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 ] [193화] 로마를 공격하라! (2)
운석 폭풍이 몰아치듯 소이탄 스무 발이 하늘에서 떨어지자, 로마 시내 한복판에서 고막을 찢을 듯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콰과과광!
선철로 만든 소이탄은 로만 콘크리트와 대리석으로 지은 단단한 건물에 부딪히자마자 산산이 부서지면서 사방에 붉은 화염을 흩뿌렸다.
로마 원로원은 이미 많은 시민들을 트레뷰셋의 사정거리 밖에 있는 카피톨리노 언덕 위로 대피시킨 상태였다.
그렇지만 미처 미리 몸을 피하지 못한 자들은 게걸스럽게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불꽃을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꺄아아악! 하늘에서 불덩이가 떨어진다!”
“오오 유피테르 신이시여! 제발 로마를 지켜 주소서!”
로마인들은 카피톨리노 언덕을 향해 달려가면서 신의 이름을 부르짖었지만, 그들의 기도가 무색하게도 카르타고군은 다시 한번 소이탄을 발사했다.
―콰과과광!
이제 로마 시내 곳곳의 건물은 거센 불길에 휩싸여 마른 장작처럼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로마 원로원 의원들은 카피톨리노 언덕의 성벽 위에서 그 광경을 참담한 눈빛으로 내려다봤지만, 패닉에 빠지지는 않았다.
로마는 시칠리아에 있는 동맹도시 메사나가 작년에 카르타고군의 공격을 받고 단 하루 만에 도시의 절반 이상이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적군의 화공에 대한 대책을 어느 정도 세워 두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원로원 의원들은 자신이 후원하는 평민과 노예를 동원하여 원 역사보다 약 2백 년쯤 빠른 시기에 인류 역사상 최초의 소방대를 조직했다.
원로원의 지시를 받은 수만 명의 노예와 평민들은 다리에 쥐가 나도록 거리를 뛰어다니며 불길이 지나가는 경로에 있는 건물을 큰 망치로 때려 부수고 모래와 소변을 뿌려 화재를 진압했다.
로마의 두 집정관은 세르빌리우스 성벽 위에 서서 아무 말 없이 조금씩이나마 불길이 잡혀 가는 로마 시내를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두 사람 중 파비우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로물루스의 나라가 야만인의 공격에 불타다니··· 카르타고군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저 끔찍한 화염을 끄는 방법을 미리 알아낸 게 불행 중 다행이군요.”
그러나 그라쿠스는 언짢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동료 집정관의 말을 듣고 반박했다.
“파비우스 집정관님! 다행이라니요! 지금 다행이라는 말이 나오십니까? 귀족들이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동안 수만 명의 평민이 목숨을 걸고 화재를 진압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언제까지 적의 화공에 버틸 수 있겠습니까?”
“그라쿠스 집정관님. 그럼 대체 어떻게 하자는 말씀입니까?”
“분하지만, 지금이라도 한니발의 제안을 받아들입시다. 이대로 적의 공세가 계속되면 오늘은 위기를 넘기더라도 수많은 동포가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될 겁니다.”
“그게 무슨 망언입니까! 전쟁에서 진 채로 카르타고와 평화협정을 맺을 수는 없습니다.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려고 명예를 버릴 생각이십니까!”
“저는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제 명예를 내려놓겠습니다.”
“어디 집정관님의 명예만 더럽혀진답니까? 우리의 명예와 함께 조국 로마의 명예도 실추되고 말 겁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자결하는 게 낫습니다!”
“그렇다면 북이탈리아에 있는 스키피오 마케도니쿠스 법무관에게 로마로 돌아오라고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는 우리 로마가 카르타고에 승리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입니다. 아시다시피 페니키아인 같은 동방 출신의 민족들은 천성이 나약하지 않습니까? 농장과 마을이 불타는 걸 참지 못한 카르타고 정부가 이탈리아의 군대를 불러들일 때까지 견뎌 내야 합니다.”
“지금 로마를 포위한 적장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을 보고도 페니키아인이 나약하다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모든 페니키아인이 저 가증스러운 적장들 같았다면 카르타고는 벌써 몇백 년 전에 전 지중해를 정복했을 겁니다.”
그라쿠스는 동료 집정관의 고집스러운 답변을 듣고 미간을 찌푸리며 깊이 탄식했다.
파비우스를 비롯한 로마의 보수주의자들은 문자 그대로 명예를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겼다.
그라쿠스는 나이가 들어서 치매에 걸리는 걸 불명예로 여겨 자신의 사고력이 둔해지고 있다고 느끼면 굶어서 자살하는 극단적인 자들을 설득할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한편, 카르타고군의 장교들은 로마 시내에서 생각했던 것만큼 불길이 치솟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여기고 있었다.
하스드루발은 로마를 포위한 요새 감시탑 위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는 곁에 있던 한니발에게 말했다.
“빌어먹을! 아무래도 로마인들이 아르키메데스의 불꽃을 끄는 법을 알아낸 모양이야. 생각보다 항복을 받아 낼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겠어.”
아무리 로마 원로원이 수만 명 규모의 소방대를 조직했다고 해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소이탄이 불을 지르는 속도보다 빠르게 불을 끌 수는 없었다.
문제는 벌써 5년 넘게 전쟁을 치러 오면서 카르타고군이 보유한 소이탄의 재고도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소이탄의 가장 중요한 원료인 아르키메데스의 불꽃은 당연히 그 제조법이 국가 기밀이었고 그것을 만들 수 있도록 허락된 기술자의 수는 카르타고 정부와 바르카 가문에 의해 엄격하게 제한되었다.
그런 이유로 소이탄의 생산량은 고대 기준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한니발은 분한 듯 아랫입술을 깨물며 동생의 말에 대답했다.
“이거 번거롭게 됐군. 하지만 북아프리카에 있는 적장 스키피오도 곧 로마가 공격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될 거다. 우리가 로마를 구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상륙하려는 적의 마지막 야전군까지 물리치면 로마 원로원도 결국 성문에 올리브나무 가지를 걸 수밖에 없겠지.”
“형 말대로 되면 참 좋을 텐데. 왜 이렇게 느낌이 안 좋지.”
“어찌 됐든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로마를 몰아치는 것밖에 없다. 내일부터는 좀 더 적극적으로 도시를 공격하자.”
“알겠어. 지금은 그 수밖에 없겠네.”
다음 날 아침이 밝자, 카르타고군은 트레뷰셋으로 소이탄 대신 거대한 바위를 세르빌리우스 성벽에 발사하기 시작했다.
100kg이 넘는 바위가 성벽에 부딪힐 때마다 지축을 흔드는 굉음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콰과과과광!
같은 곳을 수십 번 공격당하자, 두꺼운 성벽의 한 귀퉁이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카르타고군 병사들은 그 모습을 보고 열화와 같은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좀 더 빨리 쏴 봐!”
그러나 이번에도 로마인들은 조국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사지에 뛰어들었다.
도시를 지키는 로마 군단병들은 집채만 한 바위가 하늘에서 날아오는 와중에도 무너져 내리려는 성벽 바로 뒤에 방책을 세우고 토루를 쌓아 적군의 진입을 막은 후 빠른 속도로 성벽을 수리해 나갔다.
로마 군단병들은 한 명 한 명이 뛰어난 전투원이자 공병이기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스드루발은 그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며 속으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무슨 벙커 고치는 SCV도 아니고, 저게 실제로 가능해?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이 오스만 제국의 대포알을 맞고 무너졌을 때 동로마 제국 병사들이 실시간으로 성벽을 수리했다던데. 지금의 로마인들도 그런 재주를 부릴 수 있구나······.’
한니발도 그 광경을 보고 한숨을 쉬며 동생에게 말했다.
“과연 끈질긴 자들이군. 포위망을 굳히고 적군의 군량이 바닥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나.”
이대로 시간을 끌면 두 형제는 언제가 로마를 함락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하스드루발은 이번 전쟁을 절대 오래 끌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원 역사의 카르타고는 삼차 포에니 전쟁 때 로마 원로원에 속아 스스로 무장을 해제한 상황에서도 로마군의 공격에 삼 년이나 버텼다. 지금의 로마는 철저하게 농성 준비를 한 상태니 그것보다도 더 오래 버틸 수도 있어.’
그는 잠시 입을 다물고 로마를 함락시킬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잠시 후, 한 가지 계책이 하스드루발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갑자기 밝은 표정을 지으며 한니발에게 말했다.
“형! 지금쯤이면 히스파니아의 광산 개발은 거의 끝났겠지?!”
“아버지께서 광산 개발을 시작하신 지 벌써 이십 년이 넘었으니 그렇겠지. 갑자기 그건 왜?”
“방금 괜찮은 작전이 떠올랐어. 히스파니아에서 광부들을 최대한 많이 데려오자.”
“광부를? 아!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그거 괜찮겠는데. 바로 노바 카르타고에 연락선을 띄워서 광부를 최대한 많이 보내 달라고 요청할게.”
두 형제는 대화를 마치고 즉시 감시탑에서 내려와 히스파니아에 보낼 서신을 작성하기 위해 지휘관 막사로 향했다.
하스드루발은 발걸음을 옮기면서 로마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로마 놈들! 이제 얼마 후면 기절초풍할 수밖에 없을 거다!”
* * *
한니발의 전령은 로마에서 말을 타고 반나절 거리인 항구도시 오스티아에서 속도가 빠른 2단 노선을 타고 신속하게 노바 카르타고로 향했다.
스키피오를 막기 위해 카르타고로 떠난 공정한 하스드루발 대신 노바 카르타고를 지키고 있던 바르카 가문의 장교들은 한니발의 서신을 받자마자 즉시 광부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반이 지나 계절이 10월에 접어들자, 마침내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이 기다리던 광부 수천 명이 지중해를 넘어 로마를 포위한 카르타고군 군경에 도착했다.
한편 그 소식은 로마 원로원이 보낸 전령을 통해 카르타고 주변에 진을 치고 있던 스키피오에게도 전해졌다.
로마인들은 새로 전장에 도착한 적의 지원군이 광부라는 사실을 알 길이 없었지만, 먼발치에서 그들의 행색을 보고 병사가 아니라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스키피오는 로마에 도착한 새로운 적이 비전투원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더 불안하게 느껴졌다.
“그자들은 아마 전원 기술자겠지. 카르타고군이 또 어떤 기괴한 기계를 만들어서 로마를 공격하려고 할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구나.”
그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다시 한번 적군과의 회전에서 승리를 거둬 카르타고 정부에게 항복을 받아 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정한 하스드루발이 북아프리카에 도착한 후 카르타고군은 마치 파비우스가 지휘하는 군대처럼 청야 전술을 펼치며 수비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적을 저 난공불락의 요새 도시에서 끌어내야 하는데···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겠군.”
스키피오는 자신의 막사에서 나와 말을 타고 홀로 군영에서 나와 카르타고의 성문 앞으로 달려갔다.
성벽 위에서 경계근무를 서던 카르타고의 초병들은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청동 흉갑을 입은 적장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즉시 전군에 그 소식을 알렸다.
“스키피오다! 성문 앞에 스키피오가 있다!”
많은 카르타고 시민과 불타는 고향을 떠나 피난 온 리비아 속주민들은 수만 명의 동포를 학살한 적장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공포에 떨었다.
반면 카르타고군의 장교들은 여유롭게 성문 앞을 거니는 스키피오를 보고 치를 떨며 공정한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장군님! 저 오만방자한 적장을 보십시오! 마치 자기 집 앞마당을 거닐 듯 카르타고 성문 앞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이런 모욕을 참아서는 안 됩니다! 시라쿠사에서 온 지원군과 힘을 합쳐 로마군을 공격하시죠!”
그러나 공정한 하스드루발은 고개를 저으며 부하들의 간청을 뿌리쳤다.
“누구 좋으라고 저런 싸구려 도발에 어울려 주란 말이냐? 속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내 철궁과 화살이나 가져와라.”
카르타고군의 장교들은 장군의 날카로운 눈빛을 보고 입을 다물고 즉시 활과 화살을 가져왔다.
공정한 하스드루발은 활과 화살을 받자마자 성문 앞을 거니는 적장을 향해 화살 한 발을 쏘았다.
―쐐애애액!
스키피오는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보자마자 급히 허리를 뒤로 젖혔다.
번개같이 빠른 속도로 날아온 화살이 아슬아슬하게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 땅에 박히자, 그의 볼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스키피오는 분한 표정으로 말머리를 돌리며 울분을 토했다.
“한니발과 하스드루발 말고도 저토록 까다로운 적장이 있을 줄이야! 오오! 전쟁의 신 마르스시여! 제발 저에게 증오스러운 적을 물리칠 힘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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