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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108화 (108/201)

[ 108 ] [107화] 제해권 탈환 작전 (1)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이 트라시메노 호수 전투와 아리미눔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 후 로마는 즉시 카르타고군에게 반격할 준비를 시작했다.

로마 원로원이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지난 전투에서 잃은 4만 명에 가까운 군단병을 새로 뽑기 위해 로마 공화국 전체에 총소집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로마인은 육군에 복무하는 것을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시민의 권리로 여겼기 때문에 재산이 1만 1천 아세스(임금 노동자의 약 22개월 치 임금) 미만인 성인 남자는 로마 시민권이 있어도 육군에 복무하는 것이 금지되어왔다.

그러나 로마 원로원은 갑작스러운 야전군 증발 사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그 기준을 4천 아세스로 낮추어 기원전 217년의 여름이 지나가기 전에 보병 4만 명을 새로 징집하기로 했다.

로마 원로원은 그렇게 징병에 힘쓰면서도 꾸준히 정찰병과 첩자를 풀어 이탈리아 반도를 마음껏 휘젓고 돌아다니는 한니발의 군대와 일리리아를 공격할 준비를 하는 마케도니아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러나 로마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신경 쓰느라 카르타고 정부와 히스파니아를 지키고 있는 공정한 하스드루발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고 말았다.

* * *

기원전 217년 5월 말.

공정한 하스드루발은 마고가 보낸 전령이 가져온 서신을 읽고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다.

“두 동생의 활약이 대단하구나! 이거 날씨 좋은 카르타고 노바에 눌러앉아 있으면 형으로서 위신이 서질 않겠는데? 이제 내 몫을 할 때가 됐군.”

마침내 공정한 하스드루발은 히스파니아 총독 대리로서 독자적인 군사작전을 개시하기로 마음먹고 군사회의를 열기 위해 카르타고 노바에 있는 모든 장교를 소집했다.

곧 모든 참가자가 총독 집무실에 모여 자리에 앉자 공정한 하스드루발이 입을 열었다.

“방금 북이탈리아를 지키고 있는 마고에게서 전령이 왔다.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이 지휘하는 로마 원정대가 트라시메노 호수와 아리미눔에서 로마군에게 대승을 거두고 적군 5만 명을 궤멸시켰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바르카 가문의 장교 수십 명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러댔다.

“두 장군님이 해내실 줄 알았습니다!”

“하밀카르 총독님께서 길러 내신 사자의 혈통이 역시 대단하군요!”

특히 하밀카르의 첫째 사위인 보밀카르의 아들 한노는 평소 존경해온 외삼촌 하스드루발이 영웅적인 활약을 했다는 소식에 뛸 듯이 기뻐했다.

올해 스무 살이 된 그는 카르타고에 있는 멜카르트 신전의 신성대에 복무하다 며칠 전 다른 신성대원들과 함께 하스드루발을 돕기 위해 히스파니아로 건너왔지만, 알프스를 넘은 두 외삼촌의 소식을 듣지 못해 초조해하던 차였다.

한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공정한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한니발 외숙부님과 작은 하스드루발 외숙부님이 해내실 줄 알았어요! 큰 하스드루발 외숙부님! 우리도 이제 전장에 나설 때가 됐습니다! 로마는 지금 본토를 휘젓는 한니발 숙부님에게 신경 쓰느라 바다에 관심을 둘 겨를이 없어요! 지금이 사르데냐와 코르시카를 되찾을 절호의 기회입니다!”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려고 오늘 회의를 소집했다. 사르데냐의 원주민 족장 함프시코라가 며칠 전 사절을 보내 사르데냐를 수탈하는 로마군을 몰아내 달라고 부탁해왔다. 사르데냐를 지키는 로마 해군의 전함는 오십 척이니 우리 가문의 해군과 전력이 비슷하다. 본국의 해군과 호흡을 잘 맞춘다면 사르데냐와 코르시카의 탈환을 노려볼 만할 거다.”

“벌써 카르타고 정부에서도 바르카 가문의 계획에 협조해 준다던가요?”

“물론이지. 올해 수페트(카르타고의 집정관) 중 한 분이 바로 네 아버지이신 보밀카르 매형이시지 않니? 본국의 함대가 코르시카를 공격할 때 우리는 사르데냐를 공격하기로 했다. 어서 전함의 돛에 걸 밧줄을 새것으로 갈아두도록 해라. 며칠 후면 출진할 테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장교들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곧 카르타고 노바의 군항이 오랜만에 시끌벅적해졌다.

히스파니아 출신 인부들이 선수에 카르타고의 상징인 바알 함몬의 손바닥 모양 청동 선수상을 달아놓은 50척의 전함과 비슷한 수의 수송선에 보급품을 실어나르는 동안 전원 카르타고 시민권자로 구성된 선원들이 갑판을 닦고 돛을 손질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자 단단한 구릿빛 근육을 자랑하는 리비아 출신 인부들이 굵은 쇠사슬을 끌어당기자 카르타고인 특유의 항아리 모양 항구 코톤의 수문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 끼이이이이이익

마침내 육중한 청동문이 활짝 열리자 100척이 넘는 전함과 수송선이 일제히 몰려나와 잔잔한 지중해의 물살을 가르며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외삼촌과 함께 기함에 탄 한노는 카르타고의 바다의 신인 멜카르트 신전의 신성대로서 해전 훈련을 하며 전함을 여러 번 타보았지만, 실전은 이번이 처음이라 긴장됐는지 굳은 표정으로 푸른 바다를 바라보았다.

공정한 하스드루발은 그런 조카의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건넸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훈련받은 대로만 하면 전장에서 이탈리아에서 활약하고 있는 두 외삼촌 못지않은 전공을 세우게 될 테니 말이다.”

“고맙습니다. 큰 하스드루발 외숙부님. 바다의 신이신 멜카르트께서 우릴 지켜주셨으면 좋겠네요.”

“너도 알다시피 멜카르트신께서는 바르카 가문의 수호신이시지 않니? 반드시 우리의 앞길을 밝혀주실 거다. 전장으로 향하기 전에 갈리아 남부에 있는 마실리아에서 식량과 물을 보급받을 예정이니 선실에 내려가서 쉬고 있으렴.”

순풍이 불어준 덕분에 하밀카르의 함대는 카르타고 노바에서 직선거리로 약 500km 넘게 떨어져 있는 마실리아에 겨우 엿새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정한 하스드루발은 마실리아에서 보급품을 보충하며 카르타고 정부가 보낸 함대를 기다렸다.

다시 닷새가 흐르자 그가 목놓아 기다리던 5단노선 20척과 병력수송선 20척으로 구성된 카르타고 정부가 파견한 함대가 마실리아의 항구에 들어섰다.

공정한 하스드루발은 이제 막 도착한 아군 함대를 환영하기 위해 항구에 마중 나갔다.

그는 마침내 카르타고 함대의 기함이 닻을 내리고 항구에 정박하고 배에 걸친 나무계단으로 내려오는 장교와 병사 중 익숙한 얼굴이 보이자 깜짝 놀라며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보밀카르 매형?”

“처남! 정말 오랜만이야! 미리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내가 이번 코르시카 탈환 작전을 지휘할 제독을 맡게 됐어.”

“네? 본국에서 온 전령은 대머리이신 하스드루발 의원님이 카르타고 함대의 제독을 맡기로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대머리 하스드루발 의원님께는 내가 대신 함대를 지휘하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어. 처남도 알다시피 그분이 그다지 유능한 지휘관은 아니시잖아?”

원 역사에서 2차 포에니전쟁 초기 한니발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카르타고의 장군 대머리 하스드루발은 카르타고에서 함대와 육군을 태운 수송선을 이끌고 로마에게 빼앗긴 사르데냐를 되찾기 위해 출발한다.

그러나 사르데냐에 주둔 중이던 로마 군단은 전염병에 시달리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대머리 하스드루발이 이끄는 군대와 전투를 벌여 큰 승리를 거둔다.

그 후로는 그의 생사에 대한 기록조차 역사에 남지 않게 된다.

반면 보밀카르는 원 역사에서 유일하게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 들어선 한니발에게 해상보급을 하는 데 성공한 유일한 카르타고의 제독으로 명장까지는 아니어도 꽤 뛰어난 군사지휘관이었다.

하밀카르가 일찌감치 한니발의 군대로 향하는 육로보급로를 완성한 덕분에 보밀카르는 무리한 해상 보급작전을 시도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이 원 역사와 달리 그가 이번 해전에 참여할 수 있게 된 이유였다.

당연히 공정한 하스드루발로서는 미덥지 못한 장수보다는 보밀카르와 함께 이번 전투를 치르는 편이 더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

“저야 당연히 매형과 함께 호흡을 맞추는 편이 훨씬 좋지요. 한노도 아버지가 이곳에 와있는 걸 알면 기뻐할 겁니다.”

“그러게. 그 아이가 신성대에 들어가고 나서는 같은 카르타고 하늘 아래에 살면서도 서로 거의 볼 기회가 없었지.”

보밀카르와 공정한 하스드루발과의 대화를 마치고 마실리아의 시내로 들어가 한노를 만났다.

한노는 지난 몇 년 동안 멜카르트 신전에서 생활하며 혹독한 훈련을 받느라 가족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반갑게 맞이했다.

“아버지! 재작년에 멜카르트 신전에 찾아오신 뒤로는 처음 뵙네요!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에요!”

“한노야! 그동안 잘 있었니? 못 본 사이에 또 키가 자랐구나!”

세 사람은 오랜만에 함께 저녁을 먹으며 밤늦게까지 밀린 이야기를 하며 회포를 풀었다.

이틀 후 아침 바르카 가문의 장교들이 보급품 보충 작업을 마치자 공정한 하스드루발과 보밀카르는 코르시카와 사르데냐를 되찾기 위해 함대를 출격시켰다.

보밀카르가 이끄는 함대는 지도에서 보면 이탈리아 반도 바로 왼쪽에 있는 두 섬 중 북쪽에 있는 섬 코르시카에 병사들을 상륙시키기 위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사르데냐는 로마의 2개 군단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수가 적은 보밀카르의 군대가 먼저 코르시카를 공격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사르데냐와 코르시카는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코르시카가 공격받으면 사르데냐에 주둔 중인 로마군은 즉시 함대와 지원군을 코르시카로 보낼 게 분명했다.

때문에 보밀카르의 군대가 코르시카를 로마로부터 되찾으려면 공정한 하스드루발의 함대도 사르데냐에서 출진하는 로마의 함대를 먼저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꼬박 하루를 항해한 끝에 공정한 하스드루발과 보밀카르의 함대가 코르시카 북서부 해안가에 도착했다.

약 20년 전 로마는 오직 서지중해의 제해권을 차지할 목적을 위하여 카르타고로부터 코르시카를 빼앗았기 때문에 그곳을 동맹이나 속주로 삼는 대신 노예를 잡아들이는 사냥터로 이용하고 있었다.

그날도 로마의 인간 사냥꾼들은 사냥개를 풀어 잡아들인 민간인의 팔과 다리에 쇠고랑을 채워 노예선에 태우다 북서쪽 바다에서 구름처럼 몰려오는 카르타고 함대를 보고는 기겁하며 소리쳤다.

“카르타고의 함대가 몰려온다! 어서 사르데냐에 연락선을 띄워!”

코르시카의 인간 사냥꾼들은 사르데냐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군에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즉시 기동성이 좋은 2단 노선 대여섯 척을 띄웠다.

공정한 하스드루발은 해안선을 따라 사르데냐를 향해 남하하는 로마의 연락선을 보고 기함의 선원들에게 외쳤다.

“적의 연락선이 항해하는 방향으로 배를 몰아라! 그쪽에서 몰려올 로마의 함대를 막아야 한다!”

그의 명령을 들은 선원 한 명이 커다란 깃발을 흔들어 신호를 보내자 바르카 가문의 전함 50척이 사르데냐를 향해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사이 코르시카에 무사히 상륙한 보밀카르의 군대는 본래 카르타고인들이 사용하던 해안도시의 성벽 안으로 숨어버린 인간 사냥꾼들을 궤멸시키기 위해 도시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한노가 기함의 갑판 위에서 공성전을 준비하는 아버지의 군대를 바라보며 공정한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우리도 로마 해군을 물리치고 어서 아버지를 도우러 가요.”

공정한 하스드루발은 그런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그래. 이십 년 만에 로마에게 빼앗긴 두 섬을 되찾을 기회를 잡았으니 절대 놓칠 수 없지. 슬슬 기함에 탄 신성대원들에게 전투태세를 갖추게 해라.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의 함대와 맞닥뜨리게 될 거다.”

“알겠습니다. 외숙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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