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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106화 (106/201)

[ 106 ] [105화] 알보병 vs 땡기병 (3)

하밀카르는 트라시메노 호수 전투가 시작하기 전에 하스드루발이 보낸 서신을 읽자마자 보노니아에 주둔 중이던 갈리아 기병대를 즉시 무장시켰다.

갈리아 기병들은 아직 사용법을 익히지 못한 랜스 대신 조상 대대로 써온 길이가 짧은 재래식 기병 창을 들었지만, 하밀카르가 제공한 튼튼한 경번갑과 마갑, 그리고 등자가 달린 안장을 착용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하밀카르는 플라미니아 가도를 향해 출발했다.

그는 기병 1만기와 함께 100km 정도 되는 거리를 이틀 만에 주파하여 로마의 집정관 세르빌리우스의 보병 1만 8천 명이 아리미눔의 성벽 안으로 숨기 직전에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하밀카르는 먼발치에서 하스드루발의 궁기병이 필사적으로 도로를 따라 행군하는 로마군을 견제하는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작은 하스드루발이 이번에도 기가 막힌 작전을 생각해냈구나! 저놈들이 살아서 아리미눔으로 돌아가면 호시탐탐 보노니아를 노려대겠지!”

그는 말을 마치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뿔나팔을 불었다.

- 뿌우우우우우웅

하급장교 기스코가 우렁찬 뿔나팔 소리를 듣자마자 하밀카르에게 미리 명령받은 대로 휘하의 기병 4천 기가 쐐기 진형을 취하도록 했다.

하밀카르도 자신이 지휘하는 기병 6천 기가 쐐기 진형을 취하게 한 후 다시 한번 뿔나팔을 불었다.

- 뿌우우우우우우웅

그러자 1만기의 갈리아 기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육지의 충각이 되어 한 덩어리로 뭉쳐있어 마치 거대한 전함처럼 보이는 로마군의 왼쪽 측면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로마의 집정관 세르빌리우스는 번쩍이는 철갑을 두른 중기병대가 아군을 향해 해일처럼 몰려오는 모습을 보고 황급히 대대장들에게 명령했다.

“적 기병대가 몰려온다! 어서 트리아리를 왼쪽 측면으로 돌려라!”

로마 군단병의 최고참인 트리아리들은 다른 군단병과 달리 투창 대신 길이가 2m 정도 되는 긴 창으로 무장하고 있어 기병 돌격에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스드루발은 로마군이 완전한 진형을 갖추는 것을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창을 들고 이동하는 병사들을 막는다! 편전 사격준비!”

장군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누미디아 궁기병 중 편전을 사용할 줄 아는 1천 기가 마지막까지 아껴뒀던 편전과 통아를 화살통에서 꺼내 들어 시위에 걸었다.

궁기병들이 준비를 마치자 하스드루발이 다시 한번 큰소리 외쳤다.

“발사!”

그 순간 천 개의 편전이 트리아리들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갔다.

- 쐐애애애액!

트리아리들은 스큐툼으로 전신을 가리고 있었지만, 철판도 관통하는 강력한 편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일반적인 화살의 절반 길이도 안 되는 작은 화살이 나무를 세 겹이나 덧대어 만든 방패를 뚫고 창을 든 로마군 고참병의 가슴과 복부에 박혔다.

“끄아아아악!”

“뭐야! 대체 뭐에 맞고 트리아리들이 죽어나가는 거야!”

로마 군단병들은 갑자기 쓰러지는 트리아리들을 보고 혼란에 빠졌다.

하밀카르와 갈리아 기병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로마군 본대의 왼쪽 측면을 세차게 들이받았다.

- 콰아아아앙!

트리아리들이 본대의 측면으로 미처 이동하던 도중 갈리아 기병 1만기가 로마군의 방패벽을 들이받자 로마 군단병들이 강풍에 휩쓸린 나뭇잎처럼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으아아악!”

“내 팔! 팔뼈가 부러진 것 같아!”

갈리아 기병들의 돌격은 바르카 가문 기병대의 랜스차징에 비하면 위력이 약했지만, 사흘 동안이나 누미디아 궁기병의 괴롭힘을 견디느라 지쳐버린 로마군은 시속 60km로 온몸을 부딪쳐오는 육중한 군마 앞에서 한없이 무력했다.

하스드루발은 아버지의 기병 돌격에 로마군의 방패벽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로마군 대열이 무너졌다! 파르티아의 스웜 전술이 먹혔어!’

그는 원 역사의 기원전 53년에 삼두정치로 로마를 통치하던 크라수스가 이끄는 로마군 4만 4천 명이 파르티아의 기병대 1만 명에게 궤멸당한 카르헤 전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번 전투를 기획했다.

하스드루발은 카르헤 전투에서처럼 궁기병에게 화살을 무한대로 보급할 수는 없었지만, 적장 세르빌리우스의 군대에는 기병이 없고 보병만 2만 명인 데다 아군 기병은 1만 4천 기나 되니 파르티아의 기병 전술이 충분히 먹히리라 판단했다.

그의 예상대로 로마군의 대열은 갈리아 기병대의 돌격으로 세 토막으로 나뉘어 버리는 바람에 지휘체계가 완전히 붕괴되어 실 끊어진 꼭두각시 신세가 되어버렸다.

“대대장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이제 이곳에서 전사하든지 적의 포로가 되는 수밖에 없다! 모두 글라디우스를 들고 최후까지 적과 싸워라!”

후방에 고립된 로마군의 대대장들은 혼란에 빠진 대대원들을 진정시킬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주홍색 띠로 장식한 옷을 입은 로마군 대대장들은 그저 한 명의 군단병처럼 검과 방패를 들고 적을 향해 덤벼들다 화살과 창을 맞고 쓰러져갔다.

자신들의 최대 강점인 조직력을 잃은 로마군 병사들은 한동안 분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무기를 던져버리고 패주하기 시작했다.

“이제 다 틀렸어!”

“우리의 패배다! 모두 도망쳐라!”

대부분의 로마군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는 와중에도 집정관의 경호원 릭토르 열두 명과 간신히 살아남은 트리아리 수백 명이 세르빌리우스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집정관님 어서 후퇴하셔야 합니다!”

“여기 집정관님의 말을 데려왔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어서 말에 오르십시오!”

“미안하다. 적을 잡아낼 함정을 팔 시간에 조금이라도 빨리 퇴각했어야 했는데, 내가 무능하여 너희를 사지로 몰고 말았다.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께 맹세코 죽은 전우들의 복수를 하고 말겠다.”

그러나 복수의 여신은 그에게 손길을 내밀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세르빌리우스가 참담한 표정으로 릭토르 중 한 명이 데려온 말에 올라탔을 때 적장을 알아본 하밀카르가 휘하의 기병들과 함께 흙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정관을 놓치지 마라! 적장을 처치하는 자에게는 큰 상을 내리겠다!”

세르빌리우스는 하밀카르가 외날검 팔카타를 휘둘러 앞길을 가로막는 로마 군단병을 잡초처럼 베어 넘기면서 거리를 좁혀오는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타고 있는 말의 옆구리를 걷어차려 했다.

그때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적장을 추격해온 하스드루발이 그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활시위를 당겼다.

“제발 맞아라!”

그가 간절한 바람을 담아 활시위를 놓자 송곳 모양 화살촉을 달아놓은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세르빌리우스에게 날아갔다.

- 피유우우우우웅!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간 화살은 말의 옆구리를 차려던 세르빌리우스의 왼팔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크아아아악!”

세르빌리우스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도 간신히 낙마하지는 않았지만, 하밀카르에게서 도망갈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어느새 그의 코앞까지 들이닥친 하밀카르가 한줄기 섬광처럼 적장의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 세차게 검을 휘둘렀다.

곧 비명도 질러보지 못하고 절명한 집정관의 머리가 로마군의 피로 물든 플라미니아 가도에 힘없이 떨어졌다.

* * *

집정관이 전사하자 살아남은 로마군은 모두 하밀카르와 하스드루발에게 투항했다.

이번 전투로 로마군 2만 명 중 약 1만 3천 명이 전사하고 남은 7천 명은 모두 포로가 되었지만, 바르카 가문의 피해는 갈리아 기병 약 2백 기를 잃은 것이 전부였다.

갈리아 기병들이 승리의 기쁨에 취해 함성을 지르며 전리품을 챙기는 동안 하밀카르는 손바닥으로 아들의 등을 두드리며 칭찬했다.

“정말 잘해주었다! 전장을 거의 40년이나 누볐지만, 나도 이렇게 큰 승리를 거둔 적은 별로 없다! 적장이 주력부대를 고스란히 유지한 채 무사히 도망갔으면 아리미눔에 주둔한 로마군은 우리의 보급망을 끊임없이 공격해왔을 거다!”

“모두 아버지께서 시간에 맞춰 와주신 덕분이에요! 플라켄티아에 있는 북아프리카 기병대를 불러오시느라 늦게 오실까 봐 걱정 많이 했거든요.”

“내가 나이를 먹긴 했지만, 아직 그 정도 판단도 못 할 정도로 머리가 굳지는 않았다. 트라시메노 호수에서의 전투와 이번 전투의 승리로 로마의 야전군은 완전히 씨가 말랐다! 로마 원로원도 이 정도 병력 피해를 복구하려면 골치가 아프겠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하급장교 기스코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하스드루발 장군님! 지금이야말로 로마를 향해 진격하실 때입니다! 조금 전 이번 전투에서 잡은 포로들을 심문했는데 현재 이탈리아 반도에 남은 로마군은 겨우 로마를 지키는 군단 두 개가 전부라고 합니다! 어서 히스파니아에 계신 큰형님께 공성 무기를 요청하시고 곧바로 로마를 포위하시지요!”

기스코의 말대로 이제 이탈리아에 남은 로마군은 겨우 1만 명 수준이었다.

그러나 하스드루발은 지금 당장 로마를 공격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제대로 보급을 받을 수 없었던 원 역사에도 우리 가문의 부관들은 트라시메노 전투의 승리 이후 바로 로마를 공격하자고 주장해댔다고 하니 기스코가 저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금이라면 아버지가 지휘하시는 한니발 형의 군대와 아버지의 군대를 합치면 거의 팔만이 넘는 대군으로 로마 포위할 수도 있을 테고. 문제는 로마가 아직도 그 몇 배나 되는 대군을 두어 달 만에 뽑아낼 수 있다는 거지. 도시 로마의 인구가 엄청난 것도 문제고.’

기원전 3세기 후반의 로마는 이미 카르타고의 인구를 추월해 인구 50만 명을 자랑하는 지중해 최대의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이 병사 8만 명으로 로마를 포위해도 로마 원로원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시내에 있는 성인 남자 전원을 무장시킬 경우 카르타고군은 튼튼한 성벽 뒤에서 버티고 있는 수비군 10만 명을 상대해야 할 판이었다.

거기에 로마연합의 다른 지역에서 징집된 군대가 도시를 둘러싼 카르타고군을 역포위하기라도 하면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의 로마 원정은 원 역사처럼 비극으로 막을 내릴게 불을 보듯 뻔했다.

하스드루발은 자신 보다 두 살 어린 하급장교 기스코의 어깨에 오른손을 올리며 대답했다.

“네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70년 전 에피루스의 왕 피로스가 천재적인 전술로 로마군에게 몇 번이나 승리를 거뒀지만 결국 이탈리아 반도 밖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잊어서는 안 된다.”

하밀카르가 그런 아들을 바라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훌륭한 판단이다. 나도 네가 태어나기 전에 시칠리아에서 로마군을 숱하게 처치했지만, 며칠 지나면 다시 그만큼의 적군이 바다 건너에서 배를 타고 몰려오더구나. 아직은 거인 로마의 심장에 검을 겨눌 때가 아니다. 지금은 우리보다 몇 배는 강한 적의 팔다리를 때리면서 상대의 힘을 빼놓아야 한다.”

기스코는 전쟁을 빨리 끝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지만, 하밀카르와 하스드루발의 말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와의 대화를 마친 후 하스드루발은 전후 처리를 서둘렀다.

그는 전리품을 챙기는 한편 형 한니발처럼 이번 전투에서 사로잡은 포로 중 로마의 동맹도시 출신 보조병은 조건 없이 풀어주고 로마 시민권자 출신 포로는 아버지에게 맡겨 외국에 노예로 팔아버리도록 조치했다.

모든 업무가 끝나고 하스드루발은 아버지와 인사를 나눈 후 기스코와 함께 누미디아 궁기병을 이끌고 한니발에게 돌아갈 채비를 했다.

기스코가 아리미눔 근교를 떠날 준비를 마치고 말 안장에 오르기 전에 하스드루발에게 물었다.

“하스드루발 장군님. 이제 한니발 장군님께서 어디로 향할 계획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직 못 들었어? 지난겨울부터 큰 전투를 네 번이나 치렀잖아. 이제 이탈리아 동부에 닿아 있는 아드리아 해의 해안지대로 갈 거다. 해안가에 도착하면 한 달 동안 휴가다!”

그 말을 듣자마자 하급장교 기스코와 누미디아 궁기병들은 해맑게 웃으며 플라미니아 가도 위를 바람처럼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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