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185화 (185/201)

[ 185 ] [184화] 다시 뭉친 두 형제 (1)

한니발을 지원하기 위한 병력을 실은 수송선단은 로마 해군의 마지막 저항을 뿌리치고 이탈리아반도 남서부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카르타고의 함대는 날씨가 맑고 순풍이 불어 준 덕에 시칠리아를 떠난 지 겨우 사흘 만에 대도시 카푸아의 원로원이 통치하는 항구도시 부근에 도착했다.

기함의 선장은 목적지가 시야에 들어오자 선원들에게 외쳤다.

“항구가 보인다! 돛을 내리고 입항 준비를 하라!”

선실에서 잠시 쉬고 있던 하스드루발은 선장의 외침을 듣자마자 갑판으로 올라와 항구의 일꾼들이 수문을 여는 모습을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제야 다시 한니발 형과 만나겠구나! 본국으로 떠날 때는 금방 이탈리아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그가 칸나이 전투의 승전보를 카르타고 백인회에 전하러 이탈리아를 떠난 지 벌써 3년 차.

청춘이 다 지나가기 전에 전쟁을 끝내고자 마음먹었던 20대 청년은 어느덧 30줄에 들어서서 중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스드루발은 이번에야말로 로마를 정복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속으로 다짐하며 자기도 모르게 갑판의 난간을 움켜잡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그는 함대가 항구에 정박한 후 카르타고군 병사 3만 명과 보급품을 실은 수레 행렬을 이끌고 의기양양하게 카푸아 원로원의 의회를 향해 행군했다.

카푸아 시민 수천 명은 시칠리아를 정벌하고 자신들의 고향에서 가까운 바다에서 벌어진 해전을 승리로 이끈 카르타고의 장군이 성문 안으로 들어서자 대로 주변에 모여들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카르타고의 오디세우스 하스드루발 바르카 만세!”

“위대한 이탈리아의 해방자에게 영광을!”

카푸아 시민 대부분은 수십 년 전 카푸아가 처음으로 로마연합의 일원이 된 후에도 도시 대 도시의 역량만 비교하면 자신들의 고향이 로마보다 못한 점이 없다고 자부해 왔다.

그렇기에 그들은 연합의 맹주로 군림하며 자기 도시의 시민을 징집해 자국의 정복전에 동원한 로마를 이탈리아 안의 도시 중 타렌툼 시민 다음으로 고깝게 여기고 있었다.

로마인들이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 대부분과 모든 영토를 독차지했기 때문이다.

카푸아의 원로원 의원들도 다른 동포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원 원로원 건물 앞으로 몰려나와 그곳을 지나는 카르타고군을 환영했다.

그들 중 투표를 통해 올해의 지도자로 선출된 나이 지긋한 의원이 두 팔을 벌리며 거대한 흑마를 타고 있는 하스드루발에게 인사했다.

“하스드루발 장군님! 시민 전원을 대표해 다시 한번 카푸아를 찾아 주신 장군님을 환영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에피알데스 의원님. 거의 삼 년 만에 다시 뵙는군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군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시민들이 매일같이 광장과 거리에 모여 한니발 장군님과 하스드루발 장군의 활약을 칭송한 덕에 두 분이 늘 저희 곁에 계신 것 같은 기분입니다. 저희 카푸아 원로원은 두 장군님의 로마 정벌을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카푸아 시민 여러분의 변함없는 충성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제 둘째 형님이신 한니발 장군님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군요. 미리 전령을 보내 분명 카푸아까지는 저를 마중 나올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한니발 장군님께서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얼마 전 로마의 집정관으로 선출된 그라쿠스가 이끄는 군대와 대치 중이십니다. 아마 곧 카푸아로 전령을 보내오시겠지요.”

그 말을 듣고 하스드루발이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

원 역사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자이자 위대한 개혁가로 기록된 그라쿠스 형제의 조부이기도 한 이 평민 출신의 집정관은 뛰어난 군사 지휘관이었다.

그는 마르켈루스가 시칠리아로 떠난 이후 그를 대신해 한니발을 집요하게 견제하고 있었다.

그라쿠스는 파비우스 같은 뛰어난 전략과 마르켈루스 같은 무력은 없었지만, 로마의 장군 중 누구보다도 두터운 인망과 준수한 전술 지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가 직접 훈련시킨 노예 출신 군단병들은 자신들이 존경하는 장군과 함께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맹하게 싸워 전장에서 물러나는 법이 없었다.

원 역사의 한니발도 정예병의 손실을 감수하며 전면전을 벌이는 대신 계략으로 그를 유인해 암살했을 정도로 그라쿠스가 이끄는 노예 군단은 위협적이었다.

하스드루발은 웃음기가 가신 표정으로 에피알데스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전령을 기다릴 시간은 없겠습니다. 어서 한니발 형님이 계신 전장으로 가 봐야 할 것 같군요.”

“그러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저희 카푸아 원로원은 장군님께 캄파니아와 라티움 지역의 지리를 잘 아는 길잡이와 보급품을 제공하겠습니다. 그자를 따라가시면 여기서 이틀 후에는 한니발 장군님과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보급품은 나중에 보내 주셔도 좋으니 먼저 길잡이를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에피알데스는 하스드루발의 요청에 따라 즉시 행상인 출신의 카푸아인 길잡이를 뽑아 그에게 붙여 주었다.

하스드루발은 길잡이의 안내를 받으며 3만 대군을 이끌고 한니발이 기다리고 있는 북쪽의 전장을 향해 이틀 동안 행군했다.

한니발은 동생이 앞서 보낸 전령에게 서신을 받은 후 미리 숙영지 입구까지 마중 나와 하스드루발을 맞이했다.

“하스드루발! 이게 얼마 만이냐! 두어 달 기다리면 이탈리아로 돌아오겠다더니 거의 삼 년 만에 다시 보는구나!”

“형! 잘 있었어? 그동안 어디 다친 데는 없지?”

하스드루발은 한니발을 보자마자 말에서 내려 형과 얼싸안으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한니발은 동생의 얼굴을 내려다보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칸나이 전투가 끝날 때만 해도 앳된 티가 남아 있었는데 네 얼굴에도 벌써 관록이 묻어나는구나.”

“나 아직 서른 살 된 지 두 달 정도밖에 안 지났거든?”

“얼굴이 늙었다는 게 아니라 이제 지휘관으로서의 경륜이 표정에서도 보인다는 말이다. 네가 아프리카와 시칠리아를 휘저으면서 활약했다는 소식은 본국에서 오는 연락선을 통해서 다 듣고 있었어. 특히 그 사납고 영악한 마르켈루스를 지혜로 물리치다니! 승전보를 듣고도 한참 동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 그때는 운이 좋았어. 마르켈루스가 내 예상대로 무모한 도박을 해 준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거든.”

“그리스인들이 말하길 행운의 여신은 과감한 젊은이에게만 미소 짓는다고 하더군. 그 행운도 네 역량이 받쳐 줬기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었던 거야.”

하스드루발은 평소 과묵한 한니발이 자신을 계속 칭찬하자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자꾸 추켜세워 주니까 좀 부끄럽네. 지난 얘기는 나중에 하자. 카푸아 원로원 의원들에게 들으니 그라쿠스라는 장수가 형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하던데.”

“그래. 마르켈루스만큼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자다. 게다가 로마군도 우리를 상대하기 위해 무기와 전술을 바꿔서 더 골치가 아프지.”

한니발은 하스드루발에게 로마군의 전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제 로마의 기병대는 몇 달 전부터 대부분 등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로마 군단병들은 우츠 강철로 만든 단단한 경번갑을 입은 카르타고의 중장보병대를 상대하기 위해 부무장으로 도끼나 철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로마인은 본래 도끼를 켈트족이나 게르만인 같은 야만인이 사용하는 무기로 보고 업신여겨 왔지만, 검으로 뚫기 어려운 갑옷을 입은 적에게 대응하기 위해 자존심을 버린 것이다.

하스드루발은 그 말을 듣고 긴장된 표정으로 한니발에게 물었다.

“설마··· 이제 로마의 기병대도 랜스를 들고 돌격하는 거야?”

“아직은 아니야. 우리 기병들도 이 년 정도는 훈련하고서야 실전에서 랜스를 사용했잖아? 불행 중 다행인 점은 로마의 기병 충원 속도가 상당히 느리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겠지.”

로마가 지난 수백 년 동안 중장보병 중심의 전술을 운영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이탈리아반도의 지리적 특성 때문이었다.

이탈리아반도는 국토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어 평야에서 풀을 먹여 길러야 하는 말을 생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나마 평야가 많은 남부 이탈리아만이 말을 기르기에 적합했지만, 그 지역은 대부분 로마가 등자를 사용하기 전에 이미 한니발에게 정복당한 후였다.

그러나 이미 로마는 마지막 국력을 쥐어짜 이탈리아반도 안에서 1만 기 이상의 기병을 운영하고 있었고 앞으로는 말의 산지로 유명한 마케도니아에서 군마를 들여올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만약 로마의 기병 수만 기가 랜스 차징 전술을 익힌다면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이 회전에서 로마군을 상대로 더욱 고전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하스드루발은 적이 더욱 강해지기 전에 전쟁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로마군이 우리의 전술을 따라잡고 있단 말이지··· 그럼 놈들이 쫓아올 수 없도록 우리도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겠지.”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른 거야?”

“내가 시칠리아에서 데려온 병사 삼만 명 중 팔천 명이 기병이거든. 우리가 기병 전력에서 아직 적을 압도하고 있을 때 할 수 있는 전술을 써 보자구.”

* * *

기원전 213년 3월 중순.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은 7만 대군과 전투 코끼리 40마리를 이끌고 로마가 있는 이탈리아 중서부의 라티움 지역을 향해 북서쪽으로 행군했다.

로마의 집정관 그라쿠스는 두 전직 집정관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와 마르쿠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와 함께 로마군 6개 군단을 동원하여 카르타고군을 요격하기로 결심했다.

이제 로마도 연이은 패배로 많은 병사를 잃고 예산을 탕진한 탓에 더는 병력을 쉽게 충원할 수 없었지만, 그라쿠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얼마 전 카르타고가 서지중해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해 해상 보급망을 확보하면서 파비우스의 청야 전술이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라쿠스가 이끄는 6만 명이 조금 넘는 로마군은 라티움 지역 최남단에 있는 도시 시누에사 주변에서 진을 치며 거침없이 진격하는 카르타고군의 앞길을 막았다.

전직 집정관 리비우스는 들판을 가득 메우며 다가오는 카르타고군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적의 수가 우리 군과 비슷한가? 아니, 오히려 조금 더 많겠습니다······.”

그의 말에 전직 집정관 포스투미우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칸나이에서 우리는 아홉 개 군단을 동원하고도 지금보다 더 적은 적군에게 참패했습니다. 전쟁의 신 마르스께 우리를 지켜 주시길 빌어야겠군요······.”

그러나 그라쿠스는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의 위세에 눌리지 않고 눈 앞의 적을 조용히 응시하며 두 사람에게 대답했다.

“우리 로마 군단병들도 그동안 많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우리 기병대는 이제 적의 중기병과 맞붙어도 크게 밀리지 않고 보병들도 새로운 전술을 익힌 후 사기가 올랐지요. 게다가 적은 무슨 이유인지 최정예병인 중기병대를 본대 후방에 배치했다고 합니다.”

그 말에 두 집정관이 다시 전방의 카르타고군의 진영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과연 그라쿠스의 말대로 카르타고군의 좌익과 우익에는 누미디아 궁기병이 배치되어 있을 뿐 중기병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포스투미우스는 조금 밝아진 표정으로 두 동료 장군에게 말했다.

“적장은 코끼리의 돌격만으로 우리 보병대를 돌파할 생각일까요? 아무래도 카르타고인들이 연이은 승리로 조금이나마 방심한 모양입니다.”

그라쿠스는 그 말에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적이 간신히 보인 작은 틈을 철저하게 비집고 들어가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돌파당하면 전 라티움 지역이 불바다가 되고 말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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