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 ] [183화] 기발한 해전 전술
카르타고군은 메사나를 점령한 후 주민을 모두 추방하고 라틴인이 지은 건물을 상당수 파괴했지만, 그 도시를 완전히 지도에서 지워 버리지는 않았다.
메사나는 시칠리아 북동부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은 항구도시로 그곳의 항만 시설을 이용해야 수고를 덜 들이고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반도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스드루발은 메사나에서 겨울을 나는 동안 시라쿠사에 사절을 보내 목수 수백 명을 자신에게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하루빨리 화공으로 시설 일부가 불탄 메사나의 항구를 수리하여 봄이 오면 바로 한니발과 합류해 로마 원정을 재개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며칠 전 간신히 진화된 화재 때문에 아직 검게 그을려 있는 성벽에 올라 북쪽으로 쭉 뻗어 있는 해안선을 바라보았다.
하스드루발은 머릿속에 굴곡 없이 길게 뻗어 나가는 해안선이 서쪽으로 방향을 트는 곳에 있을 메사나 해협을 떠올렸다.
“이제 저쪽에 있는 좁은 해협만 건너면 슬슬 골인 지점이 보이기 시작하겠지. 나도 이제 내년이면 서른 살이니까 본격적으로 전장을 떠돌기 시작한 지 벌써 십이 년째구나. 내년에야말로 전쟁 끝내고 제대하자.”
그때, 감상에 젖어 있는 그의 곁으로 리비아인 병사 한 명이 다가와 경례한 후 입을 열었다.
“하스드루발 장군님께 보고드립니다. 방금 한니발 장군님께서 보내신 연락선 한 척이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하스드루발은 병사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한니발 형이 이 계절에 연락선을 보내? 지중해의 겨울바람이 변덕스럽다는 걸 모를 리는 없을 텐데··· 그렇다면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내게 전해야 하는 중요한 정보가 있나 보구나. 전령을 내 막사로 데려와라. 나도 바로 그쪽으로 출발하겠다.”
그는 병사와의 대화를 마치고 서둘러 성벽을 내려와 자신의 막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전령은 장군이 막사 안으로 들어서자 경례를 한 후 그에게 손에 들고 있던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건네주었다.
하스드루발은 서신을 펼쳐 읽어 내려가면서 점점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거 또 골치 아프게 됐구만. 로마인들의 적응 능력이 만만치 않은데.”
한니발이 보낸 서신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았다.
1. 아르키메데스의 불꽃에 붙인 불을 끄는 방법을 로마인들이 눈치챘다.
2. 로마 해군이 남은 5단 노선에 코르부스를 설치하고 있다.
3. 로마에서 가까운 항구도시 오스티아에 2단 노선을 비롯한 작은 배 수백 척이 모여들고 있다.
아르키메데스의 불꽃은 한번 불이 붙으면 물속에서도 불이 꺼지지 않을 정도로 맹렬하게 타오르지만, 모래나 소변을 뿌리면 진화할 수 있다.
카르타고의 군사기밀이 유출되지는 않았지만, 로마인들은 몇 번이나 카르타고의 신무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동안 쌓인 경험으로 이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게다가 전함에 설치되어 있는 트레뷰셋이 공성용 투석기보다 훨씬 크기가 작은 것도 문제였다.
해전에서는 메사나를 함락시킬 때처럼 거대한 소이탄을 끊임없이 퍼부어 불이 번지는 속도가 불을 끄는 속도를 압도하게 하는 전술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해전에서는 아르키메데스의 불꽃이 지금까지처럼 사기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는 거군. 화염방사기로 지지는 건 여전히 효과가 있겠지만, 작은 투석기로 쏘는 소이탄의 불꽃 정도는 로마의 선원들이 금방 꺼 버리겠어. 게다가 전함에 코르부스를 설치하고 작은 배를 모으고 있다는 점도 신경 쓰이는데.”
코르부스는 1차 포에니 전쟁이 한창일 때 로마가 지중해 최강의 함대를 보유한 카르타고 해군을 이기기 위해 개발한 신무기이다.
당시 로마 해군은 아군 전함의 뱃머리에 있는 굵은 기둥에 길이 10m, 폭 1.2m 정도의 널빤지를 밧줄로 묶어 두고 적 함선에 접근하면 적함의 갑판에 널빤지를 내렸다.
널빤지 끝에 달려 있는 갈고리가 적함의 갑판에 박히면 중무장한 로마 군단병이 적의 함선으로 건너가 백병전을 벌여 카르타고의 전함을 나포했다.
로마는 코르부스를 이용해 1차 포에니 전쟁이 끝난 후에는 모든 전함에서 이 막강한 신무기를 제거했다.
이 기형적인 모양의 구조물은 해전을 벌일 때는 큰 도움이 됐지만, 먼바다를 항해하는 도중에는 전함이 균형을 잡기 어렵게 해 해상사고를 일으키는 원인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지중해의 모든 거점을 잃은 지금은 로마 해군이 다시 코르부스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스드루발은 즉시 군사회의를 열어 부관들의 의견을 물었다.
지휘관 막사에 모인 카르타고군의 장교들은 각자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로마 해군이 작은 배를 모아 수에서 우리를 압도하려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럼 우리도 똑같이 작은 어선까지 긁어모아 적에게 대항하는 게 좋겠습니다.”
“안 그래도 요즘 시칠리아의 민심이 흉흉한데 어선까지 빼앗기면 그리스인들이 여기저기서 반란이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시칠리아 남부와 서부를 경유해 좁은 해협을 지나지 않고 이탈리아반도로 가는 건 어떻겠습니까?”
하스드루발은 그들이 내놓은 작전이 그럴듯하다고 느껴지면서도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선을 끌어모으는 작전은 기각한다. 조금 전 나온 의견대로 시칠리아의 민심을 악화시킬 수 있으니 2단 노선을 최대한 많이 징집하는 걸로 대신한다. 시칠리아를 빙 돌아가는 작전은 그럴싸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이동 거리가 길어질 테니 적의 정찰선에게 항해 경로를 파악 당할 확률이 높은 게 마음에 걸리는군.”
메사나 해협에서 가장 간격이 좁은 곳은 폭이 3k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스드루발은 카르타고의 함대가 좁은 해협을 통과하다 로마 해군의 소형 전함 무리에 발이 묶인 사이 코르부스를 장착한 적의 5단 노선에게 공격당하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적지 않은 시간을 버려 가며 시칠리아를 한 바퀴 빙 도는 항해 경로를 선택하는 것도 영 내키지가 않았다.
그때 하스드루발의 곁에 있던 마시니사 왕자가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해전은 참 어렵구나··· 로마의 함대를 밀밭에 날아드는 참새떼를 쫓아낼 때처럼 겁을 줘서 물러가게 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그 말을 듣자마자 한 가지 아이디어가 하스드루발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말 잘했어, 마시니사! 바로 때려 부술 수 없으면 겁을 줘서 적을 교란시키면 되겠어!”
“어? 그게 가능하겠어? 로마군은 참새가 아니라고.”
“허수아비가 아니라 다른 걸 쓰면 돼.”
마시니사 왕자는 그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하스드루발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쁜 표정으로 장교들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내년 봄이 올 때까지 전 시칠리아에 있는 땅꾼을 동원해 동면에 들어간 뱀을 잡아 메사나로 가져오도록 해라. 참! 양봉업자들에게 후하게 값을 치르고 벌집도 최대한 많이 모아 오도록.”
그러자 카르타고군의 장교들도 마시니사 왕자와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당혹감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하스드루발에게 물었다.
“뱀하고 벌집 말씀입니까? 그런 걸 어디다 쓰시려는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여기까지 말해도 모르겠나? 당연히 로마 해군 전함의 갑판에 던져야지!”
그제야 카르타고군 장교들은 그의 생각을 이해하고 표정이 밝아졌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해전을 벌일 때 종종 적함에 뱀을 던져 적을 교란하곤 했다.
하지만 카르타고인 중에는 원 역사의 한니발을 제외하고는 그런 전술을 사용한 장수가 없었기에 대부분 카르타고 출신인 부관들은 장군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하스드루발은 자신의 계책에 감탄하는 부관들의 면면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머리 위에서 뱀이 쏟아질 때 로마군이 지을 표정이 궁금하지 않나? 자 이제 어서 움직여라! 어서 가서 뱀을 한 마리라도 더 많이 잡아 오도록 해라!”
* * *
카르타고군의 장교들은 군사회의를 마치자마자 시칠리아 전역에 사절을 보내 하스드루발의 요청을 전했다.
다만 군사기밀이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뱀과 벌집을 구입하려는 목적은 장교들의 몸보신이라고 둘러댔다.
시칠리아의 그리스인들은 카르타고인의 뱀을 먹는 괴상한 식습관에 혀를 차면서도 새로운 정복자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주었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의 흘러 겨울이 지나가고 기원전 213년의 봄이 찾아왔다.
하스드루발은 3월이 시작되자마자 메사나에 정박해 있는 5단 노선 180척과 멜카르트 20척, 2단 노선을 비롯한 작은 전함 1백 척을, 그리고 수송선으로 구성된 함대를 이끌고 메사나의 해협으로 향했다.
로마 해군은 시칠리아 주변을 맴돌던 정찰선의 보고를 받고 이탈리아 남서부 지역에서 로마가 유일하게 잃지 않는 항구도시 레기움에서 함대를 출격시켰다.
하스드루발은 북쪽에 있는 좁은 해협의 출구를 부채꼴 모양 진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로마의 함대를 보며 중얼거렸다.
“오단 노선은 대충 백오십 척 정도인가. 겨우내 저 큰 전함을 오십 척이나 더 만들다니··· 로마의 생산력은 아직도 대단하구만. 작은 전함은 오히려 우리의 두 배는 되겠는데.”
그는 자신의 전술이 통하기를 기도하며 기함의 선원들에게 명령했다.
“소형 전함을 출격시켜라!”
장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기함의 선원 한 명이 공중에 신호탄 한 발을 발사했다.
―피유우우우우웅! 파앙!
자주색 불꽃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수놓자 대열의 맨 앞에 있던 소형 전함 1백 척이 물살을 가르며 해협의 출구를 가로막고 있는 적 함대를 향해 돌진했다.
로마 해군의 제독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갈바는 그 모습을 보고 미소지었다.
“적장이 연이어 승리를 거두더니 교만해졌나? 소형 전함은 우리가 두 배는 많아 보이는데 저렇게 무모하게 돌격 명령을 내리다니. 적이 보인 빈틈을 놓칠 이유가 없다! 해협을 나오는 적 함대를 둘러쌀 준비를 해라!”
그러자 로마 해군 기함의 기수가 커다란 깃발을 휘둘러 로마군의 소형 전함 2백 척에 제독의 명령을 알렸다.
2단 노선과 작은 어선에 타고 있는 로마 해군의 병사들은 손에 검과 방패를 들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수가 적은 카르타고군의 소형 전함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은 카르타고의 함대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마침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소형 전함에 타고 있는 카르타고 해군의 병사들이 갑옷 대신 양봉업자처럼 두꺼운 천 옷으로 온몸을 가리고 양손에는 커다란 벌집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적의 의도를 알아챈 로마 해군의 병사들은 기겁하며 황급히 카르타고군의 5단 노선을 상대하기 위해 아껴 뒀던 투창과 활을 집어 들었다.
“이런 씨부럴! 저런 미친놈들!”
“저놈들을 막아! 어서 저놈들을 막으라고!”
그러나 벌집을 든 카르타고 해군의 병사들은 적이 투창과 화살을 날려 댈 때까지 기다려 줄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적 전함에 접근하자 손에 들고 있는 벌집을 적함의 갑판에 힘껏 던졌다.
그러자 벌집이 갑판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면서 그 안에 있던 성난 꿀벌 수천 마리가 새까맣게 몰려나와 로마군 병사들의 주변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왜애애애애애앵!
소형 전함에 타고 있던 로마 해군 병사들은 미친 듯이 독침을 쏘아 대는 벌을 피해 갑판 위를 뛰어다니다 바다로 뛰어들었다.
“끄아아아아악!”
카르타고 해군의 소형 전함 1백 척은 로마군의 비명에 아랑곳하지 않고 적함의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계속 벌집을 던져 댔다.
곧 로마 해군의 소형 전함 2백 척은 갑판 위에 선원이 없는 빈 배가 되고 말았다.
하스드루발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전 함대에 돌격 명령을 내렸다.
“지금이다! 전 함대 적을 향해 돌격하라!”
다시 한번 신호탄이 공중에 발사되자 카르타고 해군의 5단 노선 2백 척이 파도처럼 적을 향해 몰려가기 시작했다.
로마 해군의 제독 술피키우스는 그 모습을 보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일이냐! 저 앞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우리 병사들이 바다로 뛰어드는 거냐! 전 함대 돌격하라! 무슨 일이 있어도 해협의 출구를 틀어막아야 한다!”
이제 로마군의 5단 노선 150척도 해협 밖으로 몰려나오려는 적의 함대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대열의 후방에 있는 카르타고의 5단 노선들이 그 자리에 멈추면서 트레뷰셋으로 뚜껑이 닫혀 있는 항아리를 적의 함대에 일제히 발사했다.
로마 해군의 병사는 적의 함대에서 투사체가 날아오는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적이 항아리를 발사한다! 전함에 불이 붙으면 끌 준비를 해라!”
로마 해군 병사들은 손에 모래주머니를 들고 화재에 대비했지만, 갑판에 부딪히며 깨진 항아리에서 나온 것은 화염이 아니었다.
“으아아악! 뱀이다!”
“아악! 다리를 물렸어!”
술피키우스는 뱀에 놀라 난동을 부리는 병사들의 모습을 황망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전장에 뱀을 던지다니! 적장은 대체 얼마나 더 신성한 전장을 모독할 셈이란 말이냐!”
바로 그때, 그의 바로 옆에서 하늘을 날아온 항아리 여러 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부딪혀 깨졌다.
―쨍그랑! 쨍쨍그랑!
술피키우스는 항아리에서 튀어나온 독사의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왼쪽 종아리를 물리며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고 말았다.
“크어어억!”
지휘관이 혼수상태에 빠지자 로마의 함대는 파도에 부서지는 모래성처럼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