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116화 (116/201)

[ 116 ] [115화] 반로마연합의 반격

원 역사보다 이른 시기에 시작된 로마의 반로마파 시민 탄압은 겉으로는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다.

삼니움족을 제외한 모든 로마연합의 도시와 부족에서 민회의 부활과 로마군의 강제징병에 반대하는 시민의 목소리가 거의 사그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동맹도시의 시민들은 타렌툼 시민이 당한 비극을 전해 들은 후 로마에 대한 증오심을 더욱 가슴속 깊이 새기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로마군에게 성지 말레벤툼을 잃은 삼니움족은 모든 부족의 귀족과 평민이 하나가 되어 타도 로마의 기치 아래 뭉쳤다.

삼니움족의 대부족장 다섯 명은 폐허가 된 말레벤툼 주변에 지은 숙영지에 머무르고 있는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을 찾아가 로마에 복수하자며 아우성쳤다.

삼니움족 중 가장 먼저 바르카 가문과 동맹을 맺은 카우디니족의 부족장 겔리우스가 다른 부족장들을 대신해 한니발에게 말했다.

“한니발 장군님! 지금 로마로 쳐들어갑시다! 말레벤툼에 불을 지르고 달아나 버린 겁쟁이들에게 똑같이 복수해 주지 않으면 우리 삼니움인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겁니다!”

“아직은 로마를 공격할 때가 아닙니다. 더 많은 이탈리아의 도시와 부족들을 반로마연합에 끌어들이지 않으면 로마의 일곱 언덕을 둘러싼 세르빌리우스 성벽을 넘기 어려울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바르카 가문의 군대와 우리 다섯 부족이 이끌고 온 군대를 합치면 무려 칠만 오천 명입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우리 병사의 반도 안 되는 군대로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지 않았습니까!”

겔리우스의 말에 하스드루발이 한니발을 대신 대답했다.

“겔리우스 부족장님. 부족장님의 선조께서 피로스 왕과 동맹을 맺고 로마군과 싸우던 때를 벌써 잊으셨습니까?”

그의 말을 듣고 난 후 겔리우스를 비롯한 삼니움족의 부족장들이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는 로마의 침략에 시달리던 타렌툼의 구원 요청에 응해 수만 명의 군대와 전투 코끼리 20마리를 이끌고 이탈리아 땅을 밟았다.

피로스 왕은 이탈리아반도에 들어서자마자 이탈리아 남동부 지역의 그리스계 도시와 삼니움족을 반로마연합에 끌어들였다.

그 후 그는 로마군과 여러 번 전투를 벌여 연전연승했지만, 결국 로마의 엄청난 물량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이탈리아반도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원 역사의 한니발이 자신보다 뛰어난 지휘관이라고 인정한 피로스 왕조차도 삼니움족과 남부 이탈리아 도시들과 동맹을 맺은 상태에서 로마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겔리우스 부족장은 조상의 역사를 떠올리고는 한니발에게 대답했다.

“말레벤툼이 불타 버리는 바람에 제가 그만 너무 흥분했었습니다. 잘 생각해 보니 한니발 장군님의 말씀대로 아직은 로마를 포위할 때가 아닌 듯합니다.”

“제 뜻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전투에서 승리해 로마연합의 결속이 깨지면 머지않아 우리의 숙원을 이룰 날이 올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우리 삼니움족은 전에 하스드루발 장군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음 공격목표는 베누시아인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회의를 마친 후 삼니움족 부족장들은 베누시아로 행군하기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 막사 밖으로 나갔다.

하스드루발은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한니발에게 말했다.

“어휴··· 진땀 뺐네. 삼니움족도 켈트족 못지않게 호전적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았어. 기껏 이탈리아 남부에서 처음으로 얻은 동맹을 잃는 줄 알았네.”

“네가 시기적절하게 피로스 왕의 예를 들어 준 덕분에 완고한 삼니움족을 쉽게 설득할 수 있었다. 정말 잘했어.”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나저나 베누시아를 공격할 거면 서둘러야겠어. 오늘 아침에 정찰병에게 보고를 받았는데 엄청나게 많은 남자 노예들이 로마로 모이고 있대. 적어도 이만 명은 될 것 같다던데.”

“이만 명? 그 정도 규모면 로마 원로원이 노예를 사들이고 있는 건가? 이 시국에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 내가 로마의 장군이라면 그 돈으로 군단병을 무장시키거나 용병을 고용할 텐데.”

“아마 노예들을 무장시켜서 병사로 쓰려는 속셈일 거야.”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처럼?”

“그거하고는 많이 다를걸. 페르시아는 노예병을 그저 화살받이로만 썼었잖아. 아마 로마 원로원은 노예들에게 로마가 전투에서 승리하면 자유를 주겠다고 약속하겠지. 노예들이 더 치열하게 싸울 동기를 부여하려고 말이야.”

“믿을 수가 없군. 로마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식으로 병사를 충원한 적이 없어. 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얼마 전까지 밭이나 갈던 노예들은 우리 병사들의 상대가 못 될 거다.”

“너무 방심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자유를 얻기 위해 싸우는 군대는 강한 법이거든.”

원 역사에서 로마의 노예 군단은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정규 군단병 이상으로 치열하게 싸워 한니발의 조카 한노가 지휘하는 군대를 궤멸시키는 등 엄청난 활약을 한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하스드루발은 로마가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노예 군단을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한니발은 동생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네 말대로라면 로마는 생각보다 일찍 야전군을 조직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하자. 이번 베누시아 공성전은 네가 지휘해.”

“뭐? 그럼 형은 그동안 뭐 하고?”

“나는 만에 하나 로마군이 네가 베누시아를 공격할 때 배후를 치지 못하게 말레벤툼에 주둔하면서 적이 아피아 가도를 지나가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을게.”

“알았어. 총사령관을 맡아 보는 건 처음이지만, 베누시아를 지키는 로마군은 얼마 안 될 테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

* * *

갑자기 공성전을 지휘하게 된 하스드루발은 서둘러 준비를 마친 후 바르카 가문의 병사 2만 5천 명과 삼니움족의 군대 2만 5천 명을 이끌고 베누시아를 향해 진군했다.

그동안 한니발은 병사 2만 5천과 함께 성벽만이 온전하게 남은 말레벤툼의 폐허에 남아 로마군이 남하할지도 모르는 아피아 가도를 철저히 감시했다.

말레벤툼에서 베누시아는 직선거리로도 100km나 떨어져 있지만, 바르카 가문과 삼니움족의 연합군은 로마인이 잘 닦아 놓은 도로 덕분에 닷새 만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스드루발은 로마인들이 아펜니노 산맥 초입에 지은 요새 도시 베누시아를 올려다보았다.

‘성벽 위에 초병이 보이는 걸 보니 로마가 베누시아는 포기할 생각이 없나 보네. 누만티아처럼 천혜의 요새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런 준비를 안 했으면 공격할 엄두가 안 났겠네.’

베누시아는 삼면이 험준한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어 한 면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데다 유일하게 병사가 공격할 수 있는 아피아 가도가 나 있는 방향도 오르막길이라 적은 병사로도 수비하기가 쉬웠다.

그러나 베누시아의 험한 지형도 로마에 대한 적개심을 한창 불태우고 있는 삼니움족의 전의를 꺾지는 못했다.

카우디니족의 부족장 겔리우스가 베누시아를 바라보고 있는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제법 튼튼한 요새지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몇 달 전 우리 부족 사람 중 하나가 아피아 가도를 타고 베누시아를 지난 적이 있는데, 도시의 수비대는 많아야 오천 명 정도로 보였다고 합니다. 전 병력을 동원해 한꺼번에 몰아치면 로마군도 결국 버텨 내지 못할 겁니다.”

“부족장님 말씀대로 하면 요새를 함락할 수야 있겠지만, 우리 측의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로마의 신임 독재관은 바로 그 점을 노리고 말레벤툼에서는 병력을 빼고 베누시아의 수비대는 내버려 두었을 겁니다. 로마는 시간만 있으면 얼마든지 군단병을 징집할 수 있으니까요.”

“설마 도시를 포위하고 로마군의 보급을 차단하실 생각이십니까? 한니발 장군님께서 우리의 등 뒤를 지켜 주고 계시긴 하지만, 로마가 새로 뽑은 군단병 훈련을 마치고 나면 더는 버티기 힘드실 겁니다.”

“그 사실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길어야 두 달 정도겠지요. 저를 한번 믿어 보십시오. 우리는 로마군과 싸워서 계속 이겨 오지 않았습니까?”

삼니움족의 부족장들은 하스드루발이 아직 총사령관 자리에 앉아 본 경험이 없고 너무 젊어 그에게 군대의 지휘를 맡기는 것이 좀 불안했다.

그러나 그에게 지휘권을 준 사람이 다름 아닌 명장 한니발이었기 때문에 아직 20대 중반밖에 안 된 젊은 장군을 믿어 보기로 했다.

하스드루발은 베누시아 근처에 숙영지를 지은 후 삼니움족 장수들과 자신의 부관들을 막사로 불러 작전을 설명했다.

“먼저 베누시아를 포위한 다음 병사를 세 조로 나누어 삼조 이교대로 적을 밤낮없이 공격해 지치게 한다. 기병들은 베누시아 근처에 있는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인근 주민들에게 요새 내부 사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라.”

짧은 회의를 마친 후 반로마연합군은 삼니움 탄압의 상징인 베누시아를 공격할 준비를 시작했다.

바르카 가문의 병사들은 하스드루발의 지휘 아래 말레벤툼 근처에서 미리 만들어 둔 공성탑의 부품을 조립했고 삼니움족의 병사들은 산악 지대를 돌아다니며 투석기로 쏠 돌덩이를 모아 왔다.

하스드루발은 그날 저녁 모든 준비 작업이 끝나고 나서 고된 작업으로 지친 병사들을 잘 먹이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게 했다.

바르카 가문과 삼니움족의 첫 합동 군사 작전은 다음 날 해가 뜨자마자 시작됐다.

하스드루발은 완성된 거대한 공성탑에 병사를 가득 태운 다음 당일 주간 공격조에 배정된 병사들에게 우렁찬 목소리로 공격 명령을 내렸다.

“베누시아를 공격하라! 적에게 쉴 틈을 주지 말고 몰아붙여라!”

사령관의 명령을 들은 나팔수가 뿔나팔을 불자 1만 5천 명의 병사들이 공성탑 한 대와 고대의 투석기 오나거 열 대를 몰고 베누시아의 성벽을 향해 진격했다.

성벽 위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로마군은 평원을 가득 메운 반로마연합군과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성탑을 보고 두려움에 떨었다.

“세상에! 저 공성탑 베누시아의 성벽보다 훨씬 높은데? 거의 70큐빗(약 30m)은 되겠어!”

“이제 다 끝났어! 아무리 요새가 험해도 열 배나 되는 적군을 막아 낼 수는 없다고!”

그런 와중에도 베누시아 수비대의 대장은 성벽 위를 지키고 있는 로마군 병사들을 독려하며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모두 너무 겁먹지 마라. 오늘 아침 로마에 전령을 보냈으니 조금만 버티면 파비우스 독재관님께서 지원군을 보내 주실 거다. 적의 공성탑이 성벽에 다가오면 끓는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 버려라. 저것만 파괴해도 시간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다.”

수비대장의 명령을 들은 로마군 병사들은 당장 미리 준비해 둔 기름이 끓는 가마솥을 공성탑이 다가올 거라고 예상되는 지점에 배치했다.

그러나 하스드루발은 애초에 공성탑을 베누시아의 성벽에 접근시킬 생각이 없었다.

여섯 개 층으로 구성된 바퀴가 달린 거대한 목조탑은 총사령관이 사전에 내린 명령을 지켜 성벽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멈췄다.

그 모습을 본 로마군은 공성탑의 바퀴가 고장 난 줄 알고 환호성을 질렀다.

“공성탑이 멈췄다! 전쟁의 여신 미네르바께서 우리를 도우셨어!”

“당장 오나거 부대에 연락해! 적이 바퀴를 수리하기 전에 저 공성탑에 돌덩이를 쏴서 부숴 버려야 해!”

그러나 기뻐하던 로마 군단병들은 공성탑의 4층과 5층의 문이 갑자기 열리자 안색이 창백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안에는 검을 든 중장보병 대신 궁수와 소형 발리스타 스콜피온이 가득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곧 성벽 위에 서 있는 로마군의 머리 위로 수천 개의 크고 작은 화살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