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 [108화] 제해권 탈환 작전 (2)
코르시카의 인간 사냥꾼들이 보낸 전령은 하루 하고도 반나절을 항해하여 사르데냐의 최남단에 있는 큰 항구도시 카랄레스에 도착했다.
현재 사르데냐는 로마의 법무관 티투스 오타킬리우스 크라수스가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원 역사에서 사르데냐에서 로마군에게 큰 패배를 당하고 도망치는 대머리 하스드루발의 함대와 해전을 벌여 궤멸시킨 자였다.
코르시카 주둔군의 전령은 자신이 탄 2단 노선이 항구에 정박하자마자 로마 군단을 지휘하는 법무관 오타킬리우스의 관저로 달려가 보고했다.
“오타킬리우스 법무관님께 보고드립니다! 그제 카르타고군의 함대가 코르시카의 북서부에 상륙해 해안 지대에 있는 도시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제 동료들이 도시에서 농성하며 저항하고 있긴 하지만, 코르시카에는 정규군이 없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뭐라고? 안 그래도 요즘 군단병 사이에 전염병이 돌아서 골치가 아픈데 엎친 데 덮친 격이로군! 알겠다. 곧 함대를 출진시킬 테니 넌 나와 함께 기함에 타서 길을 안내해라.”
오타킬리우스는 사르데냐에 주둔 중인 로마군 사이에 유행하는 전염병을 치료하기 위해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 있었는데, 그 비용을 로마 원로원에 청구하는 대신 사르데냐의 원주민을 수탈하여 충당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사르데냐의 원주민들은 과거 자신들을 통치했던 카르타고에 로마군을 고향에서 쫓아내 달라며 도움을 청해 왔다.
법무관 오타킬리우스는 즉시 자신이 지휘하는 육군 중 건강한 자 1만 명을 선별해서 태운 수송선 수십 척과 전함 50척을 이끌고 카랄레스의 항구에서 출항했다.
로마 해군의 전함 50척이 사르데냐의 동부 해안선을 따라 코르시카로 향하고 있을 때 공정한 하스드루발의 함대도 오타킬리우스의 함대를 요격하기 위해 남하하고 있었다.
마침내 두 함대는 사르데냐의 중동부 해안에서 마주쳤다.
공정한 하스드루발은 적을 향해 자신의 함대를 몰아가면서 로마 해군의 전함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로마의 함선들에는 하나같이 소형 투석기나 발리스타 그리고 궁수가 올라갈 수 있는 높은 탑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는 여러 가지 공성 무기를 장착한 적의 함대를 보고 중얼거렸다.
“로마의 땅개 놈들이 이제는 전함에 그 증오스러운 코르부스를 장착하지 않기로 한 모양이구나. 이 부근은 해안선이 단순해서 장애물이 없으니 접근전을 벌어지기 전에 먼저 사격전이 시작되겠군.”
1차 포에니전쟁 당시 로마 해군은 부족한 조선술과 항해술을 뛰어난 기술력과 새로운 전술로 극복하고 카르타고 해군에게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그중 카르타고 해군에 가장 큰 피해를 준 로마의 전술은 전함에 움직일 수 있는 다리 코르부스를 설치해 적함에 접근한 다음 다리를 놓아 중무장한 보병들을 투입해 배를 탈취하는 전술이었다.
그러나 코르부스를 장착한 전함은 강풍에 취약해 악천후를 만나면 쉽게 침몰해 버렸기 때문에 로마 해군은 점차 코르부스를 멀리하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1차 포에니 전쟁이 끝난 이후 로마 해군은 전함에 소형 투석기나 궁수가 올라갈 수 있는 탑을 설치해 원거리에서 적함을 공격해 피해를 준 후 접근전으로 마무리 짓는 전술을 선호했다.
공정한 하스드루발은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로마 해군의 장기인 해상에서의 원거리 사격전으로 전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스드루발이 바르카 가문의 함대가 로마 해군을 원거리 사격전에서 압도할 수 있도록 전함 대부분에 소형 트레뷰셋을 설치해 두었기 때문이다.
두 함대의 거리가 150m 정도로 좁혀지자 로마의 법무관 오타킬리우스의 함대가 투석기로 돌멩이를 쏘아 대며 선제공격을 시작했다.
― 덜커덩!
로마의 전함에 설치된 고대의 투석기 오나거가 요란한 소리를 내자 큼직한 돌멩이 수십 개가 바르카 가문의 함대로 날아왔다.
“크윽!”
오나거의 명중률은 형편없는 수준이었지만 눈먼 돌 몇 개가 기함의 갑판 위에서 전투를 준비하던 선원에게 명중했다.
하지만 고작 5kg 정도 되는 돌멩이는 선원을 다치게 할 수는 있어도 전함을 부수지는 못했다.
공정한 하스드루발은 아군 병사 몇 명이 돌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전 함대에 명령했다.
“쓰러진 전우의 복수를 하자! 소이탄 사격 준비!”
기함의 기수가 자주색 깃발을 펄럭이며 제독의 명령을 전 함대에 알렸다.
곧 소형 트레뷰셋이 설치된 5단 노선 37척에 타고 있는 선원들이 아르키메데스의 불꽃이 가득 들어 있는 철제 소이탄을 신형 투석기에 장전한 후 불을 붙였다.
― 화르르르르륵
성인 남자 주먹 세 개 만한 쇠 구슬 윗부분에 뚫려 있는 작은 구멍 여섯 개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오자 공정한 하스드루발이 다시 한번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발사!”
다시 한번 카르타고를 상징하는 자주색 깃발이 힘차게 휘날리자 소형 트레뷰셋의 발사대에 매달아 놓은 무게 추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 쿵!
무게 추가 갑판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내자마자 화염을 내뿜는 소이탄 여러 개가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적의 전함을 향해 날아갔다.
오나거에서 발사된 돌과 달리 트레뷰셋이 쏜 소이탄은 대부분 로마의 전함에 명중했다.
적함의 돛대나 갑판에 부딪힌 소이탄이 산산조각 나면서 꺼지지 않는 화염을 사방에 흩뿌렸다.
오타킬리우스는 서른 척에 가까운 로마군 전함이 불타기 시작하자 급히 선원들에게 명령했다.
“당황하지 마라! 어서 바닷물을 길어서 불을 꺼라!”
제독의 명령을 들은 로마 해군 병사들은 급히 양동이로 바닷물을 떠 불타는 갑판과 돛대에 들이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류 화재를 물을 부어서 진압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바르카 가문의 함대가 몇 번 더 소이탄을 쏘아 대자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의 전함과 수송선 중 절반 이상이 아궁이 속에 던진 마른 장작처럼 불길에 휩싸였다.
이제 로마 해군의 병사들은 완전히 패닉에 빠져 버렸다.
“물을 부어도 꺼지지 않는 불이라니! 카르타고인들이 사악한 마술을 부린다!”
“으아아아악! 살려 줘. 몸에 불이 붙었어!”
화염에 휩싸인 전함에서 도망치기 위해 수많은 로마 병사들이 무턱대고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가벼운 차림의 선원들은 불이 붙지 않는 아군 전함이나 해안가로 헤엄칠 수 있었지만, 백병전을 치르기 위해 20kg에 가까운 무거운 사슬 갑옷을 입고 있던 병사들은 그대로 어두컴컴한 심해로 가라앉고 말았다.
법무관 오타킬리우스는 황망한 눈빛으로 불타오르는 함대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휘하의 병사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나이우스 전직 집정관님의 함대가 꺼지지 않는 불꽃에 당했다는 말이 사실이었구나···. 카르타고인들이 헤파이스토스 신의 아궁이에서 불꽃을 훔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제독이 혼란에 빠져 버리는 바람에 로마 해군의 함대는 지휘 체계가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공정한 하스드루발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는 적을 추적해 섬멸하기로 마음먹었다.
“멜카르트 함대는 도망치는 적선을 추격해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멜카르트 13척이 먹이를 노리는 상어 떼처럼 물살을 가르며 도망치는 적함의 뒤를 쫓았다.
5단 노선보다 작고 기동성이 좋은 멜카르트는 로마 군단병을 가득 태운 둔중한 수송선을 금세 따라잡아 적함의 선미에 화염 방사기로 아르키메데스의 불꽃을 들이부었다.
― 화르르르르르르륵
이제 전함 십여 척을 제외한 모든 로마 해군의 배가 화염에 휩싸여 버렸다.
그때 한노가 사르데냐 방위를 포기하고 이탈리아 반도 쪽으로 도망치는 적의 기함을 보고 공정한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외숙부님! 적장이 도망칩니다! 어서 뒤쫓아 적의 기함을 나포해 버리죠!”
“그게 좋겠다. 어서 주변의 전함에 신호를 보내 적 기함의 발목을 잡도록 해라!”
곧 기함의 깃발 신호를 본 멜카르트 두 척이 오타킬리우스가 타고 있는 전함을 따라잡아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 사이 공정한 하스드루발과 한노가 타고 있는 전함이 적의 기함을 따라잡아 그 옆에 배를 세웠다.
그러자 한노가 허리춤에서 검을 뽑으며 외삼촌에게 말했다.
“바다의 신 멜카르트께서 제게 첫 전투에서 적장을 사로잡을 기회를 주셨군요! 곧 적장의 손목에 쇠고랑을 채워서 외숙부 앞에 대령하겠습니다!”
“정말 믿음직스럽구나. 하지만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법임을 잊지 마라.”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곧 한노가 이끄는 신성대원 150명과 멜카르트 두 척에 타고 있던 전투원 200명이 적함으로 건너가 전투를 시작했다.
법무관 오타킬리우스는 더는 도망칠 방법이 없음을 알고 결사 항전을 다짐했다.
“모두 검과 방패를 들어라! 카르타고인을 한 명이라도 처치하고 로마인답게 죽어라!”
곧 로마 해군 기함의 갑판 위에서 검과 방패가 부딪치는 소리와 전투의 함성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오타킬리우스와 로마 해군은 수적으로 우세한 적의 공격에도 포기하지 않고 분투했지만, 혹독한 해전 훈련을 받고 우츠 강철로 만든 무기로 무장한 멜카르트 신전의 신성 대원들을 당해 낼 수 없었다.
특히 한노는 용맹을 떨치며 전열의 선두에서 적장을 지키는 병사의 방패 위로 외날검 팔카타를 내질렀다.
“으억!”
자신을 지키던 마지막 병사가 목에서 피를 흘리며 갑판 위에 쓰러지자 오타킬리우스는 자세를 낮추며 한노가 아직 자세를 잡지 못한 틈을 노려 검으로 그의 복부를 아래에서 위로 찔렀다.
“죽어라!”
그러나 그가 기대하던 한노의 비명 대신 쇠 부딪치는 소리만이 갑판 위에 울려 퍼졌다.
― 챙!
그의 글라디우스는 경번갑의 철판을 뚫지 못하고 힘없이 튕겨 나왔다.
한노는 오타킬리우스가 당황하는 사이 들고 있던 검과 방패를 갑판 위에 던져 버렸다.
그는 코앞에서 허리를 숙이고 있는 적장의 뒤통수를 두 손으로 감싼 후 머리를 아래로 끌어 내리며 그의 턱을 무릎으로 올려쳤다.
오타킬리우스는 턱뼈가 깨지며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실신해 버렸다.
로마의 법무관이 갑판 위에 쓰러지자 바르카 가문 병사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이 지중해를 가득 메웠다.
* * *
한노가 적장 오타킬리우스를 사로잡은 후 바르카 가문의 함대는 단 한 척의 전함도 잃지 않고 사르데냐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의 함대를 궤멸시켜 버렸다.
공정한 하스드루발은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둔 후 함대를 둘로 나누어 한노에게 전함 열 척을 맡겨 코르시카를 공격하는 보밀카르를 지원하게 하고 자신은 남은 병력을 이끌고 그대로 사르데냐를 공격했다.
사르데냐에 남은 로마군은 바르카 가문에 항복하지 않았지만, 사령관이 이미 포로가 된 데다 병사 중 전염병을 앓는 자가 많아 제대로 싸울 수 없었다.
거기에 사르데냐의 원주민들도 때맞춰 반란을 일으킨 덕분에 사르데냐의 로마군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전멸했다.
결국 기원전 217년 6월 말 즈음 카르타고는 로마에 빼앗겼던 사르데냐와 코르시카를 20여 년 만에 되찾았다.
공정한 하스드루발은 즉시 카르타고 정부와 북이탈리아로 승전보를 보냈고 이탈리아 동부 해안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한니발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식을 알게 됐다.
하스드루발은 포도주로 애마 페라리의 등을 닦아 주다 그 소식을 전해 듣고는 손에 들고 있던 천을 던져 버리고 한니발의 막사로 뛰어 들어갔다.
“한니발 형! 큰형하고 큰 매형이 사르데냐와 코르시카를 탈환했대! 이제 해상으로 본국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겠어!”
“나도 방금 들었다! 두 분이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내셨어! 그렇지만 우리가 해상 보급을 받으려면 먼저 이탈리아 남서부 해안 지대의 항구 도시를 차지해야겠지.”
“다음 목표는 벌써 정해진 거네.”
“그래. 캄파니아 지방으로 진격해 이탈리아 남서부의 도시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만 되면 이탈리아 북부에서 오는 보급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부대를 유지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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