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편
<-- 성녀 리엔 -->
“타메르씨. 타메르씨~!”
어느샌가 잠이 들었던 걸까. 나는 내 몸을 가볍게 흔드는 손길에 몽롱한 잠기운을 떨쳐내고천천히 눈을 떠가기 시작한다. 흐릿한 시야사이로 보이는 주근깨 소녀. 루의 얼굴. 그다지 아름답지도. 귀엽지도 않은 평범한 외모의 루는 내가 눈을 뜨자 씨익 미소지으며 입을 연다.
“저녁시간이래요. 저녁 드셔야죠.”
“저녁...이라..”
아직 잠에 덜깨 힘이 빠진 목소리로 조용히 웅얼거린 나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다. 그러자 내 몸을 흔들던 루는 뒤로 한걸음 물러나 베시시 미소지은채 나를 바라보고있다.
“정신차리세요! 낮잠을 이렇게 주무시면 밤에는 어쩌실려구요?”
왜 나를 걱정하는 걸까.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루를 바라본다. 하지만 루는 그런 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쾌활한 미소를 머금은채 자신이 챙겨온 간단한 외투를 입고 쫄래쫄래 방문을 열고나간다.
“저녁 드셔야해요! 저는 저희 동료들과 같이 먼저 먹으러 갈꼐요!”
그리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가는 루.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기지개를 핀 나는 침대맡에 앉아서 무거운 눈가를 문지른다.
“저녁밥을 먹으라니... 거 참..”
베히모스에서 누군가 나를 이렇게 챙겨준 일은 없었다. 인간들 사이에서는 이런게 최소한의 예의인지 아니면 루가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녀석의 이런 호의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루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호감을 얻기위해 한 행동이었다면 제대로 잘못한 일이다. 나는 누군가 내 일에 간섭해들어오는 것. 그것만큼 딱 질색인건 없었다.
“젠장... 간섭은 언제나 베히모스에서 당할만큼 당해왔다고. 여기까지 와서도 간섭이라니... 망할.”
괜히 베히모스에서의 생활이 떠오른 나는 나지막하게 욕을 내뱉은 나는 다시 침대에 들어눕는다. 이대로 식당으로 갔다가는 루라는 꼬맹이 녀석이 나를 아는 척하며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같기 때문이었다. 침대에 벌러덩 들어누운 나는 다시 한번 잠을 청해본다.
“...아.”
하지만 몇 초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 한쪽에 마련된 펜과 종이를 꺼내 뭔가를 끄적거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침대에 누운 나는 내가 적은 종이를 보란듯이 침대 맡에 얹어놓고 다시 잠을 청해본다. 침대맡에 얹어놓은 종이에는 짤막한 한 문장이 적혀있었다.
‘깨우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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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용서하지 않아...’
‘괴물에게 영혼을 판 악마자식!! 네놈에겐 네놈이 가진 인간의 형상조차도 아깝다!!’
마치 사방이 밀폐된 방에 있듯이 사방으로 울려퍼지는 저주스러운 말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나는 귀를 울리는 것을 넘어서 골을 쾅쾅 울릴 정도로 요란한 저주섞인 말에 인상을 찡그린다.
“젠장... 약효가 다 된 것인가.”
나는 나지막하게 욕설을 삼키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둘러본다. 빛이란 한점도 존재하지 않는 극한의 어둠. 이런 어둠이 처음이 아니었던 나는 괜히 어둠속에 무언가의 형상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한숨을 내쉬며 이제부터 나에게 다가올 끔찍한 일에 대해 천천히 대비할 뿐이다.
“망할... 이럴 줄 알았으면 여분의 약을 항상 몸에 소지하고 다녔어야하는 건데...”
어둠속에서 마치 유령처럼 무언가의 형상이 희미하게 떠오르기 시작하자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는다.
악령들. 내 죄책감과 망상이 만들어낸 끔찍한 악령들이다. 5년 동안 인간과의 교류를 단절한채 괴물 로터스 녀석과 베히모스에서 살아가는 내 정신이 정상일 리가 없었다. 상당히 기분 더럽기는 하지만 내 스스로 내 정신병을 인정하고 있었다. 패쇠된 공간에서 괴물과의 동거. 미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상당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간만에 만난 건데... 간단히 끝내줬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는데...”
나는 내 눈앞에 떠오르는 사람의 형상을 바라본다. 이곳저곳 파헤쳐지고 살점이 대부분 상실된 해골. 머리맡에 간신히 달라붙어있는 긴 장발의 머리는 녀석이 과거 여성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런 해골을 발견한 나는 마지못해 피식 웃으며 입을 연다.
“역시 무리겠지?”
그 해골의 정체를 나는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녀석. 내 최초의 살인의 대상. 끔찍한 죄책감에 이름조차도 망각해버린 존재. 그녀는 바로 내 친여동생이었다. 초장부터 녀석의 형상을 들이대다니... 아마도 악령들이 그동안 나를 괴롭히지 못했던 사실에 대해 분노하여 단단히 준비하고 온 것이 분명했다.
“하아... 조금은 부드럽게 부탁한다고...”
깊은 한숨을 내쉰 나는 미련없이 채념을 하며 조용히 눈을 감는다. 어자피 저항따위는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은 깨달은지 오래였다. 내가 무저항의 태도로 조용히 눈을 감자 천천히 내 몸에 엄습해오는 싸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한 싸늘한 기운에 나는 이를 악문채 눈을 질끈 감아 이제곧 몰려올 끔찍한 고통에 대비한다.
“크... 크으으읏!!!”
뼈밖에 안남은 해골의 손이 내 몸안에 파고들자 나는 말로 형용못할 극도의 통증에 나지막한 신음을 흘린다. 마치 날카로운 칼이 내 몸안에 파고들어와 아주 정중하게 내 뼈와 살을 분리하는 느낌. 그러나 불행하게도 느낌 뿐이었다. 실제로 뼈와 살이 분리될 리가 없었다. 즉 녀석의 손이 지나가는 곳마다 뼈와 살이 분리되는 통증이 조금의 여과도 없이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키히히히힛...’
불행하게도 악령은 한명이 아니었다. 주변에 몰려드는 기분나쁜 웃음소리. 내가 죽인 사람이 몇 명일까. 한 5년동안 베히모스에서 하인 노릇을 해왔으니.. 이미 4자리 수에는 돌파한지 오래일 것이다. 그중에 10%만 악령이 된다해도... 와우. 상상만해도 끔찍한다.
‘케헤헤헤헷...!!’
그런 내 속마음을 대변하듯 주변에서 들려오는 기분나쁜 웃음소리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다. 수많은 악령들이 서로 뭉그적대면서 너도 나도 나를 향해 앙상하게 뼈만남은 손을 뻗혀온다.
“크하아아앗...!!”
수십개의 칼이 온몸을 헤집는 끔찍한 고통. 하지만 신체가 절단되거나 소실되지 않는다. 아주 선명하고 생생하게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악령들이 즐겁게 웃지 못하도록 최대한 비명을 참는 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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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하아아앗!!!”
끔찍한 격통 속. 나는 요란한 비명을 지르며 간신히 잠에서 깨어난다.
“하아.. 하아.. 이런 젠장...”
온몸은 끈적끈적한 땀으로 범벅된 상황. 나는 축축히 젖은 내 팔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욕을 삼킨다. 아직도 아련하게 느껴지는 그 순간의 고통들. 그저 꿈속에서의 고통일 뿐인데 실제로 몸에 남아있는 뻐근함에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가볍게 몸을 풀어본다.
“오늘 잠은 다 잤군... 망할..”
흘끗 창밖을 바라보자 상당히 높은 고도에 올라섰는지 푸른 달이 선명하게 보였다. 밤이 상당히 깊은 듯 밖은 아주 고요했다. 하지만...
“...이 놈은 어디간거야?”
뒤늦게 내 옆의 침대자리가 텅 비어있다는 사실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잠시 화장실이라도 간것이 아닐까 생각해봤지만 흩으러짐 없이 잘 정돈되어있는 침대는 아직 아무도 그 위에 누워서 잠을 청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흥... 어디서 남정네랑 뒹굴고 있는건가.”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별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모든 여행자의 무덤이라는 베히모스로 떠나는 단 하루밤의 여행. 돌아온 자가 없는 죽음의 지대로 향하는 마지막밤에 무슨 일이 벌어진다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루라는 녀석의 첫인상은 그저 순진하고 경계심 없어보이는 평범한 소녀일 뿐이었지만 생에의 마지막 밤이라는 사실이 그녀를 어떻게 만들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약도 없고... 아직 밤은 오래남은 것같은데...”
나는 다시 내 잠자리를 흘끗 바라본다. 얼마나 밤이 길게 남았는지 몰라도 이대로 잠들었다가는 또다시 악령들의 손장난에 놀아날 것이 분명했다. 내가 변태가 아닌 이상 그런 끔찍한 곳에 제발로 걸어들어갈 리가 없었다.
“술...이라면 괜찮으려나...”
잠시 고민하던 나는 알콜이라는 임시 대처방안을 생각해낸다. 이 망할 악령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내가 사용하는 약은 일종의 안정제. 베히모스 유적지에 남아있는 고서들을 통해 제조법을 알게된 안정제였다. 그 안정제를 복용하게 되면 어느정도 악령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안정제가 없는 상황. 그저 술에 취해 잠들면 어느정도 괜찮을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좋아. 출출하기도 하니까. 술과 같이 간단한 안주로 배를 채우면 되겠군.”
비록 이 야밤에 식당을 할 리가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무단침입. 하지만 뭐... 앞에 말한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는 생애 마지막 밤일텐데 뭔 일이 일어나든 무슨 상관인가. 어자피 아침이 되어 베히모스에 착륙하면 다 죽을 목숨인데. 만약 누군가 내 앞길을 막으려한다면 대충 반쯤 패 죽여서 어디 처박아두면 그만이었다.
덜컥.
생각을 마친 나는 주저없이 방문을 열고 벽에 마련된 안내표지를 따라 식당이라는 곳을 향해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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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복도를 우측으로 돌자 멀리서 식당으로 추정되는 곳이 보인다. 하지만 야심한 밤인데도 불구하고 환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식당. 밤새도록 식당을 운영하나 싶은 마음에 내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크흐.. 으흐흐흣..”
고요해질대로 고요한 밤. 높은 고도에 떠있는 비공정에는 새소리나 벌레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 어디보다도 고요했다. 그러한 고요함 비웃는 듯한 기분나쁜 웃음소리. 그러한 웃음소리에 내 인상이 험악하게 구겨진다.
“흑.. 아흣..”
그리고 들려오는 기분나쁜 여자의 신음소리. 굴욕감과 수치. 그리고 고통속에서 울려퍼지는 흐느낌. 이런 소리는 많이 들어봤다. 베히모스의 텐타클 양육소에서. 그런 추잡한 소리를 이곳에서 들을 줄은 상상도 못했던 나는 기분나쁘다는 것을 증명하듯 일그러진 얼굴로 천천히 식당을 향해 다가간다.
“크크큿.. 어이 잘 붙잡으라고... 이 년이 아비를 닮아 포기를 몰라.”
“걱정말고 빨리 끝내기나해.”
식당에 가까워질수록 선명하게 들리는 여자의 신음소리가 기분나쁘게 끈적거리는 남자들의 목소리에 나는 식당 문앞에 서서 가볍게 한숨을 내쉰다. 설마했던 일이 역시나 벌어진 것이다. 생에의 마지막밤이 될 수 있는 오늘 밤. 몇몇 겁많은 모험가들이 일을 저지른 것이 분명했다. 마치 발정난 짐승처럼 헐떡 대는 그들의 숨소리가 여자의 신음소리가 기분나쁘게 뒤엉켜 내 귀를 자극해온다.
“식당은 이곳 하나 뿐인데... 젠장. 방법이 없나.”
괜히 소란을 일으킬 생각은 없다. 나는 그저 약간의 안주거리와 술 몇 병이 필요한 것 뿐이다.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은 나는 조심스럽게 몸을 기울여 식당 내부를 확인해본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조용히 술 몇병을 가져나올 생각으로... 하지만 식당 안을 확인한 나는 익숙한 한 소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 녀석은...”
루. 그 주근깨의 소녀는 양손과 양발이 포박된 상태로 도움을 청할 수 없도록 입에 재갈이 채워진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탁자 위에서는 세명의 남성이 한 명의 여성을 처참하게 강간하고 있었다.
아마도 루와 같이 왔다는 일행일까. 루에 비해 상당히 성숙한 여성은 무력하게 세 명의 남성들에게 제압되어 그들의 손에 의해 무참히 능욕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자세히 살펴보니 비 이상적인 무저항. 거기다 동공이 풀린 눈동자. 일종의 약에 당한 것 같았다.
“음읍!!”
내가 남성들에게 강간당하는 여성에게 시선이 팔린 순간. 나를 발견한 루가 재갈이 채워진 입으로 비명을 내지르며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뭐야?!”
“이런 젠장...”
그러자 그런 루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한 한 남자가 인상을 무참히 일그러뜨리며 내가 있는 곳을 노려본다.
“잠깐 기다려. 쥐새끼 한 마리가 있는 것같은데 확인좀 하고 올게.”
========== 작품 후기 ==========
캬하하하핫!!
엑스트라는 똥이야 똥이라구!!
그저 일회용이야!!
캬하하하핫!!
다음화는 앗흥한 시츄에이션이 벌어져야.. 야설이겠죠?
하지만 다음 연재일은 다음주 월요일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