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 로터스의 하인 -->
휘이이잉..
상당히 높은 고도라 그런지 싸늘한 한기를 머금은 매마른 바람이 내 몸을 휘감는다.
“...이런 생각. 전에도 해본것 같군.”
실없는 미소를 흘리며 혼잣말을 고요히 중얼거린 나는 내 어께에 기대고 있던 거대한 붉은 대검의 검자루를 움켜쥐며 높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거참... 5년 전만해도 이 험악한 산을 기어 오르다싶이해서 이곳까지 올라왔는데.. 요즘 인간들은 상당히 간사하군.”
구름 한점없이 높은 하늘위에는 구름 대신 대지에 거대한 그림자를 남기고 있는 커다란 배가 떠있었다.
-마치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군.
“뭐... 이미 인간이라고 말하기 거리가 상당히 멀어버린 존재가 되어버린건 사실아닌가?”
이제 너무나도 익숙해진 로터스의 사념. 나를 비꼬는 녀석의 한마디를 그저 피식거림으로 넘긴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어께에 기대놓았던 거대한 붉은 대검을 너무나도 가볍게 한손으로 들어올리며 몸을 풀어나간다.
“그럼... 시작해볼까?”
하늘 높이 떠있는 배로부터 수많은 사다리들이 유적을 향해 늘어뜨려지자 나 또한 거대한 붉은 대검을 어께에 걸친채 사다리를 타고 사람들이 내려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 내 주변으로 새로운 먹잇감이 등장하자 어둠속에서 목표물을 향해 빠른 속도로 미끌어지는 괴물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자... 그럼 내가 선봉을 맡지. 크크큭..
비공정에서부터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유적에 내려오자 로터스가 직접 움직여나가기 시작한다.
콰아아앙!!
한쪽 유적이 무너지며 거대한 촉수가 허공에 떠있는 비공정을 향해 쏘아져나간다. 갑작스런 공격앞에 느릿한 비공정은 너무나도 쉽게 로터스의 공격을 허용해버린다. 엄청난 신축성과 힘을 자랑하는 로터스의 촉수는 단숨에 비공정을 말아쥐었고 아직 사람이 남아있는 비공정을 천천히 땅으로 끌고오기 시작한다. 그러자 공포와 두려움에 섞인 인간들의 비명이 유적의 벽면에 부딪혀 아련하게 내가 있는 곳까지 흘러들어온다.
-잡아라. 저항하는 녀석은 죽이고 먹잇감으로 사용할 인간들을 포획해라.
“알아 안다고..”
몇 십번을 들어 이미 머릿속에 각인된 녀석의 지시를 들으며 나또한 붉은 대검을 움켜쥐고 유적을 향해 착지한 인간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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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나는 로터스에게 패배했다. 그는 나를 죽이지 않았고 대신 나에게 제약을 걸어 자신의 하인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로터스에게 패배한 후. 내가 눈을 떳을때 보였던 것은 내 가슴 한가운데에 박혀있는 거대한 붉은 대검. 정신을 차리자 대검에 의해 짓뭉개진 가슴으로부터 격령한 통증이 머리를 강타해왔다.
“크으읏..”
콰득.. 콰드득!!
나는 양손으로 내 가슴에 박힌 대검의 검날을 움켜쥐고 천천히 가슴에 박힌 대검을 빼낸다. 그러자 처참하게 피떡이 되어있던 가슴이 빠른속도로 재구성되어 아물어가기 시작한다.
-그 검은 나의 선물이다.
가슴에 박혔던 대검을 빼내자마자 내 머릿속으로 울려퍼지는 로터스의 사념. 자리에서 비틀비틀 일어난 나는 붉은 대검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주변을 경계하지만 한치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로터스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너의 심장에는 너희들이 괴물이라고 부르는 텐타클이라는 생물체의 알이 심어져있다.
내 심장에 심어진 괴물체의 알. 광혈의 저주를 받은 나는 심장이 터져도 잠시동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망할 광혈의 저주는 내 심장을 재생시켜 나를 되살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심장에 심어진 텐타클이 부화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 몸속에서 부화된 텐타클이라는 생물체는 난동을 피우며 재생되는 심장을 찢고 또 찢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 또한 죽음을 면치않을 수 없었다.
“그거 참 고맙군. 나에게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주다니 말이야.”
-크크큭. 그 또한 알고 있지. 그래서 난 너에게 너 스스로 자살한다는 선택권을 없엤다.
로터스. 이 망할 생물체는 다른 생물의 정신을 조종하는데 익숙했다. 망할 문어처럼 대가리만 큰것이 그런쪽으로 발달되서 그런것일까... 비록 영구적으로 조종할 정도로 강력하지 않았지만 몇가지 제약을 거는 것은 가능했다. 나에게 걸어진 제약은 바로 내가 자살. 혹은 그럴 목적으로 행동을 하려한다면 머리에 강렬한 통증을 유발시킨다는 제약이었다.
-뭐.. 한번 체험해보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는다. 나도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 강렬한 고통일껄? 한번 느껴보면 살아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할 정도로의 통증이니까.
녀석의 경고에 나는 콧웃음 치며 주저없이 내 대검으로 내 심장을 찌르려했다. 하지만 그 순간 찾아온 고통. 말 그대로 끔찍한 고통이었다. 어떤 거인이 내 뇌를 움켜쥐고 그대로 잡아 뜯으려는 듯한 통증. 그것도 단번에 뜯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뜯어내며 신경 하나하나가 끊어지는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한 고통이었다. 그러한 고통속에서 내 의지와 다르게 나는 내 가슴을 향한 대검을 움켜쥐고 있던 손을 놓쳐버렸다.
-크크큭.. 그러한 고통은 내 지배력이 닿는 베히모스에서 벗어나고 3일 이상 떨어지면 천천히 발현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통증이 느껴지고 이틀 뒤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면 심장에 심어진 알이 부화하며 너는 끔찍한 고통속에서 처참하게 죽어가겠지. 잘 알아두라고.
마지막으로 녀석은 내가 도망칠 선택권마져 강탈해버렸다. 결국 나는 내가 원하는대로 죽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내 의지대로가 아닌 녀석의 의지대로 살아남아 그의 밑에서 그의 하인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로터스의 하인.
말 그대로 괴물의 몸종이었다. 유적안에 갇혀버린 녀석은 자신의 몸을 가두고 있는 유적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하지만 호기심이 강한 인간들은 모든 학자들이 실종된 유적에 계속 관심을 가졌고 유적에 침입을 시도해오고 있었다.
내가 해야할 일은 로터스의 부하인 텐타클이라는 망할 문어괴물들과 함께 침입자를 막고 제거하는 것. 그리고 포획하는 일이었다.
“네.. 네놈은 누구..”
콰아앙!!
나는 같은 인간인 나를 발견하고 기겁하며 내 정체를 묻는 남자의 얼굴을 붙잡아 그대로 벽면에 박아버린다. 생각외로 약한 인간의 두개골은 내 괴력에 의해 단숨에 으깨지며 붉은 핏물을 내 몸에 튀기게 만든다.
“막아!! 막으라고!! 모두 배운대로 진형을 유지해!!”
머리를 잃어 힘이 풀린 시체를 옆으로 걷어차며 나는 유적 한가운데에서 텐타클들을 경계하며 대열을 짜고있는 인간들을 바라본다. 어느정도 괜찮은 갑옷을 입고있는 그들. 돈만보고 굴러들어온 풋내기는 아니었다. 그들은 신속하게 둥글게 대열을 갖추며 텐타클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마법사군”
그런 내 눈에 들어오는 로브를 뒤집어 쓴 인간들. 다른 병사들과 다르게 움직이기 편한 로브를 입은 그들은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주변을 경계하며 병사들에게 보호받고 있었다.
“그것도.. 여자.”
그런 마법사들중 몇 명의 여성들을 발견한 나는 작은 미소를 흘린다. 마나를 몸에 품은 인간 여성. 로터스가 좋아하는 포획감이었다. 하지만 나는 섵불리 움직이지 않고 주의깊게 다른 인간들을 확인해본다. 자세히 살펴보니 마법사를 보호하는 병사들중 몇몇은 여성이었다. 자세히 인간 무리를 둘러본 나는 여성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스르륵..
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텐타클들도 나를 보조하려는 듯이 내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5년. 5년이라는 긴 시간은 징그럽고 끔찍하보이는 문어처럼 생긴 텐타클에게도 정이 생기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언제나 나를 보호하며 대장처럼 따르는 텐타클들. 어느센가 그런 녀석들을 애완동물 취급하는 나였다.
나는 한치의 주저없이 당당한 발걸음으로 인간들 무리 앞에 선다. 수많은 텐타클들의 중심에 서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인간들은 경악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지만 나는 그런 그들을 향해 씨익 미소지으며 내가 움켜쥐고 있는 대검을 번쩍들어올린다.
“후읍...!!”
그리고 짧막한 기합과 함께 있는 힘껏 내 대검을 녀석들을 향해 집어던진다. 그러자 기겁한 병사들은 허겁지겁 자신의 방패를 들어올려 내 붉은 대검을 막아보려하지만..
콰지지직!!
엄청난 무게와 무지막지한 내 힘이 담겨진 대검은 녀석의 방패와 같이 녀석의 몸을 짓뭉개버리며 뒤에 멍하니 서있는 다른 병사를 동시에 피떡으로 만들어버린다.
“가라.”
촤아악!!
한치의 빈틈없이 단단한 대열을 이루고있던 인간 무리사이로 커다란 빈틈이 생겨버린다. 내가 신호하기도 전 텐타클들은 신속하게 그 틈을 파고들어가기 시작하고 순식간에 균형이 무너진 인간 무리들은 천천히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이.. 이놈 좀 뗴어줘..!! 커헉!!”
로터스와 비할바는 못하겠지만 엄청난 힘과 흡착력을 가진 촉수를 자랑하는 텐타클들. 그런 녀석들은 인간들에게 달라붙어 약한 갑옷틈새를 노려 무지막지한 힘과 흡착력으로 인간들의 살점 자체를 뜯어내버린다. 수십마리의 텐타클들의 침입을 허용한 인간 무리는 너무나도 손쉽게 무너져내린다.
콰드득..
텐타클 사이를 여유롭게 걸어 두명의 인간 시체를 꿰뚫고 대지에 박힌 내 대검을 회수한 나는 피가 묻어 더욱 붉은 빛을 띄는 대검을 어께에 걸치고 주변을 둘러본다. 로터스의 명령에 충실한 텐타클들은 죽음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 없이 인간들 사이를 헤집으며 하나하나 착실하게 병사들의 숨을 끊어버린다. 하지만 텐타클이 숨통을 끊지 않는 유일한 존재들.
“웁.. 우웁!!”
그것은 인간 무리에 드문드문 보이는 여성들이었다. 텐타클들은 단숨에 숨통을 끊어버리는 인간들과 다르게 여성들에게는 그들의 호흡기에 달라붙어 질식을 통한 기절을 유도할 뿐이었다.
“라이트닝 볼트!!”
파치지지직!!
모든 상황이 정리되어가자 내가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아비규환이 된 소음 속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그와 동시에 주변을 뒤덮는 푸른 섬광.
“...흐음..”
온몸에 점액범벅인 텐타클들은 전격 마법에 약했다. 그 사실을 간파한 듯 한 마법사가 전격마법을 발현한 것으로 보였다. 단 일격. 단 일격에 나를 쫓아온 텐타클 중 절반이 행동불능의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당신.. 괴물에게 몸과 마음까지 바쳤군요!”
순식간에 다수의 텐타클이 쓰러지자 수세에 몰려있던 병사들의 사기가 한껏 치솟아오른다. 나는 아무말없이 방금전 전격마법을 발현한 주인공으로 보이는 푸른 로브를 쓰고있는 한 여성을 바라본다. 척 봐도 다른 마법사에 비해 상당한 실력을 인정받는 듯 그녀가 입고 있는 로브는 고급스러운 수실로 화려한 무늬가 새겨져있었다. 스쳐지나가는 매마른 바람에 흩날리는 푸른 머리카락. 자신감과 도도함으로 가득찬 얼굴로 나를 노려보는 그녀를 나는 시큰둥한 얼굴로 마주 바라본다.
“뭐.. 누가 들으면 이상한 방향으로 오해할 말이군.”
나는 감전에 의해 새까맣게 타버린 내 손을 바라본다. 녀석의 전격마법은 거리가 떨어져있는 나에게 영향을 줄 정도로 강력했다. 평범한 인간이었으면 단숨에 기절. 절명에 이를 정도로 강렬한 전격이었지만 불행히 나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실력이 제법 뛰어나군. 로터스가 상당히 좋아할만한 녀석이야.”
새까맣게 변색퇸 내손을 가볍게 허공에 털어버린다. 그러자 새까맣게 타버린 살갗이 부스러져 내려가며 빠르게 새살이 돋아나는 내 손이 모두에게 보여진다. 그런 괴물같은 회복력에 여마법사는 뭐라 할말을 잃고 뻥긋거리며 나를 바라본다.
“어린나이에 대단한 실력이지만... 하필이면 이곳에 오다니. 너의 운명의 끝은 해피엔딩이 아니군.”
“흥! 그것은 아직 모르는 겁니다!”
========== 작품 후기 ==========
이름도 정하지 않는 엑스트라.
뭐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