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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183화 (183/201)

[ 183 ] [182화] 불타는 메사나

하스드루발은 메사나 원로원의 도발을 받은 후 도시를 공격하기 위한 마지막 준비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즉시 전군의 장교를 자신의 막사로 불러들인 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우리 군은 육군만 육만 명이 넘는다. 반면 메사나의 수비 병력은 로마의 지원군을 합쳐도 이만 명도 안 된다더군. 이만큼 우리 측의 전력이 우세하면 골치 아프게 책략 같은 걸 세울 이유가 없다. 앞으로 일주일 안에 공성전을 벌일 준비를 마치도록 해라!”

장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카르타고군 장교들은 기술자 수백 명을 지휘하여 노바 카르타고에서 가져온 트레뷰셋의 부품을 수레에서 내린 뒤 신속하게 조립하기 시작했다.

성벽과 감시탑 위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던 메사나군 병사들은 남쪽 성벽에서 약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거대한 목재 구조물이 점점 형태를 갖추어 나가는 모습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저게 대체 뭘까? 투석기? 아니면 공성탑?”

“뭔진 몰라도 무시무시한 물건이겠지. 시라쿠사에서 아르키메데스가 만든 기중기가 로마 해군의 거대한 전함을 한 번에 뒤집어 버렸다잖아.”

“정말 미치겠네··· 원로원은 왜 카르타고와 평화협정을 하지 않는 거야! 그냥 우리 성문을 열고 항복하면 안 돼?”

“검 한번 못 휘둘러 보고 포로가 되고 싶어? 우리 할아버지들이 카르타고에 한 짓을 생각해 봐. 시칠리아의 다른 도시들처럼 올리브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항복한다고 쳐. 그럼 적장이 우리를 용서해 줄 것 같냐?”

“하긴··· 그건 그렇지. 간악한 하스드루발이 그럴 리가 없지.”

현재의 메사나인은 카르타고와 로마 양국이 예정에 없던 1차 포에니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이었다.

본래 메사나는 수백 년 전부터 그리스인의 도시였다.

그러나 기원전 283년 전 이탈리아 캄파니아 지역 출신의 라틴인 용병단 마메르타니는 당시 메사나를 공격해 점령한 후 도시의 주민을 대부분 학살한다.

마메르타니 용병단은 시라쿠사의 폭군 아가토클레스에게 고용된 자들이었지만,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던 왕이 급사하자마자 고용주를 배반하고 시라쿠사와 동맹을 맺은 도시국가 메사나를 점령한 것이다.

당연히 시라쿠사인들은 매년 많은 급료를 받아 오고도 자국을 배신하고 동포를 학살한 라틴인 용병단에게 격분했다.

이에 시라쿠사에 새로운 왕조를 연 히에론 2세는 기원전 264년에 대군을 일으켜 메사나를 향해 진격하며 앞길을 가로막는 마메르타니 용병단을 연거푸 격파했다.

그러자 궁지에 몰린 마메르타니 용병단은 카르타고에 시라쿠사군을 물리쳐 주면 도시를 넘기겠다며 지원을 요청한다.

카르타고 정부는 늘 시라쿠사와 적대 관계에 있었던 데다 시칠리아 북동부의 요충지를 얻을 수 있다는 말에 마메르타니 용병단의 요청을 받아들여 군대를 일으킨다.

하지만 그리스인을 학살하고 메사나를 차지한 라틴인들은 처음부터 카르타고인에게 도시를 넘길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들은 얼마 후 로마 원로원에 같은 라틴인 동포로서 시칠리아에 지원군을 보내 달라고 요청해 카르타고와 로마 사이에 싸움을 붙였고 오랜 전쟁 끝에 카르타고는 서지중해를 로마에게 빼앗기고 만다.

카르타고인에게 메사나를 차지한 라틴인들은 로마인보다 더 증오스러운 원수인 것이다.

하스드루발은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눈앞의 도시를 철저하게 파괴해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아직 로마연합을 탈퇴하지 않은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국가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기원전 214년 10월 말.

메사나를 포위한 카르타고군은 마침내 도시를 공격할 모든 공성병기를 완성했다.

25대의 대형 트레뷰셋이 전방의 도시를 조준하고 있었고 같은 숫자의 높다란 공성탑은 메사나의 성벽에 접근할 준비를 마쳤다.

마시니사 왕자는 고개를 치켜들고 시라쿠사에서 봤었던 것만큼이나 거대한 공성병기들을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며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내 눈에 보이는 병기를 누미디아에서 만들려면 우리 부족의 일 년 치 예산은 필요하겠는데. 이런 병기들을 전장에 가지고 다니면서 공성용으로 쓰다니··· 역시 바르카 가문의 재력은 대단하네.”

“아직 놀라기에는 이르지. 메사나 놈들은 겨울이 오면 우리가 물러갈 줄 알고 성벽 뒤에서 버틸 모양이야. 문자 그대로 뜨거운 맛을 보여 줄 필요가 있겠어.”

하스드루발은 마시니사 왕자와의 대화를 마치고 그들을 수행하고 있던 하급장교에게 지시했다.

“전 트레뷰셋! 소이탄 발사 준비!”

그 말을 듣고 카르타고군의 기수가 커다란 깃발을 흔들어 장군의 명령을 전군에 전했다.

카르타고군의 포병대 병사들은 맨 가운데에 있는 트레뷰셋 근처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보자마자 속에 아르키메데스의 불꽃이 가득 들어 있는 소이탄을 트레뷰셋의 발사대에 장전한 후 횃불로 불을 붙였다.

―화르르르륵!

커다란 철제 구체 윗부분에 뚫려 있는 구멍에서 뜨거운 불꽃이 솟아오르자 횃불을 들고 있던 병사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스드루발은 포병대 전원이 발사 준비를 마치자 우렁찬 목소리로 발사 명령을 내렸다.

“발사!”

그의 외침을 듣고 다시 한번 기수가 깃발을 휘두르자 트레뷰셋 수십 대가 일제히 공중으로 발사대를 치켜들었다.

―덜커덩!

그러자 불꽃을 내뿜는 철구 25개가 큰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을 날아 성벽을 넘어 메사나 시내 한복판에 떨어져 원로원 건물의 천장에 충돌하면서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이 울려 펴졌다.

―콰과광!

화염에 휩싸인 커다란 구체 수십 개가 대리석으로 만든 건물에 부딪혀 깨지면서 사방에 붉은 불꽃을 흩뿌렸다.

그 주변에 있던 메사나의 주민들은 혼비백산하며 불꽃을 피해 도망쳤다.

“끼아아아악!”

“불이야! 하늘에서 불이 떨어진다! 어서 물을 길어 와서 불을 꺼!”

시내에 있던 메사나군 병사와 주민들은 커다란 물통에 우물의 물을 길어 와 맹렬하게 주변으로 번져 나가는 화염에 뿌렸다.

그러나 그들이 물을 뿌리면 뿌릴수록 화염은 오히려 더욱 거세게 타오르며 주변의 건물을 쉴 새 없이 집어삼켰다.

메사나 수비대의 대장은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카르타고의 신무기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있었기에 물동이를 나르는 부하들을 말렸다.

“저게 말로만 듣던 괴상한 불인 모양이구나! 물을 부으면 불만 더 번질 뿐이다! 모래나 흙을 가져와서 불을 꺼라!”

대장의 다급한 외침을 듣고 메사나의 병사들은 급히 인근의 밭에서 흙을 퍼 포대 자루에 담아 와 화재 현장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리 진화용 모래를 준비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가는 화재를 잡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카르타고군이 두 번째로 발사한 소이탄 수십 개가 다시 한번 시가지로 빗발쳤다.

메사나 원로원은 쉴 새 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의 비를 이틀을 버텨 내지 못하고 성문을 열고 하스드루발에게 항복했다.

카르타고군 병사 수만 명은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열린 성문 안으로 한꺼번에 몰려 들어가 포로가 된 메사나군 병사들을 감시하는 한편, 미리 준비해 둔 모래로 시가지의 불을 끄기 시작했다.

* * *

메사나가 항복한 지 사흘째 되던 날.

드디어 전 도시를 집어삼킬 것만 같던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하스드루발은 호위부대와 함께 숙영지를 떠나 애마 페라리를 타고 올리브나무 가지가 걸려 있는 성문을 향해 나아갔다.

화재 속에서 살아남은 메사나의 원로원 의원 백여 명이 성문 밖까지 나와 두려움에 온몸을 떨며 하스드루발에게 머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흰머리의 의원이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위대한 정복자 하스드루발 바르카 장군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이가 지긋한 걸 보니 마메르타니 용병단 출신인가 보군. 그나저나 메사나에는 로마군도 와 있다고 들었는데, 로마인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질 않는걸?”

“그··· 그게··· 로마인들은 저희들이 아무리 권해도 항복을 거부하고 항구 근처의 요새에 틀어박혀 버렸습니다.”

“그리고 너희들은 그걸 그냥 보고만 있었고 말이지.”

“하스드루발 장군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로마군의 수가 많아 저희 메사나군의 병사들만 가지고는 도저히 로마인들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스드루발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그를 잠시 싸늘하게 노려보다 곁에 있던 부관에게 말했다.

“뭐, 됐다. 기병대장. 당장 이자들을 전부 포박하라. 카르타고 시민들에게 원수의 얼굴을 보여 줘야 하지 않겠나?”

메사나 원로원 의원들은 그의 말을 듣고 안색이 창백해지고 말았다.

그들은 메사나의 병사들과는 달리 로마의 소식통에게서 바르카 가문이 피정복자에게 관대한 편이라는 말을 전해 들은 터였다.

최악의 경우에도 재산을 압수당하고 도시에서 추방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메사나 의원들은 머릿속에 쇠사슬에 묶인 채 개선식의 장식품이 될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귀족이 아닌 메사나의 다른 주민들에 대한 처우도 그 어느 때보다 가혹했다.

신전을 제외한 시내의 모든 건물은 철저하게 약탈당했고 평민들은 각자 옷 두 벌만 가지고 메사나에서 추방당해 시칠리아 전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하스드루발은 불타지 않은 메사나의 저택 중 한 곳에서 큰형과 만나 자신이 취한 조치에 대해 들려주었다.

공정한 하스드루발은 동생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정말 잘했다. 네가 너무 무른 조치를 취할까 봐 내심 걱정하고 있었어. 본국의 여론을 생각해서라도 메사나인들한테는 그러면 안 되거든.”

“형, 저 백인회 의원 당선됐었던 거 잊으셨어요? 선거 한번 치러 보면서 본국의 민심은 어느 정도 파악해 뒀지요.”

“참! 그랬었지. 이거 코끼리 앞에서 다리 굵다고 자랑한 격이구만. 본국 민심에 대해서는 나보다 훨씬 잘 알겠네.”

“아무래도 본국에는 가족들 중에서 제가 제일 자주 갔으니까요.”

“나도 네 덕에 정말 오랜만에 카르타고에 가 보게 됐구나. 그런데 개선식을 정말 나한테 양보해도 되겠어? 역사상 처음으로 시칠리아 전역을 카르타고의 세력권에 둔 거야. 남들은 일생에 한 번 경험해 볼까 말까 한 명예로운 자리라고.”

“전 벌써 개선식 두 번이나 치렀는데요 뭐.”

“그건 나도 알고 있지만, 네가 다 잡은 사냥감에 마지막 화살만 꽂는 것 같아서 영 내키질 않네.”

“그럼 대신 로마를 점령하고 나서는 제가 사두마차에 탈게요.”

“하하! 역시 포부가 크구만. 그건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한니발하고 잘 상의해 봐. 그럼 난 포로들을 데리고 카르타고에 승전보를 전하고 올게.”

“벌써 가을이 끝나 가서 바다가 거칠어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형.”

공정한 하스드루발은 동생과의 대화를 마치고 겨울이 오기 전에 서둘러 함대를 호위할 전함 50척과 전리품과 포로를 실은 수송선 수십 척을 이끌고 카르타고로 향했다.

하스드루발은 남쪽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 가는 큰형의 함대를 바라보면서 희망찬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시칠리아 정벌이 끝났구나! 내년 봄이 오면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이번에야말로 전쟁을 끝내 버리자!”

* * *

기원전 214년 11월 초.

모든 로마 시민들은 카르타고가 시칠리아 전역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마르켈루스가 전사하면서 올해의 유일한 집정관이 되어 버린 파비우스는 이탈리아 북부의 로마군 숙영지에서 원로원이 보낸 전령에게 소식을 듣고는 깊이 탄식했다.

“내년에는 어떻게든 메사나에 지원군을 더 보내려고 했건만··· 겨우 이틀 만에 항복해 버리다니, 비천한 용병단 출신인 메사나인들답구나.”

이제 로마는 곡창지대인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를 모두 잃어 식량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로마로서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스키피오가 마케도니아에게 빼앗겼던 일리리아 속주를 탈환한 후 그곳의 식량을 징수해 로마로 보내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리리아에서 들여오는 식량은 이탈리아 남부나 시칠리아에서 생산되는 막대한 밀의 양과 비할 바는 못 되었다.

그러나 이집트의 탐관오리 출신인 소시비오스가 속주민들을 철저하게 수탈한 덕에 로마는 일단 적어도 내년 여름까지는 군단병과 시민들이 굶주리는 최악의 사태만은 면할 수 있게 되었다.

파비우스는 원로원의 전령에게 서신을 하나 적어 주면서 그에게 말했다.

“당장 로마에 돌아가고 싶지만, 너도 알다시피 난 적장 하밀카르를 상대하느라 이곳에서 움직일 수가 없다. 가서 원로원에 전해라. 스키피오가 보여 준 해전 전술을 참고해야 한다고 말이다. 어떻게든 시칠리아에서 바다를 건너오는 적을 막아 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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