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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196화 (196/201)

[ 196 ] [195화] 로마를 공격하라! (4)

“뭐야! 저것들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카르타고군의 땅굴로 침입한 로마군 병사들은 적군이 도망치기 전 눈앞의 나무통 속에 횃불을 던지고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당황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의 당황이 공포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무통 속에 들어 있던 걸쭉한 액체에 불이 붙더니 곧 메케한 연기가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땅굴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로마군 병사들은 그제야 적군의 의도를 알아채고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소리쳤다.

“독연기다! 카르타고인들이 땅굴 속에 독연기를 풀었다!”

원 역사에서 세계최초로 전쟁터에서 독가스를 사용한 나라는 다름 아닌 사산조 페르시아였다.

페르시아군은 서기 2세기에 시리아에 있는 로마의 도시 듀라를 공격하면서 성벽을 돌파하기 위해 땅굴을 파 성벽을 무너뜨리는 전술을 사용한다.

그러나 로마군이 끊임없이 좁은 땅굴을 파 페르시아의 땅굴에 침입하며 처절하게 저항해 적의 작전을 방해한다.

이에 분개한 페르시아군은 적군이 판 땅굴을 끈적한 역청에 유황 광물과 소금 결정을 섞은 물질을 태워서 나온 독가스로 가득 메워 로마군을 질식사시켜 버렸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하스드루발은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기 위해 인류 역사 최초의 화학무기를 원 역사보다 약 4백 년 앞당겨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히스파니아에서 온 광부들은 돌발적인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작업을 하면서도 늘 주변에서 나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습관이 들어 있었기에 로마군의 삽과 곡괭이로 땅굴을 파는 소리를 일찌감치 알아채고 즉시 카르타고군 장교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카르타고군 병사들은 사전에 하스드루발에게 지시받은 대로 일사불란하게 인류 최초의 화학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카르타고군 병사들은 미리 만들어 둔 역청에 유황 광물과 석회, 그리고 소금을 섞은 물질이 가득 담긴 나무통 여러 개를 로마군 침입 예상 지점에 가져다 놓았다가 적군이 나타나자마자 불을 붙여 버렸다.

이제 로마군 병사들은 등 뒤에서 몰려오는 자욱한 독가스를 피해 비명을 지르며 왔던 길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으아악! 독연기다! 독연기가 몰려온다! 빨리 도망쳐!”

“빌어먹을 카르타고 놈들!”

카르타고군 병사들도 서둘러 도망쳐야 했지만, 로마군에 비하면 사정이 훨씬 나았다.

로마군이 판 땅굴은 성인 남자 세 명이 어깨를 맞대야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지만, 카르타고군이 판 땅굴은 열 사람이 나란히 서서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어 독가스가 퍼지는 속도가 느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르타고군 병사들은 미리 연습한 대로 물을 묻힌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린 채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달아났기에 등 뒤에서 몰려오는 연기보다 빨리 달릴 수 있었다.

반면 로마군 병사들은 당황한 나머지 무질서하게 좁은 통로로 몰려 들어가는 바람에, 빠르게 도망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선발대를 뒤따라오던 로마군 병사들이 땅굴 속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듣고 아군이 카르타고군과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더욱 속도를 올려 전진하기 시작했다.

독가스를 피해 달아나던 로마군 병사 5백 명은 앞으로 나아가던 비슷한 규모의 아군과 맞닥뜨리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료들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러 댔다.

“뭐 하고 있어! 앞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빨리 뒤돌아서 도망쳐!”

“대체 무슨 일이야? 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데?”

“설명할 시간 없어! 어서 도망치기나 하라고!”

그렇게 로마군 병사들이 서로 옥신각신하며 시간을 잡아먹는 동안, 마침내 빠른 속도로 좁은 통로를 타고 올라오던 독가스가 도망치던 로마군 병사들을 따라잡았다.

그러자 좁은 터널에 줄지어 서 있던 로마군 병사들은 탄화수소 화합물이 가득한 연기를 잔뜩 들이마시고 고통스러운 기침을 내뱉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끄어어억! 유피테르 신이시여!”

결국 약 1천 명의 로마군 병사들은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듯 차례로 땅굴 속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갔다.

무자비한 독가스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땅굴을 타고 올라와 지상에서 흙무더기를 나르는 작업을 하고 있던 로마군 병사들마저 덮쳤다.

한편 로마 시내에서 군단병들의 기침과 절규가 터져 나오고 있을 때, 독가스를 피해 달아나던 카르타고군 병사들은 무사히 땅굴을 빠져나왔다.

하스드루발은 마지막 병사가 탈출하는 것을 확인하고 즉시 땅굴 입구에서 횃불을 들고 서 있던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땅굴 천장을 받치고 있는 나무 기둥에 불을 질러라! 독연기가 땅굴 밖으로 뿜어져 나오기 전에 서둘러!”

젊은 장군의 추상같은 명령이 떨어지자 카르타고군 병사들이 일제히 땅굴 입구 부근에 서 있는 나무 기둥에 횃불을 던졌다.

미리 역청과 기름을 발라 둔 나무 기둥이 순식간에 타오르자 넓은 땅굴이 듣는 이의 정신이 멍해질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무너져 버렸다.

―우르르르르릉!

하스드루발은 귀를 가렸던 두 손을 떼며 착잡한 눈빛으로 무너진 땅굴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아··· 또 끔찍한 일을 저질러 버렸네. 이걸로 전쟁이 빨리 끝나서 원 역사보다 더 많은 사람이 살아남으면 좋으련만. 그래도 이 죄책감은 쉽게 지워질 것 같지는 않구나······.”

* * *

기원전 213년 10월 중순.

땅굴에서 뿜어져 나오던 독가스가 멈춘 지 사흘이 지났지만, 여전히 로마 시내에는 비통함이 가득했다.

카르타고군의 독가스 공격으로 로마를 지키던 병사 약 3만 명 중 1천 5백 명 정도가 질식사하거나 심각한 내상을 입고 병상에 눕고 말았다.

그러나 로마 원로원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로마 수비대가 입은 인명피해가 아니었다.

독연기를 마시고 쓰러지는 병사들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허황된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하자 시민들 사이에서 카르타고에 항복하자는 여론이 점점 커져 갔기 때문이다.

로마 시민들은 소이탄에 타다 남은 건물과 광장에 모여 떨리는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카르타고인 중에 사람을 잡아먹는 악신의 힘을 빌려 사악한 주술을 부리는 주술사가 있대.”

“어쩐지··· 그런 놈들을 어떻게 이겨! 이러다 로마 시내 전체가 독연기로 가득 차 버릴지도 몰라! 지금은 일단 항복하는 게 낫지 않을까?”

로마 원로원 의원 중에서도 항전 의지를 잃고 동료 의원들에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카르타고와 강화조약을 맺자는 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정관 파비우스를 비롯한 로마의 보수주의자들은 여전히 눈에 핏대를 세우며 결사항전을 고집했다.

파비우스는 자신의 의석에서 일어나 쿠리아 호스틸리아에 모인 동료 의원들 앞에 서서 결연한 목소리로 외쳤다.

“존경하는 동료 의원 여러분! 아니, 이제 여러분 중에서 몇 분에 대한 제 존경심을 거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보다도 조국의 명예를 귀하게 여겨야 할 원로원 의원 중에서도 북아프리카의 야만인들이 로마 시내에서 개선식을 치르게 내버려 두자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그 말을 듣고 평민파를 대표하는 집정관 그라쿠스가 발끈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파비우스 집정관님! 말씀이 너무 심하십니다! 로마 시민이 다 죽어 버리면 명예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그라쿠스 집정관님!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그 옛날 로마가 갈리아인에게 약탈당했을 때, 선조님들께서도 결국 세노네스족의 왕 브렌누스와 평화협정을 맺으셨습니다. 다시 한번 이런 일이 벌어져 참담하지만, 지금은 일단 카르타고인에게 고개를 숙여 시민들의 목숨을 구합시다.”

“집정관님께서는 선조들께서 브렌누스 왕에게 당한 굴욕은 기억하시고 그 뒤에 하신 맹세는 잊으신 모양이군요. 다시는 적에게 항복하는 굴욕을 당하지 않겠노라고 맹세하신 선조들의 유지를 저버리실 생각입니까? 다시 한번 야만인들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패자는 비참하도다!’라고 외치는 모습을 그리도 보고 싶으십니까?”

그라쿠스는 파비우스의 말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기세가 오른 파비우스는 더욱 격렬한 어조로 열변을 토했다.

“선조들께서는 로마 시내에 적군이 쏟아져 들어오고 난 후에도 반년이나 저항하시다 어쩔 수 없이 브렌누스 왕에게 항복하셨습니다. 지금 로마 시내에 노예를 제외한 카르타고인이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아니면 세르빌리우스 성벽이 무너지기라도 했습니까?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아직 이십 대 중반밖에 안 된 젊은 청년도 조국을 구하기 위해 북아프리카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라쿠스를 비롯한 주화파 의원들은 늙은 집정관의 열변을 듣고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수치심을 억누르지 못해 고개를 숙였다.

바로 그때, 갑자기 북쪽에서 터져 나온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이 전 로마 시내를 뒤흔들었다.

―콰과과과과광!!!

본능적으로 귀를 막고 바닥에 엎드렸던 원로원 의원들은 굉음이 멈추자마자 쿠리아 호스틸리아 밖으로 몰려나가 카피톨리노 언덕을 둘러싼 성벽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수많은 로마 원로원 의원이 자신의 눈동자에 비친 참담한 광경을 믿을 수가 없어 그만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로마의 일곱 언덕을 둘러싼 북문 쪽의 성벽이 큰 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듯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하스드루발의 지시를 받은 149명의 베테랑 광부들은 로마군이 독가스 공격과 트레뷰셋의 공격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에 세르빌리우스 성벽 밑으로 꾸준히 땅굴을 팠다.

그들의 목적은 침입용 터널을 뚫는 게 아니라, 성벽 바로 밑에 흑색화약을 매설할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카르타고는 아직 흑색화약으로 대포나 총기를 만들 기술력은 없었지만, 적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그저 화약을 한곳에 잔뜩 모아 터뜨리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현대에는 공병이 야전에서 시설물을 폭파할 때 필요한 폭약의 양을 계산하기 위해 고안된 위력계수라는 단위가 있다.

이 단위를 기준으로 흑색화약은 시설물 철거에 사용했을 경우에 한하여 군사용 다이너마이트와 비교해 절반을 조금 넘는 파괴력을 지니는 것으로 측정된다.

전생에 문과 출신인 하스드루발은 그 사실을 알 길이 없었지만, 최대한 많은 화약을 모아 터뜨린다는 발상은 해 낼 수 있었다.

파비우스는 다른 동료 의원들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지는 않았지만, 무너진 성벽의 틈새로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의 지휘를 받으며 들이닥치는 카르타고군 병사들을 바라보며 절망에 일그러지는 표정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수백 년 동안 로마를 지켜 온 세르빌리우스 성벽이 저토록 허망하게 무너지다니··· 카르타고인 중에는 정말로 사악한 주술사가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카르타고군의 격렬한 공세는 그라쿠스를 비롯한 주화파 의원들이 마음을 돌리는 계기를 마련하고 말았다.

그라쿠스는 황망한 눈빛으로 무너진 성벽을 바라보는 파비우스에게 말했다.

“항복을 논할 수 있는 때가 지나 버렸군요. 갈리아인과는 달리 카르타고인들은 지금 우리가 항복하면 시민들에게 로마를 버리고 떠나라고 요구할 게 분명합니다. 파비우스 집정관님. 안타깝지만, 북아프리카에서 스키피오 마케도니쿠스 법무관을 부릅시다. 그 말고 로물루스의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파비우스는 동료 집정관의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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