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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159화 (159/201)

[ 159 ] [158화] 하스드루발 라이징 (4)

“저 북아프리카의 야만인들이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전장에 마차를 왜 저렇게 많이 가지고 나온 거지?”

로마 군단의 지휘자 법무관 포스투미우스는 말 두 마리가 끄는 커다란 마차 50대를 모는 리비아 병사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마차 부대의 전방 약 500m 앞에는 언제든 적을 향해 돌진할 준비가 되어 있는 코끼리 73마리가 버티고 있었다.

아무리 북아프리카 코끼리가 인도코끼리보다 덩치가 작아도 나무로 만든 수레쯤은 얼마든지 밟아서 부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포스투미우스는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카르타고군 병사들이 느리지만 꾸준히 수레를 몰며 다가오는 것을 보자 영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파스케스를 들고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여섯 릭토르 중 한 명이 법무관에게 말했다.

“전에 북이탈리아의 전장에서 돌아온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갈리아인 중에는 말 두 마리가 끄는 전차에 병사를 가득 실어서 전장으로 나르는 부족도 있었다고 합니다. 카르타고군에는 갈리아인이 많으니 마차를 사용해 그 전술을 시도하려는 게 아닐까요?”

릭토르의 말을 듣자 포스투미우스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현재 이집트―로마 연합군이 카르타고―셀레우코스 제국 연합군보다 앞서는 점은 디아도코이 왕국의 주력 보병인 팔랑기타이의 수가 적보다 많다는 것뿐이다.

길이가 6m가 넘는 창 사리사를 사용하는 팔랑기타이는 평지에서 정면의 적과 전투를 벌일 때면 무적의 전투력을 자랑하지만, 그만큼 측면과 후방에서 공격해 오는 적에게는 극도로 취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카르타고군 병사들이 마차를 타고 이집트군 본대 후방으로 돌아간다면 이번 전투는 칸나이의 재탕이 될 게 불을 보듯 뻔했다.

포스투미우스는 다급한 목소리로 그에게 대답한 릭토르에게 지시했다.

“당장 전투 코끼리 부대를 지휘하는 장교에게 가서 카르타고군의 마차를 부숴 버리라고 전해라! 적장 하스드루발이 또 무슨 일을 꾸미기 전에 미리 막아야 한다!”

그러자 그와 대화하던 릭토르는 즉시 전투 코끼리 부대를 향해 말을 달려 법무관의 말을 전했다.

이집트군의 전투 코끼리 부대 대장은 그렇지 않아도 전장에 짐마차가 나타난 것을 괴상하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군 지휘관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전투 코끼리 부대! 전방의 짐마차를 향해 전진하라!”

부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이집트군의 전투 코끼리 73마리가 짐마차를 향해 서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코끼리가 500m나 되는 거리를 전력 질주하면 적군과 싸우기도 전에 지쳐 버리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카르타고군의 리비아 병사들은 여유롭게 사전에 하스드루발이 지시한 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아군과 이집트군의 전투 코끼리 부대와의 거리가 적당히 좁혀지자 뚜껑이 덮여 있는 마차에 타고 있던 리비아 병사들이 품에 살아 있는 돼지를 안고 뛰쳐나왔다.

이집트의 코끼리 기수들은 그런 적군의 모습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수군거렸다.

“돼지? 저 녀석들 돼지로 코끼리를 막으려고 하는 건가? 대체 무슨 생각이지?”

“알 게 뭐야? 명령대로 얼른 해치워 버리기나 하자고.”

그러나 태평한 이집트인들과는 달리 로마의 법무관 포스투미우스는 리비아 병사들이 안고 있는 돼지를 보며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어서 코끼리를 물려! 누가 저 멍청한 이집트 놈들을 말리고 와라!”

기원전 275년 로마인은 로마를 공격한 에레이로스의 왕 피로스와 마지막 전투를 벌일 때 전신에 송진을 발라 불을 붙인 돼지 떼를 적의 전투 코끼리 부대로 달려가게 해 코끼리를 혼란에 빠트려 승리한 적이 있다.

그렇기에 포스투미우스는 돼지를 보자마자 하스드루발의 의도를 알아챈 것이다.

그러나 그의 다급한 외침은 이미 앞서 나가 버린 이집트군의 전투 코끼리 부대에 닿지 않았다.

리비아 병사들은 즉시 안고 있던 돼지를 땅에 내려놓은 후 꼬리에 발라 둔 타르와 등에 묶어 둔 폭죽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1천 마리의 돼지가 무작정 앞을 향해 달려 나갔다.

아직 그다지 품종개량이 되지 않아 조금 큰 개와 비슷할 정도로 작은 돼지들이 코끼리의 다리 사이를 빠른 속도로 지나다니며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 댔다.

―뀌이이이이이익!

이집트군의 코끼리들은 돼지의 울음소리에 놀라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날뛰었다.

이집트군의 코끼리 기수들은 난동을 부리는 코끼리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바로 그때 돼지의 등에 묶어 놓은 폭죽이 일제히 불꽃을 뿜었다.

―피유우우우웅! 파앙!

곳곳에서 폭발음이 터져 나오고 불꽃이 터져 나오자 이집트군의 코끼리들은 완전히 패닉에 빠져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며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뿌우우우우우우우!

파라오의 근위대와 로마군 병사 중 상당수가 폭죽 소리에 놀라 귀를 막고 허리를 숙이고 있다가 그만 아군을 향해 달려오는 코끼리 73마리에게 짓밟히거나 부딪치며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악!”

“코끼리가 미쳐 날뛴다! 모두 피해! 으아악!”

이집트군의 코끼리 기수 중 아홉 명이 이럴 때를 대비해 가지고 있던 망치로 코끼리의 급소인 뒷목에 큰 못을 박아 넣어 즉사시켰다.

그러나 기수를 일찌감치 등에서 떨쳐 낸 나머지 코끼리들은 여전히 미쳐 날뛰며 이집트군과 로마군을 깔아뭉갰다.

하스드루발은 8만 5천 대군을 지휘하기 위해 가장 키가 큰 인도코끼리를 타고 대열의 후방에서 전장을 주시하다 이집트―로마 연합군의 좌익이 패퇴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전 기병대! 전진!”

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와 함께 코끼리 등에 타고 있던 병사가 신호탄을 쏘는 대신 깃발을 흔들었다.

카르타고―셀레우코스 제국 연합군 좌익과 우익의 기병대는 하스드루발이 타고 있는 코끼리 등 위에서 자주색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자마자 눈앞의 적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파라오가 지휘하는 이집트 중기병대도 안티오코스 왕이 이끄는 제국의 정예기병대를 향해 서서히 전진했다.

그러나 로마군 기병대는 아군 코끼리의 폭주로 모두 패주해 버렸기 때문에 카르타고군 기병대의 앞길을 막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두두두두두두두.

랜스를 앞으로 세운 신성 하스드루발 기병대가 황량한 라피아 평원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텅 비어 버린 이집트군 본대의 왼쪽 측면을 성난 황소처럼 들이받았다.

―투콰가가가각!

이집트군 본대 좌측의 팔랑기타이 중 수천 명이 철갑을 두른 1천 명의 하스드루발이 빗발치자 랜스에 옆구리를 꿰뚫리고 거대한 군마에 부딪혀 쓰러지며 즉사했다.

이집트군의 우익에서도 약자에게는 강한 안티오코스 왕이 이끄는 기병대가 군사적 재능이 없다시피 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의 기병대를 압도했다.

안티오코스 왕은 파라오를 호위하는 기병을 향해 말을 달리며 길이가 2m 정도 되는 마상창을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가 파라오를 호위하는 기병의 가슴팍을 찌르는 동시에 놓아 버렸다.

그러자 프톨레마이오스 왕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내뱉었다.

“히이익!”

그는 바로 옆에서 부하가 가슴에서 피를 흘리며 낙마하는 모습을 보고 겁을 집어먹고는 곧바로 말머리를 뒤로 돌려 전장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안티오코스 왕은 말없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고는 부하들을 내버려 두고 도망치는 파라오를 추격했다.

전장에 남은 이집트군 보병대는 본대의 좌측면과 후방을 카르타고 기병대에게 공격당하고 총사령관이 전장에서 도망쳐 버리는 바람에 진형이 흐트러져 버리고 말았다.

하스드루발은 적군이 갈팡질팡하는 틈을 놓치지 않고 이집트군 본대에 결정타를 날렸다.

“전투 코끼리 부대! 돌격!”

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카르타고―셀레우코스 제국 본대 앞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철갑을 두른 전투 코끼리 101마리가 적을 향해 전진했다.

이집트군의 팔랑기타이들은 아직 무너진 지휘 체계를 회복하지 못하고 적의 전투 코끼리 부대가 서서히 다가오는데도 진형을 새로 짜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만 있었다.

결국 그들은 진형을 다시 갖추기 전에 지축을 울리며 달려오는 전투 코끼리 부대의 돌격을 정면에서 받아 낼 수밖에 없었다.

―빠오오오오오!

신화 속에 나오는 괴수처럼 무섭게 날뛰는 셀레우코스 제국의 전투 코끼리 부대는 절구통 같은 발로 바닥에 넘어진 이집트군 병사를 짓밟고 긴 코를 휘둘러 적군을 후려쳐 공중으로 날려 버렸다.

“으아아아아!”

“사람 살려!”

코끼리 등 위에 얹은 탑 속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궁수들은 적군이 도망가자 병사들의 등에 차례로 화살을 발사했다.

하스드루발은 완전히 혼돈의 도가니가 되어 버린 적진을 바라보며 기쁜 듯 소리쳤다.

“됐다! 모두 미리 계획한 대로 잘 돌아갔어! 낫전차는 쓸 일도 없겠네! 이제 마지막이다! 전군! 전진 앞으로!”

황량한 평원에 사령관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카르타고와 셀레우코스 제국의 병사들은 창과 검을 움켜쥐고 이미 전의를 상실한 적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 * *

마케도니아를 제외한 전 지중해 세계의 모든 강대국이 참여한 대규모 전투는 그렇게 카르타고와 셀레우코스 제국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집트와 로마의 보병대는 백 마리가 넘는 인도코끼리가 휘젓고 난 직후에 셀레우코스 제국의 팔랑기타이에게 정면에서 공격당해 완전히 와해되어 버렸다.

이집트―로마 연합군에서 오직 이집트 원주민 출신 병사들만이 최후까지 저항했지만, 그들도 지중해 세계 최고의 정예병인 카르타고 신성대 병사와 은방패 부대의 협공을 버텨 내지 못하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카르타고―셀레우코스 제국 연합군이 입은 피해는 코끼리 두 마리와 병사 약 8백 명, 반면 이집트―로마 연합군의 사상자는 약 3만 명을 넘어섰다.

포위섬멸 대신 전투가 시작하자마자 적의 사기를 꺾어 버린다는 하스드루발의 전략이 잘 먹힌 덕에 거둔 대승이었다.

안티오코스 왕은 숙적 프톨레마이오스 왕을 붙잡아 포박한 후 뒤늦게 전투가 끝난 전장으로 돌아온 후 적의 9만 대군과 싸운 뒤에도 거의 줄어들지 않은 제국군을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군영으로 돌아온 후 자신의 막사에 휘하의 모든 장군을 부른 후 격하게 하스드루발을 칭찬했다.

“하스드루발! 자네는 형 한니발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명장이었군! 정말 잘해 주었네! 역사에 남을 위대한 승리를 이뤄 냈어!”

“과분한 칭찬에 감사드립니다. 안티오코스 폐하.”

“그런 말 말게! 지나친 겸손은 오히려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는 법이네! 뭐든 내게 원하는 걸 말하게. 내 왕위를 달라는 것만 빼고는 뭐든 들어주겠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폐하께 드리고 싶은 부탁이 두 가지 있습니다.”

“뭔가? 어서 말해 보게.”

“하나는 허락하신다면 이번 전투에서 붙잡은 포로 중 이집트 원주민 출신인 자들을 전리품으로 받고 싶습니다.”

“로마의 법무관이 아니라 이집트 원주민을? 나야 상관없지만 정말 괜찮겠나? 그자들은 대부분 가난뱅이네. 아마 거의 다 자기 몸값을 지불할 재산도 없을 텐데?”

“저도 그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껏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나 왔지만, 자네 속은 정말 읽을 수가 없군. 자네의 청을 들어주겠네. 두 번째 부탁은 뭔가?”

“로마군에게서 빼앗은 갑옷과 무기를 전부 받아도 되겠습니까? 대신 그것과 이집트 원주민 출신 포로를 제외한 다른 전리품은 모두 포기하겠습니다.”

“그것도 어려울 것 없는 부탁이군. 알겠네. 그렇게 하세.”

“그리고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그게 뭔가?”

“일전에 이집트 영토에 있는 북아프리카의 항구도시 중 한 곳을 제가 점령해도 된다고 말씀하신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알고 있어도 괜찮겠습니까?”

“제왕은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네. 자네가 원한다면 짐의 인장을 찍은 조약서를 주도록 하지.”

“폐하의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스드루발은 안티오코스 왕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며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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