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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156화 (156/201)

[ 156 ] [155화] 하스드루발 라이징 (1)

하스드루발은 형 한니발이 강적 마르켈루스와 전투를 벌이기 시작한 후 이집트 원정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는 큰 매형 보밀카르와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 나갔다.

“매형. 적장 마르켈루스가 한니발 형을 쫓아다니면서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고 합니다. 늦어도 올해 안에는 이집트를 정리해야 이번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네.”

원 역사에서 한니발이 마르켈루스와 여러 차례 소규모 전투를 벌이다 잃은 병사를 다 합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1만 명 이상.

하스드루발은 어떻게든 이탈리아에 있는 한니발의 군대가 입게 될 손실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카르타고는 아직도 남부 이탈리아를 잃은 로마 연합에 비해 인구가 턱없이 적어 병력을 충원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칸나이 전투 이후 신체 건강한 성인 남자는 무산자도 모두 군역을 지는 로마와 달리 카르타고는 아직 각 가정의 장남만을 신성대에 징집하고 있어 정예병을 충원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니발이 실전으로 다져진 경험과 기술을 갖춘 바르카 가문의 최정예병을 만 단위로 잃는다면 바르카 가문의 로마 정벌이 지연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보밀카르는 잠시 눈을 감고 궁리하다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혹시 셀레우코스 제국의 안티오코스 왕이 혼자서 이집트를 박살 내 주지는 않을까?”

“아무래도 어렵겠죠. 두 나라는 군사력이 비등비등한 데다 로마와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파라오에게 지원군을 보냈다더군요.”

“하아··· 그러면 역으로 셀레우코스 제국이 이집트에게 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인 상황이군.”

하스드루발은 며칠 전 카르타고를 드나드는 그리스인 무역상에게 로마와 손을 잡은 그리스 도시국가 연합이 알렉산드리아로 최소 1만 명의 중장보병을 지원군으로 보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거기에 로마에 심어 둔 첩자들에게서도 셀레우코스 제국이 로마의 중요한 식량 공급원인 이집트를 집어삼키는 것을 막기 위해 프톨레마이오스 왕에게 법무관이 지휘하는 1개 군단을 급파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럼에도 셀레우코스 제국의 안티오코스 왕은 과감하게 군사를 일으켜 이집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티오코스 왕은 내치능력은 뛰어나도 군사적 재능이 아주 출중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하스드루발은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험을 해 보기로 마음먹고 보밀카르에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대로 시칠리아에 도사리고 있는 로마군을 견제하느라 이집트 원정에 총력을 기울일 수는 없지요. 이대로 양면 전쟁을 벌여 봐야 이집트와 로마의 연합군에 각개격파 당할 뿐입니다. 차라리 남진하고 있는 안티오코스 왕에게 지원군을 보내서 적군을 한꺼번에 쳐부수는 게 제일 합리적일 것 같네요.”

지금의 이집트나 셀레우코스 제국을 비롯한 디아도코이 제국의 통치 구조는 하나같이 소수의 그리스인 지배계층이 다수의 원주민을 다스리는 식으로 짜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그런데 디아도코이 제국들의 그리스인 지배계층은 그리스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원주민을 가혹하게 수탈하고 그들이 정계에 진출하는 것을 철저히 막아 왔다.

그렇기 때문에 디아도코이 제국은 왕의 군대가 큰 전투에서 한 번이라도 지면 나라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 국력이 크게 약화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보밀카르는 하스드루발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처남 말대로만 된다면 확실히 그게 최선이겠지. 이집트는 로마와는 달리 딱 한 번만 전투에서 크게 져도 무너져 내릴 테니까 말이야. 그렇지만 우리가 지원군을 보내도 상대 쪽이 수적으로 조금 우세할 거 같은데.”

“그거에 대해서는 저도 생각이 있어요. 원정 준비를 하시면서 카르타고 시내에 은근히 우리가 함대를 이끌고 알렉산드리아에 상륙작전을 펼칠 거라는 소문을 퍼트려 주세요.”

“아! 일부러 로마의 첩자 귀에 거짓 정보가 들어가게 하려는 거구나! 로마 원로원이 바보가 아닌 이상 카르타고 시내에 첩자 몇 명 정도는 심어 뒀겠지!”

“맞아요. 그러면 파라오도 불안해서라도 알렉산드리아에 수비병을 더 많이 남기고 셀레우코스 제국군과 싸우러 갈 수밖에 없겠지요.”

“알았어! 그럼 바로 준비를 시작하자. 난 함대와 보급품을 준비할 테니까 처남은 모병관을 지휘해 줘.”

* * *

하스드루발은 보밀카르와의 대화를 마치고 카르타고의 모병관 수십 명을 리비아와 누미디아 속주 곳곳으로 급파했다.

그러나 이미 본국 카르타고가 시칠리아 서남부의 주요 도시 릴리바이움을 공략하는 데 적지 않은 병력을 투입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모병관들이 모아 온 리비아 출신 보병은 7천 명이 전부였다.

반면 기병 쪽은 사정이 훨씬 나았다.

하스드루발 덕에 누미디아 지역 전체를 다스리게 된 마실리 족의 왕 가이아가 자신의 아들 마시니사 왕자와 함께 투창기병을 4천 기나 보내왔기 때문이다.

하스드루발은 바르카 가문의 저택 서재에서 모병관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읽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중장보병을 좀 보충하면 되겠네. 바알 함몬 신전에 가서 아쉬운 소리를 해야겠군.”

그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비르사 언덕을 올라 바알 함몬의 신전으로 찾아갔다.

하스드루발은 신전의 입구를 지나 여전히 근엄한 자세로 옥좌에 앉아 있는 바알 함몬의 신상 앞으로 다가갔다.

“네 살 때 여기서 로마 정벌을 맹세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렇게 커 보이던 신상이 이젠 작아 보이네.”

그때, 추억에 잠겨 있는 그의 뒤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스드루발 장군님!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장군님께서 바알 함몬님의 신상 앞에 어린 시절 그때처럼 서 계신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풍성한 흰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신관이 두 팔을 벌리며 그를 맞이했다.

하스드루발은 공손하게 인사하며 신관에게 대답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하밀카르 바르카의 아들인 하스드루발입니다. 아마 제가 네 살 때 한니발 형과 함께 로마에 복수를 맹세할 때 함께 계셨던 신관이신 모양이군요.”

“맞습니다! 그때는 저도 팔팔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늙어 버렸군요. 그래도 저와 이름이 같은 바르카 가문의 젊은 영웅께서 전장에서 활약하셨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저도 스무 살 먹은 청년처럼 심장이 뛰곤 한답니다!”

“혹시··· 신관님께서도 성함이 하스드루발이십니까?”

“이런! 내 정신 좀 보게! 너무 흥분한 나머지 아직 제 소개도 드리지 않았군요.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저는 바알 함몬 신전의 대제사장 한니발이라고 합니다.”

하스드루발은 대제사장의 대답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쉰 후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셨군요. 제 형을 대신해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제가 드려야지요. 바르카 가문 덕분에 엘리사 여왕의 도시가 다시 빼앗긴 바다를 되찾아 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보밀카르 의원님께서 앞서 보내신 하인에게 말씀 들었습니다. 바알 함몬 신전에서 신성대를 징집하고 싶으시다고요?”

“맞습니다. 다른 신전의 신성대는 이미 시칠리아 전선에 투입됐다고 하더군요. 부디 이집트 원정에 번개의 신이신 바알 함몬을 섬기는 신성대를 동원하도록 허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승낙하고말고요! 신성대 대원들도 카르타고 최고의 영웅이신 하스드루발 장군님과 함께 전장에 서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할 겁니다. 마침 신성대가 훈련 중인데 함께 훈련장에 방문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좋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신성대 대원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던 참이었습니다.”

하스드루발은 대제사장과의 대화를 마친 후 그의 안내를 받으며 카르타고 성벽 밖에 지어진 신성대의 훈련장으로 향했다.

대제사장 일행이 목적지에 도착하자 넓은 공터에 마련된 훈련장에 수천 명의 중장보병과 중기병이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이 하스드루발의 눈에 들어왔다.

신성대의 중장보병대는 중대 단위로 진형을 짜며 한 몸처럼 움직여 적군 전열의 빈틈을 파고드는 훈련을 하고 있었고, 빛나는 경번갑을 두른 중기병들은 랜스를 들고 돌격해 허수아비를 맞추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하스드루발은 그런 신성대원들을 보고 감탄하며 대제사장에게 말했다.

“놀랍군요! 일사불란하게 진형을 바꾸는 모습이 아직 실전 경험이 별로 없는 병사들로 보이질 않습니다! 기병대의 마상 전투 실력도 상당하고 말입니다!”

“모두 하스드루발 장군님께서 백인회 의원으로 계시던 시절 무관을 시험으로 뽑는 제도를 도입하신 덕분입니다. 재능 있는 하급장교들이 많아지니 자연히 병사들의 실력도 좋아졌지요.”

“과찬이십니다. 전 그저 방향만 제시했을 뿐 전부 카르타고 시민 여러분께서 해내신 일이지요.”

“그리스인이라면 이미 서사시의 주인공이 될 만큼 큰 업적을 남기신 분이 겸손하기까지 하시군요. 아! 아직 놀라실 일이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정말 기대되네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보여 드리겠습니다.”

대제사장은 훈련을 담당하는 신성대의 장교를 부른 후 그에게 말했다.

“잠시 훈련을 멈추고 하스드루발 바르카 장군님께 기병대를 소개해 드려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대제사장님.”

장교는 대제사장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후 랜스차징 훈련을 하고 있는 기병대를 향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하스드루발 기병대! 집합!”

장교의 외침이 훈련장에 울려 퍼지자 1천 기의 기병이 하스드루발의 앞으로 몰려와 가지런히 정렬했다.

하스드루발은 벙찐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대제사장에게 말했다.

“대제사장님. 제가 뭘 잘못 들은 모양입니다. 방금 하스드루발 기병대라고 들렸던 것 같은데······.”

“잘못 들으신 게 아닙니다. 바알 함몬 신전의 기병대의 정식 명칭은 ‘신성 하스드루발 기병대’로 지었습니다.”

“아무리 제가 이 기병대를 지휘하는 첫 지휘관이 되긴 하겠지만, 제 이름을 부대 이름으로 삼으신 건 뜻밖이군요.”

“아! 그런 게 아닙니다. 저 친구들 이름이 모두 하스드루발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겁니다.”

“네???”

“몇 년 전부터 평소 장군님을 존경해 온 청년들이 장남이 아닌데도 신성대에 많이 지원해 왔습니다. 그중 대다수가 이름이 하스드루발이었지요. 그래서 제가 장군님의 업적을 기리고자 이름이 하스드루발인 대원만 모아 따로 기병대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신께 봉사해야 할 부대의 이름을 개인 이름으로 짓는 건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 문제 없습니다! 하스드루발은 ‘바알의 도움’이라는 뜻 아닙니까! 바알 함몬 신전의 신성대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은 없을 겁니다!”

하스드루발은 기쁨으로 가득 찬 대제사장의 표정을 보고 그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십만 하스드루발 양병설 같은 거 퍼질까 봐 두려워했던 적이 있었는데, 불길한 예감은 항상 맞는다니까··· 이다음에 자식을 낳으면 절대로 유니크한 이름을 지어 줘야지.’

* * *

기원전 215년 6월 말.

하스드루발은 드디어 모든 준비를 마치고 1만 5천 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이집트 원정길에 올랐다.

그는 원정에 필요한 보급품과 무기를 수송선에 싣는 과정을 직접 감독한 후 맨 마지막에 기함의 갑판에 올랐다.

장군이 승선하자 기함의 선장이 하스드루발에게 물었다.

“하스드루발 장군님. 항로를 어디로 잡으면 되겠습니까?”

“지중해 동쪽 끝에 있는 라피아 지역으로 가자! 거기서 셀레우코스 제국군과 합류해 이집트와 로마의 연합군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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