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174화 (174/201)

[ 174 ] [173화] 하스드루발 vs 마르켈루스 (4)

기원전 214년 5월 중순.

마르켈루스가 시칠리아에서 카르타고군을 크게 무찔렀다는 소식이 지중해를 넘어 이탈리아반도에 닿자 뜨거운 환호성이 로마의 일곱 언덕에 들끓었다.

“위대한 승리자 마르켈루스 만세!”

“전쟁의 신 마르스시여! 로마인 중에서 가장 당신을 닮은 마르켈루스를 축복하소서!”

로마 시민들은 하나같이 거리와 광장으로 뛰쳐나와 마르켈루스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공중에 색색가지 꽃잎을 뿌려 댔다.

시내에서 그야말로 개선장군 없는 개선식이라고 부를 만한 축제가 벌어지는 동안, 쿠리아 호스틸리아에 모여 있던 로마 원로원 의원들도 거리의 시민들처럼 들뜬 목소리로 회의를 이어 나갔다.

“존경하는 동료 의원 여러분! 한시라도 빨리 시칠리아에 원군을 보내야 합니다! 마르켈루스 집정관님께서 시라쿠사를 공격하기 위해 공성용 전함을 요청하셨습니다!”

“당연히 보내야지요! 시라쿠사만 점령하면 시칠리아 전체를 탈환하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옳습니다! 부족한 예산은 다시 국채를 발행해 메꾸도록 합시다!”

로마 원로원은 만장일치로 마르켈루스에게 공성용 함대를 보내기로 의결하고 곧바로 실력 있는 공학자와 기술자 수백 명을 소집해 항구도시 오스티아로 파견했다.

로마 최고의 기술자들은 공학자들의 지시에 따라 밤을 새워 가며 단 일주일 만에 오스티아에 정박해 있는 5단 노선 68척을 공성용으로 개조했다.

전함 개조 작업이 끝나자 오스티아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 해군은 즉시 함대를 출격시켜 시칠리아 중동부의 항구도시 카타나로 보냈다.

* * *

기원전 214년 6월 초.

로마 원로원이 보낸 공성용 전함 68척과 육군 1개 군단, 그리고 시칠리아 북동쪽 끝에 있는 로마의 동맹도시 메사나에서 보낸 지원군 1만 명이 카타나에 도착했다.

이제 마르켈루스는 전직 법무관 두 명과 함께 육군 약 6만 명, 그리고 전함 150척으로 구성된 대군을 이끌게 되었다.

그는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전 육군을 연병장에 도열시킨 후 연단에 올라 천둥소리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출격 명령을 내렸다.

“이제 반격에 나설 때가 됐다! 전군 행군을 시작하라! 올해가 가기 전에 북아프리카의 야만인들을 시라쿠사에서 몰아내는 거다!”

집정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6만 명의 로마―메사나 연합군이 시라쿠사가 있는 남쪽을 향해 힘차게 걸어 나갔다.

로마군은 얼마 전의 대승 덕에 사기가 최고조로 올라 있었기에 말을 타고 반나절 정도 걸리는 거리를 단 이틀 만에 주파해 시라쿠사 근처에 도착했다.

로마 해군의 함대도 같은 날 목적지에 도착하자 마르켈루스는 전군에 시라쿠사를 포위하도록 명령했다.

로마 군단병들은 아르키메데스가 설계한 시라쿠사의 장엄한 성벽을 따라 빠른 속도로 목책과 토성을 쌓고 해자를 파느라 개미 떼처럼 분주하게 움직였다.

바다 쪽에서도 로마 해군이 낡은 배 여러 척을 끌어다 시라쿠사의 항구 수문 쪽에 침몰시켜 카르타고의 전함이나 수송선이 도시에 드나들지 못하도록 막기 시작했다.

하스드루발은 마시니사 왕자와 히포크라테스, 그리고 마르켈루스에게 패하고 시라쿠사로 도망쳐 온 대머리 하스드루발과 함께 해안의 절벽을 따라 세워진 시라쿠사의 성벽 위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대머리 하스드루발은 로마 해군의 낡은 수송선 한 척이 얕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으며 시라쿠사의 숨통인 항구를 틀어막는 모습을 참담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하스드루발 바르카 장군님, 그리고 히포크라테스 장군님. 정말 면목 없습니다. 제가 능력이 부족한 탓에 시라쿠사를 로마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했군요······.”

그는 말끝을 흐리며 울상을 짓고 있는 표정을 숨기려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하스드루발은 자신과 이름이 같은 동료 장군이 절망에 빠지자 그를 위로하기 위해 노력했다.

“장군님과 함께 시라쿠사에 온 리비아인 병사들에게 처음에는 장군님의 군대가 로마군을 압도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저 맹수 같은 마르켈루스가 전장에 나타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타니트 여신께서도 감복하실 장군님의 자비로움에도 제 가슴속을 새까맣게 물들인 수치심이 흩어지질 않는군요. 할 수만 있다면 불길에 몸을 던져 제 비루한 몸뚱이를 위대하신 바알 함몬께 제물로 바치고 싶습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이제 카르타고의 신들께서는 인신 공양을 원치 않으신다는 사실을 잊으셨습니까? 죽을 용기로 살아서 엘리사 여왕의 도시를 위해 힘써 주십시오.”

그때, 시라쿠사의 왕궁에서 온 병사 한 명이 하스드루발 일행의 곁으로 달려와 히포크라테스에게 보고했다.

“히포크라테스 장군님! 방금 로마의 집정관 마르켈루스가 보낸 사절이 왕궁에 도착했습니다! 에피키데스 재상님께서는 장군님과 하스드루발 바르카 장군님과 함께 사절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뭐라? 마르켈루스가 이 시점에 사절을 보냈다면 시라쿠사를 넘기라고 겁박하는 것 말고는 다른 목적이 없겠군.”

“에피키데스 재상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알았다. 하스드루발 바르카 장군님, 부디 저와 함께 왕궁으로 가 주시겠습니까?”

“갑시다. 가서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들어는 봐야지요. 마시니사. 잠시 다녀올게. 성벽 위에서 계속 적의 동태를 살펴 줘.”

“걱정하지 마. 로마군이 가져온 솥 숫자까지 세어 둘 테니까.”

하스드루발은 마시니사 왕자와의 짧은 대화를 마친 후 히포크라테스와 함께 병사를 따라 마르켈루스의 사절이 기다리고 있는 왕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스드루발과 히포크라테스가 막 왕궁에 도착해 알현실의 입구에 들어설 때, 마르켈루스의 사절이 라틴어 억양이 섞인 서툰 그리스어로 에피키데스에게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에피키데스 재상님! 왜 이렇게 말귀가 어두우십니까! 당장 히에로니무스 전하를 직접 알현하게 해 달라는 말입니다!”

“대체 제가 똑같은 소리를 몇 번이나 반복해야 합니까! 히에로니무스 전하께서는 친족 전원이 눈앞에서 반역자 무리에게 살해당한 충격을 아직 떨쳐 내지 못하셨습니다! 바로 당신 같은 로마인을 추종하는 무리에게 말입니다!”

“아직 성인식을 치르지 않은 소년이라고는 하지만, 일국의 왕이 그렇게 유약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리스 남자들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지 사내다운 구석이 없다는 말이 사실이었군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시라쿠사인이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로마인 사절의 무례한 말을 듣자마자 도끼눈을 뜨며 그를 노려보았다.

하스드루발은 거침없이 막말을 내뱉는 로마의 사절을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돌았나? 저게 지금 공성전을 치르지 않고 적국의 항복을 받아 내러 온 사절이 한 나라의 재상에게 할 말이냐? 전생에 사료에서 읽었던 로마 사절단이 외국에서 저질렀다는 무례한 언행이 다 사실이었나 보네.’

그는 자국의 전통을 이유로 로마 원로원의 요구를 거절한 일리리아 왕국의 여왕에게 로마의 사절이 ‘그럼 내가 당신에게 새로운 전통을 가르쳐 주겠소.’라고 지껄였다가 그 자리에서 참살당했다는 일화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에피키데스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얼굴이 불에 달군 쇠처럼 벌게졌지만, 간신히 이성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일국의 왕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섭정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굴다니. 로마인은 아무리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여도 난폭한 성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바르바로이라는 말이 사실이었군요.”

“뭐가 어째!”

“내 원래는 히포크라테스 장군과 카르타고의 명장이신 하스드루발 장군님과 함께 마르켈루스 집정관의 제안을 찬찬히 들어 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무례한 태도를 보니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군요. 돌아가서 집정관에게 전하시오. 우리 시라쿠사인은 최후의 한 명이 남을 때까지 로마에게 성문을 열지 않을 거라고 말이오.”

로마의 사절단은 에피키데스의 날 선 말을 듣자마자 인사도 하지 않고 토가 자락을 휘날리며 뒤돌아 시라쿠사 왕궁의 알현실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 * *

“결국 우리에게 끝까지 저항하겠다는 말이군. 뭐, 그럴 것 같았다. 물러가서 쉬어라.”

마르켈루스는 사절로서 시라쿠사에 다녀온 대대장의 보고를 듣고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는 오히려 시라쿠사인들이 싱겁게 성문에 올리브나무 가지를 걸고 항복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숱한 적에게 공격받고도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요새 도시 시라쿠사.

전장에서 가장 큰 삶의 보람을 느끼는 마르켈루스는 거친 해안 절벽과 로마의 세르빌리우스 성벽보다도 높고 두꺼운 성벽으로 보호받는 난공불락의 요새를 바라보며 도전의식을 불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즉시 전군에 시라쿠사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로마―메사나 연합군 6만 명은 고대의 투석기 오나거 수십 대와 거대한 발리스타를 시라쿠사의 북쪽 성문 근처에 설치하기 시작했고 바다에서도 로마의 대함대가 해안가 절벽 위에 지어진 남쪽 성벽으로 몰려들었다.

마르켈루스는 직접 함대의 기함에 올라 공성전을 지휘했다.

“육지 쪽은 성벽이 너무 높고 단단해 오나거로는 무너뜨리기 어려울 거다! 이번 전투는 성패는 바다 쪽에서의 공격이 성공하냐 마냐에 달려 있다! 가서 시라쿠사의 성벽을 무너뜨려라!”

집정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기함의 선원 한 명이 선수에 서서 커다란 깃발을 흔들었다.

기함에서 출격 명령이 떨어지자 150척이나 되는 거대한 5단 노선 무리가 시라쿠사의 성벽을 향해 몰려가기 시작했다.

기함의 선장은 그 모습을 보고 감탄하며 마르켈루스에게 말했다.

“마르켈루스 집정관님! 저 모습을 보십시오! 요새나 다를 바 없는 거대한 전함이 적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정말 장관입니다!”

“그러게 말이다. 오늘 멍청한 그리스인들에게 이제 우리 로마의 공학기술이 지중해 최고임을 가르쳐 주는 거다!”

로마의 공학자들은 5단 노선 여덟 척을 쇠사슬로 묶어 바다 위를 떠다니는 공성용 요새로 만들어 냈다.

한 덩이가 된 여덟 척의 전함 한가운데에는 높은 탑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위에는 소형 발리스타 스콜피온과 궁수들을 배치해 성벽 위에 있는 적군을 원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했다.

마르켈루스는 거대한 해상 요새를 앞세우고 그 양옆에 오나거와 발리스타를 설치한 공성용 전함을 각각 30척씩 배치했다.

그의 작전은 60개의 투석기가 일제히 돌을 날려 시라쿠사 해안의 성벽을 파괴하고 그리 높지 않은 절벽을 전함에 타고 있는 군단병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 시내에 침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스드루발은 더는 마르켈루스에게 승리의 영광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시라쿠사의 성벽 위에서 로마의 함대가 몰려오는 것을 보고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전 투석기 발사!”

하스드루발의 곁에 있던 리비아인 병사가 장군의 외침을 듣고 즉시 신호탄을 발사했다.

―피유유웅 파앙!

시라쿠사의 구름 한 점 없는 초여름 하늘을 자주색 불꽃이 물들이자 아르키메데스가 설계한 투석기 수십 대가 일제히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발사대를 움직였다.

―덜커덩!

시라쿠사의 투석기는 하스드루발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개발된 트레뷰셋과 같은 무게추의 원리로 작동했기에 오나거보다 더 먼 거리에서 50kg이 훨씬 넘는 돌덩이를 날려 댔다.

로마가 자랑하는 해상 요새의 탑에,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거대한 돌덩이 수십 개가 명중하며 천둥소리 같은 커다란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콰과광!

그러자 30m가 넘는 거대한 탑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며 그 위에 있던 로마군의 궁수들이 구슬픈 비명을 질러 대며 곤두박질쳤다.

“끄아아아아악!”

갑판 위에 있던 로마 해군의 병사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아군과 부서진 탑의 파편에 깔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절명했다.

마르켈루스는 그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며 소리쳤다.

“말도 안 돼! 십오 스타디온(약 270m) 밖에서 저렇게 큰 돌을 쏘는 투석기라니! 대장간의 신 불카누스께서 만들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하스드루발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로마인들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바로 다음 공격을 이어 나갔다.

“기중기를 가동시켜라! 저 흉물스러운 나무판자를 뒤집어 버려라!”

그의 명령에 다시 한번 신호탄이 하늘을 물들이자 성벽 위에 늘어서 있던 거대한 기중기 여덟 대가 굵고 긴 쇠사슬에 달려 있는 갈고리를 성벽 아래로 내려 로마의 해상 요새를 구성하는 각 전함을 내리찍었다.

―콰악!

철제 갈고리가 로마의 전함 밑부분에 물살을 가르기 위해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에 걸리자 각 기중기에 설치된 톱니바퀴를 소 수십 마리가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작은 섬처럼 보이던 로마의 해상 요새가 낚싯대에 걸린 생선처럼 수직으로 공중에 들어 올려졌다가 양옆에 나열해 있던 공성용 5단 노선 위로 내팽개쳐졌다.

―콰과과과과광!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이 지나가자 마르켈루스의 갈색 눈동자에 잔해가 되어 버린 해상 요새와 그 밑에 깔리는 바람에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는 5단 노선 여섯 척이 비쳤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비통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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