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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117화 (117/201)

[ 117 ] [116화] 베누시아 공방전

“화살이 날아온다! 모두 방패를 들어라!”

베누시아의 성벽 위에서 로마군 대대장이 하늘을 덮을 기세로 날아오는 수많은 화살을 보고 소리쳤다.

로마 군단병들은 황급히 한쪽 무릎을 꿇고 성벽 난간에 걸쳐 놓은 방패를 집어 들어 온몸을 가렸다.

곧 커다란 파도처럼 병사들을 덮쳐 온 화살이 로마군의 방패 위로 쏟아져 내렸다.

― 투두두두두둑!

수많은 화살이 로마군의 두꺼운 나무 방패에 꽂히면서 오두막 지붕에 우박이 떨어질 때처럼 둔탁한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화살비가 잠시 그치자 제때 방패를 들지 못한 로마군 수십 명이 온몸에 화살이 박힌 채로 성벽 위에 쓰러졌다.

각궁으로 무장한 바르카 가문의 크레타 궁수들은 100m가 넘는 거리에서 활을 쏘아 댔지만, 로마의 보조병 궁수는 기껏해야 사정거리 50m 정도의 조잡한 나무 활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반격할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로마군 병사들은 크레타 궁수들이 활을 쏘아 댈 때마다 등껍질 속에 몸을 숨기는 거북이처럼 방패 뒤에 숨기 바빴다.

베누시아 수비대의 대장은 불리해진 전황을 만회하기 위해 공성탑에서 활을 쏘아 대는 크레타 궁수들을 견제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서 저 공성탑에 스콜피온을 발사해라!”

대장의 명령을 들은 기수가 손에 들고 있던 깃발을 휘두르자 성벽 바로 뒤에 세워진 여러 개의 망루 위에 있는 로마군 병사들이 소형 투석기 스콜피온에 굵직한 화살을 장전했다.

스콜피온의 유효 사정거리는 200m가 넘기 때문에 충분히 공성탑에 타고 있는 병사들을 공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스드루발은 적군이 아군 병사들에게 말뚝만 한 화살을 쏘아 댈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는 공성탑 근처에서 말을 타고 전투를 지휘하다, 망루 위의 로마군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자마자 허리춤에 차고 있던 뿔나팔을 힘차게 불었다.

― 뿌우우우우우우우웅.

그러자 삼니움족의 군대가 미리 돌덩이를 장전해 둔 오나거 열 대가 뒷발을 차는 당나귀처럼 요란하게 덜컹거렸다.

― 덜커덩!

그러자 어린애 머리만 한 커다란 돌덩어리 열 개가 공중에 커다란 아치 모양의 궤적을 그리며 베누시아를 향해 날아갔다.

운석처럼 날아간 돌덩이 중 다섯 개가 망루에 충돌하자 요란스러운 굉음이 로마군의 고막을 때렸다.

― 콰아아앙!

고대의 투석기는 목재로 만든 망루를 일격에 부수지는 못했지만, 그 위에 있던 로마군은 마치 지진이 난 땅 위에서처럼 발밑이 흔들리는 바람에 스콜피온을 발사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공성탑에 타고 있던 크레타 궁수 중에서도 특히 실력이 좋은 정예병 수십 명이 재빨리 통아를 활시위에 걸고 망루 위에 있는 적군을 향해 편전을 발사했다.

― 쐐애애애액!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고 빠른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 다시 스콜피온의 조준대를 잡으려던 로마군 병사들의 갑옷을 관통해 버렸다.

“끄어어억!”

편전에 맞은 로마군 병사들이 힘없이 비틀거리다 비명을 지르며 망루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망루의 스콜피온이 무력화된 로마군은 성안에 비치된 투석기 세 대로 공성탑에 돌덩이를 쏘며 응전했다.

― 터엉!

베누시아의 성벽 안에서 날아온 돌덩이가 공성탑에 부딪치며 그 안에 있는 병사들이 잠시 비틀거렸다.

그렇지만 아르키메데스가 설계한 공성탑은 어지간한 망루보다 훨씬 튼튼했기 때문에 큰 피해를 입지 않고 그저 외벽에 작은 구멍이 뚫렸을 뿐이었다.

반로마연합군은 계속 화살과 돌을 성벽 위에 있는 적군에게 퍼부었고 로마군은 계속 방패로 몸을 가린 채 성벽 위에 쭈그려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나거 부대를 지휘하고 있던 카우디니족의 부족장 겔리우스는 로마군의 사기가 이미 바닥을 치고 있다고 판단하고 하스드루발에게 연락병을 보냈다.

삼니움족의 연락병은 사슬갑옷을 입은 채 전력으로 총사령관에게 달려가 부족장의 말을 전했다.

“하스드루발 장군님. 겔리우스 부족장님께서 총공격 명령을 요청하셨습니다.”

연락병의 말을 듣고 하스드루발은 눈앞의 요새를 바라보았다.

베누시아의 성벽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3면이 험한 산지로 가로막혀 있고 유일하게 보병이 요새에 접근할 수 있는 한쪽 면은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었다.

게다가 성벽 주변은 해자와 목책에 둘러싸여 있어 사다리를 든 병사들이 접근하기 어려워 보였다.

‘나라면 목책 바깥에 말뚝 함정하고 쇠뿔을 잔뜩 깔아 놨겠지. 아군이 적보다 열 배나 많으니 어거지로 밀어붙이면 오늘 안에도 베누시아를 함락시킬 수야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최소 천 단위의 사상자가 나올 거야.’

하스드루발은 아군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요새를 점령하고 싶었기 때문에 겔리우스 부족장의 요청을 반려했다.

“지금 총공격을 하면 아군 사상자가 너무 많이 발생할 거다. 겔리우스 부족장님께 오늘의 작전은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전해 드려라.”

연락병은 다시 후방의 오나거 부대로 돌아가 총사령관의 뜻을 겔리우스 부족장에게 전했다.

* * *

하스드루발이 지휘하는 군대가 계속 베누시아를 공격하는 사이 어느덧 아펜니노 산맥 너머로 해가 지며 어지러운 전장에도 땅거미가 졌다.

그러나 날이 저문 다음에도 반로마연합군은 주간공격조와 야간공격조가 교대한 뒤 횃불을 밝혀 가며 맹렬한 공격을 이어 나갔다.

하스드루발도 주간공격조 병사들과 함께 숙영지로 돌아와 자신의 막사 안에서 조촐한 저녁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그가 딱딱한 빵 덩어리를 손으로 뜯어 포도주에 적시고 있을 때 막사 입구를 지키고 있던 병사가 들어와 경례를 한 후 말했다.

“하스드루발 장군님. 카우디니족의 겔리우스 부족장님께서 장군님을 뵙고 싶다고 하십니다.”

하스드루발은 포도주에 젖은 빵을 접시에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예상대로 따지러 왔구나. 안 그래도 저녁 먹고 나서 내가 찾아가려고 했는데. 정말 성질 급한 사람이라니까.’

그러나 귀찮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로마연합에서 최초로 이탈하고 바르카 가문과 우호를 다진 귀한 동맹을 홀대할 수는 없었다.

“어서 들어오시라고 해라.”

총사령관의 승낙이 떨어지자 병사는 겔리우스 부족장을 막사 안으로 안내했다.

겔리우스는 전장에서 막 돌아와 아직 청동 흉갑을 입은 채로 막사 안으로 들어와 하스드루발에게 인사했다.

“식사 중이셨군요. 휴식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하스드루발 장군님.”

“아닙니다. 오늘 장군님께서 지휘하신 삼니움족 병사들이 활약해 준 덕분에 아군 병사들이 거의 다치지 않고 무사히 전투를 마쳤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앞으로의 전투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어서 장군님을 찾아왔습니다. 하스드루발 장군님, 로마군은 우리의 십 분의 일 정도밖에 안 되는 데다 사기도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내일은 총공격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베누시아는 충분히 점령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탈리아 남부에는 베누시아 말고도 로마인들이 세운 라틴 식민지가 많지 않습니까? 로마가 다시 대군을 징집하기 전에 라틴 식민지를 한 곳이라도 더 공격해야 합니다.”

겔리우스의 견해도 올해 안에 벌어질 전투만 놓고 생각하면 전략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로마에 비하면 인적 자원이 부족한 바르카 가문과 카르타고 정부는 앞으로 몇 년 동안 더 이어질지 모르는 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늘 병력 손실을 염두에 두고 전투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하스드루발은 애써 미소지으며 겔리우스에게 대답했다.

“저도 부족장님처럼 이곳에서 시간을 너무 잡아먹을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사흘 후에 거의 아군 피해 없이 베누시아에 입성할 수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흘 후에 말씀입니까? 뭔가 다른 작전을 구상하고 계시군요.”

“맞습니다. 조금 전 정찰을 나갔던 기병대가 인근 주민에게 정보를 수집해 왔는데, 아펜니노 산맥의 절벽과 맞닿아 있는 베누시아의 북쪽 성벽은 다른 쪽 성벽보다 훨씬 낮다고 합니다. 정예병 수백 명이 야간에 그 성벽을 넘어 몰래 성문을 연다면 우리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베누시아에 입성할 수 있을 겁니다.”

하스드루발이 생각해 낸 작전은 원 역사의 스키피오가 카르타고 노바를 점령할 때 사용했던 계책과 거의 똑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겔리우스 부족장은 하스드루발의 지략에 깊이 탄복했다.

“정말 훌륭합니다! 사흘 동안 적을 재우지 않고 정면에서 몰아붙이다 갑자기 등 뒤를 공격한다는 작전이군요! 하스드루발 장군님, 부디 북쪽 성벽을 넘는 역할은 우리 삼니움족에게 맡겨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삼니움족 전사들은 걸음마를 떼고 나서부터 산을 타고 암벽을 기어오르는 훈련을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작전이 성공한다면 삼니움족의 용맹이 역사에 길이 남을 겁니다.”

* * *

카우디니족의 부족장 겔리우스는 하스드루발과의 대화를 마친 후 바로 다른 삼니움족의 부족장들을 만나 삼니움족 중에서 가장 암벽을 잘 타고 전투에 능한 특공대 500명을 선별했다.

하스드루발은 그 500명을 전투에서 열외 시킨 후 매일 구운 고기와 질 좋은 포도주를 먹여 사기를 높이고 행군과 전투를 치르느라 소진한 기력을 회복하게 했다.

그동안 다른 바르카 가문과 삼니움족의 병사들은 사흘 동안 밤낮으로 베누시아 성벽 위에 화살과 돌을 날려 대면서 로마군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베누시아 수비대의 대장은 정면에서만 공격해 오는 적에게 대응하기 위해 거의 모든 병력을 평야 지대와 맞닿아 있는 동쪽 성벽에 배치했다.

하스드루발이 베누시아를 공격한 지 나흘째 되던 날 밤.

드디어 삼니움족의 특공대 500명이 아군이 요새를 공격해 로마군의 주의를 끄는 사이 어둠을 틈타 길도 없는 산악 지대를 통과해 베누시아의 북쪽 성벽을 기어올랐다.

북쪽 성벽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로마군 초병은 수가 적은 데다 사흘 동안이나 잠도 못 자고 치열한 전투를 치른 탓에 졸음을 쫓느라 은밀하게 성벽을 기어오르는 삼니움족 전사들을 놓치고 말았다.

가장 먼저 성벽 위로 올라온 삼니움족 전사가 한 손으로 반쯤 눈이 감겨 있던 로마군 초병의 입을 틀어막고 다른 손에 쥐고 있던 단검으로 적의 목을 그어 버렸다.

“우웁!”

순식간에 베누시아 북쪽 성벽을 장악한 삼니움족 특공대는 한 손에 단검을 움켜쥐고 쏜살같이 성벽 위를 달려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동쪽 성문으로 향했다.

로마군은 전방에서 날아오는 화살과 돌을 막으면서 스콜피온을 쏘아 대느라 정신이 없던 통에 삼니움족의 정예병 500명이 갑자기 측면을 공격하자 혼란에 빠져 버렸다.

“적이다! 성벽 위에 적군이 있다!”

“모두 검을 들어라! 적이 성문을 열려고 한다!”

로마군 병사들은 뒤늦게나마 성벽 위의 적군을 막으려 했지만, 수면 부족으로 움직임이 둔해진 병사들이 2만 5천 명의 병사 중에서 고르고 고른 날랜 정예병을 막을 수는 없었다.

삼니움족 특공대는 앞길을 막는 로마군 병사들을 모두 베어 버리고 성벽 아래로 내려가 굳게 닫혀 있는 성문을 열었다.

그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 하스드루발은 성문이 열리자 손에 들고 있던 뿔피리를 힘차게 불었다.

― 뿌우우우우우우우우.

우렁찬 뿔피리 소리가 어둠 속에 울려 퍼지자 5만 명의 반로마 연합군이 밀물처럼 베누시아의 성문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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