 있을 겁니다. 전함을 오십 척은 만들 수 있는 군자금을 왜 포기하려는 건지 궁금합니다.”

“그래야 지중해 전역에 ‘이탈리아의 해방자 한니발’이라는 이름이 널리 퍼질 것 아닌가? 이 포로들은 이제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바르카 가문의 자비로움을 가족과 이웃들에게 말하고 다니겠지. 나와 하스드루발은 앞으로도 이런 방법으로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는 로마연합이라는 거목의 뿌리를 갉아 먹어나갈 생각이네.”

그 말을 듣고 마하르발은 눈을 보름달처럼 크게 뜨고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의 얼굴을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면서 감탄했다.

“두 분은 이미 저같이 단순한 무장은 짐작할 수도 없는 경지에 도달하셨군요! 공선전을 치르지 않고 적의 도시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이라니! 정말 놀랍습니다!”

한니발의 로마연합 붕괴 전략은 원 역사에서는 남부 이탈리아를 제외하면 별 효과가 없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이미 하밀카르가 히스파니아에서 북부 이탈리아를 잇는 보급망을 완성해 북부 이탈리아의 로마연합 소속 도시들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었고, 속주민에게 가혹하기로 유명한 카르타고인의 악명이 지난 몇 년간 본국의 해외파 정치인들이 선정을 베풀면서 많이 사그라졌기 때문이다.

하스드루발은 로마연합 붕괴 전략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한니발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형. 이 포로들 우리 군영을 떠나기 전에 밥이라도 먹여서 보내자. 공복에 먼 길을 떠나려면 얼마나 힘들겠어?”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하면 포로의 부모 형제들이 자기 가족을 잘 대접한 우리 가문에 더 호감을 느끼겠지.”

두 형제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없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한니발은 즉시 부관들에게 명령해 좋은 술과 고기를 내와 동맹도시 출신 포로들에게 대접한 후 전원 석방했다.

원 역사에서 행군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전원 처형당했던 로마 시민권을 가진 포로들은 타우리니족의 영역에서 대기 중인 마고와 아우니아에게 넘겨 갈리아 부족과 그리스 도시국가들에 노예로 팔아버리게 했다.

곧 트레비아 전투의 대승리와 유능하지만 냉혹한 장수로 알려져 있었던 한니발의 관대함이 지중해 전역에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그 덕에 바르카 가문은 이탈리아 북부의 거의 전역에 세력을 넓히게 되었다.

하스드루발은 끊임없이 찾아오는 갈리아 부족들과 북부 이탈리아에 자리 잡은 로마연합 소속 도시에서 보낸 사절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이번 2차 포에니전쟁은 용두용미로 끝날 테니까 기대해라 로마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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