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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168화 (168/201)

[ 168 ] [167화] 시라쿠사 쟁탈전 (3)

“북풍이 분다! 삼각돛을 조절해 역풍에 대비하라!”

하스드루발은 신형 전함 멜카르트의 갑판 위에서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그의 우렁찬 고함은 폭우 뒤의 급류처럼 거세게 수면 위로 흐르는 지중해의 바닷바람을 뚫고 돛을 담당하는 선원들의 귓가에 스쳤다.

선원들은 손바닥에 굳은살이 잔뜩 배긴 거친 손아귀로 밧줄을 잡아당겨 배가 역풍을 뚫고 전진할 수 있도록 삼각돛을 조절했다.

다른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도 기함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자 곧 거친 물결이 일렁이는 바다 위에 멈춰 있던 20대의 전함이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스드루발은 그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병사를 더 데려온다고 사각돛을 단 큰 배를 타고 왔으면 난리 날 뻔했다. 그랬으면 히에로니무스 왕의 장례식이 끝난 다음에야 도착했겠지.”

그는 고개를 돌려 뒤처진 전함이 없는지를 다시 한번 살펴본 후 기함의 함장에게 말했다.

“함장. 앞으로 얼마나 오래 항해해야 시라쿠사에 도착할 수 있겠나?”

“오늘 바람이 워낙 변덕스러워서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아마 오늘 밤에서 내일 새벽 사이에는 시라쿠사의 항구에 배를 정박할 수 있을 겁니다.”

“내일 새벽? 거참 아슬아슬하네. 전 함대에 최대 속력을 유지하면서 항해하라고 신호를 보내 주게.”

“알겠습니다, 하스드루발 장군님.”

하스드루발은 함장과의 대화를 마치고 바알 함몬의 손바닥 모양 선수상이 달려 있는 배의 앞부분으로 다가가 북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히에로니무스 왕이 무사하지 않으면 앞으로 꽤나 골치 아파지겠지. 제발 히포크라테스하고 에피키데스가 잘 해내야 할 텐데.”

원 역사에서 어린 히에로니무스 왕이 왕위에 오른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히에론 왕가의 왕족은 대부분 시라쿠사의 친로마파 귀족들이 일으킨 반란 통에 몰살당하고 만다.

그 후 친로마파 시민들은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지만, 반란 때문에 친카르타고파와 친로마파로 나누어진 시민들이 격하게 서로 대립하면서 혼란에 빠져든다.

그때 한니발은 즉시 자신의 장교 중 시라쿠사 출신이면서도 두뇌 회전이 빠른 히포크라테스와 에피키데스를 시라쿠사로 파견했다.

두 사람은 친카르타고파 시라쿠사 시민을 선동해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시키고 친카르타고파 정부를 수립해 한 해씩 번갈아 가며 지도자 역할을 맡았다.

그렇게 한니발은 다시 시라쿠사를 동맹국으로 만드는 데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시간을 잡아먹은 데다 시라쿠사의 국력이 상당히 약해지고 만다.

하스드루발은 그런 사태를 미리 막기 위해 시라쿠사에 상륙한 후 펼칠 작전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일단 항구에 정박하면 바로 히에론 왕가의 왕족들 안전부터 확보하고 왕궁과 아크로폴리스부터 점거해야 한다. 요새나 다름없는 곳에서 반역자들이 농성을 시작하면 굉장히 골치 아파질 거야.’

그렇게 그가 갑판에 서서 고민하는 동안 카르타고의 함대는 약 반나절 정도를 더 항해해 시라쿠사 인근 해안가에 도착했다.

각 전함의 선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성대 병사들은 갑판 위로 올라와 무기와 갑옷을 장비하며 곧 벌어질 전투에 대비했다.

선원들은 밝은 달빛 덕에 한밤중임에도 윤곽이 뚜렷한 시라쿠사의 왕궁을 바라보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구만. 이 정도로 달이 밝으면 등대 없이도 항구를 찾아갈 수 있겠어.”

“그러게. 하스드루발 장군님께서 반역자들은 새벽부터 움직인다고 하셨으니 아직은 시간이 충분할 거야.”

그렇게 선원들이 안심하며 대화를 나누는 순간, 시라쿠사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왕궁이 마치 화산처럼 맨 꼭대기 층에서 화염과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친로마파 귀족들은 궁정에 심어 놓은 끄나풀을 통해 히에로니무스 왕이 침소에 들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그를 찾아 죽이기 위해 예정을 앞당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하스드루발은 불타는 왕궁을 보자마자 일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눈치채고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런 젠장! 어쩐지 일이 너무 잘 풀린다고 했어! 돛을 내리고 전속력으로 노를 저어라! 반란군이 수문을 걸어 잠그기 전에 항구에 도착해야 한다!”

* * *

한편 하스드루발의 함대가 항구 근처로 다가오고 있을 때, 히에로니무스 왕은 평민들이 주로 입는 허름한 튜닉을 입고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근위병 네 명과 함께 왕궁의 후문으로 빠져나왔다.

그러자 왕궁의 후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에피키데스가 히에로니무스 왕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히에로니무스 전하. 예정보다 조금 일찍 나오셨군요.”

“그 무희가 눈앞에 어른거려서 기다릴 수가 있어야 말이지. 앞장서게! 어서 자네 집으로 가세나!”

“여부가 있겠습니다. 여기서 삼백 보쯤만 더 걸어가면 제집입니다. 어서 가시지요.”

어린 왕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에피키데스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50보쯤을 걸었을 때, 왕을 수행하는 일행의 등 뒤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와 그들의 발밑에 그림자가 춤을 추듯 일렁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왜 한밤중에 갑자기 낮처럼 밝아진단 말인가?”

히에로니무스 왕은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의 여드름 가득한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버렸다.

“오오! 제우스시여! 저게 대체 무슨 일이냐! 왕궁이 장작처럼 불타고 있지 않느냐!”

에피키데스는 직감적으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눈치채고 다급한 목소리로 왕에게 말했다.

“히에로니무스 전하! 반란이 일어난 게 분명합니다!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연회 요리를 준비하던 왕궁의 하인들이 실수로 불을 낸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랬다면 왕궁의 부엌 쪽에서 먼저 불길이 치솟았을 겁니다! 보십시오! 지금 불길이 제일 심한 곳은 전하의 침실이 있는 최상층입니다!”

그 말을 듣고 히에로니무스 왕은 고개를 들어 불타는 왕궁을 올려다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럴 수가··· 자네 말대로군.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전하!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왕궁이 이미 반란군의 손에 넘어갔다면 최대한 빨리 항구로 도망쳐 일단 시라쿠사를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말에 왕을 호위하던 근위병 중 최선임자도 동의하며 말했다.

“전하. 에피키데스 서기관의 말이 맞습니다! 지금은 일단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어쩔 수 없구나! 그럼 어서 짐을 항구로 안내해라!”

에피키데스는 울상이 되어 버린 왕에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대로나 광장에는 이미 반역자들이 득실대고 있을 겁니다. 골목을 통해 항구로 가는 길로 안내하겠습니다. 어서 이쪽으로 오시지요!”

히에로니무스 왕 일행 여섯 명은 주변의 주목을 끌지 않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대신 빠른 걸음으로 빈민가가 들어서 있는 골목으로 향했다.

에피키데스는 평소 빈민가에 있는 동료 히포크라테스의 근거지로 가기 위해 시라쿠사의 골목을 자주 지나다녔기에 그곳의 지리를 완전히 꿰고 있었다.

왕의 일행이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목적지인 항구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 때, 그들이 지나는 골목과 이어져 있는 광장에서 고막을 찢을 듯한 반란군 무리의 함성이 들려왔다.

“와아아아아!”

“시라쿠사를 멸망으로 몰아갈 히에론 왕가를 처단하라!”

히에로니무스 왕은 자기도 모르게 요란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의 눈에 천 명이 넘는 반란군에게 쫓겨 달아나는 고모부 아드라노도루스와 조이푸스, 그리고 그들의 처자식들이 보였다.

어린 왕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 겔론 대신 두 고모부를 아버지처럼 따르며 자라왔다.

그렇기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광장을 향해 오른손을 뻗으며 소리치려 했다.

“안 돼! 고모······.”

그때 에피키데스가 재빨리 손바닥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으며 몸부림치는 어린 왕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히에로니무스 전하! 전하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지금 큰 소리를 내셨다가는 전하까지 반역자들의 칼에 해를 당하고 마실 겁니다!”

히에로니무스 왕은 에피키데스의 말을 알아듣고 몸부림을 멈췄지만, 자신의 입을 막고 있는 서기관의 손등을 굵은 눈물로 적셨다.

결국 아드라노도루스와 조이푸스는 처자식과 함께 반란군에게 사로잡혀 광장 한복판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어린 왕은 그 모습을 보고 그만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에피키데스는 혼이 나가 버린 왕을 등에 업은 후 근위병들에게 말했다.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지금쯤이면 내 동료들이 항구에 전하를 탈출시킬 배를 준비시켜 놨을 거다! 이제 이백 보 정도만 더 가면 항구에 도착하니 어서 움직이자!”

왕과 마찬가지로 왕족들이 몰살당하는 모습을 보고 당황하던 근위병들은 서기관의 말을 듣고 마음을 다잡은 후 다시 주변을 경계하며 항구를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왕의 일행은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통과해 대로로 나와 전속력으로 항구를 향해 달렸다.

그러자 자취를 감춘 히에로니무스 왕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반란군 몇 명이 에피키데스의 등에 업혀 달아나고 있는 히에로니무스 왕을 알아보고 그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히에로니무스가 도망친다! 쫓아가서 죽여라!”

“항구 쪽이다! 배를 타고 달아나지 못하게 해라!”

그 소리를 듣고 수천 명의 반란군의 무리가 왕족의 피가 묻어 있는 단검과 의자 다리를 부러뜨려 만든 철제 몽둥이를 들고 왕의 일행을 향해 달려왔다.

에피키데스는 나이에 비해 덩치가 좋은 히에로니무스 왕을 업고 달리느라 입에서 단내가 나기 시작했지만, 사력을 다해 달려 반란군보다 먼저 항구 근처에 도착했다.

그러자 그의 귓가에 그렇게도 기다리던 동료 히포크라테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피키데스! 이쪽일세!”

히포크라테스는 에피키데스가 히에로니무스 왕을 대피시키는 동안 친카르타고파 시민과 용병 500명을 동원해 항구를 점거하고 주변에 나무로 만든 바리케이드를 쳐 두었다.

에피키데스는 다급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동료를 보고 힘없이 웃으면서 말했다.

“히포크라테스! 자네의 못생긴 얼굴을 보고 이렇게 반가운 적은 처음이군!”

“지금 헛소리나 할 때인가? 어서 전하를 모시고 안으로 들어오게!”

에피키데스는 체력이 다해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사력을 다해 히에로니무스 왕을 업고 히포크라테스의 부하들이 잠시 치워 둔 바리케이드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막 항구 안으로 들어서자 대로를 가득 메운 반란군 무리가 해일처럼 항구로 몰려왔다.

히포크라테스는 옆에 세워 둔 긴 창을 두 손으로 들며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히에로니무스 전하께서 무사히 탈출하실 때까지 시간을 번다! 모두 무기를 들어라!”

500명의 병사는 대장의 명령을 듣고 미리 준비해 둔 긴 창을 들어 올려 바리케이드 밖으로 내밀었다.

짧은 무기만 들고 있던 반란군 무리는 갑작스럽게 긴 창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적군과 마주치자 잠시 돌진을 멈추며 수군거렸다.

“뭐야! 어느새 왕의 앞잡이들이 병사를 끌어모았지?”

“숫자는 우리가 훨씬 많다! 그냥 밀어붙여!”

마침내 자신들이 수적으로 우세하다는 사실을 안 반란군들이 히포크라테스의 병사들을 향해 덤벼들자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친카르타고파 시민과 용병들은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몇 배나 많은 적에게 점점 밀릴 수밖에 없었다.

히포크라테스는 더는 버틸 수가 없음을 깨닫고 퇴각 명령을 내렸다.

“바리케이드를 버리고 항구 안으로 도망쳐라! 전하께서 타신 배가 출항할 때까지 부둣가를 지킨다!”

그의 명령을 듣고 이제 400명 정도로 줄어든 병사들이 항구 안으로 도망쳤다.

반란군 무리는 적이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바리케이드를 치운 다음 그들을 추격했다.

바로 그때, 드디어 도착한 하스드루발의 함대가 시라쿠사의 항구 안으로 일제히 몰려 들어왔다.

하스드루발은 함대의 맨 앞에 있는 기함의 선수에 서서 긴박하게 돌아가는 항구의 상황을 한눈에 파악한 후 근처에 있는 화염방사기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의 의도를 눈치챈 병사가 열심히 펌프질을 하자 화염방사기의 사출구에서 아르키메데스의 불꽃이 뿜어져 나와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좁은 항구의 입구로 몰려드는 반란군의 머리 위를 덮쳤다.

―화르르르르륵.

그러자 온몸에 불이 붙은 반란군 수십 명이 뛰어다니며 몸부림쳤다.

“끄아아아아아악!”

“살려 줘! 내 몸에 불이 붙었어!”

나머지 반란군은 그 끔찍한 광경을 보고는 겁을 먹고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쳐 버렸다.

하스드루발은 갑판에서 부두로 뛰어내리며 목숨을 건진 기쁨에 눈물을 글썽이는 에피키데스에게 말했다.

“에피키데스! 정말 잘해 주었네! 어려운 상황에서 멋지게 임무를 완수했군!”

“하스드루발 장군님! 제시간에 맞춰 와 주셨군요! 바알 함몬이시여 감사합니다! 당신의 은총 덕에 시라쿠사가 여전히 카르타고의 동맹으로 남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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