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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의 하인-2화 (2/298)

2편

<-- 로터스의 하인 -->

높은 고도라서 그런지 싸늘한 한기를 머금은 매마른 바람이 주변을 휘감는다.

“여긴가...”

연속되는 격한 전투로 인해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찢겨진 철제 갑옷을 몸에 걸친채 손때가 잔뜩 묻어 검게 변색된 거대한 대검의 검자루를 움켜쥐고 내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유적지를 내려다본다.

“상상 이상이군.”

수많은 모험가들이 와서 실종된 베히모스 유적지. 바로 그곳이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과거 학자들이나 마법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면 황금빛이 가득한 함부로 손델수 없을 정도의 고풍스러움이 가득 느껴지는 아름다운 유적지라는데...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그 베히모스 유적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재앙의 결과인가...”

이미 황금빛은 퇴색한지 오래. 이리저리 균열이가고 무너지기 일보직전인 건물들. 그런 건물들 사이사이로 뭐라 표현해야 될지 모를 촉수처럼 생긴 이질적인 생물체의 신체 일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척봐도 위험 덩어리일 것 같은 유적. 하지만 그런 유적지의 모습은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철컥..

이미 갑옷으로써 성능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내 갑옷의 조임쇠를 다시 한번 꽉 눌러 고정시킨 나는 등에 매고있는 거대한 대검을 꺼내든다.

쿠웅..

검집이라기 보다 그저 커다란 가죽주머니라는 표현이 걸맞을 것같은 대검집에서 대검을 꺼낸 나는 힘없이 대검을 바닥에 축 늘어뜨린다. 그러자 묵직한 대검의 무게에 육중한 충격음이 울려퍼진다. 대검의 상태또한 갑옷과 다를바가 없었다. 여기저기 묻은 핏물들은 이미 검붉게 변색되어 있었고 손질을 안해 검날 여기저기에 이빨이 나가있었다.

“가볼까.”

하지만 그런 대검의 상태에도 별 상관없이 나는 대검을 바닥에 질질 끌며 유적의 입구를 향해 걸어간다. 그런 나를 경계하듯 유적을 뒤덥고 있는 검붉은 촉수들이 위협적으로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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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읍..!”

콰앙!!

부숴진 벽면사이로 흘러들어오는 자그마한 햇빛. 그런 햇빛을 통해 나에게 달려드는 괴물체의 움직임을 포착한 나는 주저없이 대검을 수직으로 내려찍어 그런 괴물체를 베어낸다. 하지만 이미 날이 상할대로 상해 예리함이라는 것을 잃어버린지 오래된 내 대검은 상대를 베어내기보다 엄청난 무게와 견고함으로 상대의 몸 자체를 그 자리에서 으깨버린다.

“이건.. 괴물이군.”

나는 바닥에 짓뭉개져 꿈틀거리는 상대를 바라본다. 마치 문어. 문어와 비슷한 생물체였다. 하지만 평범한 문어와 비교도 하지 못할 엄청난 크기와 호전성을 가진 정체불명의 생물. 녀석은 머리가 짓뭉개졌음에도 불구하고 발악적으로 촉수를 꿈틀거리며 내 대검에 휘감겨왔다.

“흥..”

그런 녀석의 촉수를 대충 발로 걷어차 대검에서부터 떨어뜨린 나는 주변을 둘러본다. 유적 내부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귓가로 들려오는 기분나쁜 끈적거리는 소리. 분명 이 놈말고 수많은 괴물들이 내 주변을 포위해 나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부하들이 이런 괴물이라면... 대장놈은 초거대 문어겠군.”

적진에 홀로남아있었지만 전혀 위기감을 느끼지 않은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유적을 뒤덮고 있는 검붉은 촉수를 바라본다.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았지만.. 지금의 상황으로 유추해볼 때 저 촉수의 주인이 바로 이런 재앙을 일으킨 범인인 것이 분명할 것이다.

“큭.. 죽기전에 이 유적을 점령한 망할 대장놈의 얼굴이라도 봤으면 좋겠군.”

나를 완벽히 포위했다고 판단하는 걸까. 더 이상 자신들의 존재를 숨기지 않고 어둠속에서 샛노란 눈동자를 빛내는 정체불명의 괴물들을 돌아보며 나는 되려 가볍게 콧웃음을 친다. 그리고는 이렇다할 대책없이 그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는 어둠속으로 주저없이 발걸음을 옮겨나간다.

“인간이 아닌 괴물인 너희들이라면.. 나를 죽여줄 수 있겠지.”

콰직!!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방에서 달려드는 괴물들. 일촉즉발의 위기속에서도 나는 되려 자그마한 미소를 머금고 나의 대검을 휘둘러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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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이익..!!”

콰아앙!!

나는 촉수를 이용해 내 팔에 엉겨붙어 위협적인 괴음을 내지르는 자그마한 괴생물체의 얼굴을 몸을 되려 한손으로 움켜쥔채 있는 힘껏 벽면에 찍어버린다. 그러자 손안 가득히 무언가 짓뭉개지는 기분 나쁜 촉감과 함께 오랜 세월에 걸쳐 약해질대로 약해진 유적의 벽이 힘없이 무너져내린다.

“여기인가..”

그러자 내 눈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공동. 그런 공동 중심에는 거대한 천장을 지지하는 듯한 커다란 기둥이 있었다. 그런 기둥을 발견한 나는 씨익 미소를 흘린다. 이 유적지 전체를 뒤덥고 있었던 정체불명의 거대한 촉수들. 그런 촉수들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공동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기둥으로 이어져있었기 때문이다.

“난... 정말 운이 좋은 놈이군.”

킥킥거리는 웃음을 터트리며 나는 내손에 아직도 엉겨붙어있는 망할 괴물놈의 촉수를 거칠게 떼어내며 공동 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부숴진 천정사이로 살짝살짝 스며드는 햇살. 그런 햇살을 통해 어렴풋이 내 몸의 상태가 들어나기 시작한다. 이미 수백마리의 괴물을 베고 짓뭉개버렸다. 그 과정에서도 내 몸이 성할리는 없었다. 이미 갑옷들은 괴생물체들의 무지막지한 힘으로 이리저리 찌그러지거나 찟겨져나갔고 갑옷이 미쳐 보호해주지 못했던 내 몸에는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내리는 커다란 상처들이 새겨져있었다.

“빌어먹을.. 저주..”

이미 내 몸은 한계였다. 평범한 사람은 한 두 번 죽는 것으로 어림없을 정도의 상처들. 하지만 믿을 수 없게도 내 몸은 아직 살아있었다. 아니 오히려 괴물들에 촉수에 의해 뜯겨진 상처는 천천히 아물어가고 있었다. 끊겨진 근육들이 회복되며 다시 혈관들이 이어지며 생살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내 팔을 바라보며 나는 이를 악문다.

“네놈.. 이 망할 괴물들의 대장인 네놈이면.. 내 삶을 끝내줄 수 있겠지?”

죽고싶었다. 그것이 모든 모험가들의 무덤이라는 베히모스를 찾게된 이유였다. 모험가들의 무덤. 그곳이라면 내 저주받은 삶또한 끝내 줄 수 있을거라는 믿음 속에서 난 이곳을 찾게 된것이었다.

콰드득..

그때 내 말에 반응하는 것인지 고요히 잠들어 있던 거대한 촉수들이 가볍게 꿈틀거린다. 비록 꿈틀거린다는 자그마한 움직임 뿐이었지만 워낙 거대한 몸체가 움직이자 유적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굉음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런 굉음앞에서 주눅들지 않은 나는 오히려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은채 대검을 질질 끌고 내 눈앞에 우뚝 서있는 거대한 기둥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씩 옮겨나간다.

-인간주제에.. 단신으로 용케도 이곳까지 왔군..

하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을 파고드는 건조한 남성의 목소리. 처음느껴보는 기현상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목소리의 진원지로 파악되는 거대한 기둥을 바라본다.

쿠르릉..

그러자 기둥이 살짝 흔들리는가 싶더니 기둥 사이로부터 보이는 틈새에서 7개의 샛노란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낸다.

“너는.. 누구냐?”

최초로 말이 통하는 괴물. 그 순간 나는 내 목적을 망각하고 상대에 대한 호기심에 괴물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러자 7개의 눈동자는 마치 나를 관찰하는 듯 지긋이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로터스. 대양의 지배자 로터스라 불렸다.

“로터스.. 좋은 이름이군.”

녀석이 이름이 있다는 확인한 나는 녀석의 이름을 물어본 내 행동에 왠지모를 우스음을 느껴 가볍게 킥킥거리며 대검의 손잡이를 말아쥔다. 상대가 어떤 녀석이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나를 죽일만큼 강한 힘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뿐이다.

-네 녀석.. 광혈의 저주를 받았군.

내가 주저없이 녀석에게 달려드려는 순간. 샛노란 눈동자가 살짝 빛나며 내가 저주받았다는 사실을 가볍게 간파해버린다. 녀석이 내가 받은 저주에 대해 알고있다는 사실이 살짝 놀라웠지만 그저 그것 뿐이었다. 이미 결심을 마친 나는 녀석과 더 이상 대화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양손으로 대검을 말아쥔채 녀석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다.

-저주가 상당히 진행되었어. 용케도 그 끓어오르는 광기를 제어하고 재정신을 유지하고 있군.

녀석의 혼잣말을 들으며 나는 이를 악문채 달려오던 가속도를 이용해 단숨에 도약하여 녀석의 눈동자가 번뜩이는 높이까지 뛰어오른다. 단 일격으로 녀석의 눈을 후벼팔 생각으로 양손으로 움켜쥔 대검을 번쩍 들어올리는 순간..

콰득..

녀석의 눈 주변이 가볍게 꿈틀거리더니 수십개의 촉수가 날카롭게 쏟아져와 녀석의 눈동자를 으깨버리려던 내 몸을 허공에서 붙잡아버린다.

“크읏..!!”

결국 녀석의 몸에 닿지 못하고 허공을 무의미하게 갈라버리는 대검. 나는 허공을 가르는 무거운 대검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대검을 놓쳐버린다. 떨어져내리는 대검은 그 무거운 무게로 나를 붙잡고 있는 촉수 몇가닥을 끊어버렸지만 그정도로 내 몸을 옭아 매는 촉수들을 떨쳐내기 무리였다.

-광혈의 저주를 감당해낸 이는 그 대가로 엄청난 힘을 얻게 되지. 갑작스레 얻게된 엄청난 힘 힘에 의한 만용인가?

녀석은 내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단단히 포박한 후. 샛노란 눈동자를 가늘게 떠서 나를 노려보며 묻는다. 하지만 그런 녀석의 질문에 나는 되려 콧방귀를 뀌며 별 미련이 없다는 듯이 눈을 감으며 말한다.

“나를 죽여라.”

-오호라.. 네놈. 저주를 감당해내지 못했군.

그러나 녀석은 내 뜻대로 나를 손쉽게 죽여주지 않고 찬찬히 나를 관찰하며 흥미롭다는 듯한 목소리로 느긋하게 말을 이어나간다.

-강렬한 자극으로 인한 순간적인 각성일 뿐이군. 너는 광혈의 저주를 감당해낼 그릇이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나마 광혈의 저주를 억눌를 수 있었던 것은 너의 가족의 죽음과 상응하는 충격을 겪은 덕분이군.

“시끄러!!”

나는 고작 거대한 문어주제에 마치 실험용 동물을 관찰하며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학자처럼 행동하는 로터스라는 녀석에게 거칠게 욕설을 내뱉는다. 하지만 그런 내 욕설에 별 관심없다는 듯이 녀석은 여전히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간다.

-그래. 그래도 재능은 있어. 잠깐의 시간동안 광혈의 저주를 이렇게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니... 네 녀석에게 제안을 건낸다.

“나에게 제안을? 흥. 무슨 개소리냐?”

언뜻보면 패배한 나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는 듯한 말투였지만 나는 되려 콧방귀를 뀌며 어이없다는 듯한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나는 죽으려 이 자리에 온것이다. 녀석의 제안을 수락하면서 까지 삶을 연명할 이유는 없었다.

-어자피 너에게 선택권은 없다. 승자는 나고 너는 패자다. 너는 내 제안에 따라야만한다.

“개소리. 내가 너의 말을 들을 것같으냐?!”

-그건 두고봐야겠지.

약간의 웃음기가 섞인 마지막 목소리. 그와 동시에 내 몸을 옭아매던 촉수가 거칠게 휘둘러지며 내몸을 허공에 붕 띄워버린다. 순간 허공에 내팽겨쳐진 나는 양손과 다리를 허우적거려보지만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던 나는 중력의 힘을 거스르지 못하고 유적 바닥을 향해 빠른 속도로 떨어져내린다.

콰아앙!!

“크..허억!!”

하지만 내 몸이 자연스럽게 바닥에 떨어져내리기도 전. 채찍처럼 휘둘러진 로터스의 촉수 하나가 내 몸을 강타하며 유적 바닥에 매다 꽂아버린다. 온몸을 뒤흔드는 강렬한 충격.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단숨에 피떡이 되며 즉사할만한 충격이었지만 내 몸은 그런 평범한 인간과 상당히 거리가 먼 신체였다.

“쿨럭..!!”

내장이 조각조각 나는 끔찍한 고통. 온몸의 뼈가 뒤틀리고 가루가 되는 강렬한 통증속에서도 나는 살아있었다. 뿐만아니라 그렇게 조각조각난 신체들이 조금씩 재생되어지는 끔찍한 기분을 만끽하며 나는 자욱한 흙먼지 사이로 보이는 녀석의 샛노란 눈동자를 노려본다.

-너는 내 하인이 된다. 과거 너와 비슷한 녀석을 본적이 있지. 너가 그 놈만큼 잘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 기대는 져버리지 않길바란다.

녀석의 기분나쁜 한마디에 뭐라 반박을 해보고 싶었지만 머리가 어질해지는 충격속에서 천천히 내 의식을 흐릿해져간다. 힘없이 천천히 숙여지는 얼굴. 뿌옇게 탁해지는 시야속으로 내 눈에는 날카롭게 날이 선채 내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에 박혀있는 녀석의 촉수를 확인하며 내 의식은 깊은 나락속으로 힘없이 떨어져내린다.

========== 작품 후기 ==========

로터스. 던파의 그 로터스맞습니다. 베히모스도 거기에서 따온겁니다.

애시당초 초창기 로터스의 하인은 던파 팬픽이었으니까요.

뭐.. 일단 던파를 접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게 세계관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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