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터스의 하인-32화 (32/298)

32편

<-- 네이 -->

“하아... 하아... 하아...”

가슴이 들썩일 정도로 거친 숨을 내쉬며 나는 내 눈앞을 바라본다. 내가 이성을 되찾았을때 모든 상황은 종료된 후였다.

“.....”

나는 내손에 붙잡혀있는 존재를 바라본다. 내 손에 머리를 붙잡혀 허공에 매달린채 축 늘어져있는 네이. 피투성이가 된채로 힘없이 꺽인 그녀의 고양이 귀와 축 늘어진 그녀의 꼬리가 그녀가 의식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젠장...”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으며. 나는 뒤늦게 붙잡고 있던 그녀의 머리를 놓아준다. 그러자 허공에 매달려있던 네이의 신형은 마치 실이 풀린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져내리며 내 발앞에 자신의 얼굴을 떨궈버린다.

“후우... 도데체.. 이건...”

그다지 낯선 경험은 아니었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감정이 지나치게 격해지면 이런상황이 발생하곤했다. 광혈의 저주가 제멋대로 폭주하며 내 이성이 사라진 광폭화 상태. 과거 그런 상황을 여러번 겪었던 나는 내 스스로가 광폭화가 되면 끔찍한 일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이성을 상실하여 파괴본능에 사로잡힌 나는 주변의 생물이나 물건들을 무차별적으로 부수거나 학살해왔었다. 과거 그런 광폭화 때문에 가족과 친구. 심지어 내가 살던 마을까지 잃어버렸던 나였다.

“.....”

나는 광폭화의 결과로 놓여진 네이라는 수인족을 내려다본다. 이미 죽은 듯 미동도 없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나지막하게 입술을 꺠문다.

“젠장... 죽어버린건가..?!”

그녀가 죽으면 곤란했다. 내 목적은 침입자 제거 및 포획. 물론 제거는 오직 남성에게만 한정된 이야기였다. 상대가 여성이라면 내 목표는 오직 포획뿐. 제거란 있을 순 없었다. 나는 대검을 내 옆에 꽂아넣으며 황급히 그녀의 몸상태를 확인해본다.

두근..

그녀의 목근처에서 맥박을 잡으니 가녀린 맥박이 느껴졌다. 이제 곧 끊겨도 이상할 것 없을 정도로 가느다란 맥박. 아주 얇지만 그녀는 간신히 자신의 생명줄을 잡고 있는 것이었다.

“젠장... 치료를..!”

그녀를 위한다는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녀석에게 캐내야할 정보가 있었다. 어째서 이 유적지에 몰래들어왔는지. 어째서 유령처럼 사라질 수 있었던건지. 물어볼 것은 산더미처럼 남아있는 그녀를 이대로 죽일 수는 없었다.

“크읏..!”

나는 내 몸이 피투성이가 되는 것을 감수하면서 쓰러진 네이의 몸을 들어올린다. 하지만 리엔에게 가기엔 너무 길이 멀었다. 그녀에게 도착할때까지 네이가 버텨줄지 미지수였다.

-흐음.. 쓸모없게 되어버린건가? 아쉽군.

머릿속으로 안타까움이 가득한 로터스의 사념이 들려온다. 녀석은 네이를 걱정하기보다 그녀를 텐타클 생산용으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이미 차갑게 식어가는 그녀에게 로터스는 더 이상 관심은 필요 없다는 듯이 그 사념을 끝으로 북부지역에서 눈을 돌려버린다.

“젠장... 그냥 죽지말라고!!”

그녀가 죽을때는 나에게 모든 정보를 알려주고 난 뒤라도 늦지 않는다. 행여나 인간들이 이 유적지에 몰래 잡입할 길이 생겼다던다. 아니면 내가 모르는 유적의 비밀. 그 외 등등 알아내야할 것이 많았다.

“크읏...!”

점점 심장박동이 약해진다. 그녀의 숨결이 이제 곧 끊어질 듯 가늘어진다. 그녀는 과다출혈로 새파랗게 변색된 입술을 파르르 떨며 내가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무언가를 계속 반복해 중얼거리고 있었다.

“젠장.. 어쩔 수 없는건가..”

가볍게 한숨을 내쉰 나는 주저없이 그녀의 상의를 위로 들쳐낸다. 그러자 새하얀 그녀의 가슴이 들어난다. 나는 그녀의 왼쪽 가슴. 즉 심장이 있는 부위에 내 손을 올려둔다. 그러자 부드러운 촉감이 내 손안에 가득히 잡히지만 지금 그런 감촉을 즐길 여유따윈 없었다.

“흐읍..!!”

두근!!

내 짧막한 기합과 함께 그녀의 왼쪽 가슴에 올려둔 내 오른팔 가득히 붉은 문양이 새겨진다. 그리고 이어서 내 심장이 강하게 박동하며 붉은 핏물이 내 오른팔을 따라 천천히 네이의 가슴을 통해 흘러들어가기 시작한다.

광혈의 저주가 가진 또다른 힘. 그것은 바로 피를 움직이는 능력이었다. 물론 그 피는 내 몸 안에 있거나 외부로 분출된 타인의 피에 한정되지만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도 중요한 능력이었다.

두근!

내 심장이 강하게 박동에 따라서 붉은 핏물이 내 팔을 타고 네이의 몸에 흘러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러자 차갑게 식어가던 네이의 몸이 조금씩 그 온기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다행히도 거부반응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의 몸으로 흘러들어간 내 피들은 약해질대로 약해진 그녀의 몸을 조금씩 회복시켜나가고 있었다.

“크읏...!”

그녀의 몸에 적지않은 피를 수혈해줬다. 순간 머리가 띵한 현기증을 느낀 나는 작게 신음을 흘리며 휘청거리는 내 몸의 중심을 바로잡는다.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차 천천히 네이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하자. 그 것을 확인한 나는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고 있던 내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낸다.

“후우... 젠장..”

간만에 느껴보는 진득한 피로감에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쉰 나는 내가 땅에 박아둔 대검에 내 몸을 기댄다. 지칠대로 지친 나는 머리가 띵해질정도로 어지러운 현기증을 느끼며 바닥에 쓰러져있는 네이의 몸상태를 확인해본다.

다행히도 끊어질 듯 가늘어져있던 그녀의 숨결은 천천히 정상을 되찾아가고 있었고 창백했던 안색또한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뿐만 아니라 온 몸에 새겨져있던 자잘한 상처들과 부상들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회복되어져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몸안에 흘러들어간 내 피의 영향일 것이 분명했다. 비록 일부이긴 해도 내 피는 광혈의 저주가 담긴 피. 내 괴물같은 회복력중 일부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걸로... 대충 고비는 넘긴건가.”

빠르게 회복되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은 많았다. 대검에 몸을 기댄 나는 바닥에 쓰러져있는 네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단아한 입술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는 옅은 눈썹. 차분히 가라앉아있는 단발머리카락. 예상외로 선해보이는 인상이 강한 얼굴이었다. 거기다 평범한 인간과 다르게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삐쭉 튀어나온 끝이 새하얀 검은 고양이 귀가 그녀의 외모를 더욱 신비하게 보이게 해주고 있었다. 절세미녀는 아니었지만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할만한 인상이다.

“좀... 피곤하군.”

그녀의 얼굴을 조용히 관찰하던 나는 순간적으로 눈앞이 흐릿해진다. 아마도 과도한 수혈에 의한 후유증일까. 마치 무거운 돌을 머리와 어께 위에 올려놓은 듯한 피로감이 내 몸을 짓눌러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얼굴이 아래로 꺽이며 나는 옅은 잠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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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메르와 네이가 쓰러져있던 방. 먼저 몸을 일으킨 것은 의식을 되찾은 네이였다. 조심스럽게 상체를 일으킨 네이는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자신의 옷을 살펴보며 자신의 상처를 확인해본다. 하지만 놀랍게도 전투로 인해 그녀의 몸에 새겨졌던 상처들은 전부 깨끗이 아물어있었다.

“....”

네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서 땅에 박힌 대검에 몸을 기댄채 아직도 졸음에 취해있는 타메르를 바라본다.

“져버렸어... 그것도 깔끔하게...”

네이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녀가 의식을 잃기전. 그녀는 광폭화된 타메르에게 처참히 당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상처하나 없이 말끔해진 몸과 주변 텐타클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듯이 바로 옆에 앉아있는 타메르. 이 사실하나만으로 네이는 완벽하게 그에게 완벽하게 패배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질줄은 몰랐는데...”

천천히 몸을 일으킨 네이는 자신의 옷에 묻어서 아직 굳어지지 않아있는 피를 가볍게 털어내며 타메르를 흘긋 내려다본다. 그런 그녀의 눈은 여러 감정이 뒤섞여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개를 좌우로 털어 상념을 깨끗이 씻어낸 네이는 한결 차분해진 눈동자로 타메르를 내려다본다.

완벽한 무방비 상태의 타메르. 만약 네이가 자신의 패배를 숨기기 위한다면 지금 당장 그의 목을 베어낼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네이는 자신의 패배를 숨기지 않으려는 듯 미련없이 그로부터 등을 돌린다. 그리고 로터스의 관심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전. 그는 자신이 나왔던 출구를 향해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겨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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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내 스스로 잠에 빠졌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나는 가벼운 탄성과 함께 눈을 번쩍 뜬다. 그리고 황급히 내 바로앞에 쓰러져있던 네이를 확인해보려한다.

“이런.. 젠장.”

하지만 이미 그 자리에 네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누군가 이 자리에 누워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핏자국들뿐. 이미 네이의 자취는 귀신같이 사라져있었다.

“또... 놓친건가..”

나는 자그맣게 신음을 흘리며 뒤늦게 주변을 둘러본다. 하지만 지금 와서 그녀를 추적할 수 있으리가 만무했다.

“....쳇.”

그녀를 추적하는 것을 포기한 나는 가볍게 혀를 차며 등을 돌린다. 이제 아마 그녀를 두 번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가 나에게 한번 패배한 이상. 그녀또한 행동하는데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가능성이 있었다. 만약 그녀가 몸을 숨기고다닌다면 그녀를 추적하기 전. 그녀는 더 이상의 싸움없이 그 자리를 신속히 벗어날 것이다.

“어쩔 수 없군.”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나는 숙소를 향해 걸음을 옮겨나간다. 이미 놓친 것은 놓친 것. 지금와서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었다. 그녀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면 보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변사체 / 연참은 종종 특별한 휴일이나 즐거운 일이 있을때만!

abcbbq / 앜ㅋㅋ 그 결과로 만들어진게 지금 조아라에 살짝 올라가 있는 Cursed Destiny. 하지만 로터스의 하인을 재 연재하느라 지금은 연재중지상태에요.

디엔s / 그렇죠. 슬픈 과거죠.

Lizad / 선감후감상필!!

느아아아아아!! 세상에 불면증을 가진 사람들아! 나에게 힘을 빌려줘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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