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141화 (141/201)

[ 141 ] [140화] 새로운 위협 (3)

카르타고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성은 하스드루발이 전차를 타고 항구에서 출발해 시민광장을 지나 비르사 언덕을 둘러싼 성벽 안에 들어선 후에도 계속됐다.

그는 사람이 걷는 속도보다 천천히 지나가는 전차 위에서 거대한 폭포 소리 같은 환호성을 가까운 거리에서 몇십 분이나 듣다 보니 조금 현기증이 났다.

“아... 이젠 귀가 다 얼얼하네. 개선장군이란 게 생각보다 피곤한 역할이구나.”

결국 하스드루발은 카르타고 백인회의 의회 건물 앞에 선 4두마차에서 내리면서 약간 비틀거리고 말았다.

“아... 정신 나갈 것 같애... 그래도 저걸 보고 좋아할 해외파 동지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좀 기운이 나는구만.”

그는 자신이 타고 온 전차 뒤에 일렬로 길게 늘어선 수레 행렬을 바라보았다.

하스드루발의 눈에 우람한 소가 끄는 화려한 장식이 달린 수백 대의 수레에 가득 실려있는 로마군의 갑옷과 무기, 각 부대를 상징하는 군기(軍旗) 따위가 가득 담겨있었다.

“전부 다 가지고 들어가서 의원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만, 건물이 좁아서 무리겠지.”

그는 자신을 수행하는 병사들에게 손가락으로 수레 몇 대를 가리키며 지시했다.

“다른 건 놔두고 금반지만 의회 건물 한가운데에 쌓아둬라. 이거 양이 너무 많아서 일꾼을 몇 명 더 불러와야겠는데.”

어느 정도 재산을 가진 고대 로마의 성인 남자들은 대부분 관습적으로 금으로 만든 인장 반지를 끼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계약을 체결할 때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이 새겨진 도장을 찍었는데, 소중한 인장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금반지에 도장을 새겨 늘 손가락에 끼고 다녔기 때문이다.

바르카 가문의 병사들이 개선장군의 지시대로 로마 군단병에게서 빼앗은 굵직한 금반지를 버드나무로 만든 광주리에 담아서 모두 옮겼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백인회 의회 건물 한가운데에 금으로 된 작은 언덕이 생겼다.

그 자리에 있던 백인회 의원 104명은 지중해 최고의 부국인 카르타고에서도 가장 부유한 자들이었다.

어지간한 금은보화에는 눈길도 돌리지 않을 그들이었지만, 문자 그대로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금덩이를 보고 턱 끝이 목울대에 닿을 기세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스드루발은 보밀카르와 함께 의회 건물 안들로 들어선 후 큰매형이 자기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존경하는 백인회 의원 여러분! 한니발 장군의 군대가 지난 8월 초 이탈리아 남서부의 성채도시 칸나이 부근에서 로마군과 싸워 큰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 금반지는 모두 로마군 전사자와 포로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입니다!”

그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104명의 백인회 의원들이 우레와 같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역시 하밀카르 총독님의 아드님들은 다르군요!”

“이제 우리의 바다를 되찾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백인회 의원들은 숨이 찰 때까지 기쁨의 함성을 질러댔다.

다른 의원들이 숨을 고르느라 환호성이 잠시 잦아들었을 때, 해외파의 중진 의원이자 올해의 수페트인 이테르바알이 흥분을 가라앉히며 하스드루발에게 물었다.

“한니발 장군님과 하스드루발 장군님께서 조국 카르타고를 위해 정말 큰일을 해주셨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이곳에서 뛰쳐나가 축제를 벌이고 싶지만, 관례대로 이 질문을 드려야겠군요. 로마군이 입은 피해와 아군의 피해는 어느 정도나 됩니까?”

“로마군 약 육만 명이 전사했고 삼만 명 정도는 우리 병사들에게 붙잡혀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중에서 로마 시민권자가 아닌 포로 이만 명은 풀어주었습니다. 우리 측 사상자는 오천 명 정도인데 대부분 갈리아인과 삼니움족의 지원군이었습니다.”

그 말에 백인회 의원들은 다시 한번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이미 쉬어버린 목을 혹사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은 로마의 10만 대군을 물리쳤다면 아군의 피해도 작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승리의 기쁨이 배가 되었던 것이다.

하스드루발은 기뻐하는 해외파 동료들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원 역사에서는 지금쯤 대 한노가 한니발 형의 공적을 깎아내리면서 로마하고 정전협정을 맺자고 초를 쳤겠지. 로마는 예상대로 항복하지 않았지만, 카르타고의 수뇌부가 이렇게 일치단결하고 있다면 전쟁을 계속해도 결국 마지막에 웃는 건 우리가 될 거다!’

그때 하스드루발의 큰매형 보밀카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존경하는 동료 의원 여러분! 바르카 가문의 남자들은 우리의 조국을 위해 이처럼 열렬히 숙적 로마와 싸우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카르타고의 귀족들도 손에 검을 들고 저택 깊숙한 곳에 숨겨둔 금고를 열어 로마 정복을 위한 군자금으로 써야 할 때가 됐습니다! 위대한 장군 한니발이 이탈리아에서 로마군을 무찌른 것처럼 우리도 시칠리아의 로마군을 몰아내고 우리의 바다를 되찾도록 합시다!”

카르타고의 백인회 의원들은 시칠리아를 공격할 군대를 편성하자는 보밀카르의 의견에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 * *

카르타고 정부의 수뇌부가 한마음으로 시칠리아 탈환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하자 카르타고 시민들도 고토회복의 꿈에 부풀어 열정적으로 시칠리아 원정을 준비 해나갔다.

시내에서는 대장장이들이 신성대 병사들이 입을 경번갑을 만들기 위해 우츠 강철 주괴를 두들겨댔고 조선공들은 군항에 모여 5단노선 50척과 신형전함 멜카르트 20척을 추가로 건조하기 시작했다.

또 카르타고 정부의 모병관 수백 명이 리비아 속주 곳곳으로 출장을 떠나 카르타고군의 기간병인 리비아인 병사들을 징집했다.

과거 국내파가 집권하던 시절에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마지못해 카르타고 정부의 징집에 응하던 리비아인들은 모병관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자발적으로 무기를 손에 들고 고향을 떠났다.

해외파가 정권을 잡은 후 카르타고 정부는 속주에 대한 세금을 소출의 10%로 낮추고 국내파가 독점하던 토지의 상당 부분을 리비아인에게 싼값으로 팔아왔다.

그 덕분에 리비아 속주민의 카르타고에 대한 충성심이 높아졌던 것이다.

하스드루발은 시칠리아 원정군의 총사령관이 되어달라는 백인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카르타고에 남아 시칠리아 원정 준비 작업을 지휘하는데 몰두했다.

기원전 216년 9월 말의 어느 날 오후.

하스드루발은 전함 건조 감독 임무를 맡은 백인회 의원과 함께 카르타고의 군항 코톤을 시찰하며 전장으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다.

하스드루발은 조선공들이 톱을 움직이고 망치를 휘두를 때마다 배의 모습을 갖춰가는 목재를 희망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멜카르트 쪽은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오단노선 쪽은 시월 초쯤이면 전부 완성되겠군요. 모두 아훈 의원님께서 애써주신 덕분입니다.”

“하스드루발 장군님! 제발 예전처럼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장군님께서 제게 은혜를 베푸시지 않았다면 전 여전히 그리스어 통역이나 하고 있거나 저잣거리에서 잡스러운 물건을 팔고 있었을 겁니다!”

손사래치며 곤란해하는 백인회 의원은 11년 전 하스드루발이 처음 카르타고에서 명품 경매행사를 주최할 때 경매 진행자로 채용한 아훈이었다.

그는 기원전 227년의 경매가 끝난 후에도 바르카 가문의 회계담당자 겸 경매 진행자로 고용되어 좋은 급료를 받았는데, 그것을 밑천으로 자기 사업을 시작해 많은 재산을 모았다.

그 후 히스파니아에서 돌아온 하스드루발이 카르타고에서 국내파를 척결하고 리비-페니키아인에게 시민권을 주고 백인회 의원을 시민의 직접투표로 뽑도록 법을 개정하면서 그의 인생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아훈은 일정 수준 이상의 재산을 가진 시민을 귀족으로 인정하는 카르타고의 법과 관습에 따라 어느 날 갑자기 귀족이 된 데다 리비-페니키아인 출신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백인회 의원직에도 당선된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이 모든 행운을 가져다준 은인 하스드루발이 자신에게 존대하는 것이 영 불편했다.

하스드루발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아훈의 표정을 보고 너털웃음을 웃은 후 말을 이어나갔다.

“존경하는 아훈 의원님. 의원님은 이제 평민도 아니고 바르카 가문의 사용인도 아닙니다. 지체 높은 원로원 의원님들을 제외하면 이 엘리사 여왕의 도시에서 가장 고귀한 분이시지요. 제가 그런 의원님을 하대한다면 카르타고 시민 전체를 모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카르타고 시민을 모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백인회 의원직은 이제 귀족들끼리 밀실에서 쑥덕거려가며 차지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의원님께서 그 자리에 오르신 건 십만 명이 넘는 카르타고 시민들이 심사숙고한 끝에 의원님을 나라를 이끌 뛰어난 인재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귀한 분을 제가 하대한다면 카르타고 시민 전체를 무시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옛 상전의 말에 아훈은 그만 감격의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제 바르카 가문의 사용인은 아니지만, 해외파의 일원으로서 수장이신 하밀카르 총독님과 그 아드님이신 하스드루발 장군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하스드루발은 눈물을 글썽이는 아훈에게 대답 대신 따스한 미소와 함께 손수건을 내밀었다.

바로 그때, 병사 한 명이 군항으로 뛰어들어오며 다급한 목소리로 하스드루발을 불러 두 사람 사이의 훈훈한 정적을 깼다.

“하스드루발 장군님! 하스드루발 장군님! 어디계십니까?!”

하스드루발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이쪽이다! 무슨 일이냐!”

그제야 애타게 찾던 장군을 본 병사는 그에게로 달려와 가쁜 숨을 고르지도 못한 채 말했다.

“보밀카르 의원님께서 급히 장군님을 의회 건물로 모셔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큰매형께서 날 찾으시는 거냐? 지금 시칠리아 원정보다 중요한 일이 뭐가 있다고?”

“누미디아 속주의 부족들끼리 전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지금 전쟁에서 패한 마실리 부족의 왕자 마시니사가 우리에게 지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의회 건물에 와있다고 합니다!”

“뭐라고!”

기원전 3세기에 후반의 누미디아인은 카르타고 서쪽의 평야 지대에서 사는 반유목민으로서 통일 왕국을 이루지 못하고 수백 년 전부터 동부의 마실리족과 서부의 마사에실리족이 현대의 알제리에 해당하는 지역의 지배권을 두고 경쟁해왔다.

두 부족은 인종적으로 같은 베르베르인임에도 상대방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고 끝없이 반목해 왔지만, 카르타고가 누미디아를 속주로 삼은 후로는 두 부족은 서로에 대한 공격을 멈추었다.

카르타고 정부가 속주민끼리 내전을 벌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스드루발은 카르타고의 세력이 여전히 건재한 상황에서 누미디아인들이 갑자기 내전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원 역사에서도 마사에실리족이 로마 편에 붙어서 카르타고와 마실리족의 뒤통수를 치긴 하지만, 그건 기원전 206년에나 벌어지는 일일 텐데? 누미디아 속주는 정예 경기병대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중요한 곳이다. 절대로 잃어서는 안 돼!’

그는 병사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느긋하게 걸어서 비르사 언덕을 올라갈 시간이 없겠구나! 당장 내가 탈 말을 준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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