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198화 (198/201)

[ 198 ] [197화] 최후의 결전 (1)

‘세르빌리우스 성벽이 무너지고 수만 명의 카르타고군이 로마 시내에 들이닥쳤다.’

이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자는 스키피오뿐만이 아니었다.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는 로마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해 국고의 마지막 은화 한 닢까지 긁어모아 은밀히 군대를 육성하기 시작했다.

셀레우코스 제국을 견제하고자 뭉쳤던 그리스 도시국가 중에서도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아카이아 연맹은 일방적으로 로마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전쟁에서 손을 뗐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민한 움직임을 보인 자는 바로 임시로 로마의 일리리아 속주 총독직을 맡은 소시비오스였다.

스키피오가 막 조국을 구하기 위해 북아프리카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는 이미 휘하의 로마군 1개 군단과 용병 5천 명을 이끌고 이탈리아로 떠나는 함대에 몸을 실은 후였다.

소시비오스는 기함의 선수에 서서 불타는 로마가 있을 서쪽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로마가 멋대로 망하게 둘 수는 없지. 가증스러운 카르타고 놈들에게 복수하고 다시 지중해 최고의 권력자가 되려면 아직 로마 원로원의 힘이 꼭 필요해.”

그는 이제 전 지중해에서 이집트의 간신이자 반역자였던 자신이 권력의 핵심에 설 수 있는 나라는 오직 로마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소시비오스는 하스드루발이 집정관 그라쿠스의 군대를 물리친 지난 3월부터 약 반년 동안 틈만 나면 그리스 여러 지역에 있는 여러 도시국가에 직접 방문해 로마에 지원군을 보내 줄 것을 호소해 왔다.

‘로마가 살아남아 셀레우코스 제국을 견제해야 그리스가 독립을 유지할 수 있다.’

‘위대한 정복자 스키피오 마케도니쿠스는 아직 6만 명이나 되는 대군을 이끌고 있고 그리스 도시국가의 도움을 받으면 카르타고인을 이탈리아에서 몰아내고 로마를 구할 수 있다.’

달변가인 소시비오스가 열변을 토하며 이 두 가지 주장을 되풀이하자 적지 않는 그리스 도시국가의 집권층이 그에게 설득당했다.

마침내 소시비오스는 아카이아 연맹을 제외한 그리스 도시국가 거의 전부를 설득해 전함 1백 척으로 이루어진 함대와 용병 5천 명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그는 출항 직전 자신이 애써 모은 함대와 용병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겨우 이 정도 병력만 데리고 그 괴물 같은 바르카 가문의 형제들과 마주쳤다가는 이번에야말로 스틱스강을 건너게 되겠지. 어떻게든 스키피오에게 이 병력을 전해야 한다.”

소시비오스는 현재 스키피오와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었지만, 저돌적인 그가 로마가 위기에 처한 걸 알면 어떻게든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 서부 해안에 상륙을 시도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카르타고 해군의 시선을 아드리아해로 돌려 스키피오의 상륙을 돕는 한편, 그에게 지원군을 전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소시비오스는 1만 5천 명의 병사들과 함께 이탈리아로 향하기 직전,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지원해 준 함대의 제독에게 부탁했다.

“저는 육군과 아직 카르타고군에게 점령되지 않은 이탈리아반도 북동부 해안가에 상륙하겠습니다. 제독님께서는 전함을 이끌고 타렌툼을 공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뭐라고요? 지금 저보고 제 부하들과 함께 자살하라는 겁니까? 이 정도 육군의 지원 없이는 타렌툼을 함락할 수도 없겠지만, 무엇보다 전함 백 척으로는 시칠리아에서 벌떼같이 몰려올 카르타고 함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타렌툼을 공격하는 시늉만 하셔서 카르타고 해군을 그쪽으로 유인해 주시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적 함대가 보이면 그대로 퇴각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아! 스키피오 마케도니쿠스 법무관님께서 이탈리아에 무사히 상륙할 확률을 높이시려는 거군요.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제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포세이돈께서 제독님을 지켜 주시길 바랍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소시비오스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스키피오보다 하루 먼저 일리리아를 떠나 이탈리아를 향해 출항했다.

그의 예상대로 겁많은 타렌툼인들은 동쪽 바다에서 몰려온 전함이 항구를 공격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자 즉시 시칠리아에 주둔 중인 카르타고 해군에 지원군을 요청했다.

소시비오스는 이탈리아 최남단에 있는 항구도시 타렌툼에 카르타고 해군의 시선이 쏠린 사이에 잽싸게 이탈리아반도 북동부 움브리아 지역의 해안가에 상륙했다.

* * *

기원전 213년 11월의 첫날.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은 순조롭게 로마 시내에 트레뷰셋 설치 작업을 진행하던 중 아버지가 보낸 전령이 군영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지휘관 막사로 향했다.

밤낮으로 말을 달리느라 전신에서 흘린 땀에 절어 있던 전령은 간신히 숨을 고른 후 두 장군에게 보고했다.

“한니발 장군님과 하스드루발 장군님께 보고드립니다. 일리리아에서 건너온 로마군이 피케눔 지역에 상륙해 라티움 지역을 향해 남하하고 있습니다.”

하스드루발은 전령의 말을 듣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일리리아에 남은 로마군은 겨우 만 명 정도일 텐데? 이제 와서 그 정도 병력으로 뭘 어떻게 해 보겠다는 거지?”

“죄송합니다. 경황이 없어 자세한 보고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처음 항구도시 안코나에 상륙한 적군의 규모는 용병까지 합쳐 만오천 명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적장 소시비오스가 행군 도중 마주친 로마인 민병대를 계속 부대에 합류시키면서 지금은 적군의 규모가 약 사만 명 정도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보고를 마친 전령이 입을 닫는 순간 두 형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현재 하밀카르는 3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안코나보다 북서쪽에 있는 도시 세나 갈리아를 공략하고 있었다.

그런데 적장 소시비오스가 하밀카르보다 1만 명이나 많은 병력을 데리고도 세나 갈리아를 구하러 가지 않았다면 그의 목적은 단 하나, 바로 곧 이탈리아 서부에 상륙할지도 모르는 스키피오와 합류하는 것이었다.

한니발은 미간을 찌푸리며 하스드루발에게 말했다.

“본국에서 온 전령은 적장 스키피오가 이끄는 군대의 규모가 대략 육만 명이라고 했었지. 거기에 지원군 사만 명까지 합류하면 아주 골치 아파지겠군.”

“골치 아픈 정도가 아니야. 십만 대군과 함께 돌격해 오는 스키피오라니, 상상도 하기 싫다고. 무조건 소시비오스와 합류하지 못하게 막아야 해.”

“북아프리카에서 오고 있을 적의 수송함대가 우리 해군의 함대에 격침되면 가장 좋겠지만, 일단 스키피오가 이탈리아에 상륙한다는 가정하에 움직여야겠지.”

“아버지는 소시비오스를 따라가 잡기가 쉽지 않으실 거야. 그러니 형이 병사 이만 명을 데리고 남하하는 로마군의 앞길을 막아 줘. 아버지의 군대와 함께 앞뒤에서 적을 공격하면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을 거야. 기동성이 중요할 테니까 기병은 전부 다 데려가는 게 좋겠어.”

“그러다가 스키피오의 군대가 생각보다 일찍 로마로 몰려오면 어쩌려고? 그렇게 되면 너는 기병 없이 수가 더 많은 적과 회전을 벌일 수밖에 없어. 세르빌리우스 성벽이 무너진 데다 카피톨리노 언덕 위에서 기회를 노리는 적군 때문에 농성을 하기도 어려울 거다.”

“걱정하지 마. 이런 경우를 대비해 평소에 생각해 둔 계획이 있어.”

“그래? 한번 설명해 봐라.”

하스드루발은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곁에 있던 부관에게 파피루스 한 장과 잉크를 묻힌 깃털을 가져오게 했다.

그는 백지에 그림을 그려 가며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작전을 자세히 설명해 나갔다.

동생의 설명을 모두 들은 후 한니발은 감탄을 금치 못하며 소리쳤다.

“단순하면서도 기발한 발상이다! 확실히 그 방법이면 기병이 없이도 나와 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 버틸 수 있겠구나!”

“그렇지? 스키피오도 이런 진형을 보면 당황할 수밖에 없을 거야. 형은 어서 아버지를 도와드리고 와. 이번에야말로 지겨운 전쟁을 끝내 보자고.”

* * *

한니발이 2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라티움 지역을 향해 남하하는 로마군을 막기 위해 출발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스키피오의 함대는 거침없이 물살을 가르며 이탈리아 서부의 해안가를 향해 나아갔다.

그는 항구도시를 점령하는 데 필요한 전함이 없었기에 배를 해안가에 정박한 후 병사들을 보트에 태워 육지에 상륙시켰다.

스키피오는 모든 수송선에서 병사들이 내린 것을 확인한 후 곁에 있던 두 군단장과 그리스인 용병대장, 그리고 마사에실리족의 장교들에게 말했다.

“서둘러 피해 상황을 집계해 보고하라.”

“알겠습니다. 법무관님.”

법무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로마군의 장교들이 재빨리 항해 도중 잃은 전함과 병력 현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스키피오의 수송선단은 소시비오스의 양동 작전 덕분에 이탈리아를 향해 항해하는 도중 카르타고의 함대를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초겨울 지중해의 변덕스러운 풍랑을 피할 수는 없었다.

약 한 시간 후 군단장 중 한 명이 지휘관 막사에 들어와 스키피오에게 보고했다.

“스키피오 마케도니쿠스 법무관님께 보고드립니다. 항해 도중 수송선 열일곱 척과 그 안에 타고 있던 보병 약 사천 오백 명과 기병 약 오백 기가 풍랑에 휩쓸려 사라졌습니다.”

“하아··· 늘 저번처럼 운이 좋을 수는 없다는 건가. 겨울에 지중해를 건너면서 이 정도 피해만 입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이제 로마를 향해 행군한다. 배에서 내린 지 얼마 안 돼서 힘들겠지만, 로마 시민들은 더 끔찍한 고통을 감내하고 있음을 잊지 마라.”

로마군 병사들은 젊은 법무관의 명령에 지친 몸을 억지로 일으켜 로마가 있는 북동쪽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5만 5천 명의 로마군 병사들은 하루에 약 25km를 강행군한 끝에 로마의 서쪽에 흐르는 티베르강을 건너 세르빌리우스 성벽을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스키피오는 로마의 북서쪽에 있는 퀴리날레 언덕 쪽의 성벽이 처참하게 무너져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분통을 터뜨렸다.

“복수를 관장하는 세 여신 푸리아이께 맹세코 저곳에 있는 모든 카르타고인을 십자가에 매달고 말겠다!”

그는 고향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격하게 분노했지만, 냉정하게 정보를 수집해야 함을 잊지는 않았다.

곧 법무관의 명령을 받은 기병과 경보병 무리가 무너진 성벽 근처에 자리 잡은 카르타고군 군영 주변을 정찰한 후 로마의 스키피오에게 돌아왔다.

정찰을 다녀온 기병 중 한 명이 스키피오에게 보고했다.

“스키피오 마케도니쿠스 법무관님께 보고드립니다. 현재 카르타고군은 세르빌리우스 성벽 안에 고립되지 않기 위해 로마 시내에서 나와 무너진 성벽 바로 근처에 숙영지를 지었습니다. 적군의 규모는 약 오만 명의 정도로 보입니다. 게다가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그게 뭐냐?”

“기병이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몇십 마리밖에 안 되는 코끼리보다 말의 수가 더 적어 보일 정도였습니다.”

“흐음··· 수상하군. 예상했던 것보다 적의 규모가 너무 작아. 게다가 카르타고군에 기병이 없다고? 아무리 공성전에 기병이 쓸모없어도 적장이 회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걸 예상하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바로 그때, 지휘관 막사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키피오 마케도니쿠스 법무관님. 소시비오스 일리리아 속주 임시 총독께서 보내신 전령이 막 숙영지에 도착했습니다.”

“소시비오스가 전령을 보냈다고?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라.”

소시비오스의 전령은 지금쯤 로마 인근에 북아프리카에서 온 아군 병력이 도착할 것을 예상하고 라티움 지역 서부를 배회하다 간신히 스키피오와 만날 수 있었다.

스키피오는 막사 안으로 들어와 경례하는 전령을 반갑게 맞이했다.

“여기서 일리리아에 있어야 할 아군을 만나게 되다니 반갑군. 자네가 여기 있다는 건 소시비오스가 최소한 만 명 정도 되는 병력을 이끌고 이탈리아에 상륙했다는 거겠지?”

“거의 정확히 보셨습니다. 현재 소시비오스 임시 총독님께서는 용병과 피케눔과 움브리아 지역에서 모여든 민병대를 합쳐 병사 약 사만 명 정도를 이끌고 남하하고 계십니다.”

“사만 명이라! 소시비오스가 대단한 수완가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군.”

“다만, 소시비오스 임시 총독님의 군대는 현재 적장 하밀카르와 한니발에게 포위당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저를 보내 법무관님과 만나면 지원군을 요청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곳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나?”

“중보병이 강행군하면 약 일주일 후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스키피오는 전령의 말을 듣고 현재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

“소시비오스의 활약 덕에 로마를 포위한 카르타고군에 기병이 거의 보이지 않았던 거군. 그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겠다.”

“네?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는 이대로 로마를 포위하고 있는 적을 공격한다. 기병이 없는 적과 회전을 벌일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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