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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186화 (186/201)

[ 186 ] [185화] 다시 뭉친 두 형제 (2)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이 알프스를 넘은 이후에도 이탈리아반도에서 유일하게 전쟁의 불길이 비켜 간 라티움 지역.

그 평화롭던 지역 남서부 평원에서 맞닥뜨린 카르타고의 7만 대군과 로마의 6만 대군이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다가가는 맹수처럼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카르타고군의 맨 앞에는 인도산 전투 코끼리 40마리가 때때로 코를 공중으로 치켜들고 요란한 울음소리를 내며 적진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코끼리 부대 뒤에는 카르타고군의 보병 5만 5천 명이 뒤따랐다.

갑옷을 입지 않고 투구와 방패만을 장비한 히스파니아 출신 경보병 5천 명이 본대의 바로 앞에서 산개 진형을 유지하며 오른손에 든 투창을 움켜쥐었다.

본대는 5만 명의 보병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맨 앞줄의 오른쪽에는 하스드루발이 데려온 리넨으로 만든 천 갑옷을 입은 리비아인 창병 2만 2천 명이 커다란 방패와 짧은 창을 들고 조용히 적을 응시했다.

그 뒷줄에는 카르타고군의 정예보병인 북아프리카 중장보병 6천 명과 히스파니아 출신 켈트족 중장보병 8천 명이 질서정연하게 나열해 본대의 뒤를 받쳤다.

리비아 창병대의 왼쪽에는 온몸에 푸른색 안료로 문양을 새긴 갈리아인 병사 1만 명이 허공에 무기를 흔들며 함성을 질러 댔다.

리비아 창병대의 오른쪽과 갈리아인 보병대 왼쪽에는 각각 크레타 궁병 1천 명과 발레아레스 투석병 3천 명이 배치되어 적을 향해 화살과 돌을 발사할 준비를 했다.

카르타고군 본대의 뒤편에는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이 직접 지휘하는 이베리아족 중기병 4천 기와 북아프리카 출신 중기병 5천 기가 출격 명령을 기다리며 대기했다.

본대의 양쪽에는 각각 누미디아 궁기병이 3천 기씩 배치되었다.

한니발과 함께 알프스를 넘은 좌익의 궁기병대는 기병대장 마하르발이 이끌었고, 하스드루발이 새로 데려온 궁기병대는 마시니사 왕자가 지휘를 맡았다.

카르타고군이 기병 비중이 높은 반면, 로마는 보병은 총 5만 4천 명, 기병이 6천 기로 보병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

로마군의 선봉에는 경보병 벨리테스 4천 8백 명이 산개 진형을 유지하며 적에게 투창을 퍼부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뒤에는 사슬갑옷과 큰 방패로 중무장한 로마 군단병과 동맹도시 보병 4만 5천 명이 나열해 있었다.

또한 중장보병대의 양옆에는 로마의 동맹도시 출신 궁수 총 4천 2백 명이 배치되어 카르타고군의 궁기병이 치고 빠지는 전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견제하도록 했다.

양 군이 진영의 거리가 약 500m 정도가 되었을 때, 로마의 보병대 지휘를 맡은 집정관 그라쿠스는 예상대로 카르타고군의 대열에서 전투 코끼리 부대가 앞장서는 모습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바르카 가문의 형제 놈들! 내가 저 덩치 큰 동물을 물리치려고 벨리테스들을 얼마나 철저히 훈련시켰는지 알면 기겁을 할 거다!”

아직 해가 중천에 뜬 한낮이었지만, 로마군의 경보병대 벨리테스 다섯 명 중 한 명은 한 손에 횃불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작년부터 그라쿠스에게 횃불과 투창으로 불을 무서워하는 코끼리를 쫓아내는 훈련을 받아 왔다.

그라쿠스는 벨리테스들이 전투 코끼리 부대를 적진 쪽으로 쫓아내면 혼란에 빠진 카르타고군의 본대를 일제히 공격할 계획을 세운 상태였다.

그러나 양군의 거리가 200m 정도로 좁혀졌을 때, 카르타고군은 갑자기 그 자리에서 멈춰 버렸다.

긴장한 표정으로 코끼리의 돌격에 대비하고 있던 로마군 병사들은 예상치 못한 적의 반응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카르타고군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 갑자기 왜 멈추지?”

“그러게? 간악한 하스드루발이 그 커다란 흑마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거면 좋을 텐데.”

그렇게 로마의 병사들이 잡담하고 있을 때, 그라쿠스의 곁을 지키고 있던 릭토르 중 한 명이 자신이 모시는 집정관에게 말했다.

“그라쿠스 집정관님. 카르타고군의 전투 코끼리 부대 모습이 듣던 것과는 좀 달라 보입니다.”

“뭐가 말이냐?”

“칸나이의 비극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들은 하나같이 적의 코끼리가 온몸에 갑주를 두르고 등에는 기수까지 합쳐 병사 네 명을 태우고 있었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런데 저 코끼리 부대는 갑옷을 입고 있지 않고 병사도 두 명만 타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그라쿠스가 그제야 이상한 점을 느끼고 코끼리 부대를 유심히 바라보려는 찰나, 로마군 진영 맨 앞에서 산개해 있던 벨리테스 몇 명이 갑자기 날아온 커다란 화살을 맞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크어억!”

“으아아아악!”

그라쿠스는 속절없이 하나둘 쓰러져 가는 벨리테스들의 모습을 보고 경악하며 소리쳤다.

“대체 무슨 일이냐! 적이 대체 어디서 저렇게 굵은 화살을 쏘아 대고 있는 거냐!”

그의 곁에 있던 부관 한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 집정관님! 화살이 코끼리 등 위에서 날아오고 있습니다! 카르타고인들이 코끼리 등에 발리스타를 설치했습니다!”

“뭐라고!”

그때 본대의 후방에 있던 하스드루발은 대열의 앞에서 온 하급 장교의 보고를 듣고 기쁜 목소리로 쾌재를 불렀다.

“그렇지! 코끼리 발리스타 부대가 제 역할을 해 주고 있구나! 로마 놈들 좀 당황스러울 거다!”

하스드루발은 어린 시절부터 기원후 9세기에서 15세기까지 캄보디아 일대를 지배한 크메르 제국의 상징인 코끼리 발리스타 부대를 운영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의 노력은 마침내 결실을 맺어 바르카 가문이 로마와의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아르키메데스가 코끼리용 소형 발리스타의 개발을 마쳤다,

그러나 아무리 소형이라도 발리스타는 험준한 알프스산맥을 넘을 때 가져가기에는 너무 부피가 크고 무거운 물건이었다.

그런 이유로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이 해상 보급로를 완성한 지금에야 히스파니아에서 가져온 신무기가 전장에서 활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코끼리 발리스타 부대의 사수들은 적군의 투창과 활의 사정거리 밖에서 화살을 발사했다.

―투웅!

동물의 내장에서 뽑은 실로 만든 발리스타의 현이 다시 한번 튕기자 창대처럼 굵은 화살 40개가 빠른 속도로 로마군의 경보병대를 향해 날아갔다.

벨리테스들은 반사적으로 왼손에 든 작은 나무 방패로 몸을 가렸지만, 벼락같은 기세로 날아온 거대한 화살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그들의 방패와 팔을 한꺼번에 관통했다.

―투콱!

적 코끼리의 돌격에 대비하고 있던 벨리테스들은 주변에서 동료들이 화살을 맞고 쓰러져 가자 비명을 지르며 퇴각하기 시작했다.

“제기랄! 코끼리가 발리스타를 발사하다니! 사기 아니냐고!”

“저런 괴물을 우리가 어떻게 막으란 말이야! 도망쳐!”

적의 경보병대가 도망가자 한니발은 전군에 전진을 명령했다.

“적진과의 거리를 반 스타디온(약 90m)까지 좁혀라!”

총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카르타고의 7만 대군이 서둘러 전진하며 적진과의 거리를 좁혔다.

코끼리 발리스타 부대는 적의 경보병 부대가 모두 전장에서 이탈하자 이제 로마군 본대를 향해 굵직한 화살을 퍼붓기 시작했다.

―투웅!

밀집 대형을 유지하고 있던 로마 군단병들은 적의 공성 무기 40대의 일제사격에 노출되자 서서히 혼란에 빠져들었다.

“끄아악!”

“겁먹지 말고 자기 자리를 지켜라! 진형이 무너지면 전멸이다!”

로마군 백인대장들은 커다란 방패를 일격에 부숴 버리는 적의 화살에 겁먹은 병사들을 독려했지만, 로마군의 진형은 점점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라쿠스는 즉각 로마군의 포병대에 카르타고군에 응사할 것을 명령했다.

“서둘러 응사해라! 우리도 야전용 공성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느냐! 어서 스콜피온을 설치해!”

집정관의 명령에 로마군 본대의 후방에 있던 포병대가 야전용 소형 발리스타 수십 대를 전방으로 가져왔다.

그러나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은 적군이 공성 무기를 설치할 때까지 기다려 줄 생각이 없었다.

“길을 열어라!”

한니발이 외치자 그의 곁에 있던 병사 한 명이 하늘을 향해 신호탄을 쏘았다.

―피유우우우웅! 파앙!

작은 국화 모양 자주색 불꽃이 하늘을 물들이자 카르타고군 본대의 병사들은 일제히 양옆으로 물러서며 후방의 중기병대가 지나갈 길을 열었다.

그러자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이 랜스와 경번갑으로 무장한 중기병 9천 기를 이끌고 본대 앞으로 나섰다.

고대의 기병 전술은 본대의 좌익과 우익에서 적의 기병대를 물리친 후 적의 측면과 후방을 공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로마군의 지휘관들도 모두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두 형제는 그런 적장의 허를 찔러 마치 중세의 기사들처럼 적진 한복판으로 돌격하기로 마음먹었다.

한니발은 곁에 있는 동생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스드루발.”

“왜 형?”

“다치지 마라.”

“걱정하지 마! 방패도 특제품으로 가져왔으니까!”

그는 하스드루발의 말을 듣고 한번 싱긋 웃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럼 나는 적 본대의 오른쪽으로 돌격할 테니까 너는 왼쪽으로 가는 거다.”

“알았어. 로마군이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어서 공격하자.”

한니발은 동생과의 대화를 마치고 하스드루발이 자기 위치로 돌아가자 우레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전군 돌격하라!”

그의 외침이 평원에 울려 퍼지자마자 9천 기의 중기병이 두 개의 거대한 쐐기가 되어 혼란에 빠진 로마군 본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나갔다.

―두두두두두두두두

소형 발리스타 스콜피온을 설치하느라 정신이 없던 로마군은 갑자기 전장의 한복판에서 랜스를 든 적 중기병대가 돌격해 오자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적 기병대가 본대로 돌격해 온다!”

“스콜피온은 버리고 무기를 들어라!”

그라쿠스는 역사상 유례없는 과감한 적의 전술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말도 안 돼! 이십 년 넘는 세월 동안 전장에 섰지만, 저토록 무모하고 위협적인 전술은 들어 본 적도 없구나! 트리알리를 전방으로 불러들여라! 어서!”

집정관의 명령에 로마군 본대 맨 뒷줄에서 대기하고 있던 최고참병 트리아리들이 서둘러 긴 창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로마군이 창으로 벽을 만들기 전에 두 형제가 이끄는 중기병대가 먼저 랜스를 앞으로 세운 채 적진에 충돌했다.

―투과과과곽!

둔탁한 충돌음이 고요했던 평원에 울려 퍼지자,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로마군의 본대가 세 갈래로 갈라져 나가기 시작했다.

로마 군단병들은 곁에 있던 동료들이 랜스 하나에 두세 명씩 꿰뚫려 절명하는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발굽에 다리를 밟혔어! 살려 줘!”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군의 본대는 완전히 세 조각으로 나뉘어 지휘 체계가 붕괴되고 말았다.

카르타고군 본대의 지휘를 맡은 장교 기스코는 그 모습을 보고 전 보병대에 돌격 명령을 내렸다.

“두 장군님께서 기회를 만드셨다! 전군 돌격하라!”

그의 명령에 5만 명이 넘는 카르타고군의 보병대와 좌익과 우익의 누미디아 궁기병대가 정면에서 진형이 완전히 붕괴되어 패닉에 빠진 로마군을 밀어붙였다.

로마의 집정관 그라쿠스는 그 모습을 보고 한탄하며 주변의 장교들에게 소리쳤다.

“적장이 싸울 때마다 다른 전술을 들고나오니 당해 낼 수가 없구나! 전군 퇴각하라! 한 명이라도 더 살아서 로마로 도망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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