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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133화 (133/201)

[ 133 ] [132화] 대망의 칸나이 전투 (4)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은 전군을 이끌고 아우피디우스강을 건너 로마군 진영에서 약 1km쯤 떨어진 곳에서 진형을 짰다.

하급장교 기스코는 큰 강과 언덕 사이의 평원을 가득 메운 로마군을 바라본 후 마른침을 삼키며 한니발에게 말했다.

“로마군의 진형을 보니 장군님 같은 지혜가 없는 저도 적장의 의도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은 분명 중앙돌파를 시도하겠군요.”

“그렇겠지. 병사의 훈련도가 낮은 걸 만회하려고 압도적인 머릿수로 한 번에 밀어붙일 모양이군. 적장 바로는 하스드루발의 말대로 우리의 본대를 두 동강 내기 위해 중앙에 최정예병을 배치했을 거다.”

집정관 바로는 겉으로 보기에는 로마군이 흔히 사용하는 전술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었다.

로마군 본대는 중장보병 6만 5천 명으로 구성됐고 그 앞에는 투창을 여러 개 든 경보병 1만 8천 명이 배치됐다.

원 역사에서는 전직 집정관 게미누스와 미누키우스가 칸나이 전투에 출전한 중장보병대를 지휘했지만, 지금은 전사한 미누키우스 대신 스키피오의 장인 아이밀리우스가 대신 지휘봉을 잡았다.

또한 로마군 본대의 좌익에는 집정관 바로가 지휘하는 동맹도시의 기병 5천 5백 기가 배치됐고 바로 오른편에 아우피디우스강을 두고 있는 우익에는 집정관 메틸리우스가 이끄는 로마 기병 2천 기가 배치되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형적인 로마군의 진형이었지만, 로마군의 중장보병 중대는 대단히 이례적인 방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로마 군단병들은 좁은 평원 지대에 많은 병사를 동원하라는 바로의 지시에 따라 각 병사 간의 거리가 약 90cm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조밀하게 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로마 군단병의 중대는 가로보다 세로가 훨씬 더 긴 독특한 모양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카르타고군의 진형은 로마군보다도 훨씬 더 보기 드문 형태를 띠고 있었다.

로마군 중장보병대의 지휘봉을 잡은 아이밀리우스는 카르타고군의 진영을 바라보며 옆에 있는 부관에게 말했다.

“적장 한니발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기괴한 진형을 짠 거지? 보병을 사선으로 배치하는 전술이 있다는 말은 들어 봤지만, 저렇게 사다리꼴 모양으로 배치하는 건 처음 보는군.”

한니발은 자신이 지휘할 본대를 갈리아인 귀족 전사 8천 명과 삼니움족 중장보병 8천 명, 그리고 히스파니아 출신 중보병인 스쿠타리 6천 명으로 구성하고 두께가 얇은 중앙 부분을 앞으로 내민 사다리꼴 모양의 진형을 짰다.

그리고 카르타고군의 최전방에는 삼니움족 경보병 2천 명과 히스파니아 출신 경보병 4천 명, 그리고 발레아레스 투석병 4천 명과 크레타 궁수 2천 명을 배치했다.

또한 하스드루발이 지휘하는 북아프리카 중장보병 1만 5천 명은 본대 후방의 양쪽 끝부분을 받쳤다.

기병대는 전통적인 방식대로 양익에 배치되었다.

본대의 좌익에는 기병대장 아즈루바알이 지휘하는 이베리아족 중기병 6천 기가 바로의 로마 기병대와 맞섰고 우익에는 기병대장 마하르발이 지휘하는 누미디아 궁기병 4천 기가 배치되었다.

이처럼 칸나이 전투에 나선 현재와 원 역사의 카르타고군 배치는 거의 비슷했지만, 단 하나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하스드루발의 의견에 따라 전투 코끼리 20마리를 본대 후방의 중앙 부분에 배치한 것이다.

집정관 바로는 카르타고군의 보병 뒤에서 큰 소리로 울부짖는 코끼리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좁은 전장에서는 아군도 짓밟는 코끼리를 활용하기 어려우니 우리 병사들을 겁주기 위해서 본대 후방에 배치한 건가? 어쨌든 이번 전투에서 우리 병사들이 코끼리와 싸울 일은 없을 것 같군.”

카르타고군과 로마군이 상대방에 대한 탐색을 마친 후 마침내 결전을 알리는 뿔나팔 소리가 양 진영에서 울려 퍼졌다.

―뿌우우우우우우우.

양 진영의 병사들은 상대방의 몸짓 하나하나를 경계하며 상대방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검투사처럼 신중하게 전방의 적군을 향해 서서히 전전했다.

전투의 시작을 알린 것은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일류 용병으로 이름 높은 발레아레스 투석병이었다.

한니발은 로마군이 투석병의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자신의 곁에 둔 신호탄을 담당하는 병사 두 명에게 즉시 명령했다.

“청록색 폭죽을 쏴라!”

그러자 병사 한 명이 몸에 지니고 있던 폭죽 한 개를 잽싸게 땅에 꽂고 다른 한 명은 커다란 라이터로 심지에 불을 붙였다.

심지를 태우는 불꽃이 대나무 통 안으로 스며들자 곧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청록색의 작은 불꽃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피유우우우우웅! 파앙!

그러자 로마 기병대의 맞은편에 배치되어 있던 발레아레스 투석병들이 평소 즐겨 쓰던 달걀 크기의 납덩이 대신 성인 남자 주먹 두 개만 한 돌멩이를 슬링으로 감싼 뒤 머리 위로 들어 올려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붕붕붕붕.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강풍을 만난 풍차처럼 돌던 슬링이 멈추자 커다란 돌멩이 4천 개가 200m 밖에 있는 적 기병대를 향해 날아갔다.

집정관 메틸리우스는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성난 벌떼처럼 날아오는 돌멩이들을 보고 휘하의 기병들에게 외쳤다.

“투석 공격이다! 모두 방패를 들어라!”

로마 기병대는 집정관의 명령에 따라 나무를 세 겹 덧대어 만든 원형 방패를 들어 머리와 가슴을 가렸다.

곧 로마 기병대의 방패와 갑옷에 시속돌이 부딪치면서 둔탁한 타격음이 아우피디우스강 변에 울려 퍼졌다.

―퍼억!

―까앙!

그러나 두꺼운 갑옷과 방패도 시속 140km로 날아온 묵직한 돌멩이의 충격을 모두 막아 낼 수는 없었다.

아직 카르타고군과 로마군이 맞붙기도 전에 로마군의 우익에서는 큰 부상을 입은 병사와 말의 구슬픈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괴물 같은 놈들! 이렇게 먼 거리에서 던진 돌로 방패를 부수다니!”

로마 기병대는 강과 로마군 본대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카르타고 기병대의 돌격을 막을 생각으로 밀집대형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피해가 컸다.

집정관 메틸리우스는 혼란에 빠져 흐트러져 가는 밀집대형을 유지하기 위해 병사들을 독려했다.

“곧 전투가 시작된다! 모두 자기 자리에서 벗어나지 마라!”

그의 노력으로 탈주 직전이던 로마 기병대는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진형을 유지했다.

바로 그때 또다시 로마 기병의 머리 위로 돌의 비가 내렸고 그중 하나가 메틸리우스의 오른쪽 팔의 전완(前腕)을 강타했다.

“으아악!”

그를 보좌하고 있던 스키피오가 팔에 피멍이 든 집정관에게 다가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메틸리우스 집정관님! 괜찮으십니까?”

“크으윽! 팔을 좀 다치긴 했지만, 아직은 버틸 수 있다! 내 걱정은 말고 어서 자리로 돌아가 병사들을 지휘해라!”

“하지만······.”

“어서 돌아가라니까!”

메틸리우스의 불호령에 스키피오는 부상을 입은 그를 뒤로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전장의 중앙에서는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궁수와 경보병들이 상대방의 기세를 꺾기 위해 서로에게 화살과 투창을 날려 대며 접전을 벌였다.

카르타고군의 경보병과 궁수는 로마군의 경보병 벨리테스보다 수가 더 적었지만, 좋은 장비를 갖추고 실전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짐승 가죽으로 머리와 등을 가린 적군을 점점 뒤로 밀어냈다.

그러나 집정관 바로는 애초에 벨리테스를 카르타고군의 강력한 화살 공격을 받아 내기 위한 방패막이로 사용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마침내 양군의 거리가 50m 정도로 줄어들자 전직 집정관인 아이밀리우스와 게미누스는 예정대로 군단병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모두 전진하라! 단번에 전 본대의 중앙을 돌파하는 거다!”

곧 총공격을 알리는 로마군의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자 약 7만 명의 로마 군단병과 보조병이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방패를 들고 눈앞의 적을 노려보며 앞으로 나아갔다.

“우와와아아아아!”

“로마 인빅타!”

한니발은 적이 드디어 돌진해 오자 이번에는 노란색 신호탄을 터뜨려 양익의 기병대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기병대장 마하르발은 푸른 하늘을 수놓은 노란색 불꽃을 보고 이베리아족 중기병 6천 기에게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한니발 장군님께서 이번 전투의 승패는 우리가 로마 기병대를 얼마나 빨리 물리치는지에 달려 있다고 하셨다! 모두 목숨을 아끼지 말고 적을 섬멸하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대열의 선두에 선 이베리아족 중기병 4백 기가 기다란 랜스를 앞으로 내밀고 함성을 지르며 성난 황소처럼 맹렬하게 돌진했다.

“한니발 장군께 승리를!”

로마 기병대의 맨 앞에 있던 병사들은 곤두박질치듯 저돌적으로 덤벼드는 이베리아족 중기병들의 랜스를 온몸으로 받아 낼 수밖에 없었다.

―투콰가가가각!

굵은 나무로 만든 랜스와 로마 기병대의 갈비뼈가 함께 부러지며 소름 끼치는 파열음이 아우피디우스강 변에 울려 퍼졌다.

카르타고군의 우익에서도 기병대장 아즈루바알이 지휘하는 누미디아 궁기병 4천 기가 유목민 특유의 히트 앤드 런 전술로 수적으로 우세한 로마의 동맹도시 기병대를 괴롭혔다.

그러나 카르타고군 기병대의 맹활약에도 로마의 집정관 바로는 아직 여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로마군의 기병대가 뒤로 밀려나는 속도가 차츰 줄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로의 동맹도시 기병대는 적의 진로를 막을 생각을 하고 있을 뿐 애초에 누미디아 기병대와 맞붙어 싸울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평소보다 큰 방패를 들고 사슬 마갑을 입힌 말 위에서 적의 화살을 묵묵히 받아 내며 로마 군단병이 카르타고군의 본대를 돌파하기만을 기다렸다.

또한 마하르발이 이끄는 이베리아족 중기병대의 왼편에 흐르고 있는 아우피디우스강 때문에 수가 적은 적 기병대를 포위할 수가 없어 좁은 전장에서의 난전을 강요받고 있었다.

이제 아우피디우스 강변의 양측 기병 사이에는 전장의 스트레스를 이겨 내지 못한 말이 입에 거품을 물고 날뛰는 가운데 처절한 백병전이 벌어졌다.

로마 기병대는 검으로는 뚫기 힘든 경번갑을 입은 이베리아족 중기병들에게 미리 준비해 온 손도끼와 쇠몽둥이를 휘둘렀고 바르카 가문의 기병들도 이에 맞서 적에게 외날검 팔카타를 내질렀다.

양측 기병대는 상대방을 낙마시키기 위해 손에 든 방패를 버리고 적군의 팔을 잡아당기고 난투를 벌였다,

이제 이베리아족 중기병과 로마 기병대의 싸움은 말 등 위에서 무기를 휘두른다는 점만 빼면 보병 간의 전투나 다름없는 형세가 되었다.

반면 로마의 중장 보병대는 압도적인 머릿수로 카르타고군 본대의 중앙을 점점 뒤로 밀어내고 있었다.

집정관 바로는 연락병에게 아군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전황을 보고 받고 큰 소리로 웃으며 소리쳤다.

“하하하하! 전쟁의 신 마르스께서 오늘 우리에게 역사적인 승리를 선물해 주실 모양이구나! 본대에 전해라! 승리가 머지않았으니 더 맹렬하게 적을 밀어붙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한순간 카르타고군에게 불리해 보이던 전황은 단 한 명의 장수가 말에서 떨어지면서 단숨에 뒤집혔다.

“으으윽!”

로마 기병대를 지휘하고 있던 집정관 메틸리우스가 뼈가 부러져 퉁퉁 부어오른 오른팔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고삐를 놓치며 그만 낙마하고 만 것이다.

메틸리우스는 격통에 정신을 잃을 것 같았지만, 조국의 운명을 건 전투에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왼손으로 검을 들었다.

그러자 그의 주변에 있던 로마 기병들이 말에서 내려 분연히 검을 든 집정관을 보고 전우들에게 외쳤다.

“집정관님의 명령이다! 모두 지친 말에서 내려서 적과 싸워라!”

집정관의 명령이라는 말에 로마 기병들은 말에서 내려 가쁜 숨을 내쉬며 로마 기병의 검 스파타를 움켜쥐었다.

원 역사에서 칸나이 전투에서 벌어졌던 행운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카르타고군의 행운은 그저 우연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다.

하스드루발은 역 역사의 칸나이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로마 기병대를 이끌던 아이밀리우스가 투석병의 돌을 맞아 중상을 입고 낙마하자 로마 기병들이 집정관의 행동을 잘못 이해하고 말에서 내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번 전투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발레아레스 투석병 전원을 로마 기병대 맞은편에 배치했고 그 덕분에 행운의 여신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이다.

스키피오는 적과 난전을 벌이던 와중에 갑자기 말에서 내리는 아군을 바라보며 기겁하며 소리쳤다.

“다들 정신이 나간 거냐! 절대 말에서 내리지 마라!”

그러나 혼란스러운 전장에서 그의 명령대로 말에서 내리지 않는 기병은 자신의 친구인 막시무스를 포함해 겨우 50기 정도에 불과했다.

수적 열세에도 강력한 적의 공격을 잘 막아 내던 로마군 기병대는 거대한 군마의 발굽에 짓밟히며 순식간에 패주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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