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160화 (160/201)

[ 160 ] [159화] 최고의 전리품 (1)

하스드루발은 안티오코스 왕과의 대화를 마친 후 카르타고군의 숙영지로 돌아가 휴식을 취한 후 전투가 끝난 다음 날 점심부터 성대한 연회를 열어 병사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안티오코스 왕은 하스드루발이 큰 가치가 없는 전리품만 골라 가져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그에게 전장까지 데리고 온 궁중 요리사 무리를 보내 연회 음식을 준비하게 했다.

카르타고군 병사들은 갖가지 향신료를 뿌려 구운 양고기와 페르시아풍의 두툼한 석류 케이크 따위를 먹고 시리아산 최고급 와인을 마시며 위대한 승리를 거둔 장군을 칭송했다.

“카르타고 최고의 명장! 하스드루발 바르카 장군님 만세!”

만취한 리비아인 병사 중 한 명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나무로 만든 술잔을 높이 들고 소리치자 다른 병사들도 덩달아 술잔을 높이 들며 만세를 외쳤다.

마시니사 왕자는 그런 병사들을 보고 미소지으며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는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하스드루발 장군님. 아무래도 카르타고의 병사들은 자기 부인보다 장군님을 더 사랑하는 것 같군요!”

“왕자님! 그 무슨 징그러운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알프스산맥의 만년설처럼 순수한 이성애자란 말입니다!”

조금 술기운이 오른 마시니사 왕자는 하스드루발의 그저 그런 농담에 낄낄거리며 웃었다.

두 사람은 함께 같은 전쟁에 서고 술잔을 부딪치는 사이 나날이 사이가 가까워져 가는 중이었다.

마시니사 왕자는 웃음을 멈추고 소금을 뿌려 구운 돼지고기를 한입 베어 먹은 후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돼지고기는 태어나서 처음 먹어 봅니다. 육즙이 많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훨씬 맛있군요.”

“네? 아아··· 누미디아인은 대부분 유목민이니 그러실 수밖에 없었겠군요.”

“맞습니다. 돼지는 데리고 다니기 힘들고 귀한 곡식을 먹어 치우는 동물이라 누미디아인 중에서는 기르는 사람이 거의 없지요. 아마 한 명도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입니까?”

“농담이 아닙니다. 하긴 이까짓 돼지고기 처음 먹어 본 게 무슨 대수로운 일이겠습니까?! 누미디아인 중에서 최초로 집보다 큰 배를 타고 만 스타디온이나 떨어져 있는 곳까지 항해해 동방을 지배하는 제왕과 함께 전장에서 말을 달렸는데 말입니다!”

“그뿐입니까? 이번 전투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가시면 마실리족의 노래꾼들이 왕자님의 영웅적인 활약을 기린 노래를 만들어 놨을지도 모르지요!”

“그럴 리가요! 이번 전투에서는 장군님께서 대활약하시는 바람에 저는 패잔병을 붙잡아 온 것 말고는 한 게 없지 않습니까! 고향에 돌아가면 친구들에게 ‘하이에나 마시니사’ 같은 별명으로나 불리지 않으면 다행일 겁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하스드루발이 마시니사 왕자의 시답잖은 농담을 듣고 키득키득 웃어 댔다.

두 사람은 잠시 자신의 어깨에 걸린 한 나라의 장군과 왕자라는 무거운 지위를 잊고 그저 한창 활력 넘치는 20대 초중반의 청년답게 격식 없는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한참을 웃고 떠들던 중 마시니사가 분위기를 잡더니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저··· 하스드루발 장군님. 긴히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해 보시지요. 마시니사 장군님. 제 능력이 닿는 한도에서 뭐든 들어드리겠습니다.”

“로마와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기병대장으로서 장군님의 곁에서 계속 싸우고 싶습니다.”

젊은 마실리족 왕자의 말을 듣고 하스드루발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예아~’

그는 이번 전투를 치르며 원 역사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조차도 탐낸 마시니사 왕자의 출중한 통솔력과 마상 전투 능력을 두 눈으로 확인한 터였다.

누미디아의 젊은 왕자는 그렇지 않아도 아직 우수한 장수가 부족한 카르타고로서는 꼭 필요한 인재임에 분명했다.

그러나 현재 마시니사 왕자는 하나밖에 없던 형이 몇 달 전 마사에실리족의 시팍스 왕이 이끄는 반란군과 싸우다 전사하고 현재 마실리족의 제1위 왕위 계승권자인 몸.

마실리족의 왕 가이아의 허락 없이는 본인이 원한다고 화살과 투창이 빗발치는 전장을 떠돌 수 없는 입장이었다.

하스드루발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젊은 마실리족의 왕자의 말이 술김에 나온 것인지 진심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짐짓 곤란해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마시니사 왕자님과 함께라면 분명 로마 정복의 꿈을 몇 년은 앞당길 수 있겠지요. 하지만 과연 가이아 전하께서 하나 남은 아드님을 전장에 나가도록 허락하실지······.”

“아바마마의 허락이라면 누미디아에 돌아간 다음 제가 꼭 받아 내겠습니다! 부디 장군님 곁에서 말을 달리며 후세에 이름을 남기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더는 왕자님의 청을 거절할 수 없군요. 알겠습니다. 제 부대의 기병대장 자리를 하나 비워 놓고 왕자님께서 가이아 전하의 허락을 받아 오실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스드루발 장군님! 정말 감사합니다! 절대로 장군님을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하스드루발은 기쁨을 숨기지 못하며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는 마시니사 왕자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하긴. 나야말로 절을 하고 싶은 심정인데.’

* * *

카르타고와 마실리족의 병사들이 연회를 즐기는 사이 안티오코스 왕은 하스드루발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신속하게 수만 명의 포로 중에서 이집트 원주민 출신자를 선별하고 로마군의 갑옷과 무기를 수레에 실었다.

선별 작업을 마친 후 셀레우코스 제국의 병사들은 이집트 원주민 출신 포로 약 1만 명의 손목에 튼튼한 철로 만든 수갑을 채워 로마군의 무구가 실린 수레와 함께 카르타고군의 숙영지로 끌고 갔다.

하스드루발은 연회가 끝난 다음 날 오후에 안티오코스 왕이 보낸 전리품이 숙영지에 도착한 것을 확인한 후 곁에 있던 마시니사 왕자에게 말했다.

“안티오코스 폐하께서 벌써 제가 요청한 전리품을 보내 주셨군요! 이걸로 이번 전투에서 고생한 대가를 몇 배로 돌려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집트 원주민 포로와 로마군의 무구로 말입니까···? 제가 아직 식견이 부족해 장군님의 깊은 속을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군요.”

마시니사 왕자는 말을 마친 후 넋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이집트 원주민 포로 무리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의 곁에 있던 카르타고군의 다른 장교들도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누미디아의 젊은 왕자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집트 원주민 포로 중 상당수는 전투 중 부상을 입어 노예로 팔기로도 어려워 보였고 로마 군단병의 갑옷과 무기는 품질이 양호하기는 하지만, 카르타고군의 우츠 강철로 만든 무구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스드루발은 젊은 왕자와 부관들의 마음을 짐작하고는 그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이해시키기 위해 말을 이어 나갔다.

“마시니사 왕자님. 혹시 낚시를 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어렸을 때부터 멧돼지나 사슴은 자주 사냥했지만, 아직 물고기를 낚아 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낚시는 사냥처럼 사냥감과 진검승부를 하는 고양감은 없지만, 지렁이나 작은 물고기를 미끼로 삼아 힘을 많이 들이지 않고 큰 수확을 얻는 재미가 있습니다. 앞으로 몇 주 안에 저 포로 무리와 로마군의 무구를 활용해 큰 이윤을 남기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정말 기대되는군요. 대체 앞으로 뭘 얻으실 생각이십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곧 알게 되실 겁니다.”

하스드루발은 마시니사 왕자와의 대화를 마친 후 리비아 병사들을 시켜 이집트 원주민 포로들의 손목에 채워져 있는 수갑을 풀어 주었다.

앞으로 노예로 팔려 가게 될 줄로만 알았던 이집트 원주민들은 저린 손목을 주무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스드루발은 그런 포로들의 앞에 서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리스어로 말했다.

“난 어제 지중해에서 가장 용맹하다는 스파르타인들이 후퇴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분투하던 그대들의 모습에 감탄했다. 그대들은 이제 자유의 몸이다. 어서 부모와 처자식이 기다리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해라.”

몇몇 포로들은 그의 말을 듣고 카르타고군 숙영지에서 떠나갔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여전히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중년 남자 한 명이 능숙한 그리스어로 하스드루발에게 대답했다.

“어차피 우리 이집트인의 운명은 어제 끝났습니다. 우리를 핍박하던 파라오는 이번 전투에서 이기기만 하면 세율을 낮추고 이집트인도 관직에 오를 수 있게 조치하겠다고 약속했었지요. 그렇지만 이제 다 끝난 이야기입니다.”

그러자 다른 이집트 원주민 포로도 말을 보탰다.

“지금 고향에 돌아가 봐야 우리를 핍박하던 지배자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서 셀레우코스 제국으로 바뀌는 복장 터지는 장면을 봐야 할 뿐입니다! 디아도코이 왕국의 지배계층은 그리스인이 아닌 자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으니 말입니다! 부디 저희를 카르타고로 데려가 주십시오! 고향에서 노예같이 사느니 타지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살겠습니다!”

그 말에 하스드루발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럼 자네들의 가족은 어쩔 텐가? 자신은 외국에서 자유롭게 살면서 이집트에 남은 가족은 그리스인의 핍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을 견뎌 낼 수 있겠나?”

그의 말을 듣자 이집트 원주민 포로들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몇몇 포로들은 가족 생각에 눈물짓기 시작했다.

하스드루발은 그런 그들에게 자애로운 미소를 보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게 자네들과 자네의 가족들이 모두 그리스인의 폭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획이 하나 있네. 다만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면 자네들의 도움이 꼭 필요할 것 같은데······.”

그 말을 듣자 1만 명에 가까운 이집트 원주민 포로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하스드루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처음 입을 열었던 중년의 포로가 그에게 말했다.

“그 방법이 대체 뭡니까? 부디 저희에게 장군님의 지혜를 빌려주십시오!”

“그럼 일단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내 지시를 따르게. 자네들 중 알렉산드리아 출신은 왼편에 서고 다른 곳 출신인 사람은 오른편에 서 보게.”

그 말을 듣고 이집트 원주민 포로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젊은 카르타고인 장군의 지시대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집트 원주민 포로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 질서정연하게 도열했다.

하스드루발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은 삼천 명 정도··· 나머지가 칠천 명이 조금 안 되나? 부족하지는 않을 것 같군.”

마시니사 왕자는 하스드루발의 행동을 보고는 궁금증을 참지 못해 다시 그에게 물었다.

“하스드루발 장군님! 도저히 궁금해서 못 견디겠습니다! 대체 머릿속에 무슨 계획을 그리고 계신지요?”

“안티오코스 왕은 제가 아직 이집트가 다스리는 영토 중 북아프리카의 항구도시 하나를 제가 점령하면 카르타고의 영토로 인정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럼 혹시······.”

“이제 제 생각을 짐작하신 모양이군요. 저는 앞으로 몇 주 안에 동지중해의 진주 알렉산드리아를 전리품으로 얻어 카르타고의 영토에 편입시킬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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