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를 정복해야 내가 산다-201화 (완결) (201/201)

[ 201 ] [200화] 불멸의 카르타고 [完]

로마의 마지막 희망 스키피오는 결국 한니발과의 결투에서 패배했다.

사력을 다해 싸우던 로마 군단병들은 그 광경을 보고 넋이 나간 듯 무기를 손에서 떨어트리며 카르타고군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반면 그리스인 용병과 마사에실리족 전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며 목숨을 부지하고자 했다.

한니발은 승리의 기쁨을 잠시 뒤로 미루고 기병대장 마하르발과 아즈루바알에게 말했다.

“패잔병은 곧 도적 떼로 변하기 마련이다. 도망치는 적군을 끝까지 추격해서 잡아 와라.”

“알겠습니다. 한니발 장군님.”

두 기병대장은 기병 1만 기를 이끌고 도망치는 용병들을 사로잡아 한니발과 하스드루발 앞에 대령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소시비오스가 이끄는 로마군 잔당을 모두 물리친 하밀카르가 로마에 도착했다.

이제 머리와 수염이 완전히 하얘진 노장 하밀카르는 로마의 성문 밖까지 마중 나온 두 아들을 보자마자 와락 끌어안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한니발! 작은 하스드루발! 정말 잘해 주었다!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로마를 점령하다니! 너희들이 내 평생의 숙원을 이뤄 주었어!”

하스드루발은 그런 아버지의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대답했다.

“전부 아버지께서 저희를 잘 키워 주신 덕분이에요. 본국의 시민들이 이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기뻐할지 벌써 눈에 선하네요!”

한니발도 오늘만큼은 감격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어서 로마 시내로 들어가시죠.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에 카피톨리노 언덕 위에서 농성하던 로마인들이 언덕에서 내려와 우리에게 항복했습니다. 그자들의 대표를 만나 보시고 로마의 처우를 결정하시죠.”

“그래, 그러자꾸나. 먼저 남은 일을 확실히 처리하고 나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게 더 마음 편할 거다.”

하밀카르는 한니발의 말에 대답한 후 두 아들과 함께 드디어 로마에 입성했다.

바르카 가문의 세 남자가 수천 명의 호위병과 함께 포룸 로마눔에 도착하자, 그들의 눈에 로마의 집정관 그라쿠스가 살아남은 원로원 의원 전원과 함께 광장에서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밀카르와 한니발, 그리고 하스드루발은 그 모습을 보고 전 지중해를 무대로 벌어진 거대한 전쟁이 카르타고의 승리로 끝난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로마 원로원 의원들을 향해 다가가는 세 사람의 곁에 도열한 카르타고군 병사들이 무기를 높이 들고 우렁찬 환호성을 질러 댔다.

“하밀카르 총독 만세! 한니발 장군 만세! 하스드루발 장군 만세!”

“위대하신 바알 함몬이시여! 디도 여왕의 도시를 축복하소서!”

하밀카르는 자신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집정관 그라쿠스 앞에 선 후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카르타고의 수페트처럼 로마의 집정관도 두 명이라고 알고 있는데 왜 혼자서 왔소? 전장에서 파비우스의 시신을 보지 못했으니 분명 카피톨리노 언덕 위로 도망쳤을 텐데.”

“파비우스 집정관님께서는 차마 조국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시고 카피톨리노 언덕 위에서 몸을 던지셨습니다.”

하스드루발은 그 말을 듣고 조금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로마의 방패’라고 까지 불리던 사람의 최후치고는 너무나 허망한 최후였기 때문이다.

하밀카르도 자신의 앞길을 몇 년 동안이나 가로막은 숙명의 라이벌이 그렇게 떠났다는 말을 듣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는지, 승리자로서 로마인에게 최소한의 자비를 베풀기로 마음먹었다.

“파비우스와 스키피오는 적이었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길 자격이 있는 뛰어난 지휘관이었소. 앞으로 사흘간의 여유를 줄 테니 그동안 로마의 전통에 따라 두 사람의 장례를 치르시오. 그 뒤에 당신과 로마 원로원 의원들은 포로로서 우리와 함께 카르타고로 떠나야 할 겁니다.”

“나머지 시민들은··· 나머지 로마 시민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미 전투 중에 포로로 잡힌 병사와 시민들은 당신들과 함께 카르타고로 끌려갈 거요. 이번에 카피톨리노 언덕에서 내려와 항복한 시민들은 일주일 후 내 휘하 장교들의 인솔 아래 로마를 떠나 지중해 각지에 흩어져 살게 될 겁니다.”

그라쿠스는 하밀카르의 말을 듣자마자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로마인들은 원 역사의 카르타고인과 마찬가지로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의 생활에 적응해 나가야 할 운명을 맞이했다.

로마인들은 파비우스와 스키피오의 시신을 수습해 사흘 동안 장례를 치른 후 그들의 유골을 가지고 로마를 떠났다.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떠나가고 도시의 절반 정도가 불탄 로마 시내의 모습은 적막하고 처량했다.

하밀카르는 두 아들과 함께 로마의 일곱 언덕 중 가장 높은 카피톨리노 언덕의 성벽에 올라 시내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자··· 이제 이곳을 어떻게 한다?”

하스드루발은 고개를 돌려 아버지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외쳤다.

“시내의 건물을 완전히 불태워 버리고 다시는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도록 소금을 뿌려 버리죠!”

그는 원 역사의 카르타고가 로마군에게 당했던 참상을 로마에 그대로 갚아 주고자 했다.

그러나 하밀카르와 한니발은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스드루발의 얼굴을 황당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밀카르는 당혹감이 가시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없이 셋째 아들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

“이상하구나··· 열도 없는데 이 총명한 녀석이 왜 헛소리를 하지?”

“헛소리라뇨 아버지! 저 안 미쳤어요! 형, 형도 이상한 표정 짓고 있지만 말고 뭐라고 말 좀 해 봐. 원수 로마에게 확실한 복수를 해야지!”

“로마인들이 고향을 떠나게 한 것만으로도 복수는 충분한 것 같은데. 뭣보다 저 훌륭한 건물들을 다 태워 버리는 건 너무 아깝잖아?”

하스드루발이 평소 냉철한 한니발의 미지근한 대답을 듣고 놀라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을 때, 하밀카르가 널찍한 손바닥으로 그의 등을 세차게 후려쳤다.

“으악!”

하스드루발은 갑작스러운 고통을 참지 못하고 구슬픈 비명을 질렀다.

하밀카르는 등을 쓰다듬는 셋째 아들을 바라보며 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작은 하스드루발 네 이놈! 전쟁을 치르는 동안 내 가르침을 전부 잊어버렸구나! 아무리 우리의 주업이 무역이라도 부동산 자산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고 누누이 얘기했거늘!”

“네···? 부동산 자산이요?”

“그래! 로마를 물리치는 데 힘을 보탠 동맹 부족과 도시에 나눠 줄 전리품을 마련해야 할 이때에 수중에 들어온 자산을 다 태워 버리자니··· 가만히 놔두면 로마인의 손때가 묻은 금화도 다 바다에 던져 버리자고 하겠구나.”

하스드루발은 아버지와 형의 반응을 보고 자신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렇구나. 원 역사의 카르타고가 얼마나 비참하게 멸망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어. 아버지께서 저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하겠구나.’

카르타고인은 하스드루발이 태어나기 수백 년 전부터 이미 무역선의 해상사고에 대한 보험제도를 만들었을 정도로 발전된 경제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카르타고인의 관점에서 백만 명의 시민이 살 수 있는 로마 시내를 불태워 버리는 것은 너무 값비싼 복수였던 것이다.

하스드루발은 아버지의 말에 수긍하고 고개를 조금 숙이며 대답했다.

“아버지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복수에 눈이 멀어 너무 경솔한 말을 했네요.”

“괜찮다. 지금이라도 내 가르침을 떠올렸으면 그걸로 됐다. 이제 기나긴 전쟁은 끝났지만, 몇 년 동안은 새로 정복한 지역을 통치하고 북아프리카의 피해를 복구하느라 꽤 바쁜 시간을 보내야 할 거다.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 보자꾸나.”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은 입을 모아 아버지에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 * *

기원전 212년 3월 초.

하밀카르는 한니발과 하스드루발, 그리고 막내아들 마고와 함께 로마에서 겨울을 보낸 후 봄이 오자마자 지중해를 건너 카르타고로 돌아왔다.

카르타고 시민들은 4두 마차 대신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한 코끼리 등에 얹어 놓은 탑 위에 올라 개선식을 치르는 네 사람을 보고 연신 공중에 꽃잎을 뿌리며 열광적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전쟁이 끝났다! 바르카 가문 만세!”

“비르사 언덕 위에 계신 모든 신이시여! 저 카르타고의 수호자들을 영원히 축복하소서!”

하밀카르는 수십 년 만에 돌아온 고향의 거리를 보며 기쁨으로 눈시울을 붉히며 세 아들에게 말했다.

“아아··· 카르타고가 많이 발전했다고 이야기를 자주 들었었는데, 정말 몰라볼 정도로구나··· 다시 한번 그리운 고향 땅을 밟아 봤으니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

마고가 그런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아버지. 앞으로는 카르타고와 바르카 가문에 기쁨과 영광으로만 가득한 나날이 계속될 겁니다. 최대한 오래 즐기고 가셔야 이득이지 않겠어요?”

“이득이라? 하하! 그래! 네 말이 맞다! 내 이날을 위해서 오십 년 가까이 전장을 떠돌았는데 적어도 증손자를 볼 때까지 살지 않으면 수지가 맞질 않지!”

한니발과 하스드루발은 두 사람의 화기애애한 대화를 듣고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그동안 카르타고의 개선 행렬은 항구에서 시작해 거리를 지나 비르사 언덕 위에 있는 백인회의 의회 건물 앞에서 멈추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 날 바르카 가문의 남자들이 탄 코끼리는 백인회의 건물 앞이 아닌 다른 곳에 멈추었다.

그곳은 바로 한니발과 하스드루발, 그리고 마고가 어린 시절 로마에 복수할 것을 맹세했던 바알 함몬의 신전 앞이었다.

네 사람이 신전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들의 갈색 눈동자에 빛나는 널찍한 홀의 좌우에 늘어선 신성대 병사들의 모습이 비쳤다.

하스드루발은 화려한 예식용 청동 흉갑을 입고 외날검 팔카타를 높이 든 신성대 병사들 사이를 지나 바알 함몬의 신상을 향해 한발씩 내디딜 때마다 가슴속에 감격이 벅차올랐다.

‘어렸을 적 바알 함몬의 신상 앞에서 아버지와 형제들과 함께 로마에 복수를 맹세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마침내 모든 과업을 마치고 모두 살아서 다시 이곳에 돌아왔구나!’

네 사람이 바알 함몬의 신상 앞에 도착하자,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신관들이 크고 잘생긴 흰색 소를 잡아 제단 위에 올려 놓은 후 불을 붙여 제물로 바쳤다.

그러자 하밀카르는 세 아들과 함께 제단 앞에 무릎 꿇고 앉은 다음, 두 팔을 들어 올리고 바알 함몬의 신상을 올려다보며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모든 신 중 가장 위대하신 분. 벼락과 불의 신 바알 함몬이시여! 저 하밀카르 바르카와 제 아들 한니발과 하스드루발, 그리고 마고는 오래전 당신께 드린 맹세를 지켰나이다! 디도 여왕의 도시를 모욕한 로마를 멸하고 당신의 명예를 지켰나이다!”

세 형제는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열광적으로 기도하는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경건하게 의식을 진행했다.

바르카 가문의 남자들은 모든 의식을 마치고 제물로 바친 소의 고기를 한 점씩 먹은 후 신전 밖으로 나와 수십 년 만에 다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카르타고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하인이 저택의 현관문을 열자 하스드루발의 동공이 커졌다.

그의 앞에 자주색 드레스를 입고 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내린 부인 소포니스바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소포니스바는 남편을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기 위해 히스파니아의 다른 가족들보다 먼저 카르타고로 돌아왔지만, 하스드루발을 놀래켜 주기 위해 그 사실을 미리 알리지는 않았다.

소포니스바는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남편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여보.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하스드루발은 부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벅차오르는 감동에 단 한마디의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다녀왔어요, 여보.”

(본편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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