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편
<-- 백색 마녀 키르비르 -->
빠악!!
“커헉!!”
그녀는 내가 누워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만 보고 있자 다짜고짜 예고도없이 내 복부를 다시한번 걷어찬다.
로터스의 하인인 나를 제외하고 최초로 베히모스에서 지내는 유일한 인간이었던 키르비르. 로터스조차 그녀를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아크메이지였다. 그것도 이 세계의 인간이 아닌 다른 차원의 인간. 나도 처음에는 믿겨지지 않았지만 그녀의 비이상적으로 기다란 귀와 로터스의 증언으로 믿게 된 사실이었다.
뻐억!
“크읏... 도.. 도대체 왜 때리는거냐?!”
“나에 대한 회상은 거기서 접고. 너 때문에 고생하는 아가씨 좀 생각해주지?”
“그게 무슨...”
내 물음에 키르비르는 아무말없이 손짓으로 내 뒤를 가리킨다. 그제서야 나는 키르비르로부터 고정된 시선을 뗴고 천천히 얼굴을 돌려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본다.
“아.. 안녕히 주무셨어요?”
거기에는 다름아닌 리엔이 앉아있었다.
“......”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있었고.
“이게 대체 무슨...”
“타메르씨의 욕설과 비명을 듣고 옆방에 가봤어요. 거기에 타메르씨가 쓰러져있었고... 악령들이 타메르씨에게 달려들려고 하고 있어서 제가 지켜드린거에요.”
내가 의문을 표하자 리엔은 친절하게 내가 기절했었던 상황에서 벌어진 일을 친절히 설명해줬다. 그러니까 결론은... 리엔이 악령에게 영혼을 뜯어먹힐뻔 했던 나를 지켜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언제까지 신세질 생각이냐고.”
콰악!
아직도 그녀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있는 나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키르비르는 다짜고짜 내 머리카락을 붙잡고 잡아당긴다.
“아야.. 아야야!!”
예상외로 강력한 완력에 이기지 못한 나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주춤주춤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고 리엔은 그런 나와 키르비르를 재미있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내가 베고 누워있던 자신의 허벅지를 주무른다.
“왠지 네놈이 요세 연구실에 안가기에 뭔가 불안불안했더니만... 예상대로 발작이 도진거지?”
내 앞에서 팔짱을 끼고 자신보다 키가 훨씬 큰 나를 올려다보는 키르비르. 그녀의 말에 나는 심드렁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키르비르의 이마에 작은 혈관마크가 생긴다.
“너가 뭘하든 나는 상관하지 않거든? 여기 찾아오는 모험가들을 잡아 죽이거나 그들로 더러운짓을 해도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최소한 발작으로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괴성은 정말 듣기 싫어. 이 기회에 찾아와 손수 죽여주려했는데... 거참 운이 좋으셔?”
“내가 운이 좀 좋은 편이지.”
나를 비꼬는 그녀의 말을 대충 넘겨버린 나는 가볍께 어께를 으쓱인다. 그녀에게 정면으로 대항한다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유들유들하게 그녀의 말을 흘려넘기면 그만이었다.
“하여튼. 이왕 일이 이렇게 됬으니. 자.”
그런 나를 바라보며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은 키르비아는 주머니를 뒤져 무언가를 나에게 휙 던져준다. 그녀가 던져준 물건을 허공에서 낚아챈 나는 그녀가 준 물건이 뭔지 확인해본다.
“이건...”
차르륵..
그건 다름아닌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형형 색색의 알약들. 모두다 일관된 모습이 아닌 각기 다른 모양과 색을 가진 수백개의 알약들이었다.
“내 귀를 시끄럽게 자극한 일에 대가. 알지?”
“...젠장.”
나는 알약들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욕을 내뱉는다. 그러자 키르비아는 고소하다는 듯이 킥킥 웃으며 알약에 대한 설명을 해나간다.
“잘 알다싶이 모양과 색이 다르지만 알약은 전부다 너가 사용하는 안정제와 같은 효과를 지니고 있어. 단 하나를 제외하고 말이지.”
“이번엔 또 무슨 망할 수작을 부린거냐?”
“그래~ 뭘까나? 그건 겪어보면 알꺼야.”
키르비르는 키득키득거리며 곤란해 하는 내 얼굴표정을 감상한다. 그녀가 한 망할 수작. 옛날에 나는 몇 번 약을 섬취하는 것을 잊어서 발작했을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키르비르가 손수 약을 만들어서 나에게 갔다줬지만... 그것은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었다. 수백개의 알약속에 숨어있는 키르비르의 특제 독약.
그 효과는 먹을때마다 각양각색이었다. 한번은 3일동안 시력을 상실한 적도 있었고 또 다른 것은 1주일동안 방향감각을 상실한적도 있었다. 일단 시간이 지나면 해독이되는 독약이었지만 그 독성 하나만은 끔찍하다고 할 수 있었다.
“자자. 그 약을 다먹거나 내 특제 독약을 먹을때까지. 타메르의 연구실 출입을 금지시키겠습니다~”
싱글싱글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을 내뱉는 키르비르였지만 그런 그녀의 말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그녀가 하면 하지 말아야한다. 괜히 했다가 그녀의 미움이라도 사면... 아마 죽기 직전까지 괴롭힘을 받아야 할 것이다.
“키르비르님! 준비 됬습니다!”
그때 방문이 천천히 열리며 조그마한 고양이 한 마리가 방안으로 걸어들어온다. 온몸의 털빛이 검은 고양이. 하지만 발끝꽈 꼬리끝 만은 특이하게 흰털이 자라는 자그마한 고양이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조그만 은색 방울을 꼬리 끝에 매달고 있었다.
“아 플루토. 준비 된거야?”
녀석은 다름아닌 키르비르의 충성스러운 하인인 플루토라는 고양이이다. 아마도 마녀같은 키르비르가 소환해낸 소환물이겠지.
“쿠션 몇 개랑.. 깨끗한 이불 세 개. 수건 한상자. 그리고 간단한 간식거리까지. 전부 챙겼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플루토라는 고양이 녀석은 정말 신기했다. 자그마한 몸을 가지고서도 키르비르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해내는 능력. 고작 저렇게 조그마한 고양이 몸으로 쿠션 몇 개랑.. 깨끗한 이불 세 개. 그리고 수간 한상자..
“자.. 잠깐?! 그건 이 숙소의 용품들이잖아!!”
플루토가 챙긴 물건을 말하자 나는 눈을 휘둥그레뜨며 키르비르에게 외친다. 그러자 키르비르는 당연하다는 듯이 어께를 으쓱거리며 말한다.
“참고로 더러워진 이불과 수건, 빨래감들은 창고에 구겨넣어놨어.”
“하아...”
뻔뻔한 그녀의 말에 나는 무거운 한숨을 내쉰다. 뭐 이런일이 한두번은 아니었다. 그녀는 매년 새이불을 가져가고 자신이 쓴 이불을 다시 나에게 줘 깨끗이 빨라는 압력을 가한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게 무료 봉사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대신 물탱크에 물을 가득 채워놨어~!”
“그 쥐 오줌통만한 물탱크의 물은 너의 빨래만 빨아도 절반 이상사용한다고...”
내 말을 못들은 척 하며 개운하다는 듯이 기지개를 핀 키르비르는 조용히 플루토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러자 플루토는 기분이 좋은 듯 조용히 눈을 감고 그녀의 손길을 만끽하다 가뿐하게 뛰어올라 그녀의 어께에 착지한다.
“그럼 돌아가볼게. 휴가에서 돌아왔으니... 오늘 저녁은 기대해도 되겠지? 과자나 육포같은것만 먹어서 입이 텁텁하단 말이야.”
“기대하지 말아라.”
그녀의 빨래, 식사는 전부 내 책임이었다. 키르비르가 가진 마법이라면 손가락 까딱한 것으로 처리가 될일이었지만 정작 당사자는 귀찮다는 이유로 절대 그런짓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떻게보면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나를 이용하거나 괴롭히려는 그녀의 무자비한 행패로 느껴졌지만 힘이 약한 나는 그녀에게 뭐라할 권리는 없었다.
“자~ 돌아가자 플루토!”
어꼐에 앉아있는 플루토의 턱을 가볍게 간질으며 키르비르는 느긋하게 방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그녀가 해달라는 일을 듣는 것만으로도 피로를 느낀 나는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며 방안에 마련된 의자에 걸터앉는다.
“도와... 드릴까요?”
그런 나를 바라보며 리엔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져온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배려에 나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그녀의 도움을 거절한다.
“어자피 내가 해야할 일이다. 남의 도움을 받으면 게을러질 뿐이야.”
리엔은 곧 이곳을 떠나야할 몸이었다. 그녀의 도움을 받다가 그녀에게 여러 가지로 의지하게 되면 나중에 피곤해지는 것은 나 혼자일 뿐이다. 그럴바에 차라리 애시당초 그녀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이 좋았다.
“일단... 고맙다고 해야되겠군.”
흘끗 리엔을 돌아본 나는 그녀의 도움에 대한 솔직한 감사의 표시를 한다. 어찌됬든 그녀덕분에 망령들에게 영혼을 뜯어먹히지 않게 된 것이었으니. 그런 내 감사의 표시 리엔은 쑥쓰러운 듯 볼을 긁적이며 얼굴을 붉힌다.
“타메르씨. 저를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
리엔의 물음에 나는 그녀가 질문을 던진 요지를 파악 못하고 의아하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러자 리엔은 애꿎은 손가락을 만지작 거리며 부끄러운 듯 자그마한 목소리로 입을 열어간다.
“제가 한 예언... 잊지 않으셨죠?”
“그거 말인가? 너와 내가 한방에서 나체로 나뒹굴고 있다는것?”
“으.. 우으아아.. 그.. 그렇게 상세하게 말 안해주셔도 돼요!!”
내 말에 잘익은 문어처럼 새빨개진 얼굴로 리엔이 바락 소리를 지른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살짝 눈살을 찌푸린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한다.
“미안하지만 여전히 나는 너에게 관심이 없다.”
“아니... 그 뜻이 아니에요. 어쩌면 제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서요.”
의기소침한 그녀의 말에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본다. 이곳은 베히모스 유적지이다. 모든 인간들이 꿈에 그리워하는 수많은 고대의 지식이 잠들어 있는곳. 인간들은 절대 이 유적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수많은 모험가들이 이 유적지를 정복하러 오겠고 그에 따라 리엔이 돌아갈 기회는 수없이도 많이 생길 것이다.
“제가 본 미래는 틀리지 않아요. 하지만 언제 벌어지는지는 알 수 없어요. 1분뒤가 될 수도 있고... 10년 뒤갸 될 수도 있죠.”
“그래서... 너의 말의 요지는 뭐냐?”
“그러니까...”
부끄러운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리던 리엔은 용기를 내려는 듯이 크게 숨을 들이키고 나를 똑바로 바라본다. 하지만 부끄러움에 붉게 달아올르는 것도 부족해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리엔의 얼굴은 진지함보다 그저 웃음거리로 충분한 표정이었다.
“제가 본 미래에서... 저는... 그니까.. 그러니까... 적그...적이었으니까..”
“...적극적이었다고?”
“꺄아아아앗!!”
그녀가 대충 얼버무린 단어를 다시 지적하자 리엔은 부끄러움에 못이겨 얼굴을 가린채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바동거린다. 괜한 과민반응을 하는 그녀의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나는 그녀의 발작이 가라앉기를 조용히 기다릴뿐이었다. 그리고 몇 분후. 얼마나 바동거렸는지 헐떡거리는 숨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나를 바라보는 리엔. 이미 헝크러질 대로 헝크러진 그녀의 머리카락과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은 왠지모를 조화를 이루며 보는 사람을 하여금 웃음을 터트리기 충분히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 그니까요... 아마도 많은 세월이 지나서... 제가 타메르씨를 그... 사.. 사... 아니 좋아하게..”
“사랑이겠지.”
“꺄아아아아~!”
다시 얼굴을 파묻고 바동거리기 시작하는 리엔. 이래서는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며 답답함에 내 머리카락을 쓸어올린다.
“하아... 하아...”
너무 지나치게 바동거리느라 이미 지칠대로 지친 리엔은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축 처진채 거친 숨을 헐떡인다. 그런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던 나는 그녀가 하려던 말을 아주 간략하게 요약해준다.
“그러니까 너의 말은. 어떤 이유라서도 너가 인간들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아 이 베히모스에 오래머무르게 되었고. 결국 그 세월을 통해 나와 너가 아주 진득한 관계까지 나아갔다는 거지?”
“하아.. 하아.. 네.”
축 처진 리엔은 더 이상 바동거리지 못하고 자포자기한듯 자그마한 목소리로 내 말에 수긍한다. 그런 그녀의 대답에 피식 웃은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그녀에게 한마디를 남기며 방에서 걸아나간다.
“나도 그렇게 됬으면 좋겠군. 누군가와의 사랑이라... 나와 상당히 거리가 먼 말이기는 하지.”
========== 작품 후기 ==========
vuswlgns / 수정전 원작은 과거 던파타임이라는 사이트에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증발되었죠.
변사체 / 폭연은 없습니다아~
Lizad / 음?!
Solar Eclipse / 기대해주세요!
하루2권이상 / 저도 리엔보다 키르비르가 더 좋음.
Solar Eclipse / 우째서 그렇게 개성넘치게 됬는지는 아직도 미지수...
하지만 이번 리메이크에서는..
리엔을 절대로 산소같은 히로인으로 만들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