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175화 (175/201)

[ 175 ] [174화] 하스드루발 vs 마르켈루스 (5)

“저럴 수가··· 사료에서 읽은 적은 있지만, 과장이 많이 섞여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하스드루발은 아르키메데스가 만든 수성병기의 위력을 두 눈으로 확인한 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쉽게도 시라쿠사 성벽에 설치되어 있는 투석기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기록된대로 무게가 10달탄트(약 320kg)나 되는 바위를 발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천재 기하학자가 적의 전함을 뒤집기 위해 만든 거대한 기중기는 역사기록과 거의 엇비슷한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던 로마 해군 병사들은 마치 거인의 팔과 같은 기중기 여러 대가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자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마르켈루스는 로마의 검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함대를 지휘했다.

“겁먹지 마라! 아직 우리에게는 백사십 척이나 되는 전함이 있다! 전 함대 시라쿠사의 성벽을 향해 돌격하라!”

집정관의 엄명이 떨어지자 로마 해군의 선원들은 공포에 떨면서도 시라쿠사를 향해 노를 저어 갔다.

공성전함을 제외하고 군단병을 가득 태운 로마 해군의 전함은 총 82척인 데 비해 시라쿠사의 성벽 바로 뒤에 세워져 있는 기중기는 전부 8대.

아르키메데스의 기중기가 아무리 대단해도 한꺼번에 성벽 쪽으로 접근하는 그 많은 전함을 막아 낼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아르키메데스가 만들어 둔 병기는 투석기와 기중기뿐만이 아니었다.

하스드루발은 로마군의 중장보병을 가득 태운 적의 함대가 새까맣게 몰려오자 다시 한번 시라쿠사와 카르타고의 병사들에게 다음 병기를 준비시켰다.

“갈퀴 발사 준비!”

장군의 명령에 수백 명의 병사가 밧줄로 묶여 있는 굵은 작살을 성벽 위의 발리스타에 장전했다.

모든 발리스타 사수가 준비를 마치자, 하스드루발의 외침이 시라쿠사의 성벽 위에 울려 퍼졌다.

“발사!”

그와 동시에 수백 대의 발리스타가 마치 현대의 포경선이 고래를 향해 작살을 쏘듯, 새까맣게 몰려오는 적 함대에 작살을 발사했다.

―투웅!

발리스타의 튼튼한 현이 묵직한 소리를 내자, 작살 수백 개가 꽁무니에 묶여 있는 긴 밧줄을 허공에 출렁이며 로마군의 머리 위로 빗발치며 병사를 가득 태운 5단 노선에 박혔다.

―콰직!

카르타고군의 발리스타 사수들은 자신이 쏜 작살이 적의 전함에 제대로 박힌 것을 확인하고 성벽 아래에 있는 아군을 향해 미리 준비해 둔 작은 깃발을 흔들었다.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시라쿠사군 병사들은 발리스타 사수가 보낸 신호를 작살에 연결된 긴 밧줄이 감겨 있는 커다란 실타래 모양 기계장치를 소 여러 마리의 힘으로 감기 시작했다.

그러자 선체에 작살이 수십 개나 박혀 있는 로마의 전함들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절벽으로 끌려왔다.

전함의 갑판 위에서 시라쿠사의 성벽을 기어오를 준비를 하고 있던 로마군 병사들은 빠른 속도로 눈앞에 다가오는 절벽을 보고 절박한 목소리로 아우성쳤다.

“어어어어! 부딪친다!”

“뭐 해! 속도 줄여! 속도 줄이라고!”

몇몇 눈치 빠른 로마 군단병들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작살에 묶여 있는 밧줄을 끊어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12척이나 되는 로마의 전함이 깎아지르는 절벽에 세차게 부딪히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콰과과광!

마르켈루스는 그 모습을 보고 분노에 휩싸이며 기함의 갑판 위에서 길길이 뛰었다.

“이런 미친! 무적의 로마군이 시라쿠사에 있지도 않은 늙은 기하학자 한 명에게 완전히 놀아나고 있지 않은가! 다들 왜 멍청하게 서 있느냐! 공성 전함에 어서 오나거로 돌덩이를 쏘라고 전해라! 보병을 태운 전함이 다 침몰할 때까지 보고만 있을 셈이냐!”

집정관의 명령에 기중기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로마 해군의 공성 전함 54대에 타고 있던 선원들이 보병을 태운 아군 전함이 희생되는 사이에 투석기로 돌을 발사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로마 해군의 선원들은 시라쿠사의 성벽 위에서 쏟아지는 강렬한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셔 오나거의 발사대에 제대로 돌을 올려놓을 수가 없었다.

“크아악!”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왜 성벽에서 햇빛이 쏟아지는데!”

로마의 공성 전함에 쏟아지는 정체불명의 태양광은 바로 성벽 위에 설치된 지름이 성인 남자 키만 한 수십 개의 청동거울이 반사한 햇빛이었다.

현대에 전해지는 기록에 의하면 아르키메데스가 설치한 청동거울은 태양광을 한 곳에 집중시켜 로마군의 전함을 불태웠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아르키메데스가 만든 시라쿠사의 병기 중에서 가장 유명한 청동거울은 사실 적 전함의 투석기 사수를 견제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로마의 공성 전함에 탄 병사들이 망막을 익혀 버릴 듯한 강렬한 햇빛 때문에 눈을 뜨지 못하고 있을 때. 시라쿠사의 병사들은 잽싸게 투석기를 발사할 준비를 마치고 적의 머리 위에 두 번째 돌벼락을 퍼부었다.

―콰과과광!

수박보다 큰 돌덩이가 로마 해군 전함 수십 척에 강타하며 갑판에 구멍을 내고 노를 부쉈다.

로마 해군의 병사 중 상당수가 이제 완전히 전의를 상실해 비명을 지르면서 갑판 위를 뛰어다녔고 갑옷을 입은 채로 바다로 뛰어드는 자까지 생길 지경이 되었다.

“배가 생선처럼 공중에 매달리다니! 우리는 지금 신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건가?”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물이나 퍼내! 갑판에 난 구멍에서 물 새는 거 안 보여?”

마르켈루스는 그 모습을 황망한 눈으로 바라보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구나··· 늙은 기하학자 한 명이 백오십 척이나 되는 대함대를 물리치다니··· 하스드루발 그 교활한 녀석에게 일찌감치 아르키메데스를 빼앗긴 게 한스러울 뿐이다.”

그는 결국 바다 위를 가득 메운 전함의 잔해와 로마군 전사자의 시신을 뒤로하고 함대를 퇴각시킬 수밖에 없었다.

* * *

마르켈루스는 함대를 시칠리아의 동부 해안지대에 있는 작은 항구도시로 물렸다.

그는 그곳에서 한 귀족의 저택을 점거해 휴식을 취하면서 부하들에게 로마 해군이 이번 해전에서 입은 손실을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로마 해군의 장교 한 명이 조사한 자료를 취합한 후 집정관에게 보고했다.

“마르켈루스 집정관님께 보고드립니다. 오늘 전투에서 오단 노선 서른한 척이 침몰했고 열네 척이 투석기가 날린 돌을 맞고 선체가 파손돼 수리 중입니다. 해군 병사는 총 삼만오천 명 중 약 사천오백 명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빌어먹을······!”

마르켈루스는 단 몇 시간 만에 전 함대의 5분의 1을 잃었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때, 한 로마군 병사가 서재의 문을 두드린 후 열고 들어와 집정관에게 경례했다.

마르켈루스는 그가 육지에서 전직 법무관 아피우스의 지휘 아래 시라쿠사를 공격하고 있는 로마 육군 소속의 기병임을 알아보고 입을 열었다.

“뭐 좋은 소식이라도 가져왔느냐?”

“죄··· 죄송합니다. 마르켈루스 집정관님. 아피우스 전직 법무관님께서 주신 서신을 가지고 왔습니다만, 승전보가 적혀 있지는 않습니······.”

마르켈루스는 병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의 손에 들려 있던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낚아채서 펼친 다음 읽어 내려갔다.

그는 서신을 다 읽은 후 그것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는 오른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한니발과 싸울 때도 하루 사이에 이렇게 많은 병사를 잃은 적은 없건만······.”

아피우스가 보낸 서신에는 육지에서 시라쿠사를 공격하던 로마―메사나 연합군의 공성탑 여섯 대가 성벽 근처에 가 보지도 못하고 적의 투석기가 날린 돌덩이를 맞고 완파됐으며 그 안에 타고 있던 병사 약 5천 명이 죽거나 다쳤다는 비보가 적혀 있었다.

로마가 시라쿠사 공격을 위해 동원한 병력은 육군과 해군을 합쳐서 약 9만 5천 명.

이제 그중 10분의 1에 해당하는 9천 5백 명의 로마군 병사가 전사하거나 큰 부상을 당한 후 장애인이 되어 본국으로 송환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르켈루스는 이를 갈며 맹수가 으르렁거리듯이 중얼거렸다.

“하스드루발 바르카···! 그 뱀처럼 교활한 카르타고인이 시라쿠사의 성벽 위에서 기뻐 날뛰고 있을 생각을 하니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 같구나! 전쟁의 신 마르스께 맹세코 그자의 목을 잘라 한니발의 군영 안으로 던져 버리겠다!”

* * *

마르켈루스가 분통을 터뜨리고 있을 때, 시라쿠사의 거리와 광장 곳곳에서 승리를 축하하는 시민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위대한 발명가 아르키메데스 만세!”

“그 영감탱이가 성벽 뒤에 자꾸 흉물스러운 기계장치를 만들어서 짜증 났었는데, 알고 보니 신화에 나오는 청동거인 탈로스보다 더 든든한 수호자였구만!”

“누가 아니래? 나도 내가 툭하면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던 노인네를 존경하게 될 줄은 몰랐어!”

그러나 온 시내가 승리에 취해 들떠 있을 때, 하스드루발은 초조한 표정으로 왕궁의 서재에 틀어박혀 정찰병이 가져온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젠장할! 역시 등자가 로마에 유출된 게 사실이었어!”

그는 마르켈루스의 기병대가 등자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대머리 하스드루발의 말을 듣고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패장이 자신의 패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없던 사실을 지어낸 것일 수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라쿠사를 포위한 로마의 육군 중에, 타고 있는 말에 등자를 장착하고 있는 기병이 수천 기나 확인되자 그도 믿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이 로마군을 상대로 늘 대승을 거둬 온 것은 두 형제의 전략과 전술이 뛰어난 덕도 있지만, 기병의 질과 수에서 적을 압도한 것도 중요한 비결 중 하나였다.

“로마인들은 체면을 중시해서 고대인 기준으로는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등자를 쉽게 사용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등자를 사용하면 최소 10년이 넘던 기병 양성 기간이 2년에서 3년 정도로 짧아지고 기병대의 평균적인 전투력도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하스드루발은 정황상 로마에 등자가 유출된 게 작년 말 정도로 판단하고 로마 정벌 일정을 앞당기기로 마음먹었다.

‘이대로 시간을 질질 끌고 있으면 내후년에는 로마의 중기병대가 랜스를 들고 한니발 형에게 돌격할지도 모른다. 로마 정벌 일정을 앞당겨야겠어.’

그는 한참 동안 시라쿠사를 포위하고 있는 로마군을 물리칠 방안을 생각해 내기 위해 궁리하다 뭔가를 떠올리고는 시라쿠사의 군권을 잡고 있는 히포크라테스에게 찾아갔다.

부하 장교들과 함께 병영에서 축배를 들고 있던 히포크라테스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스드루발을 보고 놀라면서 말했다.

“하스드루발 장군님! 이렇게 기쁜 날에 왜 그리 안색이 안 좋으십니까? 설마 건강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시겠지요?”

“저는 멀쩡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 보면 이탈리아에서 분투하고 있는 제 형 한니발 장군께는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 걱정입니다.”

“네? 그게 무슨 불길한 말씀입니까! 이탈리아에서 비보라도 도착했습니까?”

히포크라테스는 에피키데스와 마찬가지로 시라쿠사의 요직에 오른 뒤에도 한니발에 대한 충성심을 잃지 않고 있었기에 하스드루발의 말을 듣자마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스드루발은 그런 그와 눈을 마주치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아직은 아니지만, 시간문제입니다. 로마군에 등자가 유출된 게 확인됐습니다. 내년 봄부터는 본격적으로 등자를 사용해 기병을 양성하기 시작할지도 모르지요.”

“큰일 났군요··· 이를 어찌하면 좋다는 말입니까?”

“최대한 빨리 시칠리아에서 로마군을 몰아내고 전쟁을 조기에 끝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당장 군사회의를 열어 주십시오. 한시라도 빨리 마르켈루스를 물리칠 방법부터 찾아야 합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