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 [134화] 대망의 칸나이 전투 (6)
로마 기병대가 패주하고 전투 코끼리 스무 마리가 로마군 본대의 한가운데에서 난동을 부리면서 이제 전세는 완전히 카르타고군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오직 집정관 바로가 지휘하는 동맹도시 기병대만이 누미디아 궁기병들이 쏘는 화살에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 기병을 잃었는데도 퇴각하지 않고 간신히 진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기병대장 아즈루바알은 도망치는 로마 기병대를 쫓는 대신 휘하의 기병 중 2천 기를 떼어 내 곁에 있던 하급장교에게 지휘를 맡기며 말했다.
“난 이대로 로마군 본대의 후방을 공격하겠다! 넌 마하르발 기병대장님을 도와 아직 버티고 있는 로마군 기병대의 후방을 공격해라!”
아즈루바알의 명령을 받은 장교는 즉시 2천 기의 기병을 이끌고 로마군 본대 좌익을 향해 전속력으로 말을 달렸다.
집정관 바로는 갑자기 후방에서 이베리아족 중기병 2천 기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돌진해 오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참담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저기서 왜 적 기병대가 나타나냔 말이냐! 이미 우익의 아군 기병대가 패주하고 있구나! 모두 퇴각하라!”
그는 전군에 퇴각 명령을 내린 후 앞뒤에서 공격해 오는 바르카 가문의 기병대를 피해 살아남은 동맹도시 기병들을 이끌고 전장에서 빠져나갔다.
하스드루발은 북아프리카 중장보병대를 이끌고 로마군 본대의 측면으로 전진하다 바로가 이끄는 기병대가 패주하는 모습을 보고 부하들에게 외쳤다.
“마하르발과 아즈루바알이 해냈구나! 서둘러라! 오늘 적군을 하나라도 더 처치해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지금까지 본대의 후방에서 대기하며 체력을 온존한 북아프리카 중장보병대는 두 무리로 바람같이 전선으로 달려가 혼란에 빠져 있는 로마군 본대의 좌측과 우측을 포위했다.
북아프리카 중장보병대는 원 역사처럼 긴 창으로 방진을 짜 로마군의 측면을 압박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들은 자루까지 철로 만들어진 히스파니아식 투창 솔리페럼을 오른손에 들고 앞만 보고 있는 적군의 옆구리를 향해 힘차게 던졌다.
북아프리카 중장보병의 손을 떠난 수천 개의 철제 투창이 바다 위를 나는 날치 떼처럼 일제히 적을 향해 날아갔다.
순식간에 로마 군단병 수천 명이 견고한 사슬갑옷도 관통하는 솔리페럼에 옆구리와 허벅지를 꿰뚫려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으아아악!”
“옆에도 적군이 나타났다! 이젠 끝났어!”
북아프리카 중장보병대는 투창을 맞고 사기가 꺾인 로마 군단병의 옆구리를 향해 커다란 원형 방패를 앞으로 내밀고 돌진한 후 자신의 방패 위로 마구 검을 내질렀다.
그러자 최전선의 로마 군단병은 카르타고군 보병대의 압박에 점점 뒤로 밀려났고 원래 평소보다 조밀한 밀집대형을 짜고 있던 로마군의 전열은 만원 버스 안처럼 심하게 압축되어 버렸다.
기병대장 마하르발은 아군의 포위진이 거의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고 누미디아 궁기병들에게 지시했다.
“도망치는 기병을 추격하지 마라! 한니발 장군님을 도와 로마군의 배후를 포위해야 한다!”
이제 로마 군단병들은 적군의 압박에 점점 뒤로 밀리다 마치 커다랗고 둥그런 빵 덩이 같은 모습으로 한 곳에 뭉쳐 버렸다.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이 지휘하는 병사들은 그 주변에 개미 떼처럼 모여들어 바깥쪽의 적군을 도륙해 나갔다.
아직 로마군 대열의 후방은 완전히 포위당하지 않았지만, 기병대장 마하르발이 지휘하는 누미디아 궁기병대가 도착하면 이제 로마군 병사에게 더는 활로가 없을 것이었다.
그런 급박한 상황에서 스키피오는 아직도 친구 막시무스와 함께 겨우 기병 열 기만을 이끌고 로마군 본대의 후방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휘하의 기병들에게 급박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아직 아이밀리우스 전직 집정관님과 게미누스 전직 집정관님께서 살아 계실지도 모른다! 로리카를 입은 장수가 보이면 즉시 구출해서 이 지옥에서 빠져나간다!”
원 역사의 칸나이 전투에서 로마군의 보병은 거의 몰살을 당하다시피 했지만, 개전 초기부터 패주한 로마군 기병들은 절반 이상이 살아남았다.
당시 일개 기병으로 칸나이 전투에 참전했던 스키피오는 집정관으로서 로마군 기병대를 지휘하던 장인 아이밀리우스가 누미디아 궁기병이 던진 투창을 맞고 전사하는 모습을 두 눈에 담은 후 복수를 다짐하며 전장에서 무사히 도망쳤다.
그러나 현재의 아이밀리우스는 집정관에 당선되지 못했기 때문에 관례상 집정관이 맡는 기병 지휘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스키피오와 떨어져 군단병을 지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스키피오는 아이밀리우스가 전사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버지처럼 따르는 장인어른이 아직 살아 있다는 희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
파비우스의 장남 막시무스는 그런 친구의 어깨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스키피오! 정신 차려라! 안타깝지만 이제 포기하고 우리도 퇴각하자! 저 포위망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건 불가능하다고!”
“난 트레비아강 변에서도 독재관님을 구해서 살아 나왔어! 이번에도 가능할지도 몰라! 아버지나 다름없는 분을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다고!”
바로 그때 스키피오와 막시무스의 뒤쪽에서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두두두.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에 누미디아 궁기병 수천 기가 먼발치에서 맹렬하게 돌진해 오는 모습이 비쳤다.
막시무스는 쇄도하는 적 기병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쳤다.
“이런 젠장! 모두 도망쳐라! 살아서 언젠가 오늘의 복수를 하는 거다!”
스키피오도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말머리를 돌려 전장에서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이번만큼은 그에게 미소짓지 않았다.
누미디아 궁기병대는 로마군 기병대를 무시하고 보병의 배후를 공격하라고 명령받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앞에서 얼쩡거리는 적 기병 열두 기를 보고 마구잡이로 화살을 쏘아 댔다.
―쐐애애애액!
수십 개의 화살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활시위를 떠나 로마 기병들의 머리 위로 날아왔고 그중 하나가 스키피오의 왼쪽 눈에 명중했다.
“크아아악!”
스키피오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말 위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 * *
원 역사에서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는 칸나이 전투에서 한니발의 군대에게 포위당한 로마군이 죽어 가는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바깥쪽의 병사들이 쓰러지자 생존자들은 점점 더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 떼 지어 모인 그들은 결국 그들이 서 있는 자리에서 모두 살해당했다.”
현재의 칸나이 평원에서도 로마군의 운명은 원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니발은 애마 부케팔로스를 타고 적군을 완전히 포위한 병사들의 주변을 돌아다니며 명령을 전달했다.
“최전선의 병사를 후방의 병사와 교체해라!”
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바르카 가문의 장교들은 최전선에서 로마군에게 검을 휘두르던 병사들을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과 교체하게 해 휴식을 취하게 했다.
최전선의 병사들이 로마군이 휘두른 검이 아니라 과로로 쓰러지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로마군 병사들은 앞뒤조차 분간할 수 없는 비좁은 공간에 몰아붙여져 제대로 된 저항 한번 해 보지 못하고 카르타고군이 휘두른 검과 창 앞에 쓰러져 갔다.
발레아레스 투석병은 허리에 묶어 두었던 곡사용 슬링을 풀어 성인 남자 주먹 두 개만 한 돌멩이를 로마군 진영 중앙 부분에 계속 던져 댔다.
그렇게 일방적인 학살이 반나절 동안이나 계속되어 칸나이 평야에 석양이 깔리고 나서야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포위섬멸전이 막을 내렸다.
전투가 끝나자 바르카 가문과 삼니움족의 병사들은 아군보다 훨씬 많은 적을 상대로 위대한 승리를 거둔 기쁨에 들떠 우렁찬 환호성을 질러 댔다.
“오오 바알 함몬이시여! 우리가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고!”
“한니발 장군님 만세! 하스드루발 장군님 만세!”
그러나 한니발은 승리의 기쁨에 취한 병사들에게 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긴장을 풀지 마라!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아우피디우스강 건너의 로마군 숙영지에는 여전히 적군이 몇천 명이나 남아 있다!”
그의 말을 듣고 하스드루발이 대답했다.
“아마 강 건너의 적군은 이미 숙영지를 버리고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을 거야. 적군은 전부 보병이니까 기병만 데리고 추격하면 아직 따라잡을 수 있어. 내가 마하르발하고 같이 기병들을 데리고 패잔병을 추격할게.”
“부탁한다. 이번 전투에 사로잡은 포로들은 로마와 강화조약을 맺을 때 쓸 중요한 교환물이야.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잡아 두는 게 좋겠지. 네가 적의 발목을 붙잡고 있으면 기스코가 보병대를 이끌고 곧 도우러 갈 거다.”
하스드루발과 기병대장 마하르발은 이베리아족 중기병과 누미디아 궁기병을 이끌고 즉시 아우피디우스강을 건넜다.
바르카 가문의 기병대가 로마군의 숙영지에 다다르자 그의 예상대로 로마군의 트리아리 5천 명이 숙영지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하스드루발은 도망치는 적군을 보고 휘하의 기병대에게 명령했다.
“적이 도망치려 한다! 돌격하라!”
로마군의 트리아리들은 하스드루발의 기병대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도주를 포기하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전투 경험이 풍부한 그들은 기동력이 좋은 기병들에게 등을 보이고 도망치다 사냥당하는 대신 최후의 저항을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하스드루발도 이미 집정관 세르빌리우스의 군대와 싸우면서 기병만으로 보병을 상대할 때 가장 효율적인 전술을 숙지하고 있었다.
“누미디아 궁기병대는 적 방진의 주위를 돌며 활을 쏴라! 투창의 사정거리에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하급장교들이 장군의 명령을 기병대에 전하자 누미디아 궁기병대가 벌집에서 몰려나오는 벌떼처럼 산개하며 트리아리들의 방패 벽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활을 쏘기 시작했다.
―피유우우우웅!
누미디아 궁기병들은 트리아리들이 창을 들고 달려올 때마다 어김없이 화살을 날려 노병의 팔과 허벅지에 명중시켰다.
“크아악!”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병이 있다는 게 정말이었구나! 모두 방패를 들고 버텨라!”
트리아리들은 로마군의 최선임병답게 지휘관이 없는 상황에서도 일사불란하게 한 곳에 모여 방패로 상하좌우를 모두 막고 귀갑진을 짰다.
하스드루발은 그 모습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순순히 항복하면 적어도 다치지는 않을 것을! 저 중에 아리미눔 전투에서 뭔가 배운 자는 한 명도 없는 것 같구나! 누미다아 궁기병대는 물러서고 이베리아족 중기병대는 전원 돌격하라!”
그의 우렁찬 외침에 트리아리들을 둘러싼 궁기병대가 포위망을 풀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말과 사람이 모두 철갑을 두른 5천 기가 넘는 중기병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고 적을 향해 돌진했다.
―두두두두두두.
그 모습을 본 트리아리들은 방패 벽 뒤에서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궁기병 다음은 중기병이냐! 모두 테스투도를 풀고 창을 들어라!”
트리아리들은 전원 긴 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적 기병의 돌격에 대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베리아족 중기병들은 적군이 방패 벽을 허물고 창을 곧추세울 때까지 기다려 줄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콰가가가가각!
결국 트리아리들은 창을 들어 올리기 전에 온몸으로 육중한 군마의 돌격을 온몸으로 받아 낼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도 처절하게 저항하던 로마군의 노병 5천 명은 약 1천 5백 명의 동료가 전사하고 나서야 하스드루발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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