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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193화 (193/201)

[ 193 ] [192화] 로마를 공격하라! (1)

기원전 213년 8월 초.

병사 2만 명을 이끌고 북쪽으로 진격하던 하스드루발은 먼발치에서 로마군 패잔병 무리가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역시 아버지셔!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파비우스를 꺾으셨구나!”

그의 곁에 있던 마시니사 왕자는 로마군을 보자마자 분노로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저 증오스러운 로마 놈들이 지금도 내 고향을 잿더미로 만들고 있어! 하스드루발, 어서 공격하자. 한 놈도 세르빌리우스 성벽 안으로 도망치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아.”

“좀 기다려 봐, 마시니사. 아마 내 아버지이신 하밀카르 총독님께서도 저 패잔병들을 쫓고 계실 거야. 지금은 적군의 퇴로를 막는 데 집중하는 게 좋겠어.”

“앞뒤로 포위해서 섬멸하려는 거구나. 그 유명한 칸나이 전투 때처럼 말이야. 알겠어. 그럼 내가 동포들하고 같이 로마군의 발목을 잡아 두게 해 줘. 그건 괜찮겠지?”

“내 휘하의 장교 중에서 너보다 그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오랜만에 한바탕 날뛰고 와.”

마시니사 왕자는 하스드루발의 승낙이 떨어지자마자 누미디아 궁기병 2천 기와 함께 흙먼지를 일으키며 로마군 대열의 왼편으로 달려 나갔다.

그는 등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다른 동포들과는 달리 누미디아의 전통에 따라 안장과 고삐도 없는 말을 타고 전장을 누볐지만, 통나무처럼 굵은 허벅지로 말의 허리를 세게 붙잡고 누구보다도 능숙하게 적을 향해 화살을 쏘아 댔다.

하스드루발은 마치 곡예를 부리는 듯한 그 광경을 보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저러니 원 역사의 스키피오가 맹획을 풀어 주는 제갈공명첢 포로로 잡은 마시니사를 풀어 줘 가면서까지 회유했지. 절대 전장에서 적으로 만나고 싶지 않구나.’

그는 잠시 넋을 놓고 친구의 활약을 지켜보다 정신을 차리고 적을 포위하기 위한 진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초승달 모양 진형을 유지하면서 전진하라!!”

카르타고군의 장교들이 장군의 명령을 전달하자, 1만 6천 명의 보병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뒤가 약간 볼록한 모양의 진형을 갖춘 후 로마군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자 로마군 병사 중 칸나이 전투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온 자들은 카르타고군의 진형을 알아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지르며 대열에서 벗어나 도망쳤다.

“카르타고인들이 또 우리를 포위하려 한다!”

파비우스 대신 로마군의 지휘를 맡은 군단장은 사력을 다해 그물을 치듯 다가오는 적군에게서 부하들을 벗어나게 하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나 마시니사 왕자가 이끄는 누미디아 궁기병들이 마치 양 떼를 모는 목양견처럼 로마군을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바람에 로마의 패잔병들은 점점 더 카르타고군의 날카로운 칼끝을 향해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마침내 로마군을 따라잡은 하밀카르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온 아군이 적을 몰아붙이는 장면을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막내아들 마고에게 말했다.

“마고야. 저기를 봐라. 남쪽에서 온 아군이 도망치는 적의 정면과 측면을 감싸듯이 포위하려 하고 있구나. 아무래도 네 형들이 벌써 우리를 도우러 온 모양이다.”

“벌써 여기까지 밀고 오다니! 역시 한니발 형과 하스드루발 형은 굉장하네요!”

“아들놈들의 수고를 헛되게 할 수는 없지. 적들이 포위망을 빠져나가기 전에 서둘러야겠다. 난 먼저 기병대만 데리고 적의 배후를 공격할 테니 넌 보병으로 지휘하면서 따라오도록 해라.”

“그럴게요. 몸조심하세요, 아버지.”

하밀카르는 막내아들과의 대화를 마치고 갈리아 중기병 4천 기와 함께 로마군 패잔병의 배후를 향해 빠르게 달려나갔다.

하스드루발은 북쪽에서 아군 기병대가 몰려오는 것을 보고 포위망을 더욱 좁혀 로마군 패잔병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붙잡았다.

적군과의 거리가 50m 정도로 좁혀지자 하밀카르가 우레같은 목소리로 휘하의 갈리아인 기병들에게 명령했다.

“곧 충돌한다! 창을 높이 들고 적을 박살 내 버려라!”

카르타고의 노장과 철갑을 두른 4천 기의 중기병은 벼락처럼 로마군의 등 뒤로 들이닥쳤다.

* * *

바르카 가문의 부자는 사전에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음에도 절묘하게 손발을 맞춰 가며 성공적으로 포위섬멸전을 마쳤다.

로마군 5만 명 중 무사히 로마로 도망칠 수 있었던 자는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도망친 집정관 파비우스와 그 수행원들, 그리고 포위망이 완성되기 전에 전장에서 이탈한 패잔병 약 5천 명뿐이었다.

하스드루발은 전투가 끝난 후 거의 4년 만에 만난 아버지와 동생을 얼싸안으며 회포를 풀었다.

“아버지! 마고야! 이게 얼마 만이에요!”

“우리 작은 하스드루발! 못 보던 사이에 더 늠름해졌구나! 한니발도 건강하지?”

“그럼요! 한니발 형도 별 탈 없이 잘 있어요. 아마 지금쯤이면 로마의 성벽 주변에 부지런히 목책을 세우고 있을 거예요.”

마고도 오랜만에 만난 형의 얼굴을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형! 여전히 건강한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놓인다. 이십 대 초반에 알프스산맥을 넘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나도 내년이면 벌써 서른 살이네.”

“그러게 말이야. 어서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야 우리도 두 형처럼 자식을 낳을 텐데.”

“아··· 형. 그동안 연락을 못 했었구나.”

“뭘?”

“작년에 부인이 아들을 낳았어.”

“뭐?! 그게 정말이야?”

“형들 덕분에 북이탈리아는 꽤 평화로워서 부인까지 전장에 나설 필요는 없어졌거든. 전쟁 중이라 애를 낳는 게 좀 꺼려지긴 했지만, 아버지께서 가문의 자손이 너무 없는 것도 불안하다고 말씀하시기도 했고.”

“늦었지만, 축하한다 마고야! 조카 이름은 뭘로 지었어?”

“증조부님 이름을 따서 히밀코라고 지었어.”

하스드루발은 마고의 말을 듣고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타고 남자 30명 중 한 명은 이름이 ‘히밀코’이겠지만, 그나마 ‘하스드루발’보다는 덜 흔한 이름인 데다 가족 중에 동명이인이 생기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밀카르는 하스드루발의 얼굴을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작은 하스드루발도 어서 자식을 봐야 할 텐데··· 혼란스러운 시국에 태어나 너희들이 정말 고생이 많았다. 이제 이탈리아반도 안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의 마지막 야전군이 전멸했으니 로마 원로원도 곧 우리에게 항복할 거다.”

그 말을 듣고 마고는 환하게 웃었지만, 하스드루발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에게 대답했다.

“아버지 말씀대로 전쟁을 마무리 지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왠지 로마인들이 최후의 발악을 할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전쟁이 계속되면 우리가 로마를 공격할 게 뻔한데도 말이냐?”

“로마 원로원은 지금 우리에게 항복하면 연합의 맹주 자리를 잃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게다가 로마는 갈리아인에게 시내를 점령당하고도 카피톨리노 언덕 위에서 여섯 달이나 농성한 전례를 이미 남긴 적이 있으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럼 너는 한니발에게 돌아가서 로마를 공격할 준비를 하도록 해라. 나는 마고와 함께 이탈리아 북동부에 있는 마지막 로마의 동맹도시들을 정벌하도록 하마.”

“그렇게 할게요. 항상 몸조심하세요, 아버지.”

“오냐. 위대하신 바알 함몬께서 너와 한니발을 도와주시길.”

* * *

하스드루발은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짧은 작별인사를 나눈 후 다시 남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이제 알프스산맥을 넘은 후 5년 동안이나 전장을 떠돈 두 형제의 남은 임무는 적이 항복할 때까지 적국의 수도를 포위하고 압박하는 것뿐이었다.

하스드루발이 이끄는 2만 명의 병사들은 잘 포장된 도로 위를 닷새 동안 행군한 끝에 마침내 로마의 일곱 언덕을 둘러싼 세르빌리우스 성벽 근처에 도착했다.

한니발은 카르타고군 군영의 입구까지 마중 나와 승리를 거두고 온 동생을 맞이했다.

“하스드루발! 무사히 로마군을 물리친 모양이구나! 파비우스는 만만치 않은 자인데, 큰 피해 없이 물리쳐서 정말 다행이다.”

“뭘. 내가 도착했을 때는 아버지께서 이미 전투에서 승리하신 뒤였어. 내가 한 거라고는 패잔병을 섬멸한 것뿐이야.”

“그랬구나. 아버지의 실력이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니 정말 든든하군.”

“그건 그렇고 혹시 그동안 로마 원로원이 사절을 보내오지는 않았어?”

“전혀. 아마 로마인들은 파비우스가 기적을 일으키기를 기대하고 있었겠지. 이제 우리가 로마 원로원에 사절을 보내자. 지금이라면 로마인들도 고집을 꺾고 성문에 올리브나무 가지를 걸 거다.”

하스드루발은 여전히 로마인들이 전쟁에서 진 채로 강화조약을 맺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고 한니발의 뜻에 반대하지 않았다.

한니발은 즉시 서신을 적어 바르카 가문의 가정교사 실레노스에게 건네주어 로마 원로원에 항복을 권하게 했다.

그러나 하스드루발의 예상대로 로마 원로원은 카르타고의 사절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문전박대하며 성문 밖으로 쫓아내 버렸다.

실레노스는 카르타고군 숙영지로 돌아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협상 결과를 보고했다.

“두 분은 아무래도 세르빌리우스 성벽을 부수고 나서야 로마 시내에서 개선식을 벌일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제가 ‘평화협정’이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로마 원로원 의원들이 노성을 질러 대며 저를 의회 건물에서 쫓아내더군요.”

한니발은 로마인들이 자신의 스승에게 무례하게 굴었다는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리며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네 말이 맞았다, 하스드루발. 로마인들은 자존심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모양이구나. 어디 세르빌리우스 성벽이 무너지고 로마 시내가 불타도 항복하지 않는지 두고 보자.”

“일단 도시를 철저하게 포위해서 시내로 보급품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야지.”

“그래. 너는 로마 주변에 목책을 두르고 참호를 파는 작업을 지휘해 줘. 나는 로마의 유격대가 공사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경계를 철저히 할게.”

“알았어. 로마의 일곱 언덕이 불바다가 되면 북아프리카에서 난동을 부리는 스키피오도 이탈리아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거야. 겨울이 오기 전에 이번 전쟁을 끝내 보자구.”

두 형제는 그리 길지 않은 회의를 마친 후 7만 명의 병사들을 지휘하여 로마의 성벽을 에워쌀 요새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하스드루발은 공사를 시작한 지 약 한 달 만에 목책을 세우고 토성을 쌓아 이중 방벽을 치고 깊은 해자를 파 도시를 완벽하게 포위하기 시작했다.

또한 포위망 바로 뒤쪽에는 거대한 공성용 트레뷰셋 20대가 성벽과 시내를 정조준하여 감시탑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로마군 초병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기원전 213년 9월 초.

드디어 공성전을 벌일 준비를 마치자, 한니발은 마지막으로 로마 원로원에 사절을 보내 성문을 열고 항복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로마 원로원은 바르카 가문의 마지막 호의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한니발은 요새 방벽 뒤에 세운 감시탑에 올라 세르빌리우스 성벽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면서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지독한 놈들! 더 피를 보고 싶다면 원 없이 보여 주마! 전 트레뷰셋! 소이탄을 발사하라!”

총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그의 곁에 있던 나발수가 힘차게 뿔나팔을 불었다.

― 뿌우우우우우우.

그와 동시에 속에서 화염이 피어오르는 철로 만든 구체 20개가 일제히 로마를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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