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터스의 하인-6화 (6/298)

6편

<-- 성녀 리엔 -->

와글와글...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커다란 거리. 간만에 느껴보는 생기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는 한동안 멍하니 건물 벽에 몸을 기대 오고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망할 로터스 놈 때문에 여러모로 상당히 괴롭기는 했지만 나는 어떻게든 인간들이 사는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무리 휴가라 해도... 할 일은 없군.”

나는 조용히 투덜거리며 붉은 내 머리를 긁적거린다. 막상 도시에 왔지만 특별히 할 일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애시당초 베히모스로 들어간지 5년이나 지난 지금. 내 인연이 닿아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다 중요한 것은 돈조차 한푼도 없다는 것이다.

“...쳇.”

가볍게 혀를 차 내 불만을 표현한 나는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떼고 수많은 인파들에 섞여서 목적없는 발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한다.

“제 4차 베히모스 원정단을 모집합니다!!”

그때 내 귀에 파고드는 우렁찬 목소리. 베히모스 원정단이라는 단어에 귀가 솔깃해진 나는 걸음을 멈추고 목소리가 터져나온 방향을 바라본다. 그곳은 한 조그마한 광장. 정체모를 한 여신의 동상이 세워진 곳 앞에서 신관으로 추정되는 한 사람이 손에 종이 하나를 들고 사방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제리스 교단에서 다시 한번 베히모스를 정벌할 원정단을 모집합니다!!”

“원정단이라...”

안그래도 이제 곧 베히모스로 되돌아가야 할 때였다. 베히모스 산을 다시 기어오르기 보다 원정단 틈에 섞여서 그 유명한 비공정을 타고 돌아가는 것이 몇 십배는 더 편한일이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이번 원정단은 교단의 대신관님이시자 선택받은 자인 리엔님도 같이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자 신관이라는 남자는 회심의 카드를 꺼내든다. 그것은 선택받은 자라는 리엔.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린다.

“선택받은 자? 그런건 들어본 기억이 없는데.”

낯설고 생소한 단어. 내가 5년전에 사람들의 틈에 끼어서 살고 있을때도 들어본 기억조차 없는 단어였다. 애시당초 아제리스 교단이라는 종교단체조차도 내가 인간 세상과 연을 끊은 5년 사이에서 새로 생겨난 신흥 종단체이다.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벌써부터 도시 곳곳에 아제리스 교단을 상징하는 문양이나 아제리스 여신이라는 동상이 세워진 것으로 보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것 같았다.

웅성웅성.

이때까지 단 한번도 살아돌아온 사람이 없었던 베히모스 원정단을 모집한다는 남자의 목소리에 거리의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외면하고 지나갔지만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대신관이자 선택받은 자라는 리엔의 이름이 거론되자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임이 천천히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을 돌아보던 나는 어자피 비공정에 올라탈 것. 동요하는 사람들을 이끌어 어떻게든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기 위해 먼저 손을 들려는 순간 단상위에 올라서 있던 남자가 조심스럽게 옆으로 자리를 피하며 그 자리를 대신해 한 명의 여성이 천천히 걸어올라온다.

“안녕하세요.”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끄러운 듯이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내는 여성. 화려하지 않고 단아한 순백의 신관복을 차려입었고 그와 대조되게 흑진주처럼 검고 잔잔한 윤기가 흐르는 긴 생머리카락을 어께까지 기른 여성이었다. 절세 미녀까지는 아니었지만 뚜렷한 이목구비와 선해보이는 인상이 처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호감을 느끼게 하기 충분한 외모였다.

“아.. 에..”

이런 단상위에서 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을까. 자신이 단상 위에 올라서서 집중되는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부담스러웠는지 제대로 말도 못하고 우물 쭈물거리며 애꿎은 옷자락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당신이 리엔이라는 신관인가?”

그런 그녀를 보다못한 나는 어색하고 부담스러워하는 그녀의 말문을 틔워주기 위해 쥐죽은 듯 침묵해있는 관중들 사이로 그녀를 향한 간단한 질문을 던진다.

“핫?! 네.. 네. 제.. 제가 리엔이에요.”

간신히 자신을 소개한 리엔은 크게 한숨을 내쉰 다음 조금이나마 용기를 얻은 듯 미묘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이어나간다.

“이.. 이번 4차 원정대의 후방지원을 맡은 리.. 리엔입니다. 치료나 축복같은 것에 자.. 자신있으니 아무쪼록 모두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미리 준비된 듯한 글을 읽는 듯이 떠듬떠듬 건조한 목소리로 읽어나가는 리엔. 숨소리도 안들릴 만큼 고요함 속에서 자신의 말을 해나가던 리엔은 관중들의 집요한 시선을 견딜 수 없었는지 조금씩 얼굴을 붉히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마지막 가서는 가까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잘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흐지부지하게 자신의 말을 끝내버린다.

“.......”

자신의 말이 다 끝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군중. 아마도 마지막에 말끝을 흐리느라 그녀의 말이 덜 끝났다고 생각한 관중들은 숨소리 조차 죽인채 그녀의 입술에 귀를 기울이고 있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리엔은 그저 식은땀만 뻘뻘 흘리며 자신의 순백의 신관복에 주름이 질 정도로 꼼지락 꼼지락 옷자락만을 만지작 거릴 뿐이었다. 답답한 리엔의 행동과 눈치없는 관중들의 모습에 가볍게 한숨을 내쉰 나는 보란 듯이 양팔을 하늘로 들어올려 크게 박수를 친다.

짝짝짝!!

나로부터 시작된 박수소리에 얼떨결에 관중들이 같이 따라치면서 우레같은 박수소리가 광장을 뒤덮는다. 얼떨결에 일이 잘 해결되자 리엔은 상당히 지친듯 피곤한 듯 자그마한 미소를 지으며 관중들을 향해 크게 허리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건낸다.

“...크흠.”

그리고 정확히 나를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숙여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는 리엔.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어색하게 시선을 회피하며 볼을 긁적일 뿐이었다. 남에게 감사의 인사를 들어보는 경험은 그다지 흔하지 않았기에 나로 하여금 어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 일단... 원정대 신청을 해볼까.”

리엔이 단상에서 내려오고 다시한번 앞에서 연설을 했던 신관이 단상 위로 올라와 모집서로 추정되는 종이를 허공에 펄럭이며 목에 핏대를 세울 정도로 열정적인 연설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나는 군중들중 어느정도 실력있어 보이는 모험가들이 슬금슬금 다가서는 원정단 모집소를 향해 걸음을 옮겨나간다.

-----------------------------------------------

“2인실 키입니다.”

“고맙군.”

베히모스를 향하는 비공정에 탑승하는 길. 나는 예상외로 거대한 비공정 크기에 놀랐다. 이때까지 베히모스를 침공해온 다른 비공정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비공정. 튼튼한 강철로 고정된 거대한 부유석과 하늘을 뒤덮을 만한 거대한 기구를 달고있는 거대한 비공정은 그 크기만으로 주변 사람들을 주눅드게 만들기 충분했다.

“대박이야. 리엔님이 참가한다고 했을때 이게 봉이란걸 알아차렸어.”

“크크큭. 역시. 이건 거저먹는거지?”

주변에서 비공정 크기만을 보고 낄낄거리는 사람들. 아마도 크기가 거대한 만큼 다수의 인원과 다량의 병기를 탑재 가능한 초대형 비공정이었다. 신성한 자라는 리엔이 참전한 것일까. 이번에 베히모스를 점령하고 있는 로터스를 완전히 밀어버리겠다고 결심한 듯 아제리스 교단에서 총력을 다한 것 같았다.

짤랑짤랑.

나는 앞에서 여신도가 나눠준 2인실키를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며 비공정으로 올라타기 위해 마련된 계단을 밝고 올라서며 주변을 둘러본다. 비공정이 거대한 만큼 비공정에 올라탈 수 있는 계단은 여러개 존재했다. 내가 밟고있는 계단도 그중에 하나. 하지만 내 눈에 띄었던 것은 다른 계단보다 특이한 계단. 여러 가지 수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있는 계단. 척 봐도 귀족들이 밟을 만한 계단 위에서 순백의 신관복을 입은 리엔과 그녀를 호위하는 듯한 철제갑옷의 우람한 체구의 기사들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비공정에 탑승하고 있었다.

“아~!”

흘끗 주변을 둘러보던 내 눈과 고급스러운 계단을 밟으며 비공정으로 올라가던 리엔의 눈과 마주쳐버린다. 한눈에 나를 알아보며 자그마한 탄성을 지르는 리엔. 그녀는 자신이 밟고 올라가는 계단하고 내가 밟고 올라가는 계단의 목적지를 눈으로 가늠한 뒤 앞에서 자신을 호위하는 기사를 밀치고 허겁지겁 계단을 밟고 올라간다.

“리.. 리엔님!”

기사들은 리엔의 돌발행동에 당황하며 허겁지겁 그녀를 쫓아올라간다. 상당히 요란스러운 상황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나는 리엔의 황당한 행동에 가볍게 콧웃음치며 별 급한일 없다는 듯이 느긋하게 계단을 밟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 작품 후기 ==========

언제나 첫번째는 리엔이었지...

처음 등장하는 히로인

처음 따먹히는 히로인

처음으로 죽을 위기를 겪는 히로인..

하지만 언제나 독자들에게 큰 인상을 주지 못하는 산소같은 캐릭터였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