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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134화 (134/201)

[ 134 ] [133화] 대망의 칸나이 전투 (5)

베리아족 중기병대가 로마 기병대를 압도하기 전까지 한니발이 지휘하는 카르타고군 본대는 로마 군단병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투가 시작되고 경보병끼리의 서전이 끝나자마자 로마 군단병들은 오른손에 든 투창 필라로 커다란 방패의 뒷부분을 두드려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전진했다.

―탕! 탕! 탕! 탕!

전직 집정관 아이밀리우스는 점점 가까워지는 카르타고군 본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여태껏 우리 군단병들이 저런 오합지졸들에게 처참하게 당해 왔단 말인가. 하밀카르의 아들들이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알 수가 없구나.”

적을 향해 전진하는 로마인들의 눈에는 한니발이 지휘하는 보병대가 마치 여러 가지 색깔의 염료를 마구 뿌려 놓은 흰 천처럼 난잡해 보였다.

카르타고군의 초승달 혹은 사다리꼴을 닮은 모양의 진형에는 여러 부족의 병사들이 한데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카르타고군의 최전선에 서 있는 갈리아인 전사들은 색색가지 바지와 미늘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방식대로 머리카락을 석회로 굳혀 세운 탓에 원래 큰 키가 더욱 커 보였다.

덩치 큰 갈리아인 사이사이에는 가장자리만 보라색 염료로 물들인 흰색 튜닉을 입고 청동 가슴받이와 큰 타원형 방패, 그리고 외날검 팔카타로 무장한 히스파니아 출신 중보병들이 섞여 있었다.

또한 그들의 바로 뒤에는 로마군처럼 철제 사슬갑옷과 청동 투구를 착용한 삼니움족 중장보병들이 허리춤에 찬 짧은 직검을 뽑아 들고 갈리아인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로마 군단병을 노려보았다.

양군의 거리가 20m 정도로 좁혀지자 집정관 아이밀리우스가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적군이 투창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다! 투창 개시!”

집정관의 명령을 듣고 나팔수가 뿔나팔을 불자 최전방에서 전진하고 있던 하스타티들이 적을 향해 달려가며 길이 150cm 정도의 가벼운 투창 필라를 일제히 던졌다.

카르타고군의 머리 위로 장대비 같은 투창들이 쏟아져 내리자 미처 방패로 투창을 막지 못한 수백 명의 카르타고군 병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으윽!”

간신히 적의 공격을 막은 갈리아인 전사들은 억센 손으로 방패에 박힌 필라를 뽑아낸 후 로마군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재블린을 던져 응수했다.

“로마의 난쟁이 놈들아! 이거나 먹어라!”

그런 식으로 양군 사이에 투창이 한 번 더 오간 후 마침내 로마 군단병들이 카르타고의 본대를 향해 함성을 지르며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로마 인빅타!”

가장 처음 로마 군단병과 방패를 맞부딪친 카르타고군은 볼록한 초승달 모양 진형의 정중앙에 배치된 갈리아인 병사들이었다.

갈리아인 전사들은 밀물처럼 몰려오는 로마군과 방패를 맞부딪쳤다.

―콰과광!

마침내 전투가 시작되고 본대의 정중앙에 배치된 로마군 최고의 정예병들이 자기들보다 키가 머리 하나는 더 큰 갈리아인들을 저돌적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곧 카르타고군 본대의 양쪽 끝에 배치된 병사들도 로마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면서 칸나이 평야 곳곳에서 함성과 함께 병장기와 갑옷이 부딪치는 거친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바로의 예상과는 달리 기세 좋게 돌격해 온 로마군이 카르타고군을 뒤로 밀어내는 속도는 점점 느려져만 갔다.

카르타고군은 뒤로 밀려나면서도 초승달 모양 대형을 잘 유지했기에 로마군은 적군을 뒤로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점점 더 넓은 전선을 감당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니발의 뛰어난 지휘력은 카르타고군의 수적 열세를 만회하기에 충분했다.

“최전선의 갈리아인 부대와 히스파니아 출신 부대를 교체한다! 신호탄을 쏴라!”

한니발이 명령하자 다시 한번 신호탄의 심지에 불이 붙고 공중으로 노란색 불꽃이 솟아올랐다.

―피유우우우우웅! 파앙!

그러자 최전선에서 로마 군단병의 집요한 공격에 지쳐 가던 갈리아인 병사가 뒤로 빠지면서 커다란 타원형 방패를 든 히스파니아의 병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히스파니아 중보병들은 로마군의 방패에 자신의 방패를 세차게 부딪치면서 방패 위로 드러난 적군의 머리와 어깨를 향해 팔카타를 내질렀다.

그러자 로마군 본대의 곳곳에서 당황한 군단병들의 외침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악!”

“적의 검술이 바뀌었다! 모두 주의해라!”

치열한 전투 중 갈리아인의 팔과 다리를 베는 검술에 익숙해져 있던 로마군은 갑자기 히스파니아인 병사들이 급소를 노리고 팔카타를 찔러 오자 갑자기 변해 버린 적군의 전투 방식에 대응하지 못해 일순간 주춤하고 말았다.

최전방에서 접전이 벌어지고 있을 때, 한니발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벌기 위해 애마 부케팔로스를 타고 초승달 모양 대형 속으로 뛰어들어 병사들을 격려했다.

“모두 잘하고 있다! 아군 기병이 적의 후방을 공격할 때까지 버텨라! 조금만 더 버티면 너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존경하는 장군의 격려를 받은 카르타고군의 병사들은 더욱 분투하며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적군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던 중 드디어 마하르발의 이베리아족 중기병대가 집정관 메틸리우스의 로마 기병대를 물리쳤다는 소식이 연락병을 통해 양군의 최전선에 전해졌다.

한니발은 로마 기병들이 갑자기 말에서 내리는 바람에 쉽게 전투에서 이겼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시원스럽게 웃은 후 말했다.

“로마인들은 늘 우리 카르타고군을 보고 오합지졸이라며 업신여기더니 자기들이야말로 잡병이었구나! 아무래도 적들은 스스로 몸을 사슬로 묶어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바칠 생각인 모양이다!”

그 후 그는 카르타고군 본대 중앙의 병사들에게 적과 계속 교전하면서 조금씩 뒤로 물러나도록 명령했다.

다시 신호탄 여러 개가 공중을 색색 가지 불꽃으로 수 놓자 장군의 명령을 알아들은 카르타고군 장교들이 휘하의 병사들을 조금씩 뒤로 물렸다.

그렇지 않아도 우익의 로마 기병대가 전멸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급했던 전직 집정관 아이밀리우스는 적군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뒤로 밀려나는 모습을 보고 군단병들을 독려했다.

“드디어 적군이 지친 모양이다! 카르타고군을 더 밀어붙여라! 승기를 잡았을 때 적 보병대를 섬멸해야 한다!”

필사적으로 저항하던 적군의 기세가 죽자 사기가 오른 로마 군단병들은 더욱 거세게 전방의 적군을 방패로 밀쳐 내며 전진했다.

그러자 카르타고군의 전방으로 돌출되어 있던 초승달 모양의 밀집 대형은 중앙 부분이 차츰 뒤로 밀리며 모양이 변하기 시작했다.

카르타고군의 본대 대형은 처음에는 앞으로 튀어나와 있던 중앙 부분이 평평하게 펴져 직선이 되더니, 급기야 뒤쪽이 볼록한 모양을 한 초승달 모양으로 바뀌어 갔다.

한니발은 자신의 의도대로 변해 가는 전선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사냥감이 완전히 덫에 걸리겠군. 코끼리 부대에 전투를 준비하라고 전해라!”

한니발의 명령을 받은 연락병 한 명이 후방으로 달려가 코끼리 부대에 장군의 명령을 전하자 본대 뒤편에서 대기 중이던 전투 코끼리 20마리가 일렬로 늘어서서 돌진할 준비를 마쳤다.

마침내 로마 군단병들이 적군의 전선을 붕괴시키겠다는 욕심에 적진 깊숙이 들어와 버려 전선이 뒤가 볼록한 초승달 모양으로 변했을 때, 한니발이 다시 한번 외쳤다.

“코끼리 부대 쪽으로 신호탄을 쏴라!”

그가 외치자마자 폭죽 스무 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솟아올라 하늘을 카르타고의 상징인 자줏빛으로 물들였다.

그와 동시에 초승달 모양 대형의 가장 볼록한 부분에서 버티고 있던 카르타고군 병사 수백 명이 마치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는 듯이 무기를 버리고 뒤 돌아 도망쳐 버렸다.

그 결과 카르타고군의 전선 한가운데에 군데군데 작은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최전방에서 군단병을 지휘하고 있던 아이밀리우스는 그 모습을 보고 전선의 중앙으로 병사들을 몰아갔다.

“드디어 전쟁의 신 마르스께서 우리에게 미소지으셨다! 승리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라!”

로마군의 대열에서 다시 한번 뿔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적진 깊숙이 들어온 전선 중앙의 로마 군단병 중 수백 명이 마침내 카르타고군의 전선을 뚫고 반대편으로 나오는 데 성공했다.

그 바로 뒷줄에 있던 군단병들은 아군이 적 본대를 돌파하는 모습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전선을 돌파했다!”

“우리가 이겼다!”

그러나 막 적진을 돌파한 로마 군단병들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채 발걸음을 멈췄다.

그들의 눈앞에서 카르타고의 코끼리 부대가 지축을 울리며 산을 뽑을 기세로 돌진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뿌우우우우우우!

철갑을 두른 인도코끼리 스무 마리가 고막을 찢을 듯한 울음소리를 내며 달려오자 겁에 질린 최전방의 로마 군단병들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아군 병사들을 밀치며 다시 로마군의 대열 속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도망쳐 코끼리 떼가 몰려온다!”

아이밀리우스는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말에서 내린 뒤 최전방의 군단병들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겁먹지 마라! 적장 한니발이 아무리 잔인한 자라도 자기 병사들의 등 뒤로 코끼리를 돌진시키지는 않을 거다! 적의 기만전술에 넘어가지 마라!”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달리 한니발의 코끼리 부대는 위협만 하고 돌아가지 않았다.

전투 코끼리 부대와 전선의 거리가 100m 정도로 좁혀졌을 때 한니발의 지시로 병사들이 쏜 불꽃이 다시 한번 하늘을 자주색으로 물들였다.

그러자 대열의 중앙을 지키고 있던 카르타고군 병사들은 한니발이 쏘아 올린 불꽃을 보고 미리 훈련받은 대로 코끼리가 지나갈 통로를 만들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양옆으로 비켜났다.

성난 코끼리 떼는 마치 경마장의 빗장이 열리자 트랙으로 뛰쳐나오는 경주마처럼 옆으로 비켜난 카르타고군의 사이를 지나갔다.

현대의 만원 지하철이 연상될 정도로 조밀하게 모여 있는 로마군은 전선의 정중앙에 코끼리 떼가 덮쳐 오자 혼비백산할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악!”

“살려 줘!”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나아가던 로마 군단병들은 전우들이 코끼리의 육중한 발에 짓밟히고 굵은 밧줄 같은 코에 휘감긴 뒤 공중에 던져지는 모습을 보고 근처에 서 있는 아군을 밀치며 달아나려 했다.

아이밀리우스는 코끼리들이 신화에 나오는 괴물처럼 중무장한 군단병을 짓밟는 모습을 망연자실한 눈으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진짜 괴물은 저 코끼리 떼가 아니라 적장 한니발인가··· 그 상황에서 병사들을 한 몸처럼 움직여 코끼리가 지나갈 길을 만들다니··· 오늘은 로마 역사상 최악의 비극이 벌어진 날로 남겠구나······.”

그는 공포에 질린 로마 군단병들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향해 돌진해 오는 코끼리로부터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아이밀리우스는 결연한 표정으로 자신의 눈앞까지 달려온 코끼리의 귀를 향해 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차게 던졌다.

“이야압!”

그러자 화살처럼 날아온 검에 찔려 귀에 상처를 입은 코끼리가 고통스러운 울음소리를 내며 그를 노려보았다.

―뿌우우우우우!

분노한 코끼리는 즉시 굵은 밧줄 같은 코로 그의 허리를 감아 높이 들어 올린 뒤 머리부터 땅에 메다꽂아 버렸다.

“커헉!”

그렇게 아이밀리우스는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목이 부러져 전사하고 말았다.

최전방의 지휘를 담당한 장군이 코끼리에게 당하자 로마 군단병의 지휘체계는 이제 완전히 무너져 내려 로마군 본대 전체가 혼란에 빠져들었다.

아군 본대의 후방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하스드루발은 자신의 등 뒤에 서 있는 북아프리카 중장보병들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제야 우리 차례가 왔다! 모두 적 본대의 측면을 향해 돌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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